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Chapter 25. 향상된 정보창 (2)
2월 말.
연중 최대 행사인 입퇴국식도 무사히 지나갔다.
의국원들과 동문 선배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김원기와 노민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국 소감을 이야기했고, 김민홍과 최지훈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문의 취득 소식을 전했다.
의대 입학 후 11년.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따지면 장장 15년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부럽기는 했다.
그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입장에서는 더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 4년간 너무 많은 것들을 받고 갑니다. 교수님 그리고 같이 생활해온 의국원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김민홍은 최세영과 결혼식을 올렸고.
국방부의 축복을 받아 공중 보건의로 배치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겹경사로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 내가 군의관이라니! 민홍이는 공보의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육군 군의관으로 국방의 의무를 하게 된 최지훈은 연거푸 폭탄주를 들이켰다.
모든 것이 회귀 전과 같았다.
- 선생님은 술 드시면 안 돼요.
- 네? 그래도 제 입퇴국식인데 어떻게…….
- 그렇긴 하지만 첫 대면부터 정신 잃고 쓰러지는 것보다는 그냥 술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 게 낫지 않겠어요?
- 아, 네. 알겠습니다.
다른 점은 노민혜가 맨정신으로 입퇴국식을 마친 것 정도랄까.
술 몇 잔에 의식을 잃고 황진호에게 업혀 갔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시작이었다.
* * *
3월 첫 주말.
김원기와 노민혜가 정신과 레지던트로서 근무를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이것이 주말…….’
이제 의국 2층 침대의 1층을 차지하고 누운 시현은 토요일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수시로 울려대던 휴대폰이 이렇게 잠잠하다니. 혹시 고장 난 것은 아닌지 의국으로 전화를 걸어보기까지 했다.
‘시원 섭섭… 아니, 그냥 시원하다.’
1년차의 주말이 어디 주말이던가.
환자가 공휴일을 가려가며 아픈 것도 아니고, 오히려 외래가 진료가 닫히니 응급실을 통해 오는 환자들은 평일보다 많았다.
교수님들도 윗년차들도 모두 퇴근한 병원에서, 불안에 떨며 환자가 적게 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회귀 전 1년차의 일과였다.
딩동!
[SORA : 응급실에 새로운 환자가 도착했습니다.]
[김순호 남/43 인턴 고태현 / R1 김원기]
환자가 왔음에도 시현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여유가 묻어있었다.
‘차트 열어줘.’
오늘 공식 당직은 1년차인 김원기의 몫.
그가 환자를 다 볼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시현은 여전히 누운 자세로 허공에 뜬 차트를 읽어내려갔다.
‘주증상은 두통인데 신경과가 아니라 정신과로 노티가 됐고…… 이제 연락이 곧 올 때가…….’
1년차 초반이니 환자를 보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 조금 늦더라도 푸시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백당직의 미덕이었다.
위이이잉.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핸드폰이 울렸다.
[R1 김원기]
“응, 원기야. 무슨 일이야?”
시현은 짐짓 모른 척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 환자 보고 드리겠습니다. 43세 남자 환자분으로 두통을 주소로 오셨습니다. 평소 로컬 정신과에서 ‘불안장애’로 약물치료 중인 분으로…….
“민혜도 같이 있니?”
- 네, 선생님. 같이 있습니다.
“그래. 내려갈게.”
아직은 엉성한 보고였지만, 이미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환자라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거기에 입퇴국식을 기점으로 후배들에게 말을 놓기로 했으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지인에게 온 전화 정도로 보였을 터였다.
* * *
잠시 후 응급실.
‘빨리 오셨네…….’
응급 환자도 아니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마무리 코멘트 정도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고 시현이 들어왔다.
[김순호 남/43 인턴 고태현 / R1 김원기]
시현의 시선이 저쪽에 누워있는 환자를 향했다.
회귀 전에서도 처방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응급실을 자주 찾았던 환자였다.
“환자분은 어떠셔?”
“불안도 높고 여전히 두통도 있어서 Brain CT를 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민혜 생각은 어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두통은 Brain CT가 기본 평가이기도 하고… 그냥 괜찮다는 말로는 환자분이 안심을 못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정답이야. 정답이긴 한데…….’
1년차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환자가 불과 1주 전에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웬만한 검사는 다 해보고 왔다는 것을.
- 다른 병원 검사에서 괜찮았다고 하면 그냥 가라고 할까 봐 일부러 말을 안 했어요. 머리는 아픈데 검사해보면 아무것도 없대요. 뭐라도 나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이게 도대체 무슨 병일까요?
회귀 전, 환자는 검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이런 사정을 털어놓았다.
불안한 마음에 주말마다 응급실에 방문하여 검사비로 수십만 원을 썼지만, 그때마다 별다른 이상 소견은 없어 답답했었다고.
“검사는 일단 홀드 하자. 환자부터 볼까?”
“아, 네. 선생님.”
시현은 두 1년차들과 함께 환자의 침상 쪽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정신과 천시현이라고 합니다. 두통으로 방문하셨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증상이 어떤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게…… 머리가 지끈지끈해요. 한쪽으로 눌리는 것 같고 여기저기 아픈 게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인턴 초진부터 하면 세 번째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나, 환자는 싫은 내색 없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분위기상 자신을 보기 위해 좀 더 높은 사람이 내려온 느낌이었으니까.
