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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29화 (29/264)

29화

빙글빙글, 애리얼은 나선 계단을 밟고 올랐다. 2층의 문을 지나고 3층에 도달해 백색 빛깔의 나무 문을 열었다.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애리얼은 조심스럽게 복도로 발을 디뎠다.

3층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레이신의 위치는 여전히 3층 응접실이었다.

죽 직진해서 방과 방을 잇는 홀을 세 개 통과한 다음에 나오는 곳.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방.

그가 있는 응접실.

애리얼은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살살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어찌 된 일인지 사용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고위층이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요하며 휑한 3층의 분위기에 그녀는 의문을 느꼈다.

‘레이신은 제국에서 최상층에 해당하는 지위일 텐데?’

하다못해 호위라도 몇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가 있는 방이 가까워질수록 애리얼은 초조해졌다. 심상치 않은 기류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애리얼은 혹시나 하며 휴대폰의 지도를 예의 주시 했다.

레이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데본시아, 렉시우스의 위치가 회의장을 벗어나 주변 응접실로 바뀌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스카이라.

그의 초상화가 어느새 남관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 있었다. 확실한 목적지가 없는지, 일정하지 않은 방향과 속도로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애리얼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다급히 커튼 뒤로 숨어들었다. 그녀의 두 눈은 커튼 사이로 보이는 창밖을 예의 주시 했다.

아래로 보이는 남관의 정원에 사용인들이 가득했다. 3층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죄다 저기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모두 한 가지 명령을 받은 듯 일사불란 움직였다.

‘날 찾는 건가?’

섬뜩한 위기감에 애리얼은 뒷골이 서늘해졌다. 혹여나 위를 올려다보는 인물이 있을까 싶어 그녀는 슬그머니 창문에서 멀어졌다.

들키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어쩌지…….’

남관엔 창문이 많았다. 일일이 숨으며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애리얼은 차라리 속도를 높여 지나치기로 했다. 그녀는 걷는 발소리를 줄이지 않고 빠르게 홀을 지났다.

어차피 저 아래 정원에서 3층에 있는 그녀를 포착하긴 어려울 것이다.

스카이라는 물론 많은 사용인이 정원을 주로 찾을 때 빨리 레이신과 만나야 했다.

‘통할지 안 통할진 모르지만, 적당한 구실도 있고 선물도 있어.’

여기까지 온 김에 뭐라도 해야 했다.

애리얼은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마지막 홀을 지났다. 바로 몇 걸음 앞에 그가 머무는 응접실이 보였다.

코트 속에 넣어 둔 반지 케이스를 꼭 쥐며, 애리얼이 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가 노크하려고 말아 쥔 손을 든 순간, 달칵.

절로 문이 열렸다.

애리얼은 뻣뻣하게 굳은 채로, 벌어진 상아색 문을 보았다.

문 사이로 그토록 찾던 인물이 나타났다.

레이신 디 솔렘.

정면으로 보이는 그의 가슴팍. 블라우스 깃 사이로 늘어져 있는 땋은 머리칼이 애리얼의 시선을 빼앗았다. 눈을 맞추려고 천천히 고개를 드니 그녀는 곧 영롱한 빛깔의 황금색 눈과 마주했다.

“뭐야, 넌.”

그는 놀라지도 않았다.

애리얼만 놀란 채 검은 눈을 씀벅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솔렘의 공자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허클리 백작이 공자님께 드리는 전갈입니다.”

“말해.”

“여기서, 말인가요?”

“못 하겠으면 가.”

레이신은 방 안에 애리얼을 들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문간에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금색 눈이 무척 위압적이었다.

하긴 환대할 거라 생각진 않았다. 용건이 아무리 귀족 가문 간의 은밀한 일이라 한들, 그는 선을 긋는다.

애리얼은 주눅 들지 않고 제자리서 용건을 꺼냈다.

“제국의 중립을 지키시는 솔렘 공작가의 지고한 뜻에 허클리 백작가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어떻게?”

