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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의사 시점-107화 (107/195)

107화 chapter 26. 완전 내 스타일이야 (2)

1시간 뒤, 정신과 병동 회의실.

“환자보고 시작하겠습니다.”

권원주의 말에 레지던트들은 브리핑을 이어갔다.

“904호 김판수 환자 지난주부터 지속적으로 혈소판 수치 저하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약물 변경 고려하고 있습니다.”

시현도 자신의 담당 환자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수치가 많이 떨어졌나?”

이광섭 교수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추세로는 며칠 내에 10만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각되는 원인은?”

“특별한 기저 질환이 없고 입원 당시 혈소판 수치는 정상이었습니다. 현재 약물 외에는 별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시현의 말에 이광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가장 의심되는 약물인 발프로산을 끊고 경과관찰 하겠습니다.”

“리튬으로 교체하는 건 어떤가?”

“최근 내분비내과 진료기록에서 갑상선 기능 저하 확인되었습니다.”

리튬은 갑상선 기능을 저해할 수 있어 기존에 갑상선 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조심해서 써야 할 약물이었다.

헬스장에서 타과 외래기록까지 모두 확인해둔 덕에 시현은 어렵지 않게 질문에 답변할 수 있었다.

“TFT(갑상선기능검사)는 어떻죠?”

이어진 이광섭의 질문에 새로운 메시지와 함께 알림창이 떠올랐다.

[SORA : 김판수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를 출력합니다.]

“금일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TSH 4.99에 Free T4는 0.70 정도로 갑상선 호르몬 보충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리튬 추가는 일단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시현은 눈앞에 떠오른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약물 중단으로 증상이 나빠진다면 어떻게 할 계획인가?”

“우선 현재 복용 중인 퀘티아핀을 증량하도록 하겠습니다. 효과가 부족하다면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중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시현은 막힘 없이 보고를 마쳤다.

일차 치료 계획과 함께 플랜 B까지도 마련해 둔 상황.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요. 일단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이광섭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참, 이번 주 내로 퇴원할 환자 있나?”

“2명 퇴원 예정입니다만, 외래에서 입원장 받고 대기 중인 환자들이 많아서 곧바로 채워질 것 같습니다.”

권원주가 병동환자 명단을 보며 대답했다.

“당분간은 빈 병실이 없겠군.”

“네, 과장님. 혹시 급하게 입원 필요한 환자분이 있으면 일정 조율을…….”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우리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다음 순간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뭐였지?’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빈 병실이 없다는 게 나쁜 소식일 리는 없고.

환자 보고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광섭 개인적으로도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시기도 아니었다.

“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간간이 어려운 환자들이 있었으나, 이광섭은 별다른 코멘트를 남기지 않았고 회진은 싱겁게 끝났다.

“마지막에 과장님 표정…… 잠깐 안 좋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신 건지?”

이광섭이 회의실에서 나가자 시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분위기 나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김석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환자 치료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좋아하시지 않았나?”

권원주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될 것 같다. 과장님이 이 무렵에 강조하시는 건 1년차들 잘 적응하도록 신경 쓰라는 것 정도니까.”

“네, 선생님.”

시현과 황진호가 동시에 대답했다.

“1년차들도 야간에 응급실이나 타과에서 호출 오면 꼭 2년차들하고 상의하도록 하고. 특히 중요한 건…….”

위이이잉.

권원주가 1년차들에게 뭔가 말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02-20xx-0119]

“응급실 노티 좀 받겠습니다.”

김원기가 목례로 양해를 구한 뒤 수신 버튼을 눌렀다.

“정신과 1년차 김원기입니다.”

- 오빠, 전화 받을 수 있어요? 회진 끝난 거 맞죠?

핸드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김원기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인턴 선생님, 내선으로 전화할 때는 이름부터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요?”

- 오빠도 참. 내 목소리 알면서! 관현악반 소현이에요. 혹시 환자 한 명 봐주실 수 있어요?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노티를 할 때는 최소한 환자 주증상은 얘기해야지. 그리고 오늘 낮 듀티는 내가 아니고…….”

- 환자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정신과 증상인 것 같아요. 와서 좀 봐주시면 안 돼요?

듀티도 아닌데 정신과 같으니 일단 와서 봐달라니.

환자의 나이, 성별, 현병력과 과거력 어느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건 둘째치고라도 일단 환자의 증상이라도 제대로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적할 것이 한둘이 아니라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후우.

윗년차들 앞만 아니라면 버럭 소리라도 지를 텐데.

김원기는 눈을 질끈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인턴 대체 누구야? 무슨 노티를 저렇게 말도 안 되게…….”

옆에서 듣고 있던 권원주 또한 기가 찬다는 반응이었다.

“인턴 심소현 선생입니다. 오늘 응급실 담당을 착각하고 저한테 잘못 전화한 것 같습니다.”

‘심소현이라면…….’

시현은 이내 방금 전화한 인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2년 후배라 접점은 별로 없었지만, 워낙 말리그 짓을 많이 해서 기억에 남는 인턴이었다.

“심소현… 심소…… 잠깐만, 심철호 교수님 딸 맞지?”

“네. 일단 내려가서 환자 면담하고 오겠습니다.”

“뭐? 노티를 저렇게 하는데도 받아준다고?”

권원주가 응급실로 가겠다는 김원기를 제지했다.

“도대체 우리 과를 뭘로 보고! 히스토리 제대로 해서 다시 노티하라고 해! 우리 과 환자인지도 확실하지 않잖아?”

“그렇긴 한데…….”

이미 뒷목을 잡고 있는 권원주를 향해 김원기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또한 황당한 노티에 화가 난 상태였지만, 바로 내려가서 보겠다고 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심소현이 독단으로 이상한 오더를 내거나 환자를 돌려보내지는 않을지 걱정됐던 것.

