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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 (118)화 (118/264)

애리얼의 벌벌 떨리는 손이 휴대폰을 켰다. 지독한 타이밍에 그녀를 마중 나온 끔찍한 선고를 보기 위해서.

『페널티 발생!

10분 후 당신의 주변으로 싱크홀이 생겨납니다.

남은 시간 - 00:09:57』

“싱크홀이라고……?”

애리얼이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스카이라의 눈이 넋이 나간 애리얼을 포착했다. 그는 진흙과 피로 엉망인 애리얼의 몰골을 보고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서 있는 걸 보아 하니 그나마 치명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왜 여길 온 거야! 이 지경이 될 게 뻔한데!’

그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아 냈다.

어금니를 사리문 스카이라가 우글대는 마수 무리를 보고서 손을 휘둘렀다. 장대한 결계가 마수와 인간의 사이를 가르며 펼쳐졌다. 원형의 투명한 막이 애리얼과 그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감쌌다.

더 늦었다면 애리얼을 지키지 못했으리라.

스카이라는 하마터면 아찔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분노와 공포로 두 손이 떨렸다.

그녀의 손에 끼워진 반지는 추적을 막는 장치였다. 문지기는 추적용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며 건넨 듯했으나, 실상은 반대였다. 그녀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그녀를 돕지 못하게 하려고 건 페널티다. 증표를 가진 자가 타인의 도움으로 시험을 통과해선 안 되니까.

그래서 스카이라는 애리얼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추적 마법은 통하지 않아 마수의 하울링과 마력탄이 터지는 소리를 따라왔다. 다행히 제때 도착했다.

결계로 인해 공격이 전부 멈추고 마수와 사람이 따로 격리되었다.

최후의 항전을 펼치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어리둥절해하며 굳었다.

날아오던 공격이 멎자 마수들이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황자가 펼친 결계에 막혀 고꾸라졌다. 이 지능 높은 짐승들은 만찬을 코앞에 두고 무언가에 가로막혔다는 걸 금방 인지했다. 마수가 뿔을 세우고 머리를 들이박았다.

쿵! 쿵! 쿵!

결계가 진동했다.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끼기보다 혼을 놓은 상태로 주저앉았다. 탈진한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제대로 파악하질 못했다.

스카이라는 사람들을 헤치고 애리얼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목에 건 네모난 물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돌리며 상태를 살폈다.

“너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

“……스카이라.”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겁먹고 혼란에 빠진 티가 확 났다. 스카이라는 가슴이 미어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그는 엄하게 소리쳤다. 달래 주고 싶었는데, 감정이 격해졌다. 이런 곳에 멋모르고 와서 저를 걱정시킨 그녀가 야속했다. 그녀의 무모함에 화가 났다. 그렇게 화나고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멀쩡한 것에 안도했다. 자신이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애리얼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지에 긁혀서 피가 묻은 입술을 달싹였다.

“나, 나는…… 할 줄 아는 게 공격술밖에 없어서…….”

어떻게 왔냐는 둥 그런 소리를 할 줄 알았던 그녀가 생뚱맞은 말을 했다. 겨우 안도했던 스카이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다친 것도 고치지 못하고, 결계를 칠 수도 없었어. 순간 이동으로 옮기는 것도 못 해.”

“너…….”

“그러니까…… 그러니까 스카이라, 네가 제발 이 사람들을 지켜 줘.”

“뭔……. 지금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가 봐야 해. 여기 있어도 쓸모가 없고, 그러니까, 제발…… 부탁해.”

애리얼이 그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스카이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당혹에 물들어 죄인처럼 고개 숙인 그녀를 담았다. 그녀가 제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걸 보면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바짓단을 붙든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이렇게 부탁할게. 여기서 이 사람들을 지켜 줘, 스카이라.”

아래를 향한 그녀의 눈이 화면의 시스템 창을 주시했다.

『남은 시간 - 00:08:12』

“제발……. 스카이라.”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일어나.”

