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95화 (195/195)

195화 Chapter 40. 전공의 시험 (1)

“어쩌면 올해 할 수도 있어. 해외 연수 지원해볼 생각인데……. 운 좋게 붙으면 ‘3년차’가 치프를 맡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해서.”

3년차 치프라니.

듣도 보도 못한 제안에 시현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딩동!

[system :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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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어쩌다 치프 ]

난이도 A

삼아대병원 최초!

1년차 외래 진료에 이어 3년차 의국장에 도전합니다.

성공 조건 : 3년차 내로 치프 레지던트의 지위 획득.

성공 보상 : 10,000P + α

실패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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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에 응하시겠습니까? 수락 / 거절 ]

‘치프가 되라고? 3년차에?’

1년차에는 주로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2년차부터는 과거 ‘신경증(neurosis)’라고 불리던 우울증과 여러 불안장애에 대한 진료를 주로 담당한다.

하지만 3년차 이상이 되면 입원이나 외래 환자 배정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3년차 이상이 시행했을 때만 진료 수가를 인정받는 정신요법 종류는 있어도 4년차만이 할 수 있는 진료는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렇기에 3년차에 치프 레지던트가 된다는 건, 사실상 4년차가 하는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학으로 따지면 월반이나 다름없는 셈.

수십 년 전, 정신과 트레이닝이 3년제였을 때나 가능했지, 최근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군대에서 표창을 받거나 특급 전사가 되면 상병이나 병장으로 빨리 진급한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연수… 지원하시게요?”

“응. 그럼 안될……까?”

“…….”

입퇴국식 때 치프 업무가 중요하다며 시현에게 잘 다녀오라는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일 내팽개치고 가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긴 한데,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놓칠 수 없는 기회라서 말이지.”

“나희선 선생님 때문인가요?”

“어, 어떻게 알았어?”

김석용이 속마음을 들켰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역시! 우리 시현이는 비범한 데가 있단 말이지.”

“…….”

아무리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다고 한들 이쯤 되면 도무지 모를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비범의 정의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김석용이 입을 열었다.

“역할과 의무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됐어.”

“정말로 원하는 거요?”

“응. 어제 응급실에서 자면서 꿈을 꿨거든…….”

도대체 무슨 꿈을?

해외 연수를 간다고 하질 않나, 돌연 치프를 맡으라고 하질 않나.

평소 그답지 않은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꿈속에서 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나희선 선생님이 응급실에 찾아왔었어. 어찌나 반갑던지. 해외 연수……. 꼭 같이 가자고 하더라.”

“선생님, 그건 꿈이…….”

시현이 뭔가 이야기하려 했으나, 김석용은 개의치 않고 어젯밤에 꾼 ‘꿈’이야기를 계속했다.

“가서 공부도 같이하고 일과 마치면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자고……. 좀 민망한 얘기지만, 거기서 같이 지내면 어떻겠냐고도 물어봤다니까?”

“네? 그럴 리가요. 잘못 들으셨겠죠.”

바로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다.

“아냐! 진짜로 그랬다니까. 연수 끝나면 결혼식 올리고 아이는 둘 정도 낳으면 좋겠다고 상의했다고. 군의관 1년차 때 한 명 그리고 3년차 때 한 명. 열심히 일해서 신혼집은…….”

“저, 선생님?”

“흠흠. 아무튼, 인생 계획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심도 있게 나눴다는 거지.”

‘꿈…… 맞나?’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탓인지 어째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인 모습이었다.

“아무튼, 꿈이라는 게 무의식의 반영인데……. 물론 현실에서의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게 그런 삶이었다는 거 아니겠어?”

-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한데 ……. 원하는 대로 사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 떠나고 보니 좀 알겠어.

그의 얼굴에 펠로우가 된 김석용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럴지도요.’

그의 말에 시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다면야 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시현이는 이번 연수에 별 관심 없니?”

김석용이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네. 병원에 남아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요.”

“그래. 그렇긴 하겠네…….”

사실상 가장 강력한 경쟁자 중 한 명인 시현이 연수에 관심이 없다는 말에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치프 맡는 건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과장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요.”

“과장님은 아마 좋아하실걸? 오히려 네가 가는 상황을 더 싫어하실지도?”

김석용이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그가 아는 이광섭이라면, 분명 시현의 공백을 더 우려할 테니까.

“권진은 선생님도 본인이 치프까지 맡으면 일이 너무 많아져서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을 거야.”

“그런데 선생님, 자신은 있으신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시고 막상 못 가게 되면 어떡해요?”

시현이 그를 놀리듯 말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전공의 시험 1등이 쉬운 건 아니지 않은가.

“뭐, 솔직히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네? 그게 무슨…….”

평소답지 않은 과도한 자신감에 시현이 반문했다.

“실은 2년차 때 시험 봤을 때도 5등 안에 들었었거든. 2년차 5등이 아니라 전체 5등.”

“정말요? 시험 정말 잘 보셨네요.”

전국에 있는 4년차들이 다수 포함된 시험에서 그 정도 성적이었다니……. 금시초문이었다.

