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05화 (105/195)

105화 Chapter 25. 향상된 정보창 (3)

‘커피에… 운동…….’

환자의 말을 듣고 난 뒤 시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뇌출혈은 확실히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뇌 사진이라도…….”

목 뒤쪽으로 혈압이 오르는 느낌과 뇌출혈에 대한 공포가 특히 심했던 환자였다.

이번에는 그 불안이 켜지기 전에 미리 안심되는 말을 건네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원인은 따로 있어요.”

“네? 원인이 뭔가요?”

“커피를 안 드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네?”

환자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주말에 집에 계실 땐 커피를 덜 드시지 않나요?”

“네. 그런 것 같기는 하네요. 늦잠 자고 또 운동하러 가느라…….”

“카페인 금단도 두통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커피믹스 많이 드시죠?”

흠칫.

환자는 용한 무당이라도 본 듯 시현을 올려다보았다.

카페인 금단.

커피를 많이 그리고 자주 마시는 사람이 갑자기 커피를 끊게 될 경우, 수축된 혈관이 확장되면서 두통을 유발할 수 있었다.

환자의 경우, 일에 집중하느라 늘 달고 살던 커피가 두통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리고 벤치프레스 무리해서 들지 마세요. 두통 심해집니다.”

“아. 그래서…….”

과도한 운동과 힘주기 또한 두통의 악화 요소였고.

환자는 약간 놀란 듯했으나, 뭔가 깨달은 표정이었다.

“일단 커피를 줄여보시고 기존 외래에서 처방받은 약을 약간 조절해드리겠습니다.”

“아, 실은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지난주에 뇌사진을 찍어봤었는데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규모도 작고 신뢰도 안 가서 오늘은 큰 병원으로 와본 거였는데…… 원인이 따로 있었군요.”

환자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렇게 면담은 순식간에 끝났다.

‘이걸 어떻게…….’

김원기와 노민혜는 감탄한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뇌출혈 걱정을 하도 하길래 뭐라도 하고 갈 줄 알았는데, 환자는 만족한 표정으로 시현에게 인사를 건넨 뒤 퇴실해버렸다.

“선생님, 저 환자… 그냥 가요?”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김원기에게 차지 간호사가 물었다.

“네. 괜찮을 것 같다고 검사 안 하고 가신다는데요.”

“진짜 이상하다… 뭔가 검사하고 갈 느낌이었는데.”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과잉 진료는 없다 - 특별한 검사 없이 불안장애 환자를 진정시켰습니다. (어려움 난이도, +1,000P)]

* * *

“선생님, 카페인 금단 때문에 두통이 온 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리고 운동과 관련된 두통인 건 어떻게……?”

김원기와 노민혜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시현이 응급실에 내려온 것은 불과 10분.

자신들이 환자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본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 안에 두통의 원인을 감별해내고 환자를 퇴실 조치한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런 설명이 제일 어렵지.’

그냥 윗년차가 경험이 많아서 그러려니 하면 편할 텐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학구적인 타입이었다.

실상은 ‘향상된 정보창’의 도움으로 쉽게 진단을 내린 것이었지만, 이런 경우라도 납득할 만한 설명은 필요했다.

‘제대로 가르쳐야겠어.’

두 사람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회귀 전부터 생각하면 벌써 4년째 아랫년차로서 시현을 돕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왕이면 실력 있는 정신과 의사로 키워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이런 환자를 진료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문진이야. 별도의 검사 없이 면담만으로도 감염이나 근골격계 질환 같은 웬만한 원인들은 다 배제할 수 있어.”

시현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김원기와 노민혜를 보며 말했다.

“일단 편두통이나 군발두통 같은 양상도 아니었고…… 남은 것들 중에 의심하다 보면 물질과 관련된 두통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

“아… 그래서…….”

두 사람은 시현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기죽이지는 말자.’

시현은 1년차 두 사람을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사실 원래 가장 마지막에 환자를 본 의사가 명의가 되는 법이야. 방금도 내가 가장 마지막에 진료를 했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분명 있었어.”

“마지막에 보면…… 명의가 된다고요?”

“그래. 우리가 근무하는 곳은 대학병원, 그러니까 3차 병원이잖아? 대형 병원을 선호해서 처음부터 여기를 찾는 환자들도 있지만, 1, 2차 병원을 거쳐서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맞아요! 방금 환자분만 해도 다른 병원을 들렀다가 오셨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시현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특히나 삼아대병원은 3차 중에서도 3차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사실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시현의 설명을 이해했다는 듯, 노민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기존 병원에서 했던 검사 결과들을 다 확인하고 시작하니까 비교적 드문 질환도 쉽게 진단할 수 있어. 그리고 효과가 없었던 치료는 배제하고 남은 치료 방법 중에 선택하다 보니 최선의 치료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거고.”

“아… 그런 뜻이었군요.”

“그러니까 너무 기죽을 것 없어. 내가 진단하지 못한 걸 다른 의사가 진단했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고.”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현의 말뜻을 이해한 듯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때였다.

