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Chapter 37. Young and Rich (6)
[SamA & IM Bio-Chemical]
[SORA : 사용자와 계약을 원하는 기관 정보가 갱신됩니다.]
새로운 슬라이드 한 장.
그리고 동시에 떠오른 알림창.
‘설마…….’
시현은 곧바로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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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계약 기관]
1. 삼아대학교병원 본원 (비정규직 의사)
2. 삼아리서치센터 (비정규직 연구원)
3. 삼아전자 (계약 예정)
4. SI바이오케미칼 (대기중)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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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바이오케미칼……. 삼아리서치센터와 IM바이오인가.’
회사 이름이 가려져 삼아전자의 김 과장이 언젠가 하고 싶다던 벤처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회사가 리스트에 올랐다.
[SORA : 신규 법인 (주)SI바이오에 합류하시겠습니까?( Y / N )]
아직 소개를 듣기 전이었지만, 이름만으로도 뭘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일이 많은데…….’
대학병원 레지던트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상황에서 리서치센터와 삼아전자 이어 정체불명의 바이오 회사라니.
일 열심히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냐면 그건 아니지만…….
손대는 일마다 과도하게 잘 풀려버리니 그것 나름대로 괴로운 일이었다.
맞는 약이 없어 고민하던 환자에게 쓸 약을 찾느라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맡은 업무가 너무 많아.’
[SORA : 현명한 판단입니다. 사용자의 건강과 안녕보다 소중한 건 없습니다.]
텍스트 너머로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그동안 무리했지.’
그저 피곤한 정도면 어떻게든 포션으로 버티겠는데, 이 이상 일이 늘면 자칫 환자에게 소홀해질 수도 있었다.
시현의 거절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강서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희 삼아리서치센터와 IM바이오의 합작 법인입니다. 새로운 회사는 주로 중추신경계 약물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주력사업으로 할 예정이며, ASP-9022의 기술 수출과 향후 임상 연구도 이곳에서 담당하게 됩니다.”
기술 수출에도 관여한다고?
단순히 임상 연구를 의뢰받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닌,
자회사를 통해 ASP-9022에 대한 특허를 보유한 회사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한 사이, 강서현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앞으로도 다양한 후보물질들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는 미처 기회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여러 대학병원과 협업하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주 경사스러운 일이군요. 후속 연구가 예정되어 있습니까? 새로 시작하는 회사와 협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소개가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천하대병원 정약준 교수…….’
임상 의사이기도 했지만, 평생을 연구자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연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였다.
“항우울제 1건과 기분조절제 1건에 대한 임상 의뢰가 대기 중에 있습니다.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 대로 각 대학에 컨택해서 참여 의사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새로 시작하는 회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일할 기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구 업적을 쌓은 교수 중 한 사람인 그가 제일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새로운 소식 나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연구가 삼아대 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도 열려있다는 소식에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이내 마이크를 진행요원에게 건네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강서현이 한 마디를 보탰다.
“아, 그리고 그와는 별도로 의학적 지식과 연구 능력을 갖춘 ‘경륜’ 있는 메디컬 디렉터를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대우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할 생각입니다.”
청중 모두에게 하는 말이긴 했으나, 그녀의 시선은 정약준 교수를 향하고 있었다.
“허허허. 신생 회사라면서요. 업계 최고라니……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닙니까?”
뜻밖의 제안에 정약준이 웃으며 답했다.
“비록 신생 회사지만, 이번 기술 수출로 얻은 계약금만으로도 향후 몇 년 동안은 운영에 전혀 문제가 없을 예정입니다.”
강서현의 답변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SI바이오케미칼은 의약품 제조로 수입을 내는 회사가 아닌, 연구를 본업으로 하는 회사였다.
당분간은 제대로 된 수입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시기인데, 몇 년 동안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계약금이라는 건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얼마짜리 계약을 따냈다는 건지…….’
제약업계에서 기술 수출 규모는 다소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총액은 클지 몰라도 실제 회사에 지급되는 돈은 마일스톤(Milestone)이라고 하는 단계별 기술료 형태이기 때문.
중간에 임상이 실패하면 그중 대부분은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초기 계약금은 다르다.
기술 수출에 대한 계약과 동시에 받게 되는 이 금액은 임상시험이 실패해도 반환할 의무가 없다.
‘임상 2상 결과가 잘 나왔으니 그만큼 계약금을 높게 불렀다는 건가?’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전, 단순한 후보 물질 수준에서 적정 계약금은 총액의 5~10% 수준.
