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Chapter 33. 휴가 (2)
* * *
“여기야. 어서 들어가자.”
진수회관.
보건지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이었다.
“우리 보건소 슨상님들 오셨구마잉. 이리 앉으셔요.”
짧은 파마머리의 주인 할머니가 천시현 일행을 맞았다.
낡아 보이는 간판. 투박한 멜라민 식기. 일견 허름해 보이는 식당이었으나 한쪽 벽면은 유명인들의 사인과 기념사진으로 가득했다.
식당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집인가 봐!”
한준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기 반찬이 진짜 다 맛있어. 한 번 먹어봐.”
최만기가 미리 연락해 뒀는지 밥상에는 상종이가 깔려있었고,
세 사람이 앉기가 무섭게 반찬들이 줄지어 나왔다.
“우와. 이게 다 뭐야.”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순식간에 상을 빼곡히 채웠다. 문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
“많이 먹어라. 서울 촌놈들아.”
최만기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레지던트 생활은 할 만해?”
“어휴 말도 마라. 지난주 내 스케쥴이 어땠냐면…….”
한준식은 이때다 싶었는지 흉부외과 레지던트의 생활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했지만, 요약하자면 잠은 하루에 5시간 내외, 그것도 중환자실 당직실에서 잠깐 조는 것을 포함했을 때 그렇다고 했고.
나머지 시간을 응급실, 수술방, 병동을 온종일 뛰어다니며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기대해. 공보의 끝나면 그 과정을 다 마친 우리를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하하하!”
살짝 웃으며 말하는 한준식의 표정이 꽤 사악해 보였다.
“오…… 그렇게 힘들단 말이지? 시현이는 안색이 좋아 보이네. 정신과는 그런대로 할 만해?”
“우리야 흉부외과에 비하면 사무직에 가깝지.”
“아냐. 난 정신과 환자들 보기가 젤 까다롭던데. 뭐 시현이는 워낙 일을 잘한다고 병원 전체에 소문이 나서…….”
“오, 그 정도야?”
최만기는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만기야, 넌 공보의 끝나면 무슨 과 하고 싶니?”
시현이 물었다.
- 만기가 살아있었으면…… 지금쯤 1년차 됐겠네. 무슨 과 했을까?
회귀 전 4년차 때, 술자리에서 한준식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최만기의 이야기만 나오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침울해지곤 했다.
의대생 시절부터 명민했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동기들 사이에서도 신임이 두터웠다.
분명 훌륭한 임상의가 되었을 것이고 많은 환자의 목숨을 살렸을 것이었다.
“글쎄. 마음 같아서는 준식이처럼 흉부외과를 하고 싶기는 한데. 아마 가족들이 싫어하겠지?”
“아, 아냐! 그렇지 않아! 아까 내가 이야기했던 건, 약간의 과장이 있었다고. 사람이 그렇게 어떻게 살아?”
최만기의 말에 한준식은 말까지 더듬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훌륭한 호구…… 아니, 인재가 제 발로 걸어들어온다는데 괜한 입방정으로 놓칠뻔했다.
“그래? 일이 많지만 그래도 할만하다는 거지?”
“그럼!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라고! 안 그러냐 시현아?”
“…….”
‘카이트만의 안경’을 쓰고 있었더라면 99.9% 거짓으로 판정했을 말이었다.
“시현아? 뭐라고 말 좀 해봐!”
“어휴, 인턴 한 달만 해보면 다 들통날 거짓말을 뭘 그리 정성 들여서 하고 그래?”
시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가? 쳇, 영업 실패네…… 뭐, 엄청 힘든 게 사실이지. 나도 처음에는 부모님이 엄청나게 반대하셨어. 열심히 해서 꼭 교수 될 거라고 간신히 설득했다.”
한준식이 짐짓 아쉬운 척을 하며 이실직고했다.
“인턴 하면 여러 과 돌게 되니까 내년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
시현이 최만기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흠…… 미리 고민할 필요 없다는 거지?”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도 그때 되면 생각이 여러 번 바뀔 거야. 병원 근무 시작하기 전까지 몸 건강히만…… 잘 지냈으면 좋겠다.”
무심코 하는 말이었지만, 몇 년을 마음에 담아왔기에 진심이 전해지는 말이었다.
