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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의사 시점-103화 (103/195)

103화 Chapter 25. 향상된 정보창 (1)

- 아니, 거기 말고 이따가 요 앞에 일식당 청산에서 보자고. 응급의료센터 공사 때문에 상의할 일이 있어.

부원장의 말에 조광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무슨 말을 꺼내려고.’

부원장에게 직접 전화가 온 것을 보면 뭔가 있다는 건데, 그것이 응급의료센터에 좋은 소식일 리는 만무했다.

“부원장님, 그거라면 이야기 끝난 이야기 아닙니까? 1층 응급의료센터 공간 축소하기로.”

- 그랬지. 분명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조광필은 얼마 전 과장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들을 떠올렸다.

- 앞으로 과별 매출과 순익을 따져서 이익이 나는 진료과는 추가 공간을 배정받고 손해가 나는 과는 점진적으로 규모를 줄여가기로 하겠습니다.

원일웅이 원장으로 있는 몇 년 동안 삼아대병원의 흑자 규모는 날로 커졌다.

처음은 레지던트 의국이나 사무 공간을 외부 건물로 내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거기서 확보된 공간은 병상으로 채워 환자 1인당 의료비 지출이 높고 회전이 빠른 과에 우선 배정했다.

사실 거기까지는 조금 불편하기만 할 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병상이 늘어나면서 입원까지 걸리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인력을 충원하느라 일자리도 늘었으니까.

문제는 기존에 진료 목적으로 할당된 공간에도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응급의료센터였다.

“죄송하지만, 점심 먹고 보호자 면담을 하기로 해서 어렵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 보호자 면담은 무슨… 환자야 계속 입원해있는 텐데 좀 늦으면 어떤가. 급한 환자야? 어떤 환자인데?

“심폐소생술 후에 저체온 치료 이제 막 끝난 환자입니다.”

- 혹시 허주현 의원?

“네, 그 환자입니다.”

- 그래그래. 알겠어. 진료가 우선이지 점심이 대수인가. 당연히 늦지 않게 가야지. 그럼 직원 식당에서라도 잠깐 보자고.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 * *

30분 뒤. 직원 식당.

“오래간만이야, 조 교수.”

식당에 들어서자 부원장 심철호와 기조실장 정유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모여서 식사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다들 바쁜 사람들이라. 하하.”

심철호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세 사람의 연배는 엇비슷했고 의대생 시절부터 따지면 수십 년을 알고 지냈지만, 사석에서 따로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언제 라운딩이라도 같이 가면 어떨까?”

“좋죠! 센터장님 비거리 장난 아니실 거 같은데요?”

정유수가 심철호의 제안을 반기며 손뼉을 쳤다.

“아, 제가 골프를 안 칩니다.”

“그럼 언제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내가 좋은 데 아는데…….”

“아, 네…….”

그는 마지못해 대답했지만, 썩 달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식판을 앞에 둔 세 남자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일 이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조광필은 응급의료센터장 외에 맡은 보직이 없었고 따로 부원장과 이야기를 나눌만한 거리도 없었다.

“그나저나 어떤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공사는 확정된 것으로 아는데…….”

조광필이 벽시계를 흘끔 보더니 운을 뗐다.

“그래. 그러기로 했지. 올 하반기에 응급실 축소하는 쪽으로.”

심철호의 말에 조광필은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분명 응급실 3분의 1을 떼어 가겠다고 했었다. VIP 라운지 만들고 외국인 환자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후우. 지금 와서 이야기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마는……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가뜩이나 응급실에 베드가 부족한데…….”

한 번이라도 주말 응급실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단순히 어디 한군데 부러진 정도로는 환자용 침대는커녕 간이 의자도 배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병상을 더 줄인다면?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조 교수, 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 원장님이 워낙 강경하시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자고는 했지만.”

“…….”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병원이 흑자 본다고 부원장이 월급을 더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필수 의료보다도 병원 경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심철호에게 푸념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라고 좋겠어? 나도 의사인데? 그래서 말인데, ‘이번 일’을 잘 이용해보면 어떻겠나?”

“이번 일이라면…….”

“허주현 의원 말이야. 4선 중진에 청렴하기로 따지면 여당에 그런 인물이 없어. 지지층도 두텁고.”

“환자가 유력한 사람인 것과 우리 응급의료센터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조광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허허. 이렇게 요령이 없어서야…….”

“이번에 현역 국회의원을 살린 일을 대대적으로 홍보해볼까 합니다. 그렇게 우호적인 여론 속에서는 아무리 원장님이라도 응급의료센터 축소하자고는 못 하시겠지요.”

기조실장 정유수가 부연 설명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했다.

회의에서 결정 난 사안이라고 해도 공사 시작 전에만 막으면 될 일.

지난주 일로 며칠 동안 기자들과 인터뷰한 것만 해도 열 건이 넘는다.

이렇듯 주목받는 상황에서 삼아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축소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연달아 나온다면?

원장도 일을 무리하게 진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부원장님과 기조실장은 원장님 쪽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야 당연히 원장님하고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맞지. 누구보다 현 집행부가 성공하기를 원하고.”

