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99화 (99/195)

99화 chapter 24. 응급 회식 (4)

시현은 달리면서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ER 최영임입니다.”

응급실 차지 간호사였다.

“천시현입니다. 입퇴국식에 갑자기 심정지 환자가 생겼습니다.”

“우리 선생님들 중에서요? 누군데요?”

그녀가 크게 놀라 소리쳤다.

“식당 손님 중 한 분입니다. 지금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CPR 중이긴 한데…… 에피네프린 다섯 앰플 실린지에 담아 주세요! 지금 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할게요. 병원 건너편 일방로 쪽에서 오시는 거죠?”

“네, 부탁드립니다!”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상황이니만큼 응급실에 도착해서 앰플을 자르고 주사기에 담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선생님! 여기요!”

응급실 앞 건널목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시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최영임 선생님이 이거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헉헉.”

응급실 액팅 간호사였다.

차지 간호사가 길 건너까지 마중을 나가도록 지시한 모양이었다.

그녀 또한 급하게 뛰어온 탓에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주사기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바로 갈게요!”

시현은 주사기를 낚아채듯 건네받고 그 길로 식당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몇 분 절약했어.’

딩동!

[SORA : 환자 생존 확률이 떨어집니다.]

[치료진척도 10/100 생존확률 13%]

‘벌써 이렇게…… 지금쯤 준식이는 도착했으려나.’

한준식이 AED를 늦지 않게 구해 왔기를 바라며.

당장은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SORA : 최대한 서둘러 주십시오.]

딩동!

SORA의 말이 끝나자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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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톤 퀘스트 – 사슬의 수호자]

난이도 S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은 누군가의 세계를 바꾸는 일입니다.

성공 조건 : 심정지 환자의 성공적인 ROSC(자발 순환 회복)

성공 보상 : ‘시스템 업그레이드 키트’ + a

실패시 : 시스템 기능 정지 및 이전 회차 기억의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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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이전 기억이…… 사라진다고?’

퀘스트 내용이 몇 분 사이에 갱신되었다.

실패 패널티가 유독 눈에 띄었다.

수락 전에는 물음표로 가려져 있던 부분이었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이야기를…….’

[SORA : 아셨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요?]

‘그건…….’

[SORA : 키스톤 퀘스트는 보통 이런 식입니다. 이 퀘스트는 시스템 사용자로서의 적합성을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합니다.]

‘시스템 사용자로서 적합성?’

[SORA : 보상이 불확실하고 손해를 예측할 수 없는 경우라도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는지가 첫 번째입니다.]

패널티가 물음표 처리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럼 두 번째는?’

[SORA : 고난도 퀘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 능력을 평가합니다. 충분한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도전은 무모함과 같으니까요.]

‘바꾸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게 더 낫다는 건가?’

사용자의 안녕.

시스템의 존재 목적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조치였다.

이전 회차의 기억을 사용할수록 알 수 없는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고마웠어.’

[SORA : ……네?]

알림창에서 SORA의 당혹감이 느껴졌다.

‘지금부터는 일에만 집중해야지. 퀘스트 실패할 때…… 경황이 없어서 작별 인사를 못 해도 서운해하지 말라고.’

식당까지는 200여 미터.

시현은 마지막 힘을 짜내 달리기 시작했다.

* * *

“교수님, 여기 말씀하신 AED 구해 왔습니다. 헉헉.”

한준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식당으로 돌아왔다.

근처 건물 로비에는 시현의 말처럼 AED가 비치되어 있었고.

사람이 죽어간다는 설명 하나로 별다른 제지 없이 AED를 들고나올 수 있었다.

‘AED? 내가 언제…….’

조광필은 한편으로 놀랐으나 일단은 한준식을 반기며 AED를 열었다.

신속한 제세동이 환자의 생사를 가른다.

응급실에서 쓰는 각종 모니터링 도구들과 제세동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식당에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였다.

[패드를 부착하세요. 패드를 부착하세요.]

전원을 켜자 AED에서 긴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레지던트들이 일사불란하게 환자의 가슴팍에 패드를 부착했다.

[심장 리듬을 분석 중입니다.]

AED는 스스로 심전도를 분석하고 전기 충격이 필요한 환자에 한해 자동으로 전기 충격을 가한다.

음성으로 단계별 안내를 해주기 때문에 지시만 따르면 의료인이 아닌 사람도 쉽게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제세동해야 합니다. 충격(shock) 버튼을 누르세요.]

“떨어지세요!”

조광필이 근처 의료진들을 물리고 버튼을 누르자 환자의 상체가 들썩였다.

“컴프레션!!”

전기 충격이 끝나기가 무섭게 흉부 압박이 재개됐다.

모니터가 붙어있지 않아 심박동이 돌아왔는지 실시간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

다음 주자는 응급의학과 1년차 이철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

죽은 사람마저 되살릴 기세로 압박마다 혼신의 힘을 싣는 것이 느껴졌다.

딸랑!

식당 도어벨 소리와 함께 시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교수님, 지시하신 대로 여기 에피(epinephrine) 가져왔습니다!”

‘에피네프린? 이건 또 무슨…….’

다음 순간 한준식이 시현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광필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씩 웃었다.

‘듬직한 녀석들.’

시현과 한준식 그리고 이철원까지.

