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66화 (166/195)

166화 Chapter 35. 당신이 옳다 (7)

“그러니까……. 그 말씀은 입원 전 저희 외래 진료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가요?”

김석용이 굳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누가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런 의심을 지울 수가 없군요. 제 경험으로는 웬만한 환자들은 기존 치료로 대부분 커버할 수 있던데 말입니다.”

“…….”

‘선 넘었네.’

제자들이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저런 발언이라니.

시현의 가슴도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system : 사용자의 교감신경계가 극도로 항진됩니다.]

‘저거 지금 싸우자는 거지?’

다른 병원 교수들도 여럿 참석한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구분해 두는 편이 좋아 보였다.

네 편과 내 편을.

‘카이트만의 안경.’

[SORA : ‘카이트만의 안경’을 사용합니다.]

[SORA : ‘피아식별 모드’가 활성화됩니다.]

역시나 김상진의 등 뒤로 이글거리는 검붉은 오라가 켜졌다.

다행인 점이라면, 예상과는 달리 그의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중립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 대부분을 외래 위주로 치료하신다니, 정말 흥미롭네요.”

그를 바라보는 김석용의 입가에 어느덧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그런 부분이 치료자 역량 아니겠습니까? 국내에서는 제가 TRD(치료 저항성 우울증) 누구 못지않게 많이 보는 편인데, 조금만 관심 가지고 열심히 하면 외래에서도 충분히 잘 치료할 수…….”

“외래로 충분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김상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석용이 반문했다.

“자살 고위험군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외래 진료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거야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되어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안 오는 경우가 대부분…….”

“그럴 수도 있지만, 전수 조사를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외래가 아닌 입원 치료를 원해서 다른 병원으로 가셨을 수도 있고요.”

“……다른 병원으로 간다고?”

뿌득.

그 말에 김상진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언제나 자신의 치료에 과도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였다.

그가 근무하는 한국대병원은 ‘3차 병원의 3차 병원’으로 평가받고 있었고, 그의 진료를 받기 위해 먼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환자들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그를 두고 다른 병원 다른 의사를 찾아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네. 차라리 다른 병원을 찾아간 거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환자가 잘못된 거라면 극단적인 선택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하는 김석용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물론 그럴 일이 절대로 없었기를 바라지만, 정신과 의사라면 언젠가는 겪고야 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별다른 확인도 없이 적당히 잘 지내고 있다고만 생각하시는 건…… 그야말로 ‘지레짐작’ 아닙니까?”

“뭐라고? 지레짐작? 대체 그게 무슨……?”

다음 순간, 김상진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면 뭐라고 화라도 내겠는데,

레지던트가 따위가 자신을 상대로 저렇게 빈정대는 건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외래 위주의 진료라는 게……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면서 ‘방심’ 하기 쉬운 환경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게 좀 걱정스러워서 말입니다.”

“…….”

“솔직히 자살 시도로 경찰에서 연락 오는 경우가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알 방법도 없고요.”

점차 김석용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오. 선생님…….’

평소 성실하고 예의 바르기로 소문난 김석용답지 않게 할 말은 다 하는 모습이었다.

한편으로 놀랍긴 했다.

아무리 다른 병원 소속이라고 해도 교수 아닌가.

김상진이 한 대 치고 싶을 만큼 깐족댄 건 사실이었지만, 김석용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았다.

좌장석에 앉아있는 이광섭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통쾌함과 의아함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시현은 시선을 돌려 김상진을 바라보았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모습.

뒷목을 잡고 쓰러진대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김석용 선생님한테 이런 면이 있으셨다니…….’

[SORA : 스킬 ‘당신이 옳다.’ 효과로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불안이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현재 언어 활용에 거침이 없는 상태입니다.]

아…… 그래서.

간단히 말하면, 그냥 겁이 없어졌다는 거 아닌가?

발표 전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 격려가 이런 식의 들이받는 장면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좀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교수님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저 김상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장면 아닐까.

‘크으… 이런 건 녹화해둬야 하는데.’

한국대병원 레지던트에게 보내주면, 두고두고 돌려서 보겠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할지도 몰랐다.

‘선생님, 화이팅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는 양 주먹을 꼭 쥔 채 속으로 그를 응원할 뿐이었다.

“뭐? 교수가 온당한 지적을 하는데…… 지금 나한테 시비라도 걸어 보겠다는 거야?”

밉상이긴 했어도 늘 점잖은 척을 했던 그였는데, 이제는 연단을 향해 삿대질을 시작했다.

저기 교수님…….

시비는 그쪽에서 먼저 거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내가 환자를 지레짐작으로 대충 보고 방심을 해? 그게 무슨 막말인가?”

따지고 보면 막말도 교수님이 먼저 하셨죠.

삼아대병원 외래 진료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켜보던 레지던트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설마 훌륭하신 교수님께서 환자를 대충 보셨을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걱정해 마지않는 것은 외래 진료 위주가 되었을 때 구조적인 특성상…… 그러니까 환자 안전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는 그런 경우가 분명 존재하고…… 위중한 환자가 Follow-up loss 되었을 가능성을 확실히 배제하지 않으면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뭐 그런 말이었습니다.”