“허클리 백작은 솔렘 공작님의 뜻을 받들어, 솔렘 공작가가 통과를 원하지 않는 안건에서 백(白)표 중립을 무조건 행사할 것을 약조드리는 바입니다.”

애리얼은 긴장해 떨리는 목소리를 강한 어조로 덮었다.

허클리 백작가에서 솔렘을 위해 내건 것은 제국 회의 투표권.

다수결로 제국의 중대사를 진행하는 제국 회의. 거기서 행사하는 한 표는 귀족으로서 가지는 가장 강력한 권력 행사권이었다. 아무리 황족이라도 각 가문을 완전히는 무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권리였다.

그걸 솔렘 공작가에 반 이상 양도하겠다는 것이, 애리얼이 전한 허클리 백작의 뜻이었다.

사실상 백작가에서 공작가를 상대로 내걸 수 있는 최고로 강력한 협상 패.

이 정도를 제시하자 무관심하던 레이신도 진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대신 백작은 솔렘에 무엇을 원했지?”

“솔렘 공작가의 초대장입니다.”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는 대가로군.”

레이신은 백작의 의도가 빤히 읽힌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그를 만나기 위해 백작이 고안해 준 내용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백작은 이 정도 패를 보이고 받는 것이 고작 초대장이어도 손해는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만큼 솔렘의 초대장은 귀한 것이었고, 중립을 고수하며 폐쇄적으로 구는 그들과 연결될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초대장으로 물꼬를 터 앞으로 이어질 관계에 대한 투자를 한 거라고도 볼 수 있었다.

솔렘에서는 당연히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였다. 레이신도 거절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증명은 무엇으로 하겠나? 솔렘은 추상적인 증표는 일체 받지 않는다.”

말로 하는 충성이니 목숨을 건 맹세니 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원하는 건 확실한 계약의 증거물.

애리얼이 준비해 온 반지 케이스를 그에게 내밀었다. 사과꽃이 새겨진 육각형의 은상자.

“허클리 백작저의 가문 인장을 증표로서 바칩니다.”

복제 불가능한 가문 마력이 새겨진 고유의 인장이었다. 제국에서의 신분 증명과도 같은 것. 귀족 사이에선 물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신뢰였다.

레이신의 손이 흔쾌히 은상자를 거두어 갔다.

“만약 약조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백작을 죽일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애리얼이 고개를 숙이며 순응의 뜻을 밝혔다. 이걸로 솔렘 공작저를 드나들 수 있는 구실을 챙겼다.

‘이제 용건이 끝났으니 냉큼 가라고 하려나…….’

애리얼은 흘금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 역시 자신을 보고 있어서, 그녀는 조금 움찔했다.

“여기까지 온 노고를 봐서, 특별히 보답을 하나 해 주지.”

레이신은 축객령 대신 의외의 것을 말했다.

“단 한 번. 네 편의를 봐주겠다.”

애리얼은 어리둥절했다. 한 번이라도 비호를 약속하다니, 그의 입장에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냉정히 선을 긋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의도인가.

‘이해는 어렵지만, 일부러 해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네.’

애리얼은 기껍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사합…….”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의 계단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뚜벅뚜벅. 걷는 소리가 일정하고 빨랐다.

애리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녀의 예민해진 청각이 날을 세워 소리를 잡아냈다.

멀리서 들린 음성이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확실한가?”

“네, 저하. 3층 창, 솔렘 공자님이 계신 방입니다. 인영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래.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스카이라의 목소리.

온몸의 감각이 쭈뼛 세워졌다.

애리얼은 다가오는 두려움에 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복도의 끝 쪽 응접실이라 퇴로는 하나뿐인데, 그마저 계단을 올라오는 이와 마주하는 방향이었다.

스카이라와 맞닥뜨리는 건 기정사실.

‘이 상황을 스카이라한테 뭐라고 변명하지? 솔렘과의 거래를 밝힐 수도 없고…….’

