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14화 (114/195)

114화 Chapter 27. 폐쇄병동을 폐쇄하라고? (4)

며칠 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세요?”

회진이 끝나자마자 시현은 김영화 환자와 면담을 시작했다.

여전히 무기력감이 심해 면담이 원활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폐쇄병동이라는 안전한 환경에 있다는 것이 유일한 치료 요인이었다.

“어제보다는… 나아요.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다인실로 옮기는 건 언제나 될까요?”

환자는 면담에 앞서 병실 얘기부터 꺼냈다.

지금 입원 중인 병실은 2인실.

6인실과 비교하면 병실료 차이가 상당히 컸다.

“저도 일을 못 하고 있고…… 남편 혼자서 힘들텐데 괜히 저 때문에 부담이…….”

“기존 환자분이 퇴원하셔야 하는 거라 확답은 어렵습니다만, 최대한 빨리 옮겨달라고 전달하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그리고 하나 더요. 제가 우울하면 우리 아이도 우울한 느낌을 받을까요?”

임신한 환자나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환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

혹 자신이 우울해서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맥락은 달랐지만 두 질문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남편과 아이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죄책감의 표현이었다.

“아니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엄마와 아이는 태반으로 이어져 있는데, 태반은 영양분을 전달할 뿐 신경으로 연결된 구조는 아니니까요.”

시현이 환자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물론 임신부가 받는 스트레스가 아이의 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있지만,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엄마와 아이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저는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요?”

“입원 생활이 답답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입원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저 입원하고 나니까 잠도 더 잘자고 기분도 좋아졌어요. 퇴원해서 집에서 편하게 지내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시현은 환자의 얼굴과 ‘세상의 모든 차트’에 올라온 간호기록을 번갈아 보았다.

[화장실을 자주 가며 입마름 호소함]

[보호자 면담시에 자주 우는 모습 관찰됨]

[새벽 2시경 깨어 병동 홀에 한참 앉아있다가 들어감]

말로는 어제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울 증상이 심한 상태.

[치료 진척도 5/100 퇴원까지 19일 2시간 57분]

치료 진척도도 거의 오르지 않았다.

‘상태를 일부러 좋게 말하고 있다…….’

‘카이트만의 안경’을 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명확한 거짓말. 어쩌면 자살사고가 심해 퇴원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대한 오래 붙들어야 해.’

퀘스트에서 입원 3주 이상을 유지하도록 했다는 건 한동안 우울 증상이 지속될 예정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증상이 좋아진 듯하다가도 며칠 간격으로 나빠질 수도 있어요. 필요하다면 약물치료도 해야 하고요.”

“약물은… 어머님께서 워낙 반대하셔서…… 저도 걱정이 되고요. 혹시 다른 치료는 없을까요?”

유독 시어머니 눈치를 많이 보는 환자였다.

띠리리리.

바로 그때 면담실 내선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 선생님, 환자분 시어머니가 면회 오셨어요. 면담 원하세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아무래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었다.

“네. 지금 면담 중이라서 끝나고 뵙겠…….”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모는 면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영화야, 성일이가 좀 다쳤어. 지금 일도 못 나가고 집에 있는데…….”

“성일 씨가요? 어디를 어떻게…….”

그 말에 환자는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손을 헛짚어서 뼈가 부러졌어. 수술해야 해서 입원할 수도 있다더라. 밥 먹기도 불편해하는데 네가 가서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니?”

“아, 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호자도 환자도 퇴원을 원하는데 말릴 명분은 없어 보였다.

“며느님도 우울증이 심한데 보호자 역할을 하실 수 있을까요? 임신부가 보호자 침대에서 생활하는 것도 무리이고…… 차라리 간병인을 쓰시는 게…….”

“우리 아들은 팔이 부러져서 아파하는데. 사지 멀쩡한 식구 놔두고 왜 남이 간병을 해요? 우울증이라는 거 마음의 병 아닌가요? 마음만 단단하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건데.”

‘그게 되면 애초에 입원을 안 했죠…….’

네가 앓고 있는 건 단순한 마음의 문제라고.

죽을 용기로 살기를 택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우울증이라는 건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이나 걸리지 우리 땐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사진을 찍어 이상 소견이 나오는 병이 아니다 보니 이렇게 말하는 보호자들이 종종 있었다.

“며느님도 우울감이 심해서 혼자서 식사 챙기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체중감소도 심하고요. 당분간은 입원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일단 집에서 생활해보고 정 안되면 다시 오면 되잖아요? 정신과 입원했다고 말하기도 동네 창피하고…….”

시모가 퇴원을 종용하는 찰나 이번에는 남편이 면담실로 들어왔다.

“엄마! 나 괜찮다는데 자꾸 왜 그래?”

“괜찮긴 뭘 괜찮아? 팔이 그래서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데!”

과연 시모의 말대로 남편은 팔에 깁스를 한 탓에 웃옷을 어정쩡하게 걸친 모습이었다.

“아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너무 환자 편만 들어주니까 갈수록 나약해지는 거예요. 우리 때는 애 가져도 다 논매고 밭매고 다 했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영화 집에 있으면 맨날 울고 힘들어한다고. 나는 괜찮으니까 당분간 입원해있으라고 하자. 응?”

