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59화 (159/195)

159화 Chapter 34. 터닝포인트 (8)

이종관이 시현의 어깨를 두드리자 곧바로 시스템 알림음이 울렸다.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더욱 커 보이는 남의 떡 - 타과 과장의 호감도가 큰 폭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3,000P)]

[터닝포인트 - 누군가의 인생에 작은 전환점을 제공하였습니다. (난이도 측정 불가, 보상 설정 불가)]

[system : 보상 설정 불가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총 1개의 ‘랜덤 박스’가 지급됩니다.]

[랜덤 박스]

- 포인트, 능력치, 아이템 등 다양한 구성의 보상이 무작위로 제공됩니다.

- 열어 보시겠습니까?

시현이 바로 보상 내역을 확인하려는데 이종관이 다시 한번 사의를 표했다.

“아무튼, 고맙네. 정말 고마워.”

“어머님께서는 퇴원하면 어떻게 지내십니까?”

문득 환자의 거취가 궁금해졌다.

“당분간은 우리집에서 내가 모실 생각이야. 본인은 그 사람이 좋다고 하시는데…….”

“어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그 간병인을 다시 쓴다고 했다니.

시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진정작용이 강한 약을 치료진 몰래 투여한 사람을 괜찮다고 하다니.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저히 마음이 안 놓여서 그렇게는 안 될 거 같아. 간병인은 해고하기로 했어.”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좀 놀랐어. 고소해도 모자랄 텐데 그런 반응이라니. 그런데 그 마음도 이해가 가더라고. 자녀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을 때 그래도 옆에 있었던 사람이 그 사람이었던 거지. 우리 어머님, 참 강한 분이셨는데…….”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며,

언젠가는 혼자서 일상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온다.

젊어서 아무리 강건했다고 한들,

여기에는 예외는 없다.

“혼자 계시기가 많이 불안하셨던 모양입니다. 간병인으로서는 최악인데, 그래도 해고하지 못하셨던 걸 보면…….”

“맞아. 말하는 태도도 그렇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 본인 일 편하게 하겠다고 몰래 수면제를 주질 않나. 밤에 집으로 친구도 불렀던 모양이야.”

첫 몇 년 동안은 근무 태도가 성실했지만, 간병인은 점차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도 환자는 웬만하면 참아 넘겼던 것 같다. 어차피 다른 사람을 고용할 것도 아니고, 지적해서 껄끄러운 사이가 되느니 적당히 넘기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불안에 시달리며, 판단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어머니를 10년 넘게 모셨으니 자기 몫으로도 유산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서운했다나? 그동안 그런 줄도 모르고 믿고 맡기다시피 했으니…….”

이종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늦게나마 발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 그동안 의사로서 참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헛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작 식구들 신경 못 쓰고 살지 않았나? 이 나이 먹고도 병원 일이 먼저고 말이야.”

“아닙니다, 교수님. 덕분에 목숨을 건진 환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학생들도 그렇고 레지던트들도 교수님께 가장 많이 배운다고 하는걸요.”

시현이 이종관을 위로하듯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럴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어. 알고 있나?”

“네. 천하를 다스리는 일도 자기 수양에서 시작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지. 자기 수양……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든 악착같이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었어.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이 아주 힘들었거든.”

어린 이종관의 다짐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시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삼아대병원 순환기내과를 국내 1위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심혈관 중재술을 배우기 위해 그를 찾아오는 외국 의사들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차기 원장 후보를 거론할 때는 늘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학생 때는 공부 참 열심히 했고, 교수 되고 나서는 휴일에도 나와서 논문 썼지. 잠 줄여가면서 환자 봤고. 내 손끝에서 살아나는 환자들 보면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

이종관의 말에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의사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힌 심장 혈관을 뚫어내고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가 살아 돌아오는 경험은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그게 의업의 본질 아닐까요? 의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누구나 가져야만 하는…….”

“맞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 그렇긴 한데…… 무엇을 위해 그리 살았는지를 잊고 살았던 것 같아.”

‘무엇을 위해서…….’

매일 숨 막히는 일상에 치여서,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빠서.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모르고 지내기도 한다.

이종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질 무렵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일 겪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애초에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은 게 어머니 고생 안 시키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오래되다 보니까 주객이 완전히 바뀐 거 같아. 앞으로는 일을 좀 많이 내려놓으려고 해.”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홀가분해 보였다.

“교수님 진료 예약이 많이 밀려있을 텐데, 기다리시는 환자분들이 조금 서운해할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대신 우리 펠로우 선생들하고 레지던트들을 더 많이 신경 써야지.”

일을 줄이겠다는 사람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네? 그게 무슨……?”

뜻밖의 대답에 시현이 반문했다.

“앞으론 내 일을 줄이고 교육에 좀 더 신경 쓰겠다는 말이야. 실력이 늘 수밖에 없게. 더 ‘혹독하게’ 가르쳐야지.”

돌연 서혁상과 동기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열심인 이종관 교수가 ‘혹독’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얼마 전에도 보니까 말이야. 그리 어렵지도 않은 시술 가지고 쩔쩔매는 게…… 나 없었으면 환자 큰일 날 뻔했다니까? 그동안 내가 병원에 있는 거 믿고 공부를 게을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교수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자기만큼 환자를 잘 볼 수 있는 후학들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고 했다.

본인이 병원에 없는 날에도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퇴임 후에도 삼아대병원 순환기 내과가 최고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도록.

“레지던트 수련 여건이다 뭐다 해서 그동안 내가 너무 물렀어…… 우리 때 수련은 그렇지 않았어. 백수의 왕 사자도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고 하지 않나? 좋은 의사로 키우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허허허.”

