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Chapter 35. 당신이 옳다 (3)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정진이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보호자님이셨군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성인 환자 면담 중 보호자가 찾아오는 일은 드물긴 했지만, 일단 자리를 권했다.
“우리 정진이…… 정신 좀 차리게 도와주십시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렵게 얻은 아들…… 번듯한 직장에 취직시키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겠습니까? 집에서 놀면서 몇 년간 게임만 하더니, 이제는 딴 생각하느라 공부가 안 된다고 하네요. 제발 잘 고쳐서 사람 좀 만들어주세요. 제가 속이 다 타겠습니다.”
대뜸 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아들을 사람 만들어달라는 말이라니.
강박증을 마음가짐이 잘못되어 생기는 병쯤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 그건 노느라 그런 게 아니고 대회 준비한 거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너는 좀 가만히 있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니? 엄마 고생하는 거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
그 말에 환자는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교수님한테는 상담 길게 하기도 어렵고 지난번에 만났던 선생님은 조금 신뢰가 안 가서…….”
‘도대체 어떤 면이…….’
환자도 성실하게 보고 연구도 열심히 하고 전문의 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한 사람인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선생님, 우리 아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시현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는 진료실을 나가는 보호자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올해는 꼭 합격하고 싶은데…….”
[system : 환자가 거짓을 말합니다. (99.9%)]
‘이 정도면 진로를 바꾸는 게 치료 아닐까?’
면담을 더 해봐야 알겠지만, 그는 이쪽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취업 문제로 갈등이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님께서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힘드신가 봅니다.”
‘힘들게 키웠다고 했으니까…….’
취준생 기간이 유독 긴 아들을 부양하느라 고생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표정만 놓고 보면 보호자가 환자보다 훨씬 우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네? 전혀요! 저희 엄마 완전 부자예요!”
하지만 그의 대답은 시현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장사 크게 하셨거든요. 솔직히 일반 회사원 월급 정도는 엄마한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예요.”
“그런데 왜…….”
“아들이 공무원 되는 게 보고 싶으신 거죠. 솔직히 그동안 일자리 제안은 간혹 있었거든요. 게임단 매니저 같은 거…… 조건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런 쪽은 성에 안 차시는지 그냥 하던 공부나 계속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셨군요.”
“엄마한테는 비밀인데요, 지금도 엄마 몰래 인터넷 방송하면서 용돈 정도는 벌고 있어요. 독립해서 게임 쪽으로 제대로 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엄마 울고 계실 거 생각하면 마음이 안 놓여서…… 전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셨었거든요.”
시현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환자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원했던 길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가족이 원하는 길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진로를 바꾸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지만, 어머니가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 결과, 그는 너무도 비효율적인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침투사고가 핵심이 아니야.’
겉보기로는 흔한 강박증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 셈이었다.
딩동!
[system : 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system : 환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최고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system : 환자의 담당 의사에 대한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시현의 생각에 반응하듯 메시지 여러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그동안 고생이…… 참 많으셨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에 새로운 스킬 사용을 알리는 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딩동!
[system : 스킬 ‘당신이 옳다’를 사용했습니다.]
‘당신이…… 옳다?’
다음 순간, 환자의 미간에 잡혀있던 주름이 조금씩 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고생했다니, 뭔가 위로가 되네요.”
면담을 시작할 때보다 한결 편한 표정.
“집에서 쉬면서 공부만 하는데 뭐가 힘드냐고 맨날 욕만 먹었거든요.”
환자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계속 붙들고 있다 보니 불행할 수밖에.
그렇다고 프로 게이머로 데뷔하기에는 늦은 나이라 공부를 놓을 수도 없었다.
차트 내용만 봤을 때는 사고 내용을 파악하고 인지행동치료를 해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증상 치료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하고 싶은 일,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 더 급한 환자였다.
* *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네, 그럼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환자가 면담실을 나가자 시현은 곧바로 알림창부터 확인했다.
‘이 스킬은 뭐야?’
[SORA : 특정 조건을 충족하여 새로운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당신이 옳다(액티브 스킬)]
- 환자의 우울, 불안,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들을 즉각 감소시킵니다.
- 환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일정 수준 이상 다다를 때 활성화됩니다.
- 직접 사용이 가능하며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추가적인 효과가 발생합니다.
------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와 공감.
스킬의 활성화 조건이었다.
생각해보니 환자에게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건넨 직후 스킬 사용을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눈여겨볼 점은 스킬의 효과.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준다…….’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치료로도 부정적 감정은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몇 주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는 것.
환자에게 맞는 약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거 대박인데?’
시현은 새로 얻은 스킬, ‘당신이 옳다’의 설명서를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정신과 진단은 환자와의 면담을 통해 이뤄진다.