뭔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작년 말에 건강검진 했을 때는 이상이 없다고 했었는데 머리가 이렇게 아프니…… 혹시라도 그사이에 다른 게 생긴 건 아니겠죠?”
“작년이요? 올해는 별다른 검사를 해보신 게 없나요?”
“그, 그럼요. 올해는 별다른 검사를 해본 적이 없어요.”
시현의 질문에 환자는 마른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최근에 머리를 다친 적은 없으시고요? 교통사고가 있었다거나…….”
“네,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Brain CT를 찍은 것이 1주 전이고 그동안 별일은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주중에 외래로 가시면 교수님 진료도 보실 수 있고 진료비도 더 저렴한데, 주말 응급실로 오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아,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주중에는 도저히 시간이 안 돼서요.”
과도한 업무량.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증상을 의심해볼 만한 소견이었다.
“어떤 의사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전혀요! 저는 제 일이 좋아요! 열심히 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있어요. 오히려 두통도 주말에 더 심하다고요!”
그는 시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스트레스는 전혀 없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군요. 두통을 1점에서 10점까지를 놓고 본다면 몇 점 정도로 아프세요?”
“음, 한 4점? 7점? 그때그때 달라요. 한 대 맞은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뭔가 기분 나쁜 느낌도 있어요.”
“목 뒤쪽이 불편하시던가요?”
“네! 항상 그런 건 아닌데 오늘은 그랬어요! TV에서 보면 충격받을 때 뒷목을 잡고 쓰러지잖아요? 그리고 중환자실로 입원해서 식물인간이 되기도 하고…… 저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닐 겁니다. 혹시 최근에 다른 병원에서 약물 처방받으신 게 있나요?”
시현은 환자를 안심시키며 면담을 이어나갔다.
“글쎄요. 내과에서 이 녹색 약하고 흰색 길쭉한 약이 추가되고 더 그런 것 같아요.”
환자가 주머니에서 약봉투를 꺼냈다.
‘이건 파모디틴에 모사프리드…… 둘 다 위장약인데?’
각각 위산 분비를 줄이고 소화 불량을 개선하는 약물로 역시나 두통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것도 같더라고요. 심전도는 매번 괜찮다고 하는데, 이거 혹시 부정맥 아닐까요?”
심전도가 정상인 부정맥이라.
체온이 정상인 발열 질환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아, 의학 채널에서 보니까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발생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옆 사무실에 이 과장이라고 멀쩡하던 사람이 지난 달에 급사했다는 거 아닙니까. 저는 심장 초음파를 해봐야 하나요? 아니면 심장 CT?”
‘건강염려증이 심한데…….’
증상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새로운 진단명들을 의심하다 보니 필요한 검사만 무장 늘어났다.
뇌출혈에 심장 문제도 있을 수 있으니 전신 스캔을 하자고 할 기세였다.
언뜻 원하는 검사를 해주고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가라앉을 불안이라면 애초에 응급실을 안 왔을 터였다.
‘그래도 잘 설명해서 귀가하시도록…….’
최대한 안심시킨 뒤 별다른 조치 없이 지켜보자고 말하려는데, 못 보던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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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남/43 인턴 고태현/ R1 김원기] (▼ 더보기 ‘NEW’)
대현상사 영업 2팀 과장
칭호 : 탕비실에 서식하는 커피믹스 중독자(외 1)
주요 능력치 : 지력 32 덕력 23 체력 33 감각 13 행운 40
특기 : 사이클(Lv.5) 등산(Lv.3) 3대 운동(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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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SORA : 2년차 진급으로 ‘향상된 정보창’이 적용됩니다.]
얼마 전 ‘시스템 업그레이드’ 후 새로 생긴 변화인 듯했다.
기존 병동 정보에 더해 능력치와 특이사항까지.
평소 보던 창과는 크기부터 달랐다.
‘체력은 대충 알겠는데 지력에 덕력? 이건 무슨 의미지?’
[SORA : 능력치별 세부 설명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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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상된 정보창 - 능력치 정보]
- 지력 : 지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기억력과 판단력 학습 능력 등 인지기능을 전반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 덕력 :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입니다.
- 체력 : 신체 기능을 반영하며 근력 및 지구력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포함됩니다.
- 감각 : 오감의 예민한 정도를 나타냅니다.
- 행운 : 좋은 운수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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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 정보.
뭔가 유용할 것 같지만, 정확히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얼른 감이 오지 않았다.
‘커피믹스를 많이 드시고…… 운동을 좋아하시는 것 같네?’
칭호와 특기.
오히려 도움이 된다면 이쪽이었다.
“하루에 커피를 몇 잔 정도 드십니까.”
“네? 갑자기 커피는 왜… 회사에서 안 졸고 일하려면 거의 달고 살죠. 7, 8잔 정도요?”
이쯤 되면 두통보다는 당뇨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나마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 관리는 하는 것 같았지만.
“어떤 운동을 좋아하시나요?”
“네! 제가 이래 봬도 주말에는 자전거에 수영에 그리고 최근에는 헬스도 시작했는데 3대 운동을…….”
시현의 질문이 마음에 들었는지 환자는 신이 나서 평소에 즐겨 하던 운동들을 술술 이야기했다.
‘커피에… 운동…….’
환자의 말을 듣고 난 뒤 시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