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Chapter 36. 채찍과 당근 (7)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눈…… 정말 정곡을 찌르는 훌륭한 표현입니다! AI의 본질을 꿰뚫어 본 분만이 하실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동진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주제, 자살 예방이라는 제게는 생소한 분야를 접하게 되면서 기존 연구들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공부해봤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새로운 슬라이드 한 장을 띄웠다.
자살의 위험 요인에 대해 밝힌 최근 논문이었다.
“환자 정보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더군요. 예를 들면, ‘정신과 질환’, ‘신체적 질병’, ‘경제적 어려움’ 등 요인이 자살사고와 관련 있는 ‘위험 요인’이라고 보고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위험도가 높은 환자들을 미리 발견해서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겠다는 발상이었다.
의대 시험에도 자주 나오는 문제 유형이기도 했다.
- 양극성 장애를 더 의심해야 할 상황을 서술하시오.
- 심근 경색의 사망률을 높이는 위험 요인에 대해 서술하시오.
-추체외로 증상이 더 잘 생기는 환자들의 특징을 서술하시오.
교과서 테이블에 나온 내용을 달달 외워 빈 종이를 가득 채웠던 기억이 있다.
“이런 논문은 의사 선생님들께 중요한 통찰을 줄 겁니다. 어떤 환자들을 더 주의 깊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지식으로써 위험 요인을 ‘공부’하는 것과 실제 진료에서 위험을 ‘인지’하는 것은 조금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많이 안다고 해서 환자의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
“선생님들께서 환자를 진료하시는 것처럼, 저희도 저희 제품에 불량이 있는지 ‘진단’하고 ‘치료’합니다.”
비록 그 대상이 공산품이라는 점은 달랐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과정은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에는 그 과정에 AI 모델을 도입해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진단 모델을 만들기 위해 불량이 발생한 제품의 이미지를 수십만 장 이상 학습시켰고,
공정에 들어가는 소재와 설비 그리고 근무자에 대한 정보까지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최근의 결과물입니다.”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자 AI 시스템 도입 후 대폭 개선된 수율(투입 수에 대한 완성된 양품(良品)의 비율)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량률이 10% 이상 줄었어…….’
누가 봐도 명확한 차이였다.
“최근에는 더 많은 공정에서 AI 진단 시스템을 활용하도록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수율을 개선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작년 기준으로 2,000억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료가 줄줄 새고 있던 부분을 틀어막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 거기에 인건비도 대폭 절약되니 그만큼 순이익이 증가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2000억!!!’
동시에 교수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여러 대학병원의 연간 이익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일뿐더러, 웬만한 기업의 시가총액과도 맞먹는 돈이었다.
여기까지, AI 모델을 활용해 얻는 이득에 관해 설명한 후 박동진은 다시 시현을 바라보았다.
“물론 AI에도 한계점도 있습니다. 불량 여부를 판정하는 능력만큼은 지금껏 개발된 어떤 도구보다 뛰어나지만, 어떤 이유로 불량을 진단하게 되어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판단의 이유와 과정이 감춰져 있다…….’
시현이 그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눈으로 제품을 직접 확인하던 시절에는 어떤 부분에 이러이러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었지만, AI는 아닙니다. 학습된 데이터를 토대로 뭔가 정상과는 다르다는 결과만을 출력할 뿐, 그 내면의 흐름은 모두 ‘은닉’되어 있습니다.”
진단은 정답인데 어떻게 그런 결론에 다다랐는지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도 없다.
- 뭐라고 딱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표면이 뭔가 이상한 느낌은 있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 봤다는 황진호의 말과 AI의 본질을 말했던 박동진의 말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 부분이 우리 몫일 테지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어느덧 발표를 마칠 시간.
“사람의 마음은 전자제품처럼 단순하지는 않겠지요. 사진으로 찍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분해할 수도 없으니 문제를 찾기도 쉽지 않을 테고요. 그런 만큼, 이번 연구에 참여하시는 병원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는 아까 시현의 발표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했던 교수들 몇몇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 팀 실무자가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모쪼록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될 기념비적인 연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의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내용이었지만,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부족한 부분은 없었다.
거기에 경품 행사까지 있었으니 반응도 좋았다.
그런데도 발표를 마친 그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다음은 삼아전자 소프트웨어 사업부 김영광 과장님이 발표해주시겠습니다.”
박동진이 연단에서 내려오고 곧바로 아까 만났던 김영광이 발표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연구에서 프로그래밍에 대한 실무를 맡은 김영광입니다. 여러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그는 청중 앞에 섰을 때도 여전히 쾌활한 모습이었다.
“절대 빈말이 아니고요, 개인적으로도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왔는데…… 정말 좋은 연구 기회인 만큼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100대 1이라고?’
워낙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적당히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는데,
딩동!
[system : 김영광이 진실을 말합니다. (99.9%)]
‘진짜였어?’
새삼 김영광의 등 뒤로 후광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산업 현장에서는 매우 유용한 기술이지만,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도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요,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복잡한 내용은 잠시 미루고, 선생님들의 진료와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저희가 준비한 것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다음 순간, 그는 더없이 화려한… 아니, 화려하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휘황찬란한 디자인의 데스크톱 PC 사진을 띄웠다.
