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
1화
지이이잉-
진동과 함께 휴대폰의 액정이 켜졌다. 특정인의 이름과 함께 여러 개의 시스템 창이 줄줄이 떴다.
『공략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스카이라 본 아이테르 르블레탄』
『공략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렉시우스 크레시앙』
『공략 대상이 근처에 ……』
애리얼은 황급히 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꺾어지는 벽면 뒤로 숨기 바쁘게 창문 아래로 몸을 낮췄다. 그러느라 떠오른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
목적지까지는 고작 수 미터였다. 애리얼은 고개만 슬쩍 내밀어 전방을 확인했다.
고대 역사 수업이 진행되는 장소. 서너 걸음 거리의 어두운 나무 문. 명패에는 <제3 교육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이 전무한 복도가 스산한 기운을 몰고 왔다.
여기는 고리타분하고 인기 없는 수업 위주로 짜여 있어서 학생들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애리얼이 일부러 고른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쟤들은 왜 이 주변에 몰려 있는 거지? 평소 수업이라곤 듣지도 않던 인간들이…….’
애리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스토킹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지.
지이이잉-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진동 소리가 재차 울렸다.
『공략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시스템 창이 그들의 위치가 갱신되었음을 알렸다. 쫓기는 감각에 애리얼은 목 언저리가 서늘해졌다.
예민하게 주변을 돌아다보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조차 옅었다. 그들의 위치를 오감으로만 파악하기엔 무리였다.
상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선 휴대폰을 봐야 했다. 시야가 좁아지는 건 위험하지만 방도가 없었다.
애리얼은 액정을 켜고 좁은 화면에 두 눈을 고정했다.
『공략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스카이라 본 아이테르 르블레탄
▷당신을 향한 호감도: ♥♥♥♥(당신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찾아내려 합니다.)
▷현재 위치: 아카데미 1관 - 제3 교육실』
‘뭐?!’
애리얼은 소리를 지를 뻔한 제 입을 다급히 손으로 막았다. 빠져나가지 못한 호흡이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그는 현재 제3 교육실 안에서 애리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휴대폰의 접근 알림이 없었다면 자칫 호랑이 굴로 들어가 버릴 뻔했다.
‘한시라도 빨리 여길 떠야겠어.’
결심하자 곧장 발이 움직였다. 여전히 자세는 낮춘 채로 오리걸음을 하며 방향을 틀었다. 다소 급하게 돌아서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리얼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다. 중심을 잡는 자세를 취하던 중, 위태롭게 들려 있던 휴대폰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탕, 타당!
하필이면 소리가 크게 울리는 대리석 바닥이었다. 당연하게도 휴대폰이 낸 충돌음은 시끄러울 만큼 컸다.
그 탓일까.
멀어지려는 그녀의 등 뒤로 몇 미터 거리에 있던 교육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문이 부서지는 수준의 커다란 소음에 놀란 몸이 경직되어 멈췄다. 지나친 긴장으로 호흡조차 일순 멈추었다.
애리얼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애리얼!”
익숙한 음성이 날카롭게 귓전을 파고들었다.
뚜벅거리며 다가오는 구두 굽 소리가 점점 커졌다. 불안감이 애리얼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공략 대상에게 할당된 호감도는 5개까지입니다.
6개부터는 ‘오버히트(overheat: 과열)’ 상태로, 극단적인 엔딩을 마주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휴대폰의 시스템 창이 보여 주던 경고가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아까…… 하트가 몇 개였지?’
애리얼은 교육실의 바로 앞에서 확인했던 스카이라의 프로필 창을 필사적으로 기억해 냈다. 거기엔 분명 하트가 네 개였다.
아직 네 개.
시스템이 경고하던 여섯 개까지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스카이라는 그녀를 찾지 못해 광적인 집착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지금도 이런데 여섯 개는 대체……?’
좋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 애리얼의 뇌리에 그늘을 드리우듯 엄습했다.
“찾았다.”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처럼 서늘한 음성이 애리얼의 등줄기를 얼어붙게 했다. 고개를 들어 올린 애리얼은 저를 내려다보는 새파란 두 눈과 마주쳤다.
미려한 얼굴이 추궁의 기색을 띠고 바늘 같은 시선을 뿌렸다.
애리얼은 굳어 가는 입을 겨우 움직여 그를 불렀다.
“스…… 카이라…….”
“안 들어오고 뭐 하는 거야.”
“그냥 좀…….”
당황한 나머지 궁색한 변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이 대번에 가늘어졌다.
“애리얼, 너…… 지금 도망치는 거야?”
정곡을 찌르는 소리에 애리얼의 턱이 가늘게 떨렸다. 미처 숨기지 못한 동요가 얼굴로 드러나고 말았다.
스카이라의 안면이 곧장 열화에 휩싸였다.
“왜…… 도망가?”
낮아진 목소리가 오싹하게 고막을 울렸다.
애리얼은 변명보다 한탄을 내지르고 싶었다.
‘너 아직 아직 호감도 네 개란 말이야!’
도대체 호감도 여섯 개짜리의 극단적인 엔딩은 어떤 지경이란 말인가…….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공포심이 들었다.
애리얼은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었다.
※르블레탄 제국의 호칭
*지체 높은 집안의 자녀는 모두 공자(公子) 혹은 공녀(公女)로 칭한다.
(국립국어원에 명시된 '공자1(公子)「명사」 지체가 높은 집안의 아들.'을 빌려 사용)
정확한 신분을 명시할 때는 '백작 공녀', '공작 공녀', '후작 공녀' 등으로 앞에 구체적인 지위를 추가하여 부른다.
*제국은 제왕적 중앙집권의 형태를 띠며, 최상위 계급은 지위마다 높임말이 다르다.
황제 - 제국의 지배자. 제국 권력의 1순위. '폐하'라 높인다.
황태자, 대공 - 황제직 승계 1순위 후보. 제국 권력의 2순위. '전하'라 높인다. 다만 황태자의 승계 순위가 대공보다 더 높다.
황자, 대공자, 제국 산하 왕국의 왕 - 황제직 승계 2순위 후보. 제국 권력의 3순위. '저하'라 높인다.
3대 공작가 - 황제직 승계 3순위 후보. 제국 권력의 4순위. 추가 높임말은 없음.
제국 산하 귀족 가문의 권력자 - 승계 순번 없음. 다만 권력의 차등은 존재. 추가 높임말은 없음.
위의 호칭 분계는 배우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시-황후 폐하, 황태자비 전하, 황자비 저하)
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