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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 (119)화 (119/264)

애리얼이 밟고 있던 마수의 아래쪽 지반이 삽시에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거대한 구멍의 형태로 땅이 뚫렸다.

새카만 암흑으로 잠식된, 깊이를 모르는 싱크홀.

마수의 몸이 추락했다.

애리얼을 향해 달려오던 마수 두 마리가 밟을 땅을 잃고 휘청였다. 고꾸라지듯 떨어진다.

이때를 기다렸다.

키이이이잉-

검푸른 마력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총신에 모여들더니 굉음과 함께 점멸했다.

애리얼은 샷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마력 조절 장치도, 반동 흡수기도 없다.

어마어마한 굉음에 순간적으로 귀가 멀어 버리고 눈이 질끈 감겼다.

브레이슬릿은 오로지 마력만을 막아 냈다. 강력한 충격파가 그녀를 강타했다.

애리얼의 몸이 하늘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튕겨 올라갔다. 강력한 마력탄을 쏘아 낸 충격으로 덜덜 손이 진동했다. 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고정용으로 묶은 리본이 제 소임을 다했다.

아래에서 그녀가 쏜 마력의 열기가 작열하며 이제껏 본 적 없는 규모로 폭발했다. 아래에 있던 마수의 몸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나머지 두 마수도 마력탄의 화력을 견디지 못해 형체가 박살 났다.

파지지직! 파직! 파지직!

마력의 폭발열이 진동하며 주변을 태웠다.

콰앙! 쾅!

연달아 마력이 폭발했다. 폭발음이 온 숲을 뒤흔들었다.

폭발의 잔열과 충격이 애리얼의 피부를 긁고 지나갔다.

반동으로 상승하던 몸이 중력에 의해 느려졌다.

애리얼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아래에 폭발로 더 커다래진 싱크홀이 보였다. 떨어지면 죽는다. 그녀는 곧장 총구를 들어 옆으로 향했다.

키이이잉-

아까와 같은 수준의 마력이 다시 모여들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날아간 마력탄이 엄청난 화력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정면에 있던 삼나무들이 모조리 쓰러져 재가 되었다.

위력만큼이나 거대한 충격파가 애리얼을 밀어냈다. 강력한 마력에 연달아 노출된 브레이슬릿이 쩌적, 소음을 냈다. 미세하게 금이 간 팔찌를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커헉!”

애리얼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며 반동에 밀려났다. 그녀의 몸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어두운 싱크홀이 그녀의 발밑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애리얼은 본능적으로 방어술을 펼쳤다. 적성이 아니라던 방어술이지만, 지금 안 하면 나무나 땅에 충돌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리얼은 자기방어용으로 엄청난 양의 마력을 방사했다. 주변의 장애물들이 타들어 가고 마모되었다. 파편이 지워지고 재가 되어 길이 뚫렸다.

애리얼의 몸이 숲의 빈 곳으로 계속 날아가더니 이윽고 중력의 힘을 받아 사선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닿기 전, 가까스로 발동된 찰나의 방어술 같지도 않은 방어술이 그녀를 추락의 충격으로부터 간신히 보호했다.

한 번 완충을 받은 몸이 땅 위를 데구루루 굴렀다. 그녀의 피부가 진흙으로 더러워짐과 동시에 얕은 상처가 한가득 새겨졌다. 그렇게 구르고 구르다 속도가 줄어들었을 즈음, 마력의 방출도 완전히 멎었다.

쿵.

애리얼의 등이 삼나무 밑동과 충돌했다. 리본이 헐거워져 손에서 총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리본에 걸려 멀리 가지는 않았다.

애리얼은 가늘게 눈을 뜨고서 총부터 다시 잡았다. 그다음엔 목에 걸린 휴대폰을 확인했다. 다행히 둘 다 멀쩡했다. 외부 충격에 강한 마도구다웠다.

“아……, 으…….”

그제야 고통으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어딘가 부러진 것 같았다. 고막이라도 찢어진 건지 귀에서 피가 났다. 나무에 부딪쳐 다친 등에서는 피가 나서 옷이 축축했다.

기절할 것 같았다.

‘아직은 안 돼.’

애리얼은 힘겹게 땅을 짚고서 상체를 세웠다. 무릎을 땅에 대고 억지로 일어났다. 사지가 비명을 질렀다. 주르륵, 어딘지 모를 곳에서 터진 상처가 피를 뱉어 냈다.

그럼에도 아직, 설 수 있다. 걸을 수 있다.

애리얼은 얼굴에 묻은 진흙을 털어 내고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그녀가 쏘아 낸 마력탄에 숲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거대하게 뚫린 숲의 빈 자리에는 아직도 지지직거리는 마력의 잔열이 보였다.