옴짝달싹 못 하게 굳은 애리얼의 귓가로 레이신의 무뚝뚝한 저음이 다가왔다.

“내 비호, 지금 필요해?”

애리얼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레이신이 애리얼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바람에 깃털이 날리듯, 가벼운 신체가 문안으로 확 끌려 들어갔다.

어느새 방 안으로 진입한 그녀의 몸은 레이신의 손에 문 뒤의 벽면으로 밀려났다.

“조용히 있어.”

그가 나직이 명령했다.

애리얼은 명령을 따라 잠자코 숨죽였다.

레이신은 위장하는 일 없이 태연하게 문을 열어젖힌 채로 곧 들이닥칠 방문객을 기다렸다.

일정한 발소리가 점점 다가오더니 레이신이 선 문 앞에 멈추었다.

“마중 나왔어?”

스카이라의 못마땅해하는 음성이 문 사이로 선명하게 흘러들어 왔다.

“소리가 시끄럽길래.”

“내가 사람을 풀었거든. 누굴 좀 찾느라.”

스카이라는 금방 본론을 꺼냈다. 그러더니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레이신을 훑어봤다.

“허클리 백작가 여식……. 이렇게 말하면 네가 알 턱이 없겠지.”

스카이라는 레이신의 무심함을 고려해 말을 정정했다.

“전에 내가 차에 데리고 있던 애, 오늘 본 적 있어?”

“없어.”

“사용인 말로는 여기서 인영이 보였다는데.”

“내 시종이야. 맡길 것이 있어서 불렀어.”

고지식할 정도로 딱 잘라 답하는 그의 모습에, 스카이라는 고개를 툭 떨구고 이마를 짚었다.

“하아…….”

스카이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안도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차라리 다행인가.”

작게 중얼거리고는 얼굴을 들었다. 스카이라의 안면은 완전히 냉정해져 있었다.

“어쨌든, 보면 나한테……. 아니, 됐다. 갈게.”

스카이라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멀어졌다.

어차피 레이신이 그녀를 마주할 일 따윈 없을 거라 믿는 눈치였다. 애리얼을 믿는 게 아니라 레이신의 무심함을 믿는 거였다.

스카이라가 멀어지자 레이신도 문을 닫고 돌아왔다. 여태 벽에 밀착해 굳은 애리얼을 보고선 그가 무심히 입을 열었다.

“그만 움직여도 된다.”

그 말에 애리얼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호흡을 참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과도하게 긴장한 탓인지.

그녀야 그러든 말든 레이신은 필요한 이야기를 툭 잘라 꺼냈다.

“솔렘과의 중립 거래를 하러 온 걸 황자에게 들키면 네게 곤란하겠지. 게다가 아무리 가문 간의 일이라도, 황자는 너한테 개인적인 기대를 하고 있으니까.”

“개인적인 기대라 하심은…….”

“황자가 너에게 독점욕을 보인다는 뜻이다.”

애리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그래서 아까 스카이라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는 심히 당황했다. 스카이라의 성격에 레이신과 몰래 만난 걸 적당히 넘어가 줄 리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애리얼은 괜히 모르는 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지금부터라도 알아둬라.”

레이신은 더 추궁하지 않고 담백하게 일렀다.

애리얼은 가만히 고개만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난 너한테 빚진 것도 연관될 것도 없어. 솔렘 공작과 허클리 백작 간의 거래를 대리 성사 시킨 것뿐이니까.”

냉담하고 철저한 선 긋기였다.

레이신은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예측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비호를 제안한 것이고, 이런 식으로 소모되도록 유인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솔렘 공작가와 허클리 백작가 간의 거래를 추궁당하는 건 그에게도 좋지 않으니까.

둘째, 힘들게 찾아와 이익이 되는 거래를 제안한 애리얼에게 빚을 남기기 싫었으니까.

꼬투리 잡을 게 없는 철저한 손익 계산이었다.

