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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의사 시점-125화 (125/195)

125화 Chapter 29. 미리 알 수만 있다면 (4)

[SORA : 인물 관계도를 활성화합니다. 50,000P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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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개]

이은희 여/28세

인물 정보 - 국회의원 강갑수의 비서. 좋은 법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긍지를 갖고 있다. 비난에 취약한 성격 탓에 모든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하려는 편. 특히 혼자서 자신을 힘들게 키운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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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에 취약하다, 라.’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남 눈치도 많이 보기에 주변에서는 좋은 사람 소리를 듣지만, 정작 자신은 무척 힘든 스타일이었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환자의 어머니와 아까 만난 아버지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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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이영태 남/56세

이은희의 아버지. 삼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잠시 하기도 했으나, 정치보다는 학문에 더 관심이 많았다. 딸의 의견을 존중하며 지지적인 편이나, 별거로 인해 청소년기 이후 자주 보지 못했다.

여민주 여/55세

이은희의 어머니. 대학생 때부터 학생운동과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왔다. 딸이 국회의원 비서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딸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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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물과 기름 같은 느낌의 두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딸에 대한 집착이라…….’

이은희가 죽을 만큼 힘들어도 일을 내려놓지 못한 데는 어머니의 기대감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환자가 굳이 아버지와 병원에 온 것은 어쩌면 오늘 일을 어머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끝이야?’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관계들은 모두 비활성화 상태였다.

[SORA : 이은희 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추가 면담을 통해 인물 관계도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망했다.

50,000P가 공중분해 되는 느낌.

많은 투자를 한 것 치고는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아이템 활용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뭐가 됐던 닥치는 대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현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회가 된다면 어머니와도 면담을 해보고 싶네요.”

일단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갈등이 있어 보이는 만큼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엄마… 하고요?”

“네. 우울증 치료에는 심리적인 부분도 중요하니까요.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탐색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문제없어요. 이건 다 제 탓이에요.”

환자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가뜩이나 우울하고 자살사고가 심한 상태인데, 또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누구 탓인지가 중요할까요?”

“네? 그게 무슨…….”

“저쪽에 누워있는 환자 보이시죠?”

시현의 시선이 응급실 입구 쪽 병상에 누워있는 한 남자환자를 향했다.

[고주태 남/28세 인턴 장미은 /R2 이철원]

의식 없이 누워있는 환자는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는데, 얼른 보기에도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마침 이은희 님과 동갑인 분이네요. 외상이 심해서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해요.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고가 있었고 한 시간 전에 응급실에 도착했다고…….”

“아… 어떻게 그런 일이…….”

“후우. 실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노동자 개인 과실인지 아니면, 근무 환경에 안전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확인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하네요.”

“그건 아니죠! 과실은 나중에 따지고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죠!”

시현의 말이 이은희가 발끈했다.

“잘잘못을 떠나서 그냥 저 환자가 살아났으면 좋겠어요. 아까 보니까 아내분이랑 어린 딸이 와서 울고 있던데…….”

“그러게요. 부디 별일이 없었으면…….”

그의 사정에 과몰입한 듯,

두 사람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이은희 님에 대한 제 생각도 같습니다.”

“…….”

시현이 말없이 이은희를 바라보았다.

의식 없이 누워있던 환자를 볼 때와 정확히 같은 표정이었다.

“우울한 기분이 누구 탓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환자분께서 꼭 생존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시현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 선생님… 뭐지?’

아까 마포대교를 말한 것도 그렇고 사경을 헤매는 환자와 자신을 비슷하게 보는 것도 그렇고.

당장 죽을 결심을 한 입장에서는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그리고 외래 진료 때도 꼭 부모님 두 분과 같이 오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당연히…….”

[system : 이은희 환자의 생존 확률이 소폭 상승합니다.]

[치료 진척도 11-> 19/100 생존 확률 21 -> 33%]

‘이거 쉽지 않겠는데.’

조금 오르긴 했다지만 여전히 낮은 생존 확률.

시현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은희를 바라보았다.

* * *

시현은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퇴실 지시를 했다.

“선생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준비할게요.”

응급실 원무과에서 퇴실 처리를 하는 동안 보호자가 시현에게 말을 건넸다.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절대로 혼자 두지 마시고 외래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네. 입원은 절대 안 하겠다니…… 애 엄마랑 상의해서 24시간 지켜봐야죠. 이만 가보겠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그렇게 응급실을 떠났다.

자살사고가 완전히 가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더 잡아둘 수는 없었다.

흔히 자살은 차악의 선택이라고 한다.

죽음을 간절히 원해서가 아니라 지금 처한 현실이 너무도 피하고 싶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라는 뜻이었다.

‘환자의 최악은…… 무엇이었을까?’

일이 스트레스라면 죽느니 그냥 일을 그만두면 된다고 속 편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듯했다.

과거의 기억과 시스템의 도움으로도 여전히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많다고 여기던 찰나.

“하아. 오늘 무슨 날이냐?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또…….”

