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우스는 애리얼에게 여러 가지를 더 시켰다. 일정한 마력을 연속해서 사출하는 연사, 마력을 최대한 넓게 방출하는 방사, 마력을 빠른 속도로 쏘아 내는 속사, 다발로 쏘아 낸 마력을 마구잡이로 튕기게 하는 난사, 쏘아 낸 마력이 일정 궤적을 훑고 되돌아오게 하는 반환.
애리얼은 렉시우스가 요구하는 공격술을 열심히 수행했다. 연사와 방사는 곧잘 해냈고, 속사와 난사는 난관에 부딪혔지만 그의 도움을 받아서 해냈다. 문제는 반환이었다. 애리얼은 렉시우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고도 반환에 실패했다. 마력을 쏘는 것까지는 했지만 돌아오게 하는 걸 전혀 못 했다.
그리하여 네 시에 시작한 실전 연습은 여덟 시까지 계속되었다.
주변엔 이미 어둑하게 땅거미가 졌다.
“그만.”
렉시우스가 연습에 몰두하는 애리얼을 제지하고 나섰다.
“안 되는 거 오래 붙잡고 있지 마. 그런다고 되는 거 아니니까.”
“응…….”
애리얼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마력의 방출을 멈췄다. 이럴 때 보면 그녀는 생각보다 굉장히 노력가에 집요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재능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마법에서 집요함은 오히려 손해였다.
대개 할 수 있는 마법은 시작부터 가능성을 보이는 법이다. 아예 되지 않는다는 건 적성이 아니며 재능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런 것은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해 졌어. 가자.”
렉시우스가 결계를 지우고 저택으로 향했다.
애리얼은 아쉬움에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첫 번째 공격술 수업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
렉시우스는 복잡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대공저에 돌아와서도 그는 애리얼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어술은 아예 못 하는데 공격술의 기댓값은 규격 외라…….’
그는 고개를 기울이고 손등으로 턱을 괴었다.
애리얼은 방어에 취약하고 공격에 두각을 나타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방어술은 아예 마력이 없는 일반인 수준으로 못 하고, 공격술에 있어서는 기함할 정도로 압도적인 재능을 갖췄다.
이 정도의 마력 불균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종의 외압에 능력을 제한받고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 브레이슬릿.’
렉시우스는 애리얼의 마력 불균형과 상관관계가 있을 듯한 물건을 곧장 떠올렸다.
아니, 그것밖에는 없다.
그녀의 왼 손목에 걸린 검은색의 고리.
그는 미간을 구겼다.
문제는 브레이슬릿이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느냐였다.
애리얼은 방어술만 못 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공격술의 기초 중 하나인 반환 마법도 하지 못했다.
‘그건 그 두 마법의 교집합이 되는 점 때문에 애를 먹는다는 소린데.’
방어술과 반환 마법의 공통점은 하나다. 한번 방출한 마력을 다시 당겨 온다는 것.
즉 애리얼은 마력을 내보내는 것은 잘하지만 마력을 흡수하는 것은 전혀 못 한다는 소리가 된다.
‘상황을 보아 하니, 그 브레이슬릿은 마력의 흡수를 막는…… 아마도 밖에서 들어오는 마력을 아예 차단하는 기능인 것 같네.’
심지어 착용자의 마력까지도 차단한다.
하지만 한 가지 마력은 예외일 것이다. 데본시아의 마력. 그것만은 오롯하게 통과할 것이다. 그래야 애리얼이 위험 시에 그를 필요로 할 것이고, 그는 유일하게 예외로 설정한 제 마력으로 방어술을 펴 주겠지.
처음부터 브레이슬릿이 마력을 차단한 것은 아닐 거다. 그랬다간 스카이라는 물론 렉시우스도 금세 눈치채고 브레이슬릿에 대항할 방도를 찾았을 테니까.
‘브레이슬릿이 마력을 차단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최근의 일이야.’
