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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의사 시점-106화 (106/195)

106화 Chapter 26. 완전 내 스타일이야 (1)

[내과 R2 서혁상]

“어, 혁상아. 무슨 일?”

- 오늘 오프라며? 아까 올라오는 길에 진호 만났는데.

“응. 이제 나가보려고.”

- 시현아, 우리 같이 운동해보는 거 어때?

역시나.

서혁상은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시현에게 운동을 제안했다.

‘일일 퀘스트’로 매일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 시현과는 달리 내과 1년차였던 그는 늘 운동이 부족했다.

“헬스 등록하려고?”

- 어떻게 알았어? 이제 2년차인데 할만하지 않을까?

“글쎄. 일단 몇 군데 들러보고 결정하자.”

‘운동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VIVA 헬스]

통화를 마친 시현의 시야에 숙소 건너편 5층에 위치한 헬스장이 들어왔다.

* * *

며칠 뒤.

시현과 서혁상은 오프를 맞춰 헬스장을 향했다.

“어서 오세요. 처음이신가요?”

팔이 웬만한 사람 허벅지만큼 굵은 사내가 두 사람을 맞았다.

“네, 상담도 받고 좀 둘러보려고요.”

“저희 헬스장 기구들 정말 좋아요. 프리웨이트 존도 넉넉한 편입니다.”

트레이너는 한참 동안 시설 설명을 하고는 탈의실과 샤워장도 보여주었다.

“이쪽에 개인 사물함도 있습니다.”

사물함에 적힌 이름들을 보던 시현의 눈이 커졌다.

‘역시나.’

정동현, 최현성, 박종일 그리고 진철영.

타과 치프들 뿐 아니라 몇몇 교수님들의 이름까지 보였다.

“혁상아, 여긴 좀 아닌 것 같은데?”

“뭐 어때? 오프 때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한다는데 선생님들이 뭐라고 할까 봐?”

‘응, 시비 거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 너는 개념이 있어 없어? 1년차들 백일 당직도 안 끝났는데 무슨 운동이야?

- 요즘 애들 빠져가지고…… 환자를 도대체 어떻게 보는데 시간이 남는다는 거야?

- 여유가 넘치네? 환자 그렇게 보고 너는 네 건강 챙기겠다고 운동 나왔다 이거지?

헬스장 등록 일주일 뒤 서혁상이 듣게 될 말들이었다.

치프들 연차 모임에 끌려간 그는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돌아왔다.

내 시간에 내 운동하겠다는데 간섭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1년차가 사고를 치거나 환자가 잘 못 되기라도 하는 날엔 모든 화살이 2년차에게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혁상아, 다른 곳도 가보고 결정하자.”

“왜? 여기가 어때서?”

서혁상은 이곳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시니어 선생님들하고 교수님들도 다니시는 것 같은데 좀 불편하지 않을까?”

“괜찮아, 괜찮아. 눈치 볼 거 없다? 내가 먼저 등록해서 해볼 테니까 이 형님만 따라와라.”

시현이 만류했으나 쉽게 뜻을 굽힐 서혁상이 아니었다.

“헬스장이 일단 가깝고 자주 갈 수 있어야 좋다고 했어. 여기로 하자, 응?”

지금 그만둘지 일주일 후에 욕먹고 그만둘지 선택이나 다름없는 상황.

다음 순간 게시판에 트레이너 근무 일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이거라면?’

“좋아. 그럼 여기서 운동하는 대신…….”

시현은 서혁상에게 새로운 계획을 이야기했다.

* * *

다음 날 아침 6시.

“시현아,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아직도 잠이 덜 깬 서혁상이 툴툴대며 말했다.

“이번 달 Endo(내분비내과)라서 아침에 시간 있다며?”

“그렇긴 한데, 이건 너무 빡빡하잖아?”

“지난달에 GI(소화기내과) 뛸 때는 새벽 4시 반에도 잘만 일어나더니만.”

시현은 서혁상에게 새벽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었다.