그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리얼이 이렇게나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못할 리가 있나. 그냥 해 달라고 하면 될 것을 무릎까지 꿇고서…….

스카이라는 이마저도 애리얼이 제게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자신이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는데.

“이 사람들 다 치료해 주고 지켜 줄게.”

“약속해 주는 거야?”

“그래. 약속할 테니까 그렇게 비굴하게 굴지 말고 똑바로 서.”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뭣하면 황족의 명예를 걸고 맹세라도 해 줄까?”

그가 거듭 같은 것을 묻는 애리얼을 답답해하며 제안했다.

그러자 애리얼이 제안에 응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

“……알았어. 황족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 여기 있는 사람,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지켜 줄게.”

“응……. 고마워.”

그녀가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서는 총을 고쳐 쥔다.

그 동작에서 스카이라는 참을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너, 설마…….”

“고마워, 스카이라!”

땅을 향하던 그녀의 고개가 들리며 나타난 얼굴이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스카이라는 속수무책으로 그 미소에 홀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애리얼은 곧장 뒤로 돌아서 마수 무리를 향해 뛰어갔다. 온 힘을 다해서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잠……. 애리얼!”

스카이라가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쿨럭, 뒷줄에서 피를 토하는 소리가 났다. 이어 끙끙 앓는 끔찍한 신음과 비명까지 들려왔다.

아, 아…….

이대로 애리얼을 따라가면, 뒤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마수를 막는 결계는 상당히 강한 것이라 범위를 이 이상 늘릴 수 없었고, 남은 이들은 당장 치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애리얼에게 황족의 명예를 걸고서 약속했다.

남은 이들을 모두 지키겠다고.

‘그래서 너는 거듭 물은 거였어.’

그녀의 선의가 그를 원통하고 슬프고 끔찍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내가 따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왔는데, 그녀만 지킬 수 없었다.

비통했다.

데본시아의 보호를 두른 그녀가 방어 막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브레이슬릿의 방어술이 앞길을 막으며 공격을 퍼붓는 마수의 몸체를 갈가리 찢었다. 악취를 풍기는 끈적한 피와 살점이 주르르 쏟아졌다. 검은 피를 덮어쓰며 그녀는 끝없이 뛰었다. 스카이라가 부수고 싶어 하던 물건의 보호를 받으며 나아갔다.

스카이라는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비참하게 보다가 몸을 돌렸다.

“황족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 여기 있는 사람,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지켜 줄게.”

애리얼의 부탁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약속은 지킨 후, 그녀가 돌아오면 추궁하고 따져 물을 것이다. 왜 이런 곳에 왔는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 화내고 다그치고 채근하고…….

“그러니까…… 살아서 멀쩡하게 돌아와, 애리얼.”

스카이라는 나지막이 뱉으며 차마 돌려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돌려 부상자들을 향해 갔다. 원통하고 비통하여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돌아서는 그를 붙잡고 그녀를 따라가라며 유혹했으나 억지로 떨쳐 냈다.

브레이슬릿이 있으니 애리얼은 괜찮을 것이다.

그 끔찍한 물건에 기대야 하는 제 처지를 비웃으며 스카이라는 부상자에게 회복술을 걸었다.

애리얼을 위해서 한 명도 죽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남은 시간 - 00:05:47』

피와 살점을 뒤집어써 더러워진 꼴로 애리얼은 달리고 또 달렸다. 전력을 다한 달음박질 때문에 숨이 가빴다. 그런데 악취 때문에 호흡이 어려웠다.

뒤에서는 마수 몇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깨지지 않는 결계를 포기하고서 무리에서 뛰쳐나온 애리얼을 쫓아왔다.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거겠지.

마수 하나가 애리얼을 따라잡아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방어술에 오히려 제 이빨만 깨져 나갔다.

그 꼴을 몇 번 당하자 그것들은 방식을 바꾸었다.

공작저를 향해 달려 나가던 애리얼의 앞으로 거대한 삼나무가 쓰러졌다. 애리얼은 소스라치며 급히 정지했다. 기울어지는 몸을 억지로 젖히며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고 버텼다.

