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15화 (115/195)

115화 Chapter 27. 폐쇄병동을 폐쇄하라고? (5)

“다른 치료법도 있긴 합니다. ECT 만큼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취도 필요 없고 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 그게 뭔가요?”

그야말로 지금 환자에게 딱 맞는 치료 아닌가.

남편이 손뼉을 치며 시현의 말을 반겼다.

“경두개자기장치료, TMS라고 하는 치료입니다.”

“TMS요?”

“네. 특수한 기계를 이용해서 뇌세포를 활성화하는 방법인데요…….”

경두개자기장치료(TMS).

한마디로 자기장을 이용하여 뇌를 직접 자극하는 기법.

강력한 자기장을 생성하는 코일을 환자의 머리에 위치시킨 뒤 거기서 유도된 전류로 신경 세포를 자극하는 치료였다.

난치성 우울증에 대해 FDA 승인이 난 바 있는데, 그 효과는 약물치료와 동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는 연구도 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매일 병원에 방문하여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부작용이 적어 임산부에게도 쓸 수 있고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 환자들에게도 효과적이었다.

“그 치료는 부작용이 없을까요? 아무래도 아이도 있고…….”

“네. 그 부분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머리 쪽에만 국한해서 하는 치료라 태아에게는 영향이 전혀 없어요. 원래 자기장이 방사선에 비해서 태아에게 안전하기도 하고요”

“아… 정말 좋은 치료 같긴 한데.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 안 해주신 건 혹시 다른 문제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환자는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치가 엄청 빠르시네.’

그저 좋은 치료가 있다는 것에 안심하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좋은 치료를 굳이 지금 말하는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일단 매일 병원에 와야 하는 치료라서 번거로운 점이 있죠.”

“만약 입원하고 있다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겠네요?”

“네. 맞습니다. 같은 건물 3층 외래 진료실에 TMS 기기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치료는…….”

시현이 잠시 머뭇거리자 보호자들의 시선이 집중도이었다.

“비용이 좀 듭니다. 비급여라서요.”

“아, 네…….”

비용이 든다는 말에 환자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불편하시겠지만 며칠만이라도 입원하면서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며칠 안에…… 방법을요?”

한참 동안 이어진 설득 끝에 환자는 며칠 더 입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 * *

정신과 병동 회의실.

‘TMS가 적당하긴 한데…… 문제는 가격이야.’

마음 같아서는 몰래 공짜로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기기를 가동할 때 들리는 소음이 마음에 걸렸다.

‘옆 진료실에서도 들릴 정도란 말이지.’

외래 진료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닐지라도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회귀 전 이 시점의 시현은 TMS 기기를 만져본 경험이 없다.

왼쪽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특정 부위를 타겟으로 정확한 위치를 잡기란 생각보다 까다롭다.

어느 정도 익숙하게 기기를 다루기 시작한 시점은 4년차 초반 정도였다.

‘병동에서 할 수 있는 치료도 아니고.’

치료를 위해 환자를 외래에 있는 치료실로 데려와야 하는데, 환자 관리에 철저한 폐쇄병동 특성상 모든 동선은 간호기록에 남기 마련이었다.

이목을 끌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천시현… 선생님?”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사이 누군가 시현을 불렀다.

“네?”

“김영화 환자 그룹 어떻게 하실 건가요?”

회진이 끝나고 병동 간호사들과 병동 내 그룹을 정하는 시간이었다.

“A그룹으로 하면 어떨까요?”

“자살사고가 심하다고 하셨는데…… 괜찮을까요? 입원한 지도 며칠 안 됐는데.”

수간호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A그룹은 휴대폰 등 통신기기 사용에 제한이 없고 보호자가 동반할 경우 수시로 산책이 가능한 그룹이었다.

보호자가 한눈을 판 사이에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수간호사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무기력증이 너무 심해서 수시로 활동을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호자도 걱정이 많아서 관리를 소홀하게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A그룹으로 인계할게요. 그다음은… 고진구 환자 이 분은 그대로 B그룹 유지하실 거죠?”

1년차 김원기의 담당 환자 차례로 넘어가자 시현은 다시 TMS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용을 줄일 방법이…….’

“네. B그룹 유지입니다. 그런데 환자가 최근에 교정치료를 시작해서 칫솔이 불편하다고 구강세척기를 쓸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그거 반입되나요?”

“구강세척기면…… 수압으로 이물질 제거하는 그거요?”

“네. 기계 보니까 팁도 플라스틱이고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흐음.”

수간호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가전제품인데…… 전기 코드가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전원이 있어야 쓰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환자에게 주는 것은 좀 그렇고 간호사 스테이션에 맡겨놓고 그때그때 받아서 쓰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관리가 좀 귀찮긴 하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모든 종류의 끈은 물론이고 비닐봉지 하나도 병동에서는 자살시도를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있었으니까.

“아, 근데 그거 선 없는 모델도 있어요! 무선으로 쓰는 휴대용이요.”

“그래? 그런 거면 환자가 가지고 있어도 별문제 없겠네?”

‘휴대용… 휴대용이라면…….’

다음 순간 번뜩이는 무언가가 시현의 뇌리를 스쳤다.

* * *

똑똑똑.

“들어오세요.”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는 오히려 선생님 자주 보니까 좋은데요? 커피 드실래요?”