소화기내과나 순환기내과처럼 바쁜 과를 돌고 있었다면 어림없는 시간대.

새벽 5시부터 회진을 준비해도 촉박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지금 서혁상이 돌고 있는 내분비내과는 입원 환자가 많지 않고 응급이 별로 없어서 여유로웠다.

물론 이 ‘여유’라는 게 상대적인 개념이라 다른 과보다 조금 더 ‘느긋’하게 7시 반까지 출근하면 된다는 뜻이긴 했다.

“알겠어. 오늘은 네 말대로 이렇게 해보는데 내일부터는 저녁…….”

서혁상이 다시는 못 할 짓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헬스장으로 들어가는데.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여성 트레이너 한 명이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다음 순간 서혁상의 눈이 커졌다.

‘예쁘다…….’

민소매 티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 차림. 아침 담당 트레이너는 근무 일정표에서 본 모습 그대로 건강미가 넘쳤다.

“아, 안녕하세요?”

서혁상은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성공인 것 같은데.’

퇴근 후 시니어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운동을 하려면 이 시간대뿐.

출근 전에 운동 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금사빠인 서혁상에게 이만한 동기부여가 또 있을까.

“그래서? 내일부터는 저녁에 오게?”

“어? 아니. 그게 아니고…… 빨리 옷부터 갈아입자.”

시현이 묻자 서혁상은 얼버무리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까 아침 운동도 괜찮을 것 같아. 공복 운동이 지방 연소에도 유리하고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극대화해줄 것 같지 않냐?”

‘이놈 봐라…….’

금사빠인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근래에 보기 드문 귀신 같은 태도 변화였다.

‘그런데 이런 트레이너가 있었던가?’

회귀 전에는 3년차 무렵부터 다녔던 헬스장이라 그런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인물 정보.’

[SORA : 해당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습니다. 인물 정보를 출력할 수 없습니다.]

‘인물 정보’로 뭔가를 알 수 있었던 경우는 시현이 담당한 환자이거나 이미 충분히 알고 지냈던 사람들뿐이었다.

안타깝게도 트레이너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시현과 서혁상은 러닝머신을 타기 시작했다.

“야, 근데 저 트레이너분이 들고 있는 거 엄청 무거워 보이지 않냐?”

탈의실에서 나온 뒤로도 서혁상의 시선은 백스쿼트를 하는 트레이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네. 80kg 정도 돼 보이는데?”

바벨 양쪽으로 20kg과 10kg 원판이 각각 올라가 있었다.

“아마 최대 무게는 더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5회 1세트 정도로 하는 것 같으니까.”

“저 체구로 80kg을 든다고?”

서혁상이 놀라거나 말거나 트레이너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스쿼트 동작을 마쳤다.

“혁상아, 러닝머신 위에서 한눈팔지 마. 잘못하면 낙상한다.”

“그, 그래.”

시현은 러닝머신의 속도를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 날마다 해오던 ‘일일 퀘스트’ 때문인지 그런대로 할만했다.

다만 아침부터 힘을 뺀 탓에 일을 제대로 못 할까 걱정이 되기는 했다.

‘포션을 쓰면서 해볼까?’

[SORA : ‘회복 포션’을 사용합니다.]

역시나 피로감이 사라지면서 팔다리가 조금 더 힘차게 움직였다.

“헉헉. 시현아 나 힘들어서 더는 못 뛰겠다.”

반면 시현의 페이스에 맞춰 같이 뛰던 서혁상은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아이고, 숨차다. 어지럽네.”

“잠깐 쉬고 있어. 숨 천천히 내쉬고.”

서혁상은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벤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물 정보’

[SORA : 내과 레지던트 서혁상의 인물 정보를 출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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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혁상 남/27 삼아대병원 내과 레지던트 1년차]

칭호 : 내과 의국의 야식 담당관

주요 능력치 : 지력 40 덕력 61 체력 33 감각 35 행운 39

특기 : 짜x게티 조리(Lv.9) 맛집 탐색(Lv.7) 중심정맥관삽입(L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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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능력치에 비해 높은 덕력…….’

