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00화 (100/195)

100화 chapter 24. 응급 회식 (5)

* * *

“캬~ 시원~ 하다.”

응급의학과 1년차 이철원이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말했다.

한겨울의 쌀쌀한 날씨였으나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온 터라 몹시도 목이 탔다.

“형, 고생했어요. 아까 컴프레션 정말 제대로 던데.”

한준식이 이철원을 치켜세웠다.

“그랬냐? 내가 원래 힘이 좀 좋지? 하하하.”

“에이……. 선생님 맨날 당직실에서 골골하는 거 제가 다 봤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현유민 간호사가 이철원을 놀리듯 말했다.

“야, 그나저나 준식이는 어디서 AED를 구했어? 시현이는 어느 틈에 응급실까지 뛰어갔다 왔고?”

“그거 조광필 교수님이 시키신 거예요.”

AED 위치를 미리 알고 있었다거나 포션을 썼다고 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1년차들끼리 대화가 한창일 때 누군가 시현이 앉은 테이블에 술잔을 들고 와 앉았다.

[정유희 여/26 응급실 간호사 3년차]

“시현쌤은 응급의학과 하지 그러셨어요? 손발이 너무 잘 맞던데요?”

그녀는 전에 없던 친한 척을 하며 시현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이 분은 왜…….’

[system : ‘피아식별 모드’를 활성화합니다.]

소름이 돋는 기분에 저절로 ‘피아식별 모드’가 활성화되었다.

‘어째 아까보다 더 짙어진 것 같은데…….’

생글생글 웃는 정유희에게서 여전히 검붉은 오라가 피어올랐다.

“고맙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시현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녀와 거리를 조금 벌렸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 조금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정신과는 마음에 드세요? 저도 평소에 관심이 많은데…… 숨겨진 속마음 읽어내는 그런 것도 가르쳐 주나요?”

정유희는 시현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저런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정신의학은 독심술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려고 노력은 하죠.”

“그래요? 제 심리는 어떤 것 같아요?”

정유희는 어느새 턱을 괴고 시현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딩동!

[system : 정유희 간호사의 주된 감정은 ‘분노’ 입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왜 이러는 건가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시현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오해할 정도였지만, 그녀의 본심을 알고 보니 등골이 오싹할 따름이었다.

“천 선생, 담배 태우나?”

시현이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난감한 타이밍에 조광필이 다가와 말했다.

“네, 과장님. 물론입니다.”

시현은 비흡연자였고 흡연은 뇌질환이라는 신념마저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눈앞에 정유희가 담배보다 더 무서웠다.

* * *

“덕분에 환자가 살았군.”

“아닙니다.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결과가 좋았죠.”

조광필의 말에 시현은 손사래를 쳤다.

“글쎄. AED나 에피네프린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BLS(기본심폐소생술) 만으로 돌아오는 환자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사실 그랬다.

원래의 생존 확률은 채 20%도 되지 않았다. 과거 정보와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심장 리듬을 되돌릴 수 있었다.

시현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이거…… ‘예전’에도 겪은 일인가?”

조광필이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응급 상황에 그런 판단이라니 순발력이 좋았어. 보좌관한테 들었는데 환자가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고. 허주현 의원이라고…… 이곳 지역구 의원이라 들어봤을 것 같은데.”

‘허주현 의원이라면…….’

다음 순간 뉴스 기사의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 허주현 의원 의식 잃고 삼아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

회귀 전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60대 국회의원이 의식 불명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했다.

구급대원의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들어왔으나, 이미 심정지로부터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지나 소생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의 죽음에 병원 측 과실은 없었으나,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하필이면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온 그 날에 응급의료센터 회식이 있었던 것.

‘그때 그 날이 오늘이었나?’

응급실에 의료진 몇 명이 더 있었다고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만, 같은 시각 응급의학과 과장인 조광필을 비롯한 주요 보직자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비번인 사람들만 회식에 참석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회식만 아니었으면 허주현 의원이 살 수도 있었다는 식의 추측성 기사까지 나돌았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 오늘 우리 회식 장소가 다른 곳이었으면… 상상도 하기 싫군.”

유명 인사가 응급실에서 사망했으니 책임자로서 병원으로 복귀해야 할 수도 있는데 술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회귀 전과 정확히 같은 상황이 펼쳐질 터였다.

“그저 우연이라고 하니 더는 묻지 않겠지만, 매사 조심하도록 해. 자칫 천 선생이 위험해질 수 있어.”

“어떻게… 위험해진다는 말인가요?”

“그거야 알 수 없지. 어쩌면 내 노파심일 지도…… 자넬 보고 있으면 ‘옛 친구’ 생각이 나서 말이야.”

조광필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스쳤다.

- 그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은…… 천재는 단명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자 불현듯 최세영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기태…… 교수님인가요?”

그 말에 조광필은 아주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 교수님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세영이는 뭐라고 하던가?”

“자세한 내용은 못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 대외적으로는 업무 중 추락사였네.”