강서현이 빙긋 웃으며 시현에게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아아 괜찮아요? 지난번에 보니까 카라멜마끼아또 드시던데?”

“아메리카노 좋아합니다. 평소엔 그것만 마셔요.”

“아, 선생님도 일이 안 풀릴 때만 단 거 드시는구나?”

“네. 그런 편이죠.”

한번 본 걸로 커피 취향까지 알아내고. 연구자답게 관찰력이 뛰어난 듯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혹시 리서치 센터에서 ‘비약물적 치료’ 관련 연구도 하시나요?”

“비약물적 치료라면…… ECT나 광치료 같은 것들 말씀하시는 거죠? 현재 진행 중인 연구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연구 의뢰가 들어오긴 할 텐데요.”

그 말에 강서현은 턱 끝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삼아대병원 리서치 센터는 국내 수위를 다투는 연구 기관.

각종 신약과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시험 의뢰는 센터가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물밀 듯이 들어온다.

“혹시 portable TMS(이동식 TMS) 기기 관련해서 검토하고 계신 게 있나요?”

“그걸 어떻게…….”

강서현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이미 고정식 TMS 기기는 상용화가 되어있고…… 이동식이라고 하면 부피만 줄인 거지 특별할 건 없을 것 같아서 일단 거절했어요.”

“혹시 그 건… 수락해주실 수 있을까요?”

“실은 지금 다른 연구 수행할 인력도 모자라서……. 업체 대표가 아시는 분이신가요?”

전에 IM바이오 대표와도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직 레지던트긴 하지만 의료기 개발 업체에 인맥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어 보였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임상적으로 유용할 것 같아서 부탁드립니다. 인력이 문제라면 연구 설계는 제가 직접 해보겠습니다.”

‘혹시 뭔가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적극적일 리가.

강서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한번 컨택 해볼게요.”

“고맙습니다. 연구 시작은 차차 하더라도 해당 기기는 최대한 빨리 받아봤으면 합니다. 연구 수행할 레지던트들이 기기 사용법을 숙지해야 하니까요.”

* * *

다음날 오후.

강서현과 이야기를 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시현의 진료실로 단정한 정장을 차려입은 50대 남자가 찾아왔다.

수행원과 둘과 함께 들어온 그는 정중한 태도로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WE메디텍 대표 김범식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실무자시라고…….”

“반갑습니다, 대표님. 정신과 레지던트 천시현입니다.”

레지던트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김범식은 이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저희 제품으로 임상 연구를 진행하는 데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네. 지금은 TMS 기기가 고가이고 환자들이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점이 많지만, 이동식 기기가 보급된다면 도움을 받는 환자들이 늘어날 것 같아서요.”

“물론입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이동식 제품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회사가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하하하.”

시현의 말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김범식은 이내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임상 시험할 기회가 없어 출시가 늦어졌습니다. 덕분에 발열과 소음까지 잡아낼 시간을 벌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제 이동식 TMS 치료기 분야에서는 이제 우리가 세계 일류라고 자부해도 될 겁니다.

시현은 회귀 전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일단 실험군에 쓸 고정형 TMS 한 대와 이동식 TMS 한 대 그리고 대조군에 쓸 sham 각각 1대씩 총 4대가 필요합니다.”

약물 임상시험에서는 치료제와 플라시보(위약)의 효과를 비교한다.

마찬가지로 의료기기 임상시험에서는 모든 것이 치료기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장이 나가지 않는 ‘가짜 치료기’가 필요하다.

시현은 미리 준비한 연구 디자인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음… 총 4개의 군으로 임상을 진행하게 되겠군요.”

“네. 이동형 기기의 치료 효과뿐 아니라 고정형 기기에 대한 비열등성 시험도 해야 하니까요.”

비록 하루 만에 급하게 작성한 계획서였지만, 전에 비슷한 연구를 진행해본 탓에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특별히 흠잡을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대로 진행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네요. 맞춰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연구 전 단계로 환자 한 분께 실사용을 해보고 소음과 발열에 대한 부분도 피드백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그런 부분까지…….’

시현의 말에 김범식 대표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기장 치료기 성능 자체에 대해서는 안정적이라고 자부하지만, 아직 제품화 단계가 끝나지 않아 사용자 경험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었던 터였다.

“세심하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뭔가 잘 풀릴 것 같단 말이지.’

아까부터 김범식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 부장. 가장 최근에 완성된 시제품 하나 내일 바로 리서치 센터로 보내드려. 최대한 빨리.”

“네. 대표님.”

“김 과장도 선생님들 예비 연구 진행하실 때 필요한 게 없는지 수시로 챙기고.”

“넵! 알겠습니다!”

‘천시현 선생님이라고 했었나…….’

시현이 레지던트인지 교수인지 여부는 그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후우.

WE메디텍 사람들이 진료실을 나서자 시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기계는 어찌어찌 해결됐고. 이제 필요한 건 인력인가.’

아무리 기계가 좋아도 다룰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원기하고 민혜…….’

가용인력은 그들뿐이었다.

사랑하는 후배들이지만.

아낄수록 혹독하게 굴려야 한다고 어디서 들었던 것 같다.

들은 적 없나?

아무튼.

시현은 이내 휴대폰을 열어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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