아리앨라가 왜 마력 조절 장치를 달았는지 알 수 있는 풍경이 싸늘하게 늘어서 있었다.

애리얼은 자신이 괴물같이 느껴졌다. 대단함을 넘어 위험한 능력.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짧게 조절한 목걸이를 다시 늘이고서 휴대폰을 켰다.

『공략 대상이 멀리 있습니다.』

『레이신 디 솔렘

▷당신을 향한 호감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 위치: 솔렘 공작저(거리가 멀어 정확한 추적이 어렵습니다.)』

아직 멀다. 그러나 확실히 줄어들었다. 공작저까지는 3km 내외로 보였다.

애리얼은 지도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한 발, 또 한 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서, 이런 살인적인 시험을 치르게 만든 솔렘을 향해, 걸었다.

***

어마어마한 굉음이 결계 안까지 스며들었다.

치료가 한창이던 스카이라의 고개가 폭발음을 따라갔다. 그뿐만 아니었다. 모든 이의 이목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아주 멀지는 않은 곳에서 터진 폭발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스카이라는 그대로 굳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렇게 모두의 눈이 한곳에 모인 순간, 또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숲이 휩쓸려 나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이었다. 검푸른 마력의 불길이 북쪽을 향해 치솟는다.

연달아 일어난 폭발에 그는 숨도 쉬지 못했다. 심장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브레이슬릿이 있다지만, 저기서 살 수 있을까.

잠깐의 가정만으로도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이 엄습했다.

“……애리얼…….”

그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다친 그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무정하다고, 잔혹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그에게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의 목숨보다도 애리얼이 중요했다. 그녀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이들은 다 죽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녀는 내버려 두고서 다른 이들의 목숨만 보전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당장 제게 맡겨진 이들을 버리고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쉬지 않고 치료술을 펼치던 손이 멈칫거린다. 내내 부상자를 보았던 두 눈동자가 갈팡질팡 흔들린다.

제 손은 애리얼을 지켜야 할 손이고, 제 눈은 애리얼을 보아야 할 눈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탁할게. 여기서 이 사람들을 지켜 줘, 스카이라.”

‘네가 그래서, 나는…….’

“황족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 여기 있는 사람,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지켜 줄게.”

그렇게 약속했다.

그리하여 애리얼은 그의 확고한 의지마저도 꺾었다. 그녀의 부탁이었기에 그는 꺾였다.

***

굉음에 데본시아가 쥐고 있던 잔을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이 산산조각이 나서 이리저리 파편을 튀겼다.

주변에 몰린 귀족들이 놀라 그를 보았다. 설령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더라도 실수하지 않을 그가 겨우 폭발음에 실수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솔렘의 연회가 있는 날에는 시험도 동시에 진행되기에 폭발음이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귀족들은 물론 데본시아도 아주 잘 아는 사실이었다. 이토록 큰 굉음이 나는 것은 잘 없는 일이긴 했지만, 그가 잔을 떨어트리는 실수를 범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연회에 모인 귀족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황태자를 주목했다.

“괜찮으십니까, 전하.”

솔렘 공작마저 그를 살폈다. 하지만 그는 멍하니 창밖만 주시하며 넋을 뺀 듯 굴었다. 어딘가 공포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커다란 걱정에 사로잡힌 것 같기도 했다.

“황태자 전하?”

“아, 이런…….”

공작의 부름에 그는 탄식을 뱉어 내고는 홀연히 문 쪽으로 향했다. 걸음에는 여유가 없었고, 초조해 보였다. 철두철미하며 결코 약점을 내비치지 않는 그답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울 일이 생겨서. 실례하지.”

모이는 시선에 황태자는 짤막하게 답변을 남긴 뒤 그대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 생소한 모습에 연회의 분위기가 싸하게 굳어 버릴 정도였다.

***

숲의 습기 사이로 타는 냄새가 났다. 물이 썩는 듯한 악취도 풍겼다. 피비린내까지 진동했다.

애리얼은 총을 들고서 쉬지 않고 걸었다. 총의 외견은 샷건에서 소총으로 바꾸었다. 반동이 두려웠다.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크게 찢어진 등은 조금도 지혈이 되지 않아 축축하고 쓰라렸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 다쳐서 걸음마다 핏방울이 떨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직 마수의 하울링이 들렸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오기로라도 통과해 주겠다고, 애리얼은 다짐했다.

걷는 속도는 빠르지도, 크게 느리지도 않았다. 연회 종료까지 아직 두 시간은 남아 있었다.

저 멀리 빽빽하고 어두운 삼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하늘을 가리는 나무가 없어 유난히 밝아 보이는 평지. 솔렘의 공작저가 있는 곳.

애리얼의 걸음에 힘이 붙었다. 힘차게 발을 내디디며 고지를 향했다.