“어휴, 갑자기 무슨 분위기를 이렇게 잡고 그래? 슬슬 일어날까?”
한준식이 벽에 등을 기댄 채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 잘 먹었다. 올해 먹은 밥 중에서 단연 최고였어.”
시현 또한 감탄하며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여기 계산이요.”
“네.”
계산대에 서 있던 사내는 무뚝뚝하게 최만기의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넣었다.
‘술 냄새가 많이 나는데.’
낮부터 얼굴이 벌건 사내. 큰 키에 다소 마른 체형으로 얼른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했다.
“슨상님, 이놈 술 좀 끊게 해주시요잉. 간에 좋은 약은 따로 없을까?”
시현 일행을 맞아주었던 할머니가 사내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놈이 말이여! 노름을 좋아해서 집도 날려 먹고 각시도 도망가브렀당게! 이놈아, 정신 좀 차려라. 뭔 대낮부터 술이냐?”
“아니, 어머니는 뭔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하고 그라요!”
사내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최만기에게 카드를 건넸다.
“보건소 다니는 환자분이시니?”
식당을 나온 천시현이 최만기에게 물었다.
“여기 사장님 아들이야. 가끔 혈압약 타러 오시긴 하는데…….”
최만기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 하며 고혈압이 있다면서 낮부터 술에 취해있는 모습 하며 썩 좋은 환자 같지는 않았다.
“크로닉 알코홀릭(chronic alcoholic, 만성알코올중독자) 같은데 혹시 다른 기저 질환…….”
딩동!
시현이 최만기에게 뭔가 물어보려는데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SORA : 현재 퀘스트 ‘휴가는 휴가답게’를 수행 중입니다. 과도한 histroy taking(병력 청취)를 삼가십시오.]
‘이런 것도 제한이 있다고?’
[SORA : 환자의 병력 청취 또한 의료행위에 들어갑니다.]
시스템은 생각보다 깐깐하게 시현에게 제약을 가하고 있었다.
‘준식아 잘 부탁한다.’
다행히 이번 휴가에는 한준식이 함께였다.
‘일단 오늘 저녁만 잘 버티면 돼.’
어떤 의료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퀘스트 내용이 좀 걸렸지만, 여차하면 뛰어들 각오는 되어있었다.
개입할 이유는 차고 넘쳤으니까.
어떤 패널티를 감수하더라도.
* * *
4년 전 오늘 밤.
똑똑똑.
“누구 있소? 아이고 선생님 계셨구마잉.”
보건지소 옆에 딸린 최만기의 관사에 식당 주인 할머니와 아들이 찾아왔다.
일과 시간을 한참 넘긴 늦은 방문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최만기의 시선이 식당 주인의 아들을 향했다.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휴지로 대충 틀어막은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얼굴은 퉁퉁 부어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어휴, 많이 다치셨네요.”
“야가 술이 한잔 돼가꼬 또 쌈박질을 하고 이리 안 돼븟소잉. 이 썩을 놈아! 술을 퍼먹었으면 잠이나 잘 것이지 뭐하러 싸돌아댕겨!”
주인 할머니는 민망한지 환자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선생님,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제가 드레싱 해서 보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상처가 심해서요. 약 좀 처방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정 여사님도 오셨군요.”
보건지소의 보건 행정 공무원 정현미였다.
그녀 또한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다가 주인 할머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불려 나왔다.
“오빠는 어쩌자고 또 이러는 거야? 내가 정말 동네 창피해서 진짜.”
“아이고 현미야. 내가 느그 오빠 때문에 제명에 못 죽겄다.”
정현미는 식당 주인의 조카로 환자와는 사촌지간이었다.
대화를 듣자 하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밝은 데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만기는 진료실 불을 켜고 환자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오염이 많이 됐네요.”
상처 부위가 넓고 흙먼지가 엉겨 붙은 상태.
이물질을 제거하고 소독하는 데 한참 걸렸다.
“워메 따건그! 거 대충 살살 해줘요!”
환자가 계속 툴툴거리는 탓에 속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상처가 덧납니다.”
“아따 안 죽는당께. 나 그만 갈라요.”