“업무 중…… 추락사요?”

대부분 시간을 수술실과 외래 진료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추락사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인이었다.

“산 정상에서 실족으로 떨어진 환자가 있었는데, 부상이 워낙 심했던 모양이야. 현장에서 바로 사망할 수도 있는 상태라…… 구조헬기에 동승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

“최 교수님이 직접 가셨던 거군요.”

“맞아. 사실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니 직접 간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싶었지만, 그래도 최 교수는 가겠다고 했지.”

당시는 조광필이 흉부외과 주니어 스텝일 무렵.

닥터헬기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때였다.

“구조 과정에서 사고가 있었습니까?”

“사고라…… 공식적으로는 구조 활동 중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뭔가 석연치 않은 면이 있었던 것인지. 조광필의 표정이 금세 심각해졌다.

“그때 최 교수가 구조하려고 했던 환자, 우리 병원으로 왔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어. 문제는 병원에서 평가한 사망 추정 시각이 구조요청 시각보다 한참 전이라는 거야.”

‘사망하고 한참이 지나서 구조요청을 했다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당시 동행했던 구조대원이 환자 발견 당시 환자가 분명 살아 있었다고 증언했다는 거지.”

“사망 추정 시각과 구조대원의 진술이 엇갈리는군요.”

최기태 교수가 살아 있었다면 정확한 증언을 해주었을 테지만, 그는 구조 도중 사망했다.

“그렇지. 이해가 안 가는 점이 많다 보니 그 구조 요원과 따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약속도 잡았는데…….”

“뭐라고 하던가요?”

“결국 만나지 못했어. 그 구조대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됐거든. 워낙 이상한 사건이라 의혹 제기를 해봤지만, 사고 당일에 환자가 등산하는 걸 봤다는 증언들이 있어서 결국 흐지부지됐지.”

이미 사망한 등산객, 최 교수의 사고 그리고 구급대원의 실종.

의문스러운 점투성이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목표는 최 교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미래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최고의 써전.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무슨 일에 연루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되었을 터였다.

“그런데, 최 교수님이 회귀자라는 건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처음부터 궁금했던 점이었다.

최기태 교수 자신이 주변에 알렸을 리는 없고.

가족도 아닌 조광필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가.

“기태… 아니, 최 교수가 세영이를 부탁하면서 이야기해줬어.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이라도 한 건지…… 처음에 무슨 황당한 소리냐면서 안 믿었는데 지나고 나니 모든 게 최 교수가 말한 그대로였어.”

친구에게 가족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면 매사 극도로 조심했을 텐데.

그럼에도 그는 석연치 않은 구조요청을 피하지 않았고, 그 일로 사망했다.

‘그대로 둘 수 없었겠지…….’

최기태를 만난 적은 없었지만, 새삼 그가 했던 고민을 알 것 같았다.

“짚이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모르겠어. 특별히 원한을 살 만한 친구가 아닌데…… 원장단과 사이가 조금 안 좋긴 했지만.”

- 특히 원장단 쪽 사람들과는 얽혀서는 안 돼. 전에도 말했듯이 당분간은 레지던트로서 진료에 전념하고.

언젠가 조광필이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그는 최 교수의 죽음이 원장단과 관련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전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입원했던 환자 말이야. 신관 11병동에서 투신했던. 기억나나?”

“네, 사실 그 환자는…….”

시현은 이인임 부부와 이예림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 환자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거군?”

“네, 전날까지도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천 선생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은 없었고?”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조광필은 한참 동안 담배만 태워댈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앞으로 몸 사리고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또한 운명이겠지.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후우.”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눈빛.

조광필 교수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산산이 흩어져갔다.

* * *

“삼아대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위하여!”

“위하여!”

시현이 자리로 돌아왔을 땐 파도타기가 한창이었다.

“시현아 방금 들었어? 응급실에서 연락 왔는데 환자 일단 바이탈 잡혀서 일단 ICU(중환자실)로 올라갔단다.”

한준식이 자기 일인 양 기뻐했다.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이 지급됩니다.]

[끊어지지 않는 사슬 – 환자 생존에 크게 기여한 바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불가능 난이도 +10,000P)]

퀘스트 성공과는 별도로 추가 포인트가 들어왔다.

“정말 다행이다.”

“난 솔직히 환자 살 줄 알았어. 아까 컴프레션 할 때 느낌이 왔었다고!!”

이철원이 으스대며 말했다.

“에이, 형 그런 게 어딨어요?”

“정말이야. 팔에 힘 들어가는 게 평소랑 미세하게 달랐다니까?”

한준식과 이철원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인턴 숙소에서 치킨에 맥주를 시켜 먹으며 드라마를 보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땐 참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자정 전에 일이 끝나면 빨리 끝났다고 좋아했던 기억들 마저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었다.

그렇게 잠시 옛 생각에 빠져있던 찰나.

딩동!

[system : 누적 획득 포인트가 300,000P를 돌파했습니다. 신규 아이템들을 오픈합니다.]

또다시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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