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12화 (112/195)

112화 Chapter 27. 폐쇄병동을 폐쇄하라고? (2)

“이번에 응급실에 포터블 소노하고 에크모(ECMO) 기계 새로 들어온다고 하던데?”

‘에크모라면…….’

체외막 산소 공급장치(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심정지와 같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 안으로 공급해주는 장치였다.

응급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를 대신해주는 기계라고 보면 되었다.

심장이 멎어 죽어가는 환자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그거 삭감 때문에 있는 기계도 제대로 못 쓰고 있었던 거 아닌가?”

“맞아. 환자 못 살리면 한 푼도 못 받는다고 했어…….”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좋지 못할 때 쓰는 장비이니만큼 환자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에크모 치료에 들어간 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심평원에서 환자를 살린 경우에만 병원에 치료비를 지급한다는 원칙을 내세웠기 때문.

어차피 살리지 못할 환자에게 고가의 의료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환자가 사망할 경우 모든 비용을 병원이 떠안게 되는 셈이니, 역설적으로 위중한 환자일수록 치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총상 입고 들어온 군인한테 며칠 동안 에크모 썼다가 결국 익스파이어하는 바람에 문제된 적 있지 않았나?”

“맞아. 담당 교수님이 그 일로 경위서까지 썼다고 하던데.”

‘그런데 그런 기계를 추가로 도입한다고?’

회귀 전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바로 그때.

철컥.

출입문이 열리고 권원주가 병동으로 들어왔다.

“마침 둘 다 있었네?”

그녀는 시현과 황진호를 보며 말했다.

“오후에 외래에서 환자 한 명 올라올 거야. 2년차가 봤으면 좋겠는데.”

“어떤 환자인가요?”

황진호가 걱정스레 물었다.

1년차 때는 급성 조증이나 조현병 환자를 주로 담당했었지만, 2년차가 되면서부터는 담당하는 환자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일단은 우울증 환자이긴 한데…… 임산부야. 임신 12주 차.”

“그럼 약물치료는 못 하겠네요.”

“그렇지. 우리 과 약물 대부분이 FDA Class C 이상이니까.”

FDA Class.

어떤 약물을 임산부에게 쓸 수 있는지 분류한 기준으로 Class B까지는 비교적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는 반면, Class C부터는 잠재적인 위험을 배제할 수 없어 신중하게 처방해야 했다.

“그럼 어떻게 치료를 해야…….”

병동에 입원할 정도면 심한 우울증이라는 건데, 가장 주된 치료방법 중 하나인 약물치료를 할 수 없다니.

황진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치료도 중요하지만, 보호가 더 중요한 환자야. 자살사고가 심해서 가족들도 불안해하고.”

“일단 정신치료를 위주로 하고 필요하다면 ECT(전기경련치료)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시현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ECT는 약물을 투여할 수 없는 임산부에게도 비교적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치료였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 환자, 심장 기능이 좀 떨어져 있어서 마취과에서 받아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신마취 상태에서 하는 치료인 만큼 마취과와 상의해야 했다.

“말해놓고 보니까 엄청 어려운 환자 같은데, 3년차들한테 보라고 하는 게 나으려나?”

“그 환자 제가 봐도 될까요?”

권원주가 잠시 고민하는데 뜻밖에 시현이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겠어?”

“네. 당분간은 1년차 백당직 때문에 병원에 있는 시간도 많으니까요.”

누가 봐도 어려운 환자라면 차라리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담당의가 유리할 수도 있었다.

“그래. 아직 그럴 시기긴 하지. 일단 그렇게 하자.”

시현이 환자를 보기로 하자 익숙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딩동!

[system :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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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버티면 산다]

난이도 C

좀처럼 치료법을 찾기 힘든 환자가 입원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우울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

환자의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하세요.

성공 조건 : 김영화 환자의 입원 유지(3주 이상)

성공 보상 : 5,000P + a

실패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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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입원 대기 환자 출력해줘.’

[SORA : 입원 대기 환자를 출력합니다.]

[김영화 여/36 담당의 R2 천시현 / 담당 교수 Prof. 정세일]

아쉽게도 회귀 전에는 본 적이 없던 환자였다.

패널티가 물음표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난이도도 그렇고 대체로 평이했다.

‘퀘스트 이름이 ‘버티면 산다’라는 건…….’

치료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은 최대한 입원을 유지하도록 설득하면서 우울 증상이 자연 호전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 * *

“안녕하세요? 병동 담당의 천시현이라고 합니다.”

“안녕… 하세요.”

병실에 들어서자 이제 막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환자가 시현을 맞았다.

작은 체구의 환자는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야윈 모습이었다.

“외래에서 보시던 선생님에게 듣기로는 심장 기능이 약하다고 했는데, 혹시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괜찮… 습니다.”

면담이 될까 싶을 정도로 뚜렷하게 지연된 반응.

심한 우울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다.

“옆에 계신 분은?”

“아, 저는 남편이고 이쪽은 저희 어머니십니다.”

시현의 시선이 남편을 향했다.

‘이분이 남편…….’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

처음 본 환자와는 달리 낯익은 모습이었다.