정신과의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인 우울증만 보더라도 확진할 수 있는 혈액검사나 방사선 촬영 기법은 없다.
그렇기에 다른 과에 비해 진단에 의사의 역량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확보한 ‘카이트만의 안경’과 ‘인물 관계도’ 그리고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의 경우, 환자를 이해하고 진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스킬이었다.
진단에 있어서 시현의 능력은 노련한 정신과 전문의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치료 수단이었다.
‘이제는 좀 균형이 좀 맞을까?’
새로운 스킬은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준다.
게임으로 치면 디버프 해제나 디스펠 같은 느낌인데, 회귀 후 처음으로 획득한 치료계열 스킬이었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추가적인 효과가 발생합니다.]
설명서의 마지막 문구가 자꾸 맴돌았다.
‘숙련도는 어떻게 올리는 거지?’
똑똑.
시현이 궁금해하는 사이 누군가 면담실 문을 두드렸다.
“면담 잘했어? 첫 세션인데 어때?”
권원주였다. 오후 외래 진료가 평소보다 일찍 끝난듯했다.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좀 더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환자 표정 좋던데? 천 선생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갔어.”
권원주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다행입니다. 오후 회진 있어서 올라가 보겠습니다.”
시현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진료실을 나가려는데 권원주가 한마디를 더 했다.
“환자가 현실성 없는 목표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초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보던 환자라 권원주도 환자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적성에 너무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게임 쪽으로 꽤 재능이 있어 보이던데…… 안타깝습니다.”
“글쎄. 나는 오히려 그런 ‘애매한 재능’이 매우 위험하다고 보는데. 환자가 자립해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오히려 막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녀의 말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프로 선수로 데뷔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생계를 위해서는 대회에서 성적도 내야 하니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환자는 프로 선수로 활약하기에는 다소 많은 나이였다.
벌써 30대. 선수 생활을 한다고 한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저는 본인 의사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할 테고요.”
하지만 방금까지 환자와 면담을 하고 나온 탓에 시현은 최대한 환자의 편에 서서 말했다.
“그건 원론적인 이야기지. 천 선생이 너무 중립적인 거 아닌가?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조언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환자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직접적인 조언이나 격려를 극도로 꺼리는 치료자도 있지만, 권원주는 그런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중립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응원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재능이 있어 보여요. 조금 더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래? 그래서 환자 표정이 좋아 보였을까?”
권원주가 싱긋 웃었다.
“뭐, 그것도 좋은 전략이야. 천 선생이 맡기를 잘한 것 같네. 앞으로 외래에서 PT(정신치료) 필요한 환자 있으면 또 의뢰할까?”
“의뢰해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맡겨만 주세요! - 차기 펠로우의 신임도가 올라갑니다. 보다 많은 환자가 배정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1,000P)]
권원주에게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지만, 가뜩이나 바쁜 시기에 정신치료 환자를 몇 명 더 보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그래도 포인트에… 스킬도 있으니까.’
과거와는 다르게 환자는 진료하는 것만으로도 보상이 주어진다. 치료 결과가 좋다면 더 많은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고.
오늘만 해도 새로운 환자를 만난 덕에 치료계열 스킬이 생겼다.
‘스킬은 환자 진료하다 보면 느는 것 같은데…… 능력치는 어떻게?’
시현은 권원주의 정보창에서 본 주요 능력치를 떠올렸다. 분명 몇 달 전에 비해 지력이 큰 폭으로 올라 있었다.
“선생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전문의 시험 준비는 얼마나 열심히 해야 1등을 할 수 있는 건지……. 어떻게 하신 거예요? ”
돌연 그녀의 공부법이 궁금해졌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최근에 생긴 변화인 만큼 분명 그 속에 높아진 지력에 대한 힌트가 있을 터였다.
“열심히… 물론 열심히 하기도 했지.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공부하는 마인드가 좀 바뀌었다고 할까?”
“공부하는 마인드……가요?”
“응. 학생 때도 그렇고 레지던트 하면서도 공부할 때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효율적으로 ‘익히는 데만’ 초점이 맞추고 있었던 것 같아.”
임상의학이라는 학문은 질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치료하는지가 핵심이었다.
그리고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는 공부인 만큼,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들.
시현이 그게 무슨 비결이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작년하고 올해 1년차들이 잘하는 것 보고 느끼는 게 많았어. 사고 안 치는 수준이 아니라 환자도 잘 보고, 과에 어려운 일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앞장서기도 하고…….”
의아한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권원주가 말을 이었다.
“그거야 확실히…… 원기하고 민혜가 환자도 잘 보고 열심히 하는 편이긴 하죠.”
“물론 그렇지만,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을까?”
“다른 이유라면 무슨?”
“예를 들면 ‘좋은 선생님’이 있었다던가?”
권원주가 싱긋 웃으며 시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