평소 좋은 평판을 반영하는 듯했다.

문제는 칭호였다.

‘야식 담당관이라니.’

인턴 때만 하더라도 날렵한 체형이었던 그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통통해졌고 급기야 4년차 말에는 당뇨전단계 진단을 받게 되었다.

잦은 당직에 밤샘 근무로 자주 먹었던 야식이 범인이었다.

‘혁상이가 짜x게티는 정말 기가 막히게 끓였었지.’

시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지러운 건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가서 회진 준비하자.”

“그래. 후 이제 좀 낫네.”

한숨 돌린 서혁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운동을 안 했더니 체력이 저질이 됐어.”

“그래,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아침 운동을…….”

만성 피로에 찌들어있는 레지던트가 아침 운동을 꾸준히 챙기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주일에 한두 번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매일 매일 나와야지!”

“내일도… 나오겠다고?”

서혁상은 반응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아까 여자 트레이너분 멋지지 않냐? 딱 봐도 자기 체중 1.5배는 넘어 보이던데 저렇게 가볍게 들고…….”

“응. 잘하시더라.”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저렇게 해보려고. 환자들한테는 맨날 운동하라고 해놓고 정작 내가 못했지 뭐냐.”

“그래, 좋은 생각이다. 너 당뇨 가족력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언제 말했던가?”

‘아차…….’

서혁상의 가족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3년차 무렵, 그가 당뇨전단계로 진단받은 뒤였다.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해서. 아니었나?”

“이상하다. 말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운동을 열심히 해서 매력 어필…… 아니 건강해야지.”

서혁상이 눈을 반짝였다.

‘의도가 불순해 보이는데.’

이유야 어떻든 운동을 열심히 해보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래, 한 번 제대로 해보자.”

시현이 웃으며 말했다.

딩동!

다음 순간 익숙한 알림음이 들렸다.

[system :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이 시점에 퀘스트?’

시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알림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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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연애 심리 전문가 2급]

난이도 A

당신의 동료가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기나긴 모쏠의 과거를 청산하고 본격 연애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십시오.

성공조건 - 트레이너 이예진의 호감도 50 이상 상승.

성공보상 - 상승 호감도 x 200P

실패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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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잘되게 도와 달라는 것 같은데.’

문제는 난이도였다.

‘A급 퀘스트라니?’

그리고 보니 어떻게 호감도를 올릴지가 막막하다.

일단 회귀 전에 접점이 없었던 사람인지라 아무런 정보가 없다.

유일한 힌트라면 새벽 일찍부터 나와서 운동을 한다는 것과 운동 실력이 꽤 좋다는 것 정도.

“저 트레이너님한테 관심 있어?”

“응? 꼭 그렇다기보다는…….”

서혁상이 말끝을 흐렸다.

“저렇게 일찍 출근해서 자기 운동도 하고 엄청 성실해 보이지 않니?”

“확실히 그런 것 같네.”

“그리고 힘도 센 것 같고 강해 보이잖아. 완전 내 스타일이야.”

‘응? 언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 내 이상형? 뭔가 여리여리한 느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시현은 그가 예전에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트레이너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뭐, 혁상이만 그런 건 아니지.’

대체로 사람의 감정이 이런 식이다.

감정이 먼저이고 그 후에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찾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혁상아, 아침 정규 랩(혈액검사) 나왔을 거 같은데?”

시현이 시계를 힐끔 보며 말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침 운동까지 했으니 환자들 혈액검사 결과를 체크하고 회진 준비를 하려면 빠듯할 시간이었다.

“너도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얼른 나가자.”

“10분만 더 뛰고 갈게. 먼저 가.”

아침 회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시현은 제법 여유가 있어 보였다.

서혁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헬스장을 빠져나갔다.

‘혁상이한테 좀 미안한데.’

딩동!

[SORA : 오늘 아침 혈액검사 결과가 도착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검사 결과들을 확인하며 시현은 러닝머신의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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