“그 입원 누가 시켜주는 거냐? 입원비 누가 내냐고? 그거 다 내가 해주는 건데 내가 이런 말도 못 해?”

그 말에 시모는 되려 역정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시모를 어려워할 만하네…….’

시댁에서 뭐라고 하던 결국 부부가 결정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환자 부부는 아직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상태는 아닌듯했다.

“그냥 병실에서 쉬면서 삼시 세끼 밥만 주는 건데 그걸 굳이 비싼 돈 주면서 해야겠어?”

“그걸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해? 집에 혼자 두기 불안해서 그렇지! 영화 잘못되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

“여기서 특별한 치료라도 하면 모를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전 괜찮아요. 어머님 말씀대로 일단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볼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보다 못한 환자가 조심스레 말했다.

딩동!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system : 김영화 환자의 생존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생존 확률 54% -> 23%]

‘이게 무슨…….’

자살 위험도가 높은 환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 아내가 가고 나서부터는 잠을 못 잡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다음 순간 회귀 전 남편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혼자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낮아진 생존 확률. 자녀 없이 혼자 살던 남편.

종합해보면 환자의 사망 시기는 이 무렵이었다.

시현의 등 뒤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 라고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태가 가벼울 때나 하는 표현일 뿐.

심한 자살사고가 동반되면 어떤 질환 못지않게 위험한 게 우울증이었다.

생존 확률이 낮아진 걸 보면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한데 딱히 설득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목숨이 달린 일이야. 그것도 두 명이나.’

그때였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입원을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딩동!

[system : 퀘스트 정보가 갱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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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버티면 산다]

난이도 C -> A

성공 조건 : 김영화 환자의 입원 유지(3주 이상)

성공 보상 : 5,000P -> 20,000P + 정신과 병동 유지 가능성 대폭 증가.

실패시 : 정신과 병동 폐쇄 가능성 대폭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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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갱신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시현의 눈이 커졌다.

난이도가 올라가고 성공 보상이 늘어난 건 그렇다 치지만.

입원을 유지하지 못하면 폐쇄 병동이 사라진다니.

얼른 이해하기 힘든 흐름이었다.

[SORA : 본 퀘스트와 상관 계수가 높은 또 다른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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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본진을 지켜라!]

난이도 A+

성공 조건 : 삼아대병원 폐쇄병동의 존속

성공 보상 : 30,000P

실패시 : 파견 근무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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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살리면 병동도 구할 수 있다…….’

사실상 두 퀘스트의 성공 조건은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영화 환자를 제대로 치료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SORA : 두 변수 간 다중 공선성 이슈로 두 퀘스트가 융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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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퀘스트 – 버티고 버텨 본진을 지켜라!]

난이도 S

성공 조건 - 김영화 환자의 우울 증상 호전(HAM-D <7) and 삼아대병원 폐쇄병동의 존속

성공 보상 : 50,000P

실패시 : 파견 근무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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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어려워졌다.’

기존 퀘스트는 어떻게든 환자를 3주간 입원하도록만 하면 됐지만, 이번에는 우울 증상의 호전이라는 새로운 조건이 붙었다.

‘거기에 햄디(HAM-D) 점수를 7점 미만으로 유지하라는 건…….’

우울증 평가 척도상 7점 미만이면 증상이 거의 없는 수준까지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치료에 쓸 수 있는 무기 대부분을 봉인 당한 상태로 과연 가능한 목표인지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환자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시현의 표정을 살피던 보호자가 물었다.

“몇 가지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비약물적 치료 중에서는 ECT라는 치료를 할 수 있고요…….”

시현은 일부러 ‘전기경련치료’라는 말 대신 ECT라는 약어를 선택했는데, ‘전기’와 ‘경련’이라는 말이 주는 공포감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실상은 임산부나 노인에게도 쓸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안전한 치료법이었지만, 가뜩이나 퇴원하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상황이라 용어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전기경련치료를 말씀하시는 거죠? 집 근처 정신과에 갔을 때 거기서 얼핏 듣기는 했어요. 임신 중에 우울증이 심하면 할 수 있는 치료라고…….”

“네. 맞습니다. 약물치료보다 효과도 빠른 편입니다. 태아에게 주는 영향도 적은 편이고요.”

“그런데 그거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던데…… 혹시 다른 치료는 없나요?”

남편이 슬쩍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뭐어? 마아취? 뱃속에 우리 손주가 바보가 되면 어떡하려고 마취를 해? 그건 약보다 더 해로운 것 아니냐?”

“심장 기능이 약하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마취과와 최대한 상의해서 적절한 방법으로 시행하면 부작용을 최소화…….”

“안돼! 그건 절대로 안 돼! 선생님, 의사가 어떻게 그런 치료를 환자한테 권할 수 있어요? 우리 손주 앞길 막을 일 있나요?”

아니나 다를까 시모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마취가 필요하지 않고 태아에게 부작용이 없는… 임신부에게도 쓸 수 있는 비약물적 치료…….’

시현은 잠시 고민한 뒤 말을 이었다.

“다른 치료법도 있긴 합니다. ECT 만큼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취도 필요 없고 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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