모종의 일이 최근에 터졌고, 그게 데본시아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데본시아는 잠잠하던 브레이슬릿을 기동시켰다. 애리얼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기대게 될 상황을 서서히 유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까지 추측을 해낸 렉시우스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애리얼을 독점하려는 데본시아의 계획이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
다음 주 토요일.
다시 백작저를 방문한 렉시우스는 브레이슬릿의 처리 방향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애리얼을 뚫을 듯 유심히 관찰했다.
애리얼은 그가 펼친 결계 안에서 공격술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나 반환 연습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포기를 몰랐다.
애리얼이 노력할수록 렉시우스는 착잡해졌다. 그녀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검은색 마도구가 심히 거슬렸다. 그는 애리얼에게 슬슬 사실을 말해야 하나 고뇌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거뒀다.
마력을 차단하는 브레이슬릿의 가장 교활한 점은, 실제로 애리얼을 보호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단순하게 마력 불균형만 초래하는 불쾌한 물건이었다면 제거가 쉬웠을 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데본시아의 브레이슬릿은 강력한 방어술의 일종이기도 했다. 데본시아 외의 모든 마력을 차단함으로써 애리얼에게 가해질 마법적 위협을 싹 잘라 냈다.
저 브레이슬릿을 차고 있을 때, 애리얼은 안전하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었다.
파지직, 파직.
자잘한 스파크가 일었다. 애리얼의 발치가 거멓게 탔다. 잔디 잎사귀는 볼품없이 말라 변색하였다.
그녀는 또다시 반환 마법에 실패했다. 한번 방출한 마력은 제대로 그녀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근처에서 터져 버렸다.
렉시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애리얼에게 다가갔다.
“반환은 그만해. 이만큼 해도 안 되면 네 적성이 아닌 거야.”
그의 말에 애리얼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적성이라는 거 정말 절대적이네……. 노력으로 메꿔지지 않으니까 서글프다. 너무 불공평한 세상이야.”
“반대로 적성에 맞으면 큰 노력 없이도 쉽게 익혀지잖아? 좋게 생각해.”
“음……. 노력하지 않았는데 잘되면 이상하게 부작용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피곤하게도 사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애리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던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실패를 거듭한 이에게서 볼 수 있는 무력감이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 풀 죽지 않은 애리얼의 모습에 렉시우스는 피식 웃었다.
“이제 다음 심화로 넘어…….”
잘 말하던 그가 돌연 말끝을 흐렸다. 미소를 짓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애리얼의 코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하얀 얼굴 때문에 더욱 도드라지는 핏줄기가 입술을 적시고 턱 아래 맺혀 뚝뚝 떨어졌다.
애리얼은 반사적으로 소매를 들어 코를 훔쳤다. 소매에 묻어나는 붉은 액체를 보고서 입을 벌렸다.
“아…… 또 이런다.”
“또?”
“요즘 들어 가끔 흘려서……. 별거 아냐.”
애리얼은 대수롭지 않아 하며 흐른 피를 소매로 대충 닦아 냈다. 흰 소맷자락이 금세 벌겋게 물들었다.
충격을 받은 듯 굳어 있던 렉시우스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코피를 흘리는 게 어떻게 별게 아니야.”
“괜찮아. 금방 지혈돼.”
“지혈되고 말고 이전에 코피를 흘리는 자체가 문제야!”
그는 애리얼의 어깨를 움켜쥐고서 엄하게 소리쳤다.
화가 난 것이 확연한 그의 모습에 애리얼은 당황한 것이 역력한 얼굴로 해명했다.
“걱정하지 마. 코피 정도야 큰일도 아닌걸.”
“큰일이 아니라고?”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의사가 진단했어. 금방금방 멎고, 아프지도 않아. 그러니까 걱정은 안 해도…….”
그녀의 해명에 렉시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하루에 몇 시간 연습했어.”
“별로 안 했을걸? 여덟 시간 정도?”