숲의 끝까지는 이제 불과 십여 미터.

샤아우우-

갑자기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만났던 사슴을 닮은 마수와는 달랐다. 좀 더 원초적인 짐승의 소리. 고양이가 털을 세울 때 내는 듯한 날카로운 울음과 늑대의 긴 목울음이 뒤섞인 괴성.

애리얼은 걸음을 멈추고 총구를 들었다. 또 다른 마수가 있다. 그녀는 숲의 끝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며 주위를 경계했다.

여러 마리가 내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고막을 두드렸다. 숲의 바깥으로 향할수록 점점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애리얼은 계속 나아가야 했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공작저의 높다란 담과 철창으로 된 거대한 출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 문지기처럼 지키는 것들이 까만 눈을 번들거리며 코를 킁킁댔다. 피비린내를 맡은 괴수의 검은 눈들이 일제히 애리얼을 향했다.

뒷다리가 짧고 뾰족한 귀를 가진 생명체. 고양잇과 맹수와 갯과 맹수를 뒤섞어 놓은 듯한 기이한 형태.

얼룩덜룩한 표피를 가진 그 무리가 어슬렁거리며 애리얼에게 접근했다. 캥캥, 샤아악, 울며 이를 드러냈다. 육식 동물의 날카로운 이가 허옇게 빛났다. 굶주렸는지 타액을 떨구며 시커먼 혀를 날름거렸다.

하지만 애리얼에겐 다른 길이 없었다. 휴대폰에 나온 출입구는 여기뿐이었다. 다른 곳은 시간 내에 갈 수 없었다.

애리얼은 총구를 앞세우고 정면 돌파를 감행했다.

‘괜찮아. 저것들의 공격은 브레이슬릿이 막아 줄 거야.’

저 마수들은 그래도 중형에서 대형견 정도의 크기가 아닌가. 숲에서 만난, 족히 3m는 돼 보이던 그 사슴 마수들보다는 훨씬 작다.

애리얼은 망설이지 않고 재빠르게 나아갔다. 그녀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자 마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컁컁! 샤악! 샥!

허연 이를 드러내는 마수를 향해 애리얼의 소총의 총구가 검푸른 마력탄을 쏘아 냈다.

탕! 탕! 탕! 탕!

정면의 마수 몇 마리가 총에 맞고서 나가떨어졌다. 길이 트였다. 애리얼은 그대로 달려 나갔다. 어차피 뒤에서 기습을 노리는 것들은 브레이슬릿이 막아 줄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고지를 앞에 두고 속도를 올릴 때, 뒤쪽에서 마수 한 마리가 뛰어올랐다.

콰악, 물리는 감각이 선득하게 몸을 내달렸다. 총을 쥔 애리얼은 철창의 바로 앞에서 휘청거렸다.

“흐, 끄윽…….”

애리얼은 목이 졸리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마수의 송곳니가 목의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뼈에 닿기 전에 브레이슬릿의 방어술이 작동했다. 마수의 입이 갈가리 찢기며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크게 다친 후였다. 마수의 이빨이 사라진 자리에서 피가 뿜어졌다. 물린 자리가 타는 듯이 아프고,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어째서 방어술이 늦은 것인가? 의문을 가질 시간도 없었다.

급소를 물기 위해 이를 드러낸 마수들이 뒤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브레이슬릿이 제 기능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그녀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빨리 도망쳐야 했다.

애리얼은 피범벅인 손으로 철창을 잡고서 힘껏 당겼다.

‘이것만 열고 들어가면……!’

철커덕, 철컹.

철로 된 문이 불쾌한 소음을 내며 버텼다.

잠겨 있다.

애리얼의 검은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왜…….”

솔렘은 연회가 있는 날 문을 잠그지 않는다. 시험을 치르는 이들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올해의 시험은 이전까지와 많은 부분이 달랐다.

매해 사망자가 나온다지만 서너 명에 그쳤는데, 올해는 몰살당할 뻔했다. 마수도 전년도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고 수가 많았다. 매해 열어 놓던 문을 올해는 닫았다.

솔렘은 처음부터 저를 통과시켜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알 만했다. 제가 증표를 지녔기 때문이겠지. 감히 솔렘의 증표를.

‘고작…… 그런 이유로!’

애리얼의 두 눈이 분노에 휩싸였다.

약속해 놓고 비열한 수를 써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솔렘을 향해. 그것도 그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그들의 잔악한 추함에 대해.

그녀의 손이 총의 다이얼을 돌렸다. 샷건으로 모드를 변경하고 철창의 중앙에 붙은 솔렘의 상징을 겨눴다.

키이이이잉-

마력이 모여들었다. 거대한 뿔을 지닌 순록을 향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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