“야 이 x발. 이것 봐! 딕스-홀파이크에서 지향성 안진 관찰되니까 후반고리관 관내이석 맞아? 아니야? 응?”

스테이션 건너편 침대에서 느닷없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사람 잡겠네…….’

시현의 동기, 이비인후과 2년차 남정욱이 신입 레지던트들을 향해 으르렁대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석증 환자를 제대로 처치하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맞, 맞습니다. 선생님.”

“그럼 알아서 에플리 수기(Epley maneuver)부터 하고 이석 제자리로 딱 돌려보내야 할 거 아니야! 픽스턴부터 하면 3주째인데 이걸 아직도 못해서 윗년차를 불러?”

“죄, 죄송합니다.”

“멍청한 x끼들…… 의대는 기부입학으로 들어왔나. 아오.”

그 서슬에 이비인후과 신입 레지던트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시현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데, 돌연 같은 내용의 알림창 두 개가 떠올랐다.

딩동!

[system : 사용자에 대한 신입 레지던트 김원기의 호감도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어려움 난이도 +1,000)]

딩동!

[system : 사용자에 대한 신입 레지던트 노민혜의 호감도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어려움 난이도 +1,000)]

‘덕분에 좋은 선배 됐어. 고맙다, 정욱아…….’

시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남정욱을 바라보았다.

* * *

다음 날 아침, 정신과 의국.

“간밤에 별일 없었어?”

“응. 병동도 조용했고 응급실 환자도 별로 없었어.”

“다행이네. 아직 아침 전이지? 이거 먹어!”

시현과 교대하기 위해 의국으로 돌아온 황진호가 테이블에 비닐봉지 하나를 올려놓았다.

- BUSWAY

그 안에는 샌드위치 네 개와 탄산음료 네 잔이 들어있었다.

“민혜도 오라고 해. 같이 먹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남자 레지던트들은 주로 각 과 의국에서 당직을 섰고, 여자 레지던트들은 한 층 위에 별도로 마련된 숙소 공간에 머물렀다.

김원기는 곧바로 노민혜에게 전화를 걸었고.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전화를 받고 이내 내려온 노민혜도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조촐한 메뉴였지만, 바로 전날 살벌했던 이비인후과의 분위기를 본 탓이었을까.

신입 레지던트들은 윗년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얘들 왜 이래? 어제 시현이한테 혼났어?”

군기가 바짝 든 모습에 황진호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닙니다. 정신과 선택하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저, 저도요. 샌드위치가 맛있습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다음 순간, 휴대폰 두 대가 동시에 울리고.

“정신과 1년차 김원기입니다.”

“정신과 1년차 노민혜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응급실과 병동에서 온 콜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뭔가 적응이 안 되네.”

두 사람이 나가자 황진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난 1년간 해오던 관성 탓이었을까.

응급실에 환자가 있다는데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있다는 게 어색한 그였다.

“나도 그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야.”

시현이 의국 창문을 열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좀 훈훈하네.”

일주일 전만 해도 봄이 오기는 하나 싶게 추운 날씨였으나,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렸다.

이른 봄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그러게. 작년 3월은 진짜 추웠는데, 올해는 봄이 빨리 온 것 같다. 1년차들 첫 주말 당직은 어땠어?”

황진호가 빙긋 웃어 보였다.

“잘 하더라. 워낙 성실한 애들이니까.”

“그래? 다행이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백당직 말이야…….”

그 말을 반기며 황진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혹시 다음 주말 당직 좀 부탁해도 될까?

사실 그가 할 말은 이미 알고 있었다.

- 1년간 변변히 여행도 못 가서 강원도 좀 다녀오려고.

주말에 1박 2일 여행이라도 가려 하면 서로에게 48시간 연속 근무를 강요하는 셈이니 부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서먹했던 회귀 전을 생각하면 더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

“여행 갈 거지? 다녀와. 1년차들은 걱정하지 말고.”

황진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현이 대답했다.

“어? 그래도 돼?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여행의 ‘여’자도 안 꺼냈는데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 시현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3월에 기념일 있다고 했었잖아.”

“내가 말 했었나? 아무튼, 고맙다!”

“당직도 아니고 백당직인데, 뭘. 연속 근무라고 해봐야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불타는 주말 오프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어려움 난이도 +1,000P)]

시현은 새로 떠오른 알림창을 보며 씩 웃어 보였다.

‘이번엔 좀 달라지려나?’

1년차 동안 소원해졌던 두 사람의 관계는 2년차가 되어서도 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2년차 중반이 지난 어느 날 황진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황진호가 딱히 언제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낸 그들이 같은 해 크리스마스는 따로 보냈으니 그 무렵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내가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긴 한데…….’

회귀 후 유일하게 실패한 퀘스트가 소개팅 아니었던가.

회귀 전과 비교하여 채이진과 친해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서로 존대를 하는 사이에 불과했다.

“덕분에 기념일에 여행도 가보고 고맙다! 내가 다음번에 꼭…….”

위이이잉.

황진호가 뭔가 말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내과 R2 서혁상]

연애에 관해 시현이 걱정해도 좋을 만한 유일한 인물.

그가 시현에게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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