쿠웅!

기다란 삼나무가 앞길을 막았다.

애리얼은 다이얼을 돌려 총의 외형을 샷건으로 바꾸었다. 정면을 조준하고 출력을 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굉음이 나며 앞길을 막은 나무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다행히 반동 흡수기의 덕택에 어마어마했을 반동이 없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음에도 방어가 됐다. 사납게 튀는 나뭇조각은 순간적으로 마력을 방사해서 막아 냈다. 검푸른 빛에 파편이 까맣게 타서 재가 됐다.

아리앨라와의 훈련이 빛을 봤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마수들은 특유의 하울링으로 위협하며 계속 달려왔고, 애리얼 역시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남은 시간 - 00:03:10』

초가 줄어들수록 애리얼은 초조해졌다.

싱크홀이 어느 정도 크기로 어떻게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스카이라가 있는 결계와는 꽤 멀어졌다. 그러니 그쪽은 싱크홀의 위협에서 안전해 보였으나,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더 멀리 달아나야 했다.

쿠웅!

마수들이 또다시 나무를 쓰러트렸다. 애리얼은 이번에도 샷건으로 대처하려고 했다. 마수의 새까만 눈이 번뜩였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마수가 쓰러진 나무를 들이받았다. 밀려난 나무가 애리얼 쪽으로 빠르게 밀려왔다. 애리얼은 본능적으로 총구를 틀어 밀려오는 쪽을 쐈다. 그러나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빗맞은 나무가 구부러지며 애리얼의 옆을 쳤다. 다행히 나무는 총을 치고 갔다. 그러나 그 충격에 애리얼은 크게 밀려났다. 가벼운 몸이 붕 떴다가 몇 미터를 밀려나 넘어지듯 착지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뼈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리얼은 곧장 일어나서 나무를 친 마수를 쐈다.

타앙!

마수는 가슴팍에 큰 구멍이 뚫려 고꾸라졌다. 그러나 금세 회복의 준비를 한다. 파인 살점이 꾸물거리며 천천히 이어졌다.

이래서는 끝이 없었다.

마수들은 애리얼이 밀려난 것을 보고 나무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쿵! 쿵!

뿌리 깊은 나무를 넘어뜨리기 위해 머리를 박는 괴물의 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시간 - 00:01:10』

이제 일 분 남짓이면 싱크홀이 생긴다.

마수는 물론이고 싱크홀에도 대비를 해야 하는데…….

문득 묘안을 떠올린 애리얼은 휴대폰 줄을 바짝 당겼다. 목걸이가 짧아져 초커 같은 형태가 되었다. 줄과 이음쇠, 케이스는 특수 재질이라 어지간한 외부 충격으론 끊어지지 않는다.

‘이러면 반동에도 날아가지 않을 거야.’

애리얼은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빼고 총구에 있는 마력 조절 장치를 떼어 냈다. 방아쇠의 뒤쪽에 달린 반동 흡수기도 뽑아냈다. 그러곤 교복의 리본을 풀어 방아쇠에 걸린 손을 총과 함께 단단히 묶었다.

준비가 끝났다.

애리얼은 쓰러진 마수 쪽으로 달려갔다. 회복이 덜 된 마수는 당장 반격하지 못한다.

삼각형의 형태로 그녀를 압박하던 다른 두 마리의 마수가 빠르게 쫓아왔다.

애리얼은 쓰러진 마수의 몸체를 밟고 올랐다.

그녀의 생각이 맞는다면, 생각대로 된다면, 이걸로 전부 한 방에 끝날 것이다.

『남은 시간 - 00:00:10』

“이리 와!”

마수의 위에 선 애리얼이 다른 마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남은 시간 - 00:00:05』

앞으로 오 초. 애리얼은 총구를 아래로 향했다.

“사, 삼, 이, 일!”

애리얼이 마지막 초를 세었다.

흩어져 있던 두 마리의 마수가 그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남은 시간 -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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