후보 물질이 최종적으로 상용화될 확률은 극히 낮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회사 측에서도 큰 액수를 제시하기 부담스럽다.
그러나 ASP-9022의 경우는 얘기가 달랐다.
소규모 임상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상태였고 무엇보다 3상 통과가 유력해 보이는 약물.
‘최소 10%…… 아니, 15% 이상일지도.’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계약금을 받기로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역대 기술 수출 최고 기록을 경신할 정도라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는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성과에 따라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입니다.”
“합당한 보상이라면?”
“회사가 거둔 성과를 독식하지 않고 일부를 연구자와 나누는 것입니다. 창의적인 발상과 적극적 연구 참여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의적 발상… 적극적 참여…….’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정약준은 연구라면 학을 떼던 그의 제자들을 떠올렸다.
그 자신이야 천하대 내에서도 천재로 불렸던 인물인 만큼 새로운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비록 직접적인 수입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 보상’ 만큼은 충분했던 것.
그러나 레지던트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즐거움은커녕 밤잠을 줄여가며 처리해야 할 업무일 뿐이었다.
‘보상이 없었던 거구나. 보상이…….’
그들의 학구열을 탓하기 전에 연구가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는지를 생각지 못했다.
“참… 옳은 말씀입니다. 매번 보상이 없는 일이야말로 괴롭기 그지없는 일일 테니까요.”
정약준이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강서현에게 대답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 이번 연구만 하더라도 연구 디자인과 수행 단계에서 ‘가장 많이’ 기여한 연구원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IM바이오 대표도 동의한 부분이고요.”
동의 운운하는 걸 보니 단순히 개인적인 생각은 아닌듯했다.
‘도대체 얼마를 주려고 저러는지…….’
어쩌면 은퇴 후 그의 다음 직장이 될지도 모르는 터라 절로 궁금증이 일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강서현이 입을 열었다.
“정확한 액수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계약금에서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형식으로 제공할 텐데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강의장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로운 회사를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데다,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성과를 내리라 확신합니다.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파격적인’ 수준의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청중은 이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 총액도 아니고 계약금에서 또 일부면 얼마 안 되는 것 아닌가?”
“아니지! 계약금이 1,000억 이상일 수도 있는데, 거기서 1%만 해도 최소 10억 아닌가?”
“고작 1%로 파격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고…… 도대체 얼마를 주겠다는 거야?”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강서현이 상냥한 미소를 띤 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
그리고 그곳에는 알림창에 손을 가져다 대기 직전의 시현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 * *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파격적인’ 수준의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강서현과 눈이 마주치자 시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SORA : 신규 법인 (주)SI바이오에 합류하시겠습니까?( Y / N )]
허공에 오른손을 띄운 채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니, 눈은 잘 깜빡였고 어색한 미소도 지을 수 있었으니 손만 안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맡은 일이 많기는 한데…….’
[SORA : …….]
‘이건…… 해야겠지?’
[SORA : 물론입니다. 언제나 열정적인 사용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까는 분명 건강이 중요하다고…….’
[SORA : 죄송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부분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휴식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자의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방법?’
[SORA : 적절한 운동, 균형 잡힌 식습관, 그리고 꾸준한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합니다. 특히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경우 과도한 카페인 섭취와 과음에 유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는 한데…….’
[SORA : …….]
하나같이 실천이 어려운 것들뿐이었다.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듣는 환자의 심정이 이러할까.
어째 책을 읽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말투도 평소와 달라진 부분이었다.
하지만 망설이는 것도 잠시.
시현은 이내 ‘Y’에 손을 얹었다.
딩동!
[system : 사용자의 계약 상태가 변경됩니다. SI바이오케미칼 (대기중 -> 계약 예정)]
강서현의 발표로 대략적인 조건은 들은 셈이고, 이제 정식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회귀 후 시작한 연구인 만큼 임상시험의 최종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어려웠던 환자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했던 시도가 과연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결과를 떠나서 첫 연구인 터라 더 애착이 가는 연구이기도 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연구 주제로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짝짝짝.
뜨거운 반응 속에 발표를 마친 강서현이 연단에서 내려왔고,
“오늘 발표해주신 연자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석해주신 관계자분들과 열띤 토론 해주신 여러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광섭의 인사로 청중은 하나둘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모두가 바로 강의장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모든 발표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던 사람들.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