김석용은 당황한 기색 없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고, 김상진은 추가로 화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

“그저 ‘일반론’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선택 편향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의사 입장에서는 그걸 구분하기가 힘든 거고요.”

선택 편향(Selection bias)

그러니까 내가 한 치료로 호전된 환자들은 계속 재방문을 할 것이고.

효과가 없었다거나 병세가 악화된 환자들은 점차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되니.

결국, 내 치료로 회복된 환자들만 남게 된다는 말이었다.

본인이 대단한 명의가 된 양 착각에 빠지기 딱 좋지 않은가?

대학병원 교수, 특히 한국대병원과 같은 유명 병원의 교수라는 자리가 딱 그런 자리였다.

‘와, 저 선생님 말 잘하네.’

‘한 마디도 안 지고 두들겨 패는 것 같아.’

‘이것이 삼아대병원 차기 치프…….’

이제는 다른 병원에서 참석한 레지던트들마저 김석용을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

말투가 과격한 것은 맞지만, 한마디 한마디 뜯어 보면 김상진 교수를 콕 찍어서 비난하는 말도 아니고…….

그저 예방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 그대로를 읊은 것뿐이지 않은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김상진은 이를 부득부들 갈며 반박할 말을 찾고 있었다.

“선택 편향이라. 뭐, 젊은 선생이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수십 년 환자 진료한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단언컨대, 아까 그 환자는 외래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로 보입니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김석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사실 신약의 유용성은 임상 시험이 끝나기 전에는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작정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솔직히 그런 신약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환자가 1년에 몇이나 있을지 의문인데……. 출시가 돼봐야 1년 매출이 얼마나 될지 시장성이 걱정입니다. 뭐, ‘코로 먹는’ 약이라니 호기심에 한 번쯤은 써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하하.

이내 평정을 찾은 그의 말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교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김석용의 말에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았다.

“하아.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워낙 근거 없는 주장은 하지 말자는 주의라서 말입니다.”

“근거라니 그게 무슨?”

“환자는 삼아대병원에 방문하기 2년 전부터 타 병원 외래에서 꾸준히 진료해오던 분입니다. 약물 순응도도 좋았고, 가족들도 지지적인 편이었지만 자살사고는 지속되었습니다.”

갑자기 환자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 그를 김상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과거 병원에서의 의무기록을 확인하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치료들을 하면서 몇 달을 더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우 저라면 신약을 먼저 찾을 게 아니라 기존 치료에서 놓쳤던 부분을 파악했을 겁니다. 그 기록들…… 저도 한번 살펴보고 싶네요. 그럼 그 안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분명히 해결책도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여전히 ‘나라면 달랐을 것이다.’라는 주장.

김상진이 자신에 찬 태도로 말했고,

“네, 맞습니다. 다음 세션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무기록을 확인한 결과…… 증상이 악화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기존 병원 담당 의사가 약물 교체에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맞장구치듯 김석용이 대답했다.

“그것 보세요! 분명 문제가 있을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약물 선택을 잘못한 것 같은데…….”

김상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절한 약물 교체만으로도 손쉽게 치료할 수 있었던 환자라는 말과 함께.

“그렇습니다. 환자는 Mirtazapine과 Quetiapine을 복용하면서 17kg 가량의 체중 증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담당 의사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말만 반복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무기력감은 훨씬 더 심해졌고요.”

“저런! 둘 다 체중증가가 부작용인 약물들 아닙니까? 그 정도 체중 증가면 당 대사에 문제도 생겼을 거고…… 성인병 발병을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쯧쯧쯧.”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환자분이 1형 당뇨에 만성 콩팥병까지 있던 분이라…… 까딱 잘못하면 투석을 해야 해서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둘이서 같은 사람을 욕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외래에서 치료만 제대로 했어도 신약 쓸 일이 없다는 자신의 주장이 맞아들어가서인지…….

아까 그 예의 없는 레지던트와 대화를 이어가는 데도 불편한 마음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 투석 시작하면 환자의 삶의 질이 얼마나 떨어지는데…… 그런 부분을 놓치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환자분이 버섯 농사짓느라고 시골에 계셔서…… 주변에 투석 받을 병원도 없다고 하던데 건강이 나빠지면 얼마나 불편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어진 김석용의 말에 그는 뭔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잠깐만. 1형 당뇨에 체중 증가… 그리고 시골에… 버섯 농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긴데?

“그, 그렇… 겠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에 자주 오기도 힘들고 해서 환자분과 환자 언니분이 입원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했는데도! 담당의가 매번 거절했다지 않습니까? 마침 그 보호자도 우울증으로 같은 교수님에게 진료를 보고 있었는데…….”

반복되는 입원 요청에 그 언니도 우울증…….

여기까지 듣고 나자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그 환자다!’

다음 순간, 김상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보니 저 녀석 아까부터…….’

자신을 보는 김석용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수시로 입꼬리를 올려대는 모습이…….

몹시도 불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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