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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의사 시점-176화 (176/195)

176화 Chapter 37. Young and Rich (2)

“물론입니다. 큰돈이 될 수도 있죠. 어쩌면 의사 수입은 우스울 정도로.”

그런 그를 향해 박동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큰돈이 된다고?’

앞서 다른 교수들이 지적했던 대로 환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약물 연구처럼 치료제를 개발해서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연구로 어떻게 돈을 벌지 궁금하던 찰나,

박동진이 대답했다.

“당연히 사업으로 인한 이득이 발생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죠. 하지만, 이 연구 성과가 투자자들의 눈에 들기만 한다면 창업 멤버가 돈을 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말에 비로소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톡옵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바로 그겁니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요.”

스톡옵션(Stock option).

주식매수선택권.

사업 초기에는 수익을 내기 힘든 벤처 기업 특성상 인력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당장 월급 줄 돈도 없는데, 전문가는 고용해야 할 상황.

이 경우 회사는 자사 주식을 시세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임직원들에게 주는데, 이것을 스톡옵션이라고 한다.

만약 나중에 회사가 성공하여 주가가 상승하면, 초창기에 받았던 스톡옵션을 행사하여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회사가 잘 되고 주가가 오를수록 이득도 커지니 열심히 할 이유는 확실합니다.”

“그렇죠.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이익이니까요.”

“오랫동안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지켜본 바로, 이 정도면 틀림없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투자자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투자자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과정…… 이요?”

성공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보상으로 동기 부여를 하고 싶었으나, 시현은 뜻밖에도 과정을 언급했다.

“네. 연구 과정 또한 실전의 연속입니다. 연습용 진료라는 건 없으니까요. 연구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언제나…… 환자의 생존입니다.”

‘연습은 없다…….’

의학 연구가 타 분야와 가장 크게 다른 점 중 하나였다.

“연구 과정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단서를 찾는 일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분명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순간, 박동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게…… 레지던트 3년차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의미 그리고 보람…….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평생을 발등에 붙은 불을 끄며 살아왔다.

당장 눈앞의 프로젝트를 처리하고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그에게는 언제나 성공과 실패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왕 하는 거 좋은 결과 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현이 두 사람을 향해 다짐하듯 말했다.

“과정만 좋고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으면 그것도 슬픈 일이니까요. 김 과장님 승진도 하셔야 하고요.”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김영광이 시현의 손을 붙잡고 연신 흔들었다.

반기는 모습만 놓고 보면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고 싶은 것 같았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시현이 그런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사망률이 줄어드는 건 그 전 같은 기간과 비교만 해도 알 수 있는 지표였다.

AI 모델만 잘 작동해준다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벤처 기업이라…….’

언젠가 ‘세상의 모든 차트’ 시스템의 도움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 시작한 연구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천 선생님은 젊은 분답지 않게 말씀을 참 ‘설득력 있게’ 하시네요. 실리적이기도 하고요.”

“결과를 떠나서 최선을 다하시겠다니! 저도 자극이 많이 됐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훈훈한 대화를 마치고 레지던트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로 돌아오자, 낯익은 얼굴이 시현을 반겼다.

* * *

“천시현 선생님, 발표 잘 들었어요.”

“아, 강서현 연구원님.”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덕분에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네요. 요즘 너무 연락 없는 거 아닌가요?”

“아, 요즘 외래 진료도 늘고 다른 업무 때문에 리서치 미팅도 못 갈 때가 많아서요.”

“그래도 저 보러올 시간은 있죠?”

그녀의 얼굴에 새침한 미소가 떠올랐다.

뜻밖의 말에 시현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업무 외적으로 연락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없다고 하면 뭔가 서운하게 생각할 눈치였다.

“그런데 삼아전자 쪽 사람들과 하는 일은 잘 돼가요? 저쪽은 꽤 높은 분이 나오신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아시는 분인가요?”

“개인적인 인연이 좀 있죠. 그룹 내에서는 이명호 비서실장님과 친분이 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이 실장님이야 할아버지 아니, 회장님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전무님도 그 라인이라고 봐야겠죠.”

“그렇군요…….”

삼아 그룹 전체로 보면 삼아대병원 원장이나 그 이상일 수도 있는 인물.

강서현의 말을 듣고 보니 박동진이 새삼 달라 보였다.

“저런 분이 직접 움직였다는 건 그만큼 선생님이 계획한 연구가 마음에 들었다는 걸까요? 아니면…….”

그녀가 짐짓 의뭉스러운 미소를 띤 채 시현을 바라보다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다들 너무 잘하는 거 아녜요? 아까 잠깐 보니까 SPN-1001도 반응 좋은 것 같던데. 김석용 선생님, 오늘 아주 멋지시던데요?”