“그렇다면 왜 제게 이런 제안을?”

“서로서로 돕고 살자는 거지. 올해 마침 원장 선거도 있고 말이야.”

심철호가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래서 밖에서 따로 보자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있는 곳은 직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구내식당이었다.

“조 교수가 우리 편이 돼준다면, 우리도 섭섭하게 하지는 않을…….”

“환자분이 기다리고 계셔서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더 들어볼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결국은 원일웅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것 아닌가?

그 대가로 응급의료센터 축소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거고.

특별한 지원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도와주면 살려는 준다는 식이었다.

“아무튼, 잘 생각해봐요. 아, 지금 의원님 만나러 가는 길인가?”

“네.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 겁니까?”

허주현 의원은 심근경색으로 치료 중인 환자였다.

피부과 의사인 심철호가 도움이 될 것은 없었다.

“그럼 같이 갑시다. 높으신 분이 입원했는데 한 번 가봐야지. 혹시 알아? 나중에 대선 후보라도 될지. 허허허.”

조광필의 만류를 애써 무시하며 심철호는 허주현 의원의 병실을 향했다.

* * *

잠시 후 순환기내과 병동.

“환자분, 오늘 기분은 좀 어떠세요?”

조광필과 심철호 그리고 응급의학과 수간호사가 병실을 찾았다.

“좋습니다. 죽다 살아나서 그런가… 세상이 달라 보여요.”

조광필이 묻자 허주현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천운입니다. 우리 의사 선생님들이 바로 옆에 있지 않았더라면…….”

“초기 조치도 빨랐고 곧바로 관상동맥을 막고 있던 혈전도 제거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조금 성급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데 문제는 없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별다른 후유증은 없어 보입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뇌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목표체온 유지치료’까지 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목표체온 유지치료.

이른바 저체온 치료로 환자의 체온을 일부러 낮춰 뇌 손상 위험을 줄이는 치료였다.

체온이 1도 낮아지면 뇌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10% 정도 감소하고, 이는 적은 혈액 공급으로도 뇌세포가 심한 손상을 입지 않도록 돕는다.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표정을 보니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이 무척 반가운 듯했다.

“그런데 여기 같이 오신 분들은……?”

허주현의 시선이 조광필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저희과 수간호사입니다. 당시 현장에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삼아대병원 부원장 심철호입니다. 병실 생활은 불편하지 않으신가 해서 살피러 왔습니다.”

조광필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심철호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괜찮아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불편한 점 없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다들 좋으시고.”

허주현이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의원님, 다인실이라 불편하실 텐데…… 말씀 주시면 특실로 옮겨드리겠습니다. 비용은 생각지 마시고…….”

“아닙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는 정중하게 심철호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곳 다인실이 병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병실이라고 하더군요. 지금껏 건강해서 입원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국민들께서 경험하시는 병원 생활이 어떤 것인지 공부할 기회로 삼겠습니다.”

특실이나 1인실에 입원할 수도 있었으나 굳이 다인실을 고집한 이유였다.

“오히려 제가 우리 조 교수님께 보답을 하고 싶군요.”

그의 시선이 이내 조광필을 향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그렇지 않아요. 그날은 내가 식당 손님으로 간 거지 병원 손님으로 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근무 시간도 아니셨을 테고.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진료비’를 안 내면 되겠습니까?”

따로 금일봉이라도 주려는 것인지.

조광필도 심철호도 의아해하는 사이.

“그날 저 살리느라 고기도 양껏 못 드시고…… ‘입퇴국식’이었다고 하던데 맞나요? 좋은 행사를 망친 것 같아 너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처음 시작하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이…… 우리 레지던트들에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니 감사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내 목숨빚은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사람들이 욕합니다. 허허허.”

난처해하는 조광필을 향해 허주현이 뭔가를 건넸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명함이었다.

[남해화로가든 식사권 / 대표 김대남]

“직원분들과 회식 한번 꼭 하십시오. 김 사장에게는 나중에 따로 청구하도록 이야기해뒀으니 다음 회식 땐 마음 편히 드십시오.”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괜찮…….”

조광필이 받은 명함을 돌려주려는 찰나.

“정말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수간호사 김동미가 조광필의 가운 소매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흠칫.

그녀와 눈이 마주친 조광필이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이대로 식사권을 돌려줬다가는 뭔가 사달이 날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희 선생님들이 정말 좋아하겠네요.”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조광필 교수만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면 선거는 문제없겠어.’

심철호 또한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 * *

같은 시각 9병동.

“회진은 이것으로 마치고, 천 선생은 다음 주부터 외래 진료 시작인가요?”

“네, 과장님.”

“그래요. 병동에서 진료했던 환자들 위주라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겠지만,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도움 청할 수 있도록 하고.”

회진을 마친 이광섭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응급실의 최애 – 응급실 회식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다수 의료진의 사용자에 대한 신뢰도 및 호감도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3,000P)]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보상에 어리둥절한 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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