“일단 연구자분들께 지급될 ‘사무용’ PC입니다. 이 모델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현존 최고의 CPU인 아이젠 9시리즈에 수냉식 쿨러를 달고 파워는 정격 1200W 정도로 강력한…….”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PC 사양을 설명했고, 레지던트들의 눈은 점점 더 휘둥그레 해졌다.
저… 과장님?
평소 PC에 별 관심이 없던 시현이었으나, 잘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연구용이라고 하기에는 스펙이 조금……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과한 듯했다.
“그리고 진료 보시는 데 무리가 없도록 어떠한 상황에서도 프레임을 방어해내는 하이엔드 그래픽카드! GTX 9090을 장착하여 모든 연구자분들께 쾌적한 업무 환경을…….”
‘아니, 사무용이라며…….’
진료실을 무슨 게임방으로 만들 것도 아니고.
병원 프로그램인 OCS와 EMR이라고 해봐야 처방 입력과 차트 기록이 위주인데,
빈문서에 타이핑 하는데 프레임 타령이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저…….”
시현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뭔가 신나 보이는 표정으로 발표에 심취해있는 그를 제지하기가 조금 미안했으나, 자꾸만 연구비가 줄줄 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 천시현 선생님! 말씀하세요!”
“저희가 쓰기에는 좀 과한 것 같은데…… 혹시 연구 데이터를 보관할 서버인가요?”
“아뇨? 이건 그냥 ‘사무용’으로 지급하는 건데요?”
김영광이 그 무슨 서운한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병동, 외래, 응급실 그리고 의국까지 평소에 일하시는 공간에 여러 대 설치해드릴 예정입니다.”
“…….”
“물론 ‘조금’ 과한 사양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과거 종이 차트 쓰던 시절의 방대한 스캔 자료를 불러와 연구용으로 변환하는 작업도 계속 수행해야 하고…….”
“아, 네…….”
“그리고 정신과 진료용으로 환자 평가 도구를 탑재한 태블릿도 준비할 텐데요. 연구에 있어서 만큼은 모든 지원을 최상으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여기 보시면 진료 여건 개선에도…….”
PC나 태블릿 같은 전자제품뿐만이 아니었다.
어수선한 응급실에서도 제대로 된 면담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외래에는 의료인용 대피공간과 호신용품까지 세심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각 병원에 의학 통계 전문가를 배정해서 수시로 자문을 해드리도록 하고 전담 코디네이터를…….”
‘이건… 진심이다…….’
박동진의 지시? 아니면 더 윗선의?
회귀 전에도 외부 제약회사와 임상 연구 몇 건을 진행한 적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더 퍼주지 못해 안달인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아,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각 병원에서 본 연구를 담당하는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께는 경력을 반영하여 삼아전자의 연구원 직급에 해당하는 보수를 추가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허걱.
그의 말에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연구 참여를 고사한 교수들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저 호텔 밥이 맛있다는 이유로,
내심 한 수 아래로 보고 있었던 삼아대 정신과에서 뭘 하고 있는지 어디 한번 보겠다는 마음으로,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훼방 놓으려는 의도로.
각자 다른 생각으로 이곳을 찾은 그들이었지만 내린 결론은 거의 비슷했다.
‘아, 줄 잘못 섰네.’
‘그러게 왜 그런 말을 해서는…….’
‘어휴.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은 갔지.’
분위기를 주도했던 김상진과 유정민은 원망 섞인 시선에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와우! 월급 한 번 더 나오는 거야?’
‘크으… 리서치센터에 삼아전자까지! 대박이다!’
‘이런 뜻밖의 소득이라니……. 멀리서 오길 잘했군.’
반면, 시현의 동료 레지던트들과 이번 연구를 호평했던 교수들의 얼굴에는 더없이 환한 미소가 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얼마가 책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삼아전자라면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처우가 좋기로 유명하지 않던가.
어쩌면 월급 한 번 더 받는 수준이 될 수도 있었다.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우리 과는 월급 세 번인데요? – 레지던트 신분임에도 진료 외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바, 의국원의 연봉이 대폭 상승합니다. (불가능 난이도, +10,000P)]
‘오, 이건……. 이제 월급이 아니라 주급인가.’
ASP-9022와 SPN-1001 연구의 정식 연구원으로 등록된 것만으로도 이미 레지던트 월급 수준보다 훨씬 더 받고 있었는데, 이제 직급이 하나 더 늘었다.
반가운 소식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SORA : 사용자와 계약을 맺은 기관을 출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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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계약 기관]
1. 삼아대학교병원 본원 (비정규직 의사)
2. 삼아리서치센터 (비정규직 연구원)
3. 삼아전자 (계약 예정)
4. ???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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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system : 레지던트 황진호의 사용자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system : 레지던트 김원기의 사용자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system : 레지던트 노민혜의 사용자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system : 레지던트 고채연의…….]
이제 그를 바라보는 의국원들의 시선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 우러러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후. 이제 남은 1년만 잘 마무리하면…… 잠깐만?’
우후죽순처럼 떠오른 알림창을 정리하던 시현은 뜻밖의 내용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건 뭐야……?’
[4. ??? (대기중)]
정보가 가려진 4번째 기관이 시선을 잡아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