‘이렇게까지 나온 걸 보면…… 나하고는 뭐로든 더 연관되지 않을 생각이구나.’

하지만 애리얼은 그럴 수 없었다. 레이신의 호감도가 없으면 특별 엔딩은 볼 수 없다. 그러면 이 세계를 벗어날 방법도 없어지겠지.

애리얼은 그와의 연결점이 계속 필요했다.

“그럼 다음에는 솔렘 공작가가 아닌 솔렘 공자님께서 마음이 혹하실 만한 개인적인 거래를 가져오겠습니다.”

“…….”

“오늘 일에 큰 감사를 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애리얼은 어떻게든 그와 연관될 것임을 선언하며 고개를 숙이고 몸을 물렸다.

화라도 내지 않을까 싶던 레이신은 웬일인지 고개만 까딱거리는 게 다였다.

그녀는 그게 부디 길조이길 바랐다.

무사히 레이신과의 만남을 마치고 나온 애리얼은 남관의 응접실로 돌아갔다.

도중에 스카이라의 명을 받고 그녀를 찾던 사용인들과 마주쳤지만, 별일은 없었다. 스카이라가 회의장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와는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애리얼은 될 수 있으면 그가 없는 틈에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황성을 방문한 주 용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애리얼이 덩그러니 응접실에 남아 기다리니, 얼마 안 가 시녀가 방문했다.

시녀가 황태자의 전언을 건넸다.

“검사 결과에 문제가 있어 재검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황성에서 하는 일인데 오류가 날 수 있는 사안이었나. 시녀의 말을 듣자 기이한 의문이 애리얼의 뇌를 스쳤다.

“무슨 문제 때문인지, 물어도 될까요?”

애리얼은 잠시 고민하다가 존댓말로 물었다. 지금은 딱히 누군가의 비호를 업고 방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녀와의 신분 차는 크지 않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면 결과는 언제 볼 수 있나요?”

“재검이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결과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더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명확한 답은 무엇도 없었다. 심지어 결과를 더 기다려야 한다니. 애리얼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몸집을 불려 갔다.

하지만 그것이 황성의 입장이라면 그녀는 감히 토를 달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황족의 지고한 뜻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입장이니까,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알겠습니다.”

찝찝하긴 했지만 애리얼은 일단 수긍했다.

이제 그녀가 황성에 머물 이유는 더 없었다.

애리얼은 곧장 황실의 차를 얻어 타고 백작저로 돌아갔다. 가져왔던 선물용 보석은 남관의 중앙 응접실에 맡겼다.

도망치듯이 빠져나갔다.

스카이라가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 애리얼에게 오늘 일을 캐물을 것이 뻔했다. 애리얼은 굳이 변명을 생각해 내기도 귀찮아서 그냥 회피해 버렸다.

‘아카데미 개학 때 보자고 했으니까, 그때 보면 되겠지.’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행히 스카이라는 렉시우스처럼 우악스럽게 쫓아오는 성정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애리얼은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공략 대상이 멀리 있습니다.』

『레이신 디 솔렘

▷당신을 향한 호감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 위치: 황성』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레이신의 호감도는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그답지 않게 친절도 베풀고, 선을 넘는 발언을 해도 그냥 넘어가기에 기대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나쁘지 않아. 아직 시간은 있어.’

애리얼은 빠르게 실망감을 털어 버렸다.

그나마 오늘은 레이신에게 험한 소리를 듣진 않았으니까. 이제 용건이 그에게 있으면 말을 걸어도 괜찮을 것이다.

‘또 괜찮은 용건을 생각해 봐야겠네. ……뭐가 좋을까?’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었다. 애리얼은 머리만 아팠다.

스카이라를 피하느라 긴장 상태로 뛰어다녔던 피로감이 급격하게 그녀를 덮쳐 왔다.

집 안에서만 지냈더니 애리얼의 몸은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너무 쉽게 지쳤다.

‘일단은 체력부터 길러야겠어.’

애리얼은 차창에 기대 눈을 감았다.

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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