인턴 권한으로 퇴실을 지시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매사 제멋대로인 그녀라면 얘기가 달랐다.

아무리 인턴이 괘씸해도 환자의 안위가 우선 아니겠는가.

“같이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그런 김원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시현이 나섰다.

“필요하다면 따끔하게 혼도 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시현이가 같이 간다면야…….”

그 말에 권원주는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원기야, 가자. 민혜도 다른 일 없으면 같이 가서 보고.”

“네! 선생님!”

시현은 1년차 두 명을 대동하고 곧바로 응급실을 향했다.

* * *

“앗, 선생님이 여길 어떻게?”

시현이 응급실에 내려가자 심소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뭔지 잘 모르겠는 환자라 평소 알고 지내던 김원기에게 노티해서 대충 정신과에 넘기려 했는데, 세 명이나 내려온 걸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까 전화했던 환자, 어떤 환자인가요?”

“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해서 오신 환자분이에요.”

시현의 질문에 심소현은 어색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리고요?”

“네??”

심소현은 뭔가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근거린다는 말은 환자나 보호자가 의사에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의사가 다른 의사에게 할 보고는 아니죠.”

차분하면서도 더없이 엄격한 태도.

평소와 다른 모습에 김원기와 노민혜도 흠칫할 정도였다.

“증상은 어떤 양상이고 얼마나 지속되고 있나요?”

“저, 그게…….”

“두근거림 외에 다른 심리적인 증상은 없나요?”

“…….”

역시나 제대로 된 정보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보고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바닥.

교수인 아버지를 믿고 환자를 엉망으로 보는 모습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심소현 선생님.”

“네? 저요?”

“앞으로 정신과 노티는 1년차 말고 무조건 저에게 하도록 하세요. 정신과 환자인지 아닌지 여부는 제가 직접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네…….”

시현은 심소현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곧장 환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향했다.

“소현아…… 괜찮아?”

얼굴을 붉힌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심소현에게 착해 보이는 인상의 인턴 동기가 다가와 물었다.

“나한테 이런 건…… 처음이야.”

“응? 방금 뭐라고?”

“방금 들었지? 앞으로 노티는 다 자기한테 하라고…… 이거 무슨 뜻일까?”

“그게 무슨…….”

인턴 동기가 어리둥절한 사이.

‘이거…… 뭐지?’

딩동!

[system : 인턴 심소현의 사용자에 대한 호감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1,000P)]

새로 떠오른 알림창이 시현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 * *

잠시 후.

[김안중 남/37 인턴 심소현 / R2 천시현]

“안녕하세요? 정신과 천시현이라고 합니다.”

시현이 자기소개와 함께 면담을 시작했으나, 환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신과요? 저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왔어요. 내과 선생님은 안 계시나요?”

‘이 환자가 있었지.’

환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분명 PSVT 환자였는데.’

PSVT(Paroxysmal supraventricular tachycardia).

심실상성빈맥의 약자로 갑자기 맥박이 빨라졌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정상 리듬으로 돌아오는 부정맥이 일종.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시기에 검사하면 정상 심전도를 보이기도 해서 자칫 놓치기 쉬운 질환이었다.

시현이 환자의 심전도를 다시 살펴보았다.

‘역시나.’

[Normal sinus rhythm]

정상동리듬.

심전도 기계의 자동 판독에서도 그렇고 시현이 보기에도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었다.

‘증상은 있는데 심전도는 정상이니 정신과를 부른 것 같은데.’

두 질환을 감별하기 위해서는 두근거림이 얼마나 자주 생기고 어떤 상황에서 생기는지 그리고 동반되는 증상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물어야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담당 인턴이 심소현인데 오죽할까.

‘내과를 부르기는 애매하다고 판단한 거군.’

대충 문진을 한 뒤 본인이 노티하기 좋은 과로 환자를 떠밀다시피 해서 보낸듯했다.

“아까 봤던 여자 선생님이 무조건 정상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는데 도무지 안심이 안 돼서요.”

거기에 엉터리 설명까지.

다른 인턴들 같았으면 경을 칠 일이었겠지만, 삼아대병원 한정으로 그녀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증상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곧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니 환자만 답답할 노릇이었다.

“심전도 검사상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어서 저희 과를 호출한 것 같습니다.”

“이게 심리적인 문제라고요? 혹시 심전도 말고 다른 검사는 없나요? 아까 정말 심하게 두근거렸는데…….”

환자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김원기를 바라보았다.

“내과와 상의해서 원인 평가를 좀 더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불안해서 그런데 며칠 입원하면서 지켜볼 수 없나요? 도저히 집에 못 돌아가겠어요.”

“네. 그것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내과적 상태만 놓고 봐서는 당장 입원할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환자의 불안이 심했다.

환자와 이야기를 마치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망연자실하게 당직 칠판을 올려다보았다.

[내과 R1 지용민]

‘하필이면…….’

신규 내과 1년차들 중 환자 보기를 제일 싫어하는 인물.

2년차인 시현이 부탁하면 듣는 시늉은 하겠지만 환자를 제대로 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

실상은 부정맥이지만 언뜻 공황장애로 보일 수도 있는 환자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문득 김원기와 노민혜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음. 일단 혈액검사 몇 가지를 더 해봐야겠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공황장애가 아닐까요? 심소현 선생이 대충 노티한 건 맞지만 완전히 잘못 본 건 아닌 것 같고요.”

일단 김원기는 공황장애에 한 표.

“당장 바이탈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니까 24시간 심전도를 하면서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공황장애 가능성도 있어 보이고요.”

노민혜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이었다.

‘당장 이상 소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볼 수도 있지.’

다음 순간,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그 환자…… PSVT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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