누군가 긴 한숨을 내쉬며 시현의 옆자리로 앉았다.

“저 양반은 초저녁부터 무슨 술을 저렇게 마시고…… 아니, 한두 번도 아니고 머리 깨져서 오는 게 월례행사 수준이니…….”

시현의 동기, 응급의학과 2년차 이철원이었다.

“왜? 고주태 씨 때문에?”

그의 푸념을 듣고는 시현이 되물었다.

“어. 아는 환자야? 정신과에서 금주 치료 어떻게 안 되겠니?”

이 무렵 응급실을 자주 찾던 단골손님 중 한 명.

술을 끊겠다고 정신과 진료실을 한 번 찾아왔지만, 약은 간에 안 좋을 것 같다며 술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끊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환자였다.

“보호자는 연락 안 되고?”

“연락은 됐는데, 그 인간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라고 하더니만 전화기 꺼져있더라고.”

술주정이 워낙 심해서 보호자도 두 손 들어버린 듯했다.

“정신이 번쩍 들게 금융치료 해버릴까? ‘그 오더’로.”

그 말에 시현이 흠칫 놀랐다.

‘그 오더’라면 외상 4번 오더.

몇 년 전 졸국한 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만들어둔 처방 세트로, 환자의 의식이 온전치 않고 다친 부위를 특정할 수 없을 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든 부위를 촬영하도록 지시하는 처방이었다.

놓치는 부분 없이 전신을 촬영할 수 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검사비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금융치료라…….’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 같기는 했는데, 시현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좀 봐줘. 저 환자 덕분에 면담 수월하게 했으니까.”

“면담을 수월하게 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해줄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이철원을 향해 시현은 싱긋 웃어 보였다.

* * *

며칠 뒤 정신과 병동.

위이이잉.

“선생님, 진철영 교수님이 찾으세요.”

수신 버튼을 누르자 외래 간호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바로 내려갈게요.”

웅성웅성.

진철영 교수가 진료 중일 때 대기실은 항상 환자들로 가득했다.

정신과뿐만이 아니고 삼아대병원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진료 중 하나였다.

“교수님, 천시현입니다.”

“별일 없나? 요즘 환자도 많고 계속 바쁘지?”

진철영 교수는 레지던트들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괜찮습니다. 할만합니다.”

“그래. 며칠 전에 응급실에서 본 이은희 환자 있지? 오늘 입원하기로 했다. 치프한테 보고하고 3년차 이상이 볼 수 있도록 해.”

“저, 교수님. 제가 담당해도 괜찮겠습니까?”

“천 선생이?”

진철영 교수가 흥미롭다는 듯 시현을 쳐다보았다.

“힘들지 않으면 그렇게 하도록 하고.”

“네. 감사합니다.”

시현이 진료실을 나오려는데 진철영이 한마디를 더 했다.

“보호자 2명이 같이 왔더라. 서로 안 보고 산 지 오래됐다고 하던데…….”

‘다행이네.’

일반적으로 환자 본인이 입원을 원치 않으면 법적으로 입원을 강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살사고가 심한 경우, 정신과 전문의 소견과 직계 보호자 2인의 동의가 있으면 입원이 가능하다.

문제는 보호자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거나 한 명이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인데, 입원이 필요한데도 돌려보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가족관계 증명서에 신분증에…… 입원 준비도 제대로 해왔더라고.”

환자 인권이 중요해진 만큼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환자가 보호자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데도, 서류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사례도 있었으니까.

“환자는 입원하기 싫다고 했는데…… 보호자들이 미리 준비 다 해놓고 설득하니까 받아들이더라고. 천 선생이 그리 설명했나?”

“아, 네. 준비하실 것들을 따로 적어드렸습니다.”

“그래. 노련하게 잘 처리했다. 사연이 많은 환자 같던데…… 열심히 보도록 하고.”

진철영은 흡족한 표정이었다.

시현은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딩동!

[system : ‘세상의 모든 차트’ 내용이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Y/N]

환자의 경과가 크게 바뀌었을 때 떠오르던 메시지.

이은희 환자의 차트에 전에 없던 진철영 교수의 외래 초진 기록이 추가되어 있었다.

‘대폭 수정이라는 건…….’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록.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딩동!

진철영의 진료실을 나오자 알림음이 울렸다.

[SORA : 이은희 환자가 입원 수속 완료하였습니다.]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가지 않은 길 -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록이 추가되었습니다. (불가능 난이도 +2,000P)]

[안전지대 - 자살사고가 공고한 환자가 입원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자살 위험도가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1,000P)]

응급실에서 쓴 50,000P가 아른거렸지만, 일단 고비는 넘겼으니 다행이었다.

‘급한 불은 끈 것 같고.’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면담을 이어나가느냐였다.

‘쉽지 않은 환자야. 잘 부탁해.’

[SORA : ‘카이트만의 안경’을 사용합니다.]

시현은 초진 면담을 위해 곧장 병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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