술이 덜 깬 탓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밤늦게 찾아와 온갖 진상은 다 부리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다른 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최만기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물었다.
“아까부터 가슴팍이 쪼까 아픈 것 같기도 허고…….”
환자가 우측 갈비뼈 쪽을 쓰다듬으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지소에는 엑스레이가 없어서 골절 확인이 어렵습니다.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보십시오.”
“내일 가볼랍니다. 오늘은 야가 술을 해서 운전이 안 되니께…… 아이고 쉬셔야 한디 참말로 미안허요. 슨생님 친구분도 애쓰셨소.”
식당 주인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환자와 함께 진료실을 나갔다.
“시현아 우리도 그만 일어나자.”
최만기가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멀리서 찾아왔는데 일을 시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복도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아이고, 만철아 왜 그러냐?”
진료실 문을 열고 나가자 환자는 복도에 쓰러져 있었고, 주인 할머니와 정현미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최만기가 즉시 달려 나와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정 여사님, 여기 혈압계 가져다주세요. 수액도요.”
최만기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였다.
“펄스가 너무 약해. 타키카디아(Tachicardia, 빠른맥)도 있어.”
맥박이 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혈압이 떨어지고, 떨어진 혈압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심장이 빨리 뛰고 있는 상태였다.
“Shock(혈압이 저하되어 신체에 충분한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 상태)이 온 것 같은데. 인 것 같은데. 원인이 뭘까?”
시현과 최만기가 환자 상태를 살피는 동안 정현미가 혈압계와 수액 세트를 가져왔다.
“119 불러주세요. 환자 옮겨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Systolic(수축기 혈압) 75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최만기는 이내 수액 놓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Full drop(수액을 최대 속도로 주입하는 것) 하자!”
수액을 들이붓는데도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의식이 더 흐려졌다.
당장 원인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응급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혈압도 떨어지고요. 빨리 와주세요! 여기 위치는…….”
119에 상황 설명을 하던 정현미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하필이면 가까운 소방서 구급차가 다 출동 나갔답니다. 아무리 빨라도 오는 데만 30분 걸린다는데요?”
가뜩이나 외진 곳에 있는 보건지소였다.
지금 바로 출발해도 급한 마당에 구급차마저 늦게 온다면 병원까지 최소 1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 분명했다.
“만철아 정신 좀 차려봐라. 이를 어쩐디야…….”
“일단 제 차로 가요. 정 여사님도 같이 타시고요.”
최만기와 정현미가 환자를 부축하여 일어섰다.
“늦더라도 구급차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
“서두르면 가까운 응급실까지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금방 다녀올게.”
그는 환자의 수액 백을 높게 든 채 급하게 차에 올라탔다.
‘좁은 차 안에서 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굳이…….’
“휴가라고 멀리서 왔는데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관사에서 쉬고 있어.”
그는 시현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하며 서둘러 보건지소를 떠났다.
“그래, 병원에 인계만 하고 얼른 와. 늦으면 관사 하드디스크 불시 검열 들어간다.”
“야! 그건 아니지!!!”
“그럼 올 때 치킨이라도 사 오시던가.”
급당황하며 차에 오르는 최만기를 보며 시현은 씩 웃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 * *
그로부터 며칠 뒤 장례식장.
“아이고 만기야, 만기야…….”
“만기 엄마! 정신 좀 차려봐요!”
상복을 입은 최만기의 어머니는 넋을 놓고 울다 혼절하고 말았다.
“야밤에 지소로 환자가 온 모양이야. 그 환자 이송하다가 그만…….”
“아니, 그건 119에서 해야지 만기가 왜? 근무 시간도 아니었다면서!”
의대 동기들이 그의 죽음에 울분을 토했다.
그날, 환자를 태우고 가던 차는 맞은 편에서 중앙선을 넘어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최만기의 차는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갔고 몇 바퀴를 구른 뒤 전복되었다.
“음주 운전 트럭이었단다. 술 먹고 죽으려면 혼자 곱게 갈 것이지 왜 멀쩡히 가고 있던 차를 들이받아? 우리 만기 불쌍해서 어떡하냐.”
조문을 온 동기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회귀 전 레지던트 수련 기간 중 가장 후회되는 날이었다.
시현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