“…….”

‘어떻게 그런 결론이…….’

보통 깨달음을 얻으면 좀 더 유해져야 하지 않나?

호탕하게 웃는 이종관을 시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거 낭설이라던데요.’

사자가 주로 서식하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는 애초에 절벽이 없다고 했다.

있다고 한들 멀쩡한 새끼를 떨어뜨릴 리도 없고.

“천 선생도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3년차도 됐으니까 혼자만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고 후배들도 잘 가르치도록 해. 큰 나무 아래에는 풀이 자라기 힘드니까.”

마침 새로 들어올 고채연과 장미은도 입국식을 앞둔 상황.

어려운 환자라고 해서 무조건 해결해주려고 하는 것보다는 담당 레지던트가 올바른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안전한 테두리에서 가이드하는 역할이 바람직하다.

더 나은 치료방법을 안다고 해서 그들이 교육받고 시행착오를 겪을 ‘권리’는 없으니까.

“네, 교수님. 명심하겠습니다.”

“자, 여기 이거 가져가게.”

이종관이 시현에게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쇼핑백을 건넸다.

“아,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받아두게. 이건 교수가 아니라 환자 보호자로서 주는 거니까. 이번 일 겪으면서 나도 여러모로 깨달은 게 많아. 정말 고맙네.”

요 며칠, 그는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동안 워라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만큼 이예진과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에. 앞으로는 좀 더 노력하겠다는 말에 하나뿐인 딸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끌어안았다.

딸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던가.

그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건강하게 퇴원하셔서 기쁩니다.”

‘이제 주말 출근은 안 하시려나.’

그의 진료실을 나오며, 시현은 늘 같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이종관의 차를 떠올렸다.

병원 주차장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기둥의 바로 왼편.

족히 10년은 더 되어 보이던 낡은 회색 세단.

그 익숙한 풍경이 조금 바뀔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의국으로 돌아온 시현은 시스템창부터 띄웠다.

[system : ‘랜덤 박스’를 열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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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박스 보상 내역>

포인트 + 10,000P

능력치 - +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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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 향상.

진짜는 이것이었다.

‘의사 장터’에서 구할 수도 없고 환자의 생존에 크게 기여했을 때 한정으로 주어지는 보상.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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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시현 남/27 삼아대병원 정신과 레지던트 2년차]

칭호 : 회귀물의 주인공 / 시스템 사용자

주요 능력치 : 지력 75 덕력 51 체력 45 감각 50 행운 49

특기 : 연구 설계(Lv. 7), 약물치료(Lv. 7), 지지정신치료(Lv. 6)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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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상태창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답이 없자 SORA가 먼저 물어왔다.

[SORA : 능력치 분배는 어떻게 할까요?]

‘모두 지력에 쓸게.’

그간 얻은 능력치 포인트는 모두 지력을 올리는 데 투자해 왔었다.

덕분에 각종 치료 숙련도도 올라갔고 차트도 전보다 더 빠르고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회귀 전의 기억도 더 또렷해졌고.

지금 정도로도 아쉬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지력을 더 올린 건 새로운 스킬 ‘꿈의 해석’ 때문이었다.

‘발동 조건이 지력 80 이상이었어.’

지력이 높아지면 활성화되는 스킬들이 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system : 레지던트 천시현의 지력이 75 -> 82로 상향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능력치 밸런스는 부족했지만, 지력만큼은 지금까지 만난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딩동!

[system : 지력이 80을 상회하여 환자 경과에 대한 예측능력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system : 지력이 80을 상회하여 주의집중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system : 지력이 80을 상회하여…….]

알림창 대여섯 개가 동시에 떠오르는 걸 보니 특정 능력치가 80을 돌파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인듯했다.

‘전전두엽이 좋아졌다는 건가?’

메시지들을 살펴보던 시현이 씩 웃었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대뇌에서 가장 앞쪽에 위치한 부분으로, 이 영역은 뇌의 다른 영역들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인간 특유의 고등한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로 알려져 있다.

계획 수립과 충동 조절 그리고 주의집중력은 하나 같이 전전두엽 기능과 관련이 있었다.

‘뭔가 더 또렷해진 것 같아.’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어려운 일도 차분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system : 지력이 80을 상회하여 ‘환자 검색’ 기능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환자 검색 기능?’

흥미를 끄는 메시지가 맨 마지막에 나왔다.

[SORA : 환자 정보를 성별과 연령, 진단명과 같은 특정 조건들로 분류하여 조건에 부합하는 환자를 특정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당장 환자를 진료할 때 유용한 기능은 아니었지만, ‘세상의 모든 차트’ 시스템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띠띠띠띠 띠리링.

시현이 상태창 확인을 마칠 무렵, 도어락이 열리고 김석용과 황진호가 의국으로 들어왔다.

“어? 시현아 이거 뭐야?”

“못 보던 쇼핑백이네?”

그들의 시선이 이종관이 준 선물에 꽂혔다.

“아, 이거 이종관 교수님께서 주신 건데…….”

“순환기 내과 과장님이 너한테? 뭔데?”

‘랜덤 박스’에 밀려 뒷전이었을 뿐 시현 또한 궁금하긴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 같아 보였으니까.

쇼핑백을 열고 포장지를 뜯자 상자에서 황금색 빛이 새어 나왔다.

딩동!

[system : 신규 아이템이 등재되었습니다.]

[효과를 예측할 수 없는 최고급 포션(SSS)]

‘뭐지?’

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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