“안 되는 거 붙잡고, 무리하면서 하루에 여덟 시간? 너 제정신이야?”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당연한 소릴!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뭐 하러 이렇게까지 해?”
“나는 시작이 느렸으니까, 메우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난 오히려 선배가 잘했다고 칭찬을 해 줄 줄 알고…….”
“칭찬?”
되묻는 그의 목소리가 살벌했다. 정색하는 얼굴이 너무도 엄하여 애리얼은 잠시 말을 잃었다.
“너 열심히 한다고 코피 흘리면서 쓰러지면 내가 좋아할 줄 아는 거야? 진심으로?”
“…….”
“내가 일말의 온정도 없는 개자식인 줄 알아? 효율만 뽑으면 그저 좋아하게?”
“개자식은 좀 심하지만…… 그런 쪽 아니었어?”
그렇게 묻자 그는 머리를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두 눈이 크게 뜨이고 황당한 듯 입술이 벌어졌다.
“너 방금 뭐라고…….”
“선배가 사람 쓰러지는 데 무감한 냉혈한이라는 소리는 아니야. 하지만 무리해서 코피를 좀 흘리더라도 그만큼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면 좋아할 줄 알았어.”
“내가 왜?”
“아니었어?”
그녀가 되묻자 이번에는 렉시우스의 쪽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짚이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침묵했고, 애리얼은 서슴없이 과거의 일을 꺼냈다.
“제대로 굴려 준다고, 선배가 아카데미에서 그렇게 말했었잖아. 선배한테 한 달만 시달리면 뭐든 잘하게 될 거라고. 그때는 나, 열 시간 넘게 실습한 적도 있는데. 선배도 뭐라 안 그랬잖아.”
그랬다. 그때는 그랬었다. 애리얼을 이 정도로 마음에 들어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렉시우스는 초조해져서 이를 사리물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진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때는 널 별로 아끼지 않았고, 지금은 널 아낀다고. 그래서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게 싫고, 네가 아픈 게 두렵다고.
애리얼은 그의 속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설령 쓰러지더라도 성과를 보이면 선배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코피나 흘리는 걸 좋아해 달라는 거야?”
그가 허탈한 듯 웃었다. 조금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애리얼은 뭐라 해명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렉시우스는 그녀가 의도한 바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도 알고서, 그저 자조하는 것이었다.
하하, 낮게 웃은 그가 가라앉은 눈으로 애리얼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내가 좀 가혹하긴 했지. 그래……. 맞는 말이야.”
그의 손은 어느새 애리얼의 턱을 부드럽게 쓸어 쥐었다. 애리얼은 가만히 그를 마주 보았고,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너는 그렇게 느끼지 말아야지. 내가 널 얼마나…….”
아직 굳지 않은 애리얼의 피가 그의 손을 적셨다. 렉시우스는 미간을 구겼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입술 아래를 지그시 쓸어 냈다. 그녀의 하얀 턱에 남아 있던 핏자국이 닦여 나갔다.
피의 감촉이, 지저분해진 그녀의 얼굴이, 그의 미련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낡은 아카데미 별관, 그리고 심층 결계. 그곳으로 애리얼을 유인해 코피를 쏟게 만들려고 했던 그였다. 그랬던 주제에, 지금은 애리얼의 코피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니.
미지의 감정이 그를 잠식해 왔다.
그는 저 까만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무언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너무 연약하게 느껴져서 온통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괴롭히고 싶고, 자신으로 인해 동요하길 바라지만 아프지는 않았으면 했다.
다른 인간들은 죽어도 개의치 않는데, 애리얼은 생채기 하나 없었으면 했다.
이 감정의 시발점은 무엇이었을까. 시작은 명확하지 않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가 감정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여지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좋아해.”
우우우웅-
그의 목소리와 진동음이 겹쳤다.
애리얼은 어리둥절해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혹은 확신하고 싶지 않은 듯.
“……선배? 지금 뭐라고…….”
“널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