조광필은 문득 자신의 레지던트 1년차 생활을 떠올릴 뻔했으나, 회상에 쓸 시간 따위는 없었다.

“에피 한 앰플 IM(근육주사) 하세요. IV(정맥주사)는 제가 하겠습니다.”

심정지로 인해 전신 혈관이 허탈 상태였기 때문에 정맥 루트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

조광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경정맥(internal jugular vein, 목을 지나는 정맥 중 하나)을 깊숙이 찔렀다.

‘블라인드로 저게 가능하다고?’

옆에서 지켜보던 레지던트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컴프레션 멈추지 말고 계속해!”

그러기를 2분.

모든 의료진이 숨죽여 AED의 분석 결과에 귀를 기울였다.

[심장 리듬을 분석 중입니다.]

[제세동 필요하지 않습니다.]

“펄스(맥박) 돌아왔습니다!!”

4년차 엄주영이 환자의 대퇴동맥을 짚어보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와아! 살았다! 살았어!!!”

“정말 ROSC(자발순환회복) 된 거야?”

“지금 여기서 ACLS(전문심폐소생술)를 다 한 거?”

환자를 둘러싼 의료진들이 놀라움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으으…… 켁켁.”

환자가 이내 앓는 소리를 내며 기침을 시작했다.

아직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의식도 일부 회복했다.

딩동!

[system : 환자의 생존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치료진척도 61/100 생존 확률 27 -> 49%]

‘됐다!’

처음으로 생존 확률이 5할에 근접했다.

그때였다.

딸랑!

또다시 도어벨이 울리고, 앰뷸런스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들이닥쳤다.

심정지 환자를 생각하며 각오하고 들어왔는데 환자는 이미 수많은 의사 간호사들에 둘러싸여 자발 순환을 회복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구급대원이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삼아대병원 응급실에 연락해뒀습니다. 그쪽으로 이송해주십시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조광필 교수가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휴. 우선 급한 고비는 넘긴 건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시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후우-

딩동!

[system : 환자의 심박동이 유지됩니다.]

[system : 퀘스트 ‘사슬의 수호자’의 성공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숨을 가라앉히는데 반가운 알림음이 울렸다.

[system : 성공 보상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SORA :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과 좀 더 일할 수 있겠네요.]

‘고마워. 그런데 보상이 산정 중이라는 건? 정해진 게 아니었어?’

정신없이 달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지만 갱신된 알림창에서 뭔가 본 것 같았다.

무슨 시스템 키트였는데.

[SORA : ‘시스템 업그레이드 키트’는 이미 획득하셨습니다. 환자의 최종 생존 결과에 따라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시스템 업그레이드 키트]

못 보던 아이템이 새로 생기긴 했다.

‘이건 뭐 하는 거야?’

[SORA : 시스템 관리자 강성진과 아이템 샵의 주인이 심혈을 기울인 대규모 업데이트의 결과물입니다.]

‘바로 사용할게.’

추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망설일 이유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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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업그레이드 키트 릴리즈 노트]

매사 적극적인 사용자 특성에 맞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합니다.

1. 향상된 정보창 - 정보창이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2. 스킬 시스템 - 임상 술기가 스킬의 형태로 시전 됩니다. 반복 사용할 수록 숙련도가 올라갑니다.

3. 의학 정보실 - ‘세상의 모든 차트’ 시스템이 주요 교과서 및 주요 저널과 융합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최신 지견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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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 ‘세상의 모든 차트’는 사용자의 건강하고 안전한 수련을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향상된 정보창에 스킬 시스템이라…….’

시현이 1년차 생활을 잘 해내는 데는 회귀 전의 기억 못지않게 시스템과 포션의 도움을 받는 부분도 컸다.

그 시스템 성능이 더 향상되었다니 의사로서의 역량도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시현은 시험 삼아 ‘의학 정보실’ 메뉴를 펼쳐보았다.

‘맙소사. 시놉시스, 해리슨, 사비스톤에…… 노박까지?’

정신과를 비롯한 내과계와 외과계 교과서 최신판들이 서재에 올라와 있었다.

실시간으로 시스템창에 교과서를 띄워 놓고 찾아볼 수 있으니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걸어 다니는 교과서다!’

다른 기능은 다 놔두고서라도 아무 때나 교과서와 최신 논문에 접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 * *

구급대원들이 환자들 데리고 나간 뒤 식당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의원님이 살았어요!”

환자 곁에 서 있던 중년 남성이 조광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의원… 님이요?”

“네, 지금은 바로 병원으로 가봐야 해서… 나중에 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는 명함 한 장을 건넨 뒤 서둘러 병원을 향했다.

[허주현 의원실 보좌관 김성준]

그 내용을 확인한 조광필의 눈이 커졌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던 탓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삼아대병원이 위치한 지역구의 국회의원이었다.

“아. 목 탄다. 다들 고생했고 오늘은 맨정신에 집에 돌아갈 생각들 말자.”

조광필은 레지던트들을 흐뭇한 미소로 둘러보더니 시현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깨진 그릇이며 먹다 남긴 음식들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의 얼굴에는 어느 때보다 활기가 돌았다.

‘오늘 밤은 길어지겠어.’

시현은 인벤토리를 열어 ‘회복 포션’ 두 개를 연거푸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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