“성적표가 의국으로 오잖아. 최지훈 선생님이 결과 확인하더니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고.”

4년차로서 체면이 안 선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아랫년차에게 성적으로 밀리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다시 봐도 옹졸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2년 차 때 그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더 낫지 않을까? 2년 동안 논 게 아니라면.”

‘자신감 가질 만하네.’

거기에 연구 실적으로 봐도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시현을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라면 거의 안정권이네요. 연수 잘 다녀오세요. 의국은 제가 열심히 챙기겠습니다.”

딩동!

[system : 퀘스트 ‘어쩌다 치프’을 수락하였습니다.]

시현의 말에 귀에 익은 알림음이 들려왔고, 추가 알림창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system : 본 퀘스트와 상관 계수가 높은 또 다른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system : 다중 공선성 이슈로 두 퀘스트가 융합합니다.(대상 퀘스트 - ‘떠나요 둘이서’ 외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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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퀘스트 – 의국 장악 ]

난이도 A -> S

치프 레지던트 김석용에게 추가 성장의 기회를 그리고 사용자에게는 장기 집권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성공 조건 : 레지던트 김석용의 해외 연수 파견 & 레지던트 천시현의 의국장 취임

성공 보상 : 20,000P -> 60,000P + α

실패시 : 퀘스트 ‘떠나요 둘이서’ 와 ‘어쩌다 치프’의 실패 패널티가 합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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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떻게든 보내야 한다.’

6만포인트에 추가 보상!

단연 역대 최대 규모의 퀘스트에 시현의 눈이 커졌다.

전공의 시험까지는 앞으로 4주.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들을 미리 파악해야 했다.

‘회귀 전의 기억을 모조리 뒤져서라도…….’

시현의 머릿속에 학습 스케쥴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 * *

2주일 뒤.

새 학기 첫 케이스 발표.

이광섭뿐 아니라 진철영과 정세일 등 교수진, 그리고 펠로우들까지 참석한 자리였다.

“오늘 컨퍼런스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증례 발표 후 토의까지 마치자 이광섭이 손에 들고 있던 발표 자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번 학기 레지던트 업무 분장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컨설트(협진)는 4년차 권진은 선생이 보기로 했고, 연구 담당은 3년차 황진호 선생, 그리고 교육 담당은 3년차 천시현 선생이 맡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김석용이 대답에 이광섭은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천시현 선생이……. 교육 담당을?’

당연히 연구 분야를 맡을 거라 생각했으나, 시현의 선택은 교육 담당이었다.

“그래요. 우리 시니어 선생님들, 업무도 바뀌고 했으니 ‘상의’를 해보고 싶은데. 올 한 해 어디에 중점을 둘 건가요? ”

“협진은 최대한 당일 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타과 입원 환자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4년차 권진은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새 학기를 맞아 업무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

따로 내용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그가 말하는 ‘상의’는 두루뭉술 넘어가도 지금껏 별다른 지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나 싶었는데…….

“협진을 당일에 보는 건 원래도 그렇게 해오고 있던 거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그걸 정말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뜻밖에도 이광섭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권진은은 대답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도영 선생님.”

“네, 과장님.”

“작년 한 해 동안 협진 담당하면서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 권진은 선생하고 이야기 좀 해보면 어떨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동안 뭔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좀 더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찾아서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상의’합시다.”

‘과장님이 왜…….’

평소 이광섭과 전혀 다른 모습에 황진호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레지던트 업무에 펠로우까지 붙여준 걸 보면 뭔가 제대로 된 결과물을 원하는 것 같았다.

“황진호 선생은 어떤 분야를 관심 있게 보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은데.”

“저는…….”

아직 제대로 된 계획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이제 막 학기를 시작했고 이전 연구 담당이었던 김석용에게 넘겨받은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특히 임상 연구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연구 계획서가 이미 준비돼 있어도 IRB(연구윤리위원회) 통과하고 환자 모집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라요. 지금 계획서를 쓰기 시작하면 하반기에나 연구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아,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황진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학기 초부터 이렇게 몰아부치는 과장님의 모습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이 부분은 권원주 선생님이 챙겨서 같이 해보면 좋겠습니다.”

“네, 과장님.”

권진은과 마찬가지로 황진호의 업무에도 전담 펠로우가 배정되었다.

“교육 담당은…… 그래, 천시현 선생. 올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이광섭의 시선이 시현을 향했다.

누가 봐도 잔뜩 기대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네, 올해는 교과서가 새로 바뀌는 해입니다. 거기에 맞춰 폴리클(의대 임상실습) 교육 자료를 업데이트할 생각입니다.”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이번 교과서는 오랜만에 나오는 신판이니 당연히 그 부분을 신경 써야겠지.”

이광섭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고, 그 반응에 레지던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학기 초에 레지던트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새로 만들 생각입니다.”

“교육 프로그램? 레지던트 대상으로?”

학기 초라면 지금인데, 당장 무슨 교육을 하겠다는 건지…….

이광섭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오르자 시현이 입을 열었다.

“다가오는 전공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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