그렇게 말하는 강서현과 눈이 마주치자 김석용의 얼굴이 단숨에 붉어졌다.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교수님들끼리 대화하는 거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칭찬 감사합니다. 이제 곧 연구원님 발표네요.”

“네, 마지막 세션을 저한테 주셨네요. 원래 마지막에 발표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거 아시죠?”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삼아대병원 정신과 소속이 아닌 그녀를 마지막에 배치하고 가장 긴 발표시간을 할애한 의도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천시현 선생님은 여전히 임상 진료 쪽 생각하시나요?”

“네, 아무래도 직접 환자 보는 쪽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자로서 인정받는 일도 뿌듯하기는 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우울감을 떨치고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는 환자를 직접 대할 때의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연구 쪽도 정말 잘하실 것 같은데. 아직 시간 남아있으니까 좀 더 고민해보세요.”

“아, 네…….”

미적지근한 반응에 강서현은 여전히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구에 대한 시현의 능력은 도저히 레지던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1년차 초반 시점에서 이미 연구 설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약물 효과를 예측하고 연구를 디자인하는 감각이……. 꼭 영입해야 해.’

그것만큼은 배워서 되는 부분이 아닌 직관의 영역인데, 그 부분이 지금껏 만났던 어떤 연구자보다 뛰어났다.

연구자로서 평생을 투자해도 신약 하나 개발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레지던트는 손대는 것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었다.

오늘 김석용이 발표한 SPN-1001만 해도 그렇고, 시현의 제안으로 임상 연구 방향을 바꾼 ASP-9022도 매우 유력한 신약 후보들이었다.

‘두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지.’

당장 자신이 오늘 행사만 참석한 것도 그 중간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시라고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선물이요? 그게 뭔가요?”

강서현의 얼굴에 대답 대신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가 준비한 발표 다 듣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예요. 기대해도 좋아요.”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일부러 미리 이야기 안 했다는 말과 함께 강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연단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갔다.

선물이라니…….

무슨 꿍꿍이인지.

시현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 *

“오늘 행사의 마지막 연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삼아리서치센터의 강서현 연구원입니다. 강 선생님은 스탠포드에서 생물학 학사 그리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전공하셨고, 이후 삼아바이오와 CSK 등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서 경력을…….”

오오오.

겉보기로는 20대 후반 정도로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언급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릴 저만한 경력을 도대체 어떻게 쌓은 것인지.

강의장 곳곳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이광섭의 소개가 끝나자 강서현이 연단에 올랐고,

“소개 감사드립니다. 이번 세션에서는 새로운 항우울제, ASP-9022의 임상시험 결과에 대해 보고드리고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말에 몇몇 교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런 연구가 있었어?”

“저거 항정신병약물 아니었나? 부작용 문제 때문에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다들 학회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으나, 자기 병원 연구는 아닌지라 알고 있던 정보는 제각각이었다.

시현의 제안에 따라 약물 용량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항우울제로 쓰기로 한 계획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연구 진행하면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저보다 더 애써주신 여러 선생님들이 계셔서……. 과연 제가 발표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 연구 담당자로서 발표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강서현은 힐끗 시현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시현은 이내 발표 직전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제 발표 다 듣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예요.

‘선물이라는 게 뭘까?’

국내 2상 완료 기념으로 이벤트라도 있나?

‘뭐 그래 봐야 ‘경품’ 정도겠지.’

잠시 후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시현은 강서현의 발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ASP-9022는 도파민에 대한 부분 길항제로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조현병 치료를 위한 항정신병약물로…….”

내용이야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애초에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를 새로 설계한 것이 시현 자신이었으니까.

‘단독 사용했을 때도 나쁘지 않지만…….’

우울증에 가장 흔하게 처방되는 항우울제가 세로토닌 계열임을 감안했을 때,

도파민에 작용하는 ASP-9022는 기존 약물들의 부족한 측면을 보완해줄 수 있었다.

“추후 대규모 연구가 더 수행되어야 하겠지만, 기존 항우울제에 신약을 추가했을 경우…… 치료 반응률은 ‘86%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놀라운 결과였지만, 시현에게는 그리 새로운 사실은 아니었다.

‘역시 다른 항우울제와 같이 썼을 때 시너지가 월등해.’

치료 효과 측면에서, 시현이 기획 초기 단계에 예측했던 것들과 거의 일치하는 결과였기 때문.

“맙소사. 86%라고? 어떻게 이런…….”

그러나 시현과 달리 타 병원 교수들은 강서현이 보여준 도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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