‘3년차 초반이었던가…….’

분명 외래에서 본 적이 있는 환자였다.

- 아내가 가고 나서부터는 잠을 못 잡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피곤해 죽겠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와요.

자세한 사정은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아내 사후에 발생한 심한 우울감이 주증상이었다.

‘혹시 임신 중에……?’

순간 끔찍한 생각이 시현의 뇌리를 스쳤다.

“아이고 선생님. 저희 며느리 좀 살려주세요. 뭐든 잘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도무지 뭘 입에 대지를 않으니…….”

곁에 서 있던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환자가 걱정된다면서도 은근히 비난하는 듯했다.

“애 가졌을 때는 뭐든 잘 먹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혹시 애한테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죠?”

“엄마는 지금 애가 문제예요? 영화가 이렇게 힘든데!”

“아무리 힘들어도 뱃속에 아이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나도 너 가졌을 때 이를 악물고 열심히 먹었어!”

“입덧이 심할 때이기도 하지만, 우울증이 식욕을 떨어뜨리는 면도 있으니까요. 치료 잘 받으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시현이 시어머니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전에 치료받은 적은 없으셨나요?”

“네, 임신 전까지는 괜찮았어요. 성격도 쾌활했고요. 일도 열심히 했었습니다.”

시현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은 탓이었을까.

환자의 핏기없는 얼굴에서 쾌활했다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분간은 병동에서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중 약물치료는 아무래도 신중해야 해서요.”

“그렇군요…….”

경과 관찰이란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남편이 낙담한 표정을 보이자 시현이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약물치료가 절대적인 금기는 아니라서 꼭 필요한 경우라면 위험성이 적은 약물들부터 시도해보겠습니다.”

“위험성이 적다뿐이지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요? 기형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독한 약을 쓴다는 거예요?”

“영화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그럼 그냥 내버려 두자고요? 엄만 무슨 말을 그렇게…….”

“아무튼, 약은 절대 안 돼! 절대로!”

보호자들은 환자를 앞에 두고 다투고 있었고.

그 모습에 환자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일단은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시현이 서둘러 보호자들을 내보냈다.

‘버티는 것만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치료 진척도 3/100 퇴원까지 21일 22시간…….]

심한 우울 증상에 바닥에 가까운 치료 진척도.

시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 * *

“오늘 회진은 여기까지 합시다.”

환자 보고가 끝나고 이광섭이 레지던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근 몇 주간 말수가 크게 줄어든 그였다.

증상이 나빠진 몇몇 환자들에 대한 코멘트를 제외하면,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치프는 잠깐 따로 봅시다.”

“네, 과장님.”

권원주가 이광섭을 따라 회의실을 나가자 4년차 하도영이 슬며시 운을 뗐다.

“요즘 과장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혹시 누구 사고 친 사람 있어? 있으면 빨리 자수해.”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요즘 병동에도 별일 없고…….”

김석용도 권진은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병동 문제로 고심이 많으신 거겠지…….’

흘러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건 시현뿐이었다.

잠시 후.

이광섭과 짧은 면담을 마친 권원주가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고.

어두운 표정으로 예상했던 소식을 전했다.

“과장님이 그러시는데 하반기에 우리 병동 없어질 수도 있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병동 없어지면…… 환자는 어떻게 보라고요?”

김석용이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다들 외래에서 환자 볼 때 이 점 설명하도록 하고…… 자주 입원하는 환자들은 나중에 다른 병원으로 트랜스퍼 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진료 기록 요약해놓고 의뢰서도 써두도록 해.”

권원주가 맥빠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폐쇄 병동 없어지면 내년 1년차들은 완전 꿀 빠는 거 아닌가요? 병동 일이 없어지는 거나 다름없는데…….”

“편하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지. 그렇게 해서 트레이닝이 되겠어?”

“하긴 1년차 때는 스키조 바이폴라 환자들이랑 병동에서 살다시피 하는데. 그런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이상하네요.”

그녀의 설명에 황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진료와 더불어 의학 교육, 특히 레지던트 트레이닝은 대학병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당분간 입원환자는 1, 2년차 위주로 배정하도록 할게. 병동이 언제 다시 오픈할지 미정인데…… 최대한 경험을 쌓도록 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당분간 일이 늘어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김원기와 노민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이러다가 후배들은 입원환자 진료도 제대로 못 하는 거 아닌지. 다른 병원하고 파견 일정 조율해야 하나?”

내년 1년차들 수련까지 걱정하는 마음 씀씀이.

현 의국원들 중 교수의 재목을 꼽으라면 단연 권원주였다.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없도록 할 겁니다.’

시현은 무거운 표정으로 의국원들을 바라보았다.

레지던트야 다른 병원으로 파견을 보내면 되니 약간 불편한 정도였지만.

문제는 환자였다.

시현은 회귀 전 만났던 환자들의 면면이 떠올렸다.

적절한 시기에 입원 치료를 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는 생각보다 컸다.

작게는 경제적 손실.

크게는 자해 또는 타해로 인한 생명의 위협.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해야겠어. 반드시.’

시현은 얕은 한숨을 내뱉은 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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