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현 황제의 나이가 이백이 넘으며, 역대 황제들의 평균 수명은 삼백 가까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애리얼은 놀라운 정보가 적힌 페이지를 오래 응시했다.
「마력의 총량에 비례해 노화가 늦어지고, 수명이 늘어난다.」
그래서 황제의 평균 수명이 길었다. 대대로 마력이 뛰어난 이가 황위에 올랐기에. 황족은 유전되는 마력으로 쉽게 세습 정치를 했다.
그 때문에 역대 황제들은 황위를 오래 끌고 싶은 경우에는 후사를 늦게 보았다. 후사를 일찍 보면 자신이 아직 젊을 때 자식이 다 자라게 되므로, 황위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권력욕이 많은 황제일수록 최대한 늦게 후사를 보았다.
이번 황제도 그랬다. 그는 최대한 오래 황위를 유지하고 싶었기에 이백이 넘어 후사를 봤다.
그 탓에 황제는 이백이 넘는데, 그의 자식인 데본시아와 스카이라는 아직 스물도 되지 않는 기괴한 수준의 나이차가 나타났다.
이것도 황제가 마력이 뛰어나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데본시아랑 스카이라도 아마 이백은 훌쩍 넘어서 살겠지? 둘 다 마력이 많으니까…….’
애리얼은 문득 아리앨라에게서 마법을 배우던 때를 떠올렸다. 아리앨라는 애리얼의 마력량에 감탄을 금치 않으며, 마력 소모가 심해 뛰어난 마법사들도 기피하는 총을 애리얼의 무기로 추천했다.
마법과 마력의 연구를 거듭하며 수많은 마법사를 만났던 아리앨라가 그렇게 반응할 정도면, 애리얼의 마력량은 규격 외인 게 분명했다.
“그러면 내 수명은 얼마나 되는 거지?”
갑작스럽게 궁금해졌다.
아리앨라가 특출나다고 할 정도의 마력량이면 애리얼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보다 오래 살게 될 터였다. 백작은 당연하고 하녀장, 집사장, 대여섯 살 정도 위인 카논까지 전부 떠난 뒤에도 애리얼은 홀로 남아 있겠지.
그 사실이 무척 아프게 다가왔다. 단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외로움을 느꼈다.
너무 많은 마력량은 오히려 저주 같았다.
애리얼은 우울한 표정으로 책을 덮어 버렸다.
황제는 늘 이런 괴로움을 지고 사는 걸까. 갑자기 제국의 정점이라는 자리가 무척이나 덧없게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황제와 자신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마력이 높은 이들을 제 측근이자 신하로서 거느리고 살았다. 그의 주변은 이렇게나 덧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하고 몇 해 차이 나지 않게 죽음을 맞겠지.
한미한 귀족가에서 돌연변이나 다름없이 튀어나온 애리얼만이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남아 고독할 것을 걱정한다.
애리얼은 자신의 처지를 씁쓰레하게 여기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이런 걸 생각하고 있지?’
기억을 찾아 이 세계를 떠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던가.
애리얼로서 일 년이나 살아왔으나, 그녀의 집은 이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집으로 여기고 있었다. 당연하게 이곳에서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공포감에 휩싸였다.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던 애리얼의 과거가 이제는 온전히 제 경험으로만 느껴졌다. 자신이 겪은 일로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끄집어내 꽉 쥐었다.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는 증명. 그녀에게 돌아갈 곳을 제시해 주는, 기억도 없는 그녀를 이루는 얄팍한 본질의 핵심. 구명줄 붙들듯 휴대폰을 감싸 쥔 그녀의 손이 새하얗게 질려서 부들거렸다.
‘난 이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돌아갈 거야.’
“……!”
이제는 웅얼거리는 소리로만 들리는 희미한 음성을 간신히 떠올리며, 애리얼은 휴대폰을 꽉 끌어안았다.
***
촘촘한 거미줄을 만들었다. 강철의 날개를 지녀 어디로든 날아갈 강한 새마저 문제없이 옭아맬 강력한 덫이다.
데본시아는 자신이 완성한 거미줄을 보며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당겼다.
고강도의 업무에 치이면서도 기어코 시간을 내서 술식을 쓰고 또 쓰고. 그렇게 방 안 사방과 천장, 바닥까지 가득 채운 신성 마법의 술식은 모두 역순이었다.
거꾸로 적어 내린 것들은 밖으로 뻗어 나가지 않고 내부로 향한다. 올가미가 되어 안에 든 것의 발목을 조일 것이다.
“그러니……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애리얼.”
그가 만면 가득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백작저에 있을 그녀를 향해 말했다.
***
4월이 되었다.
백작저에는 약속한 듯 황성의 차가 왔다. 애리얼은 차를 타고서 아카데미로 향했다. 처음 왔던 날처럼 분꽃나무가 흐드러진 푸른 정원에 내렸다.
제1 기숙사 동.
특권의 중심지인 그곳으로 애리얼은 하얀 교복을 입고서 들어섰다.
기숙사는 조용했다. 고위 계급인 이 기숙사의 공유자들은 여전히 바쁜 모양인지, 아무도 없었다.
애리얼은 이리저리 복도를 거닐다가 텅 빈 휴게실에 앉았다. 아무도 없어서 오히려 마음 편했다. 어차피 공략이 필요한 상대는 없다. 이대로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다.
할 일 없이 소파에 기대어 창문을 보았다. 봄이 온 정원이 오전의 햇살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곧 입학식이 시작될 것이다. 원래는 전교생이 가야 하는 자리였으나, 제1 기숙사 동의 학생은 특별히 열외가 가능했다.
그걸 이용해서 애리얼은 입학식에 빠질 생각이었다. 시선이 몰릴 것이 뻔한 자리에 백색 교복까지 입고 참석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가롭게 빈 휴게실만 지키고 있었다.
우우우웅-
상념을 깨트리는 진동 소리.
애리얼은 휴대폰을 꺼내려다 화난 것처럼 빠른 발소리를 듣고서 그만뒀다. 저쪽에서 이쪽을 찾아오는 모양이니 기다리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지. 그녀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았다.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흰 교복을 입은 스카이라였다.
애리얼은 예기치 않은 그의 등장에 놀랐으나, 그는 그녀가 여기 있는 줄 알았다는 듯 덤덤했다.
“저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인사를 하자 스카이라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손을 들고서 됐다는 듯 거부를 표했다.
“여기서까지 그렇게 굴지 마.”
“하지만…….”
“하지 말라니까.”
그가 미간을 구긴 채 명령하듯 말했다. 실제로 명령이라면 애리얼은 따라야 했다. 가만히 고개만 숙였다. 반말과 존댓말 중 무엇으로 그를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창가 옆 소파에 앉은 뒤 애리얼더러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녀가 소파에 앉자 입을 열었다.
“약혼은 없던 일로 했어. 이제 왕녀와 마주칠 일도 없을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애리얼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스카이라가 그런 애리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예전처럼 해.”
“예전처럼이라면…….”
“말도 놓고, 이름으로 부르고. 좀 친하게…….”
그는 말하다가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뺨을 붉히며 비스듬히 시선을 피했다.
애리얼은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의 하트는 네 개이고, 그는 더 공략해선 안 되는 인물이었다. 더 가까워지면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름으로 부르기는커녕 앞으로 말조차 잘 섞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애리얼은 그에게 전할 말이 있었다. 멀어지기 전에 반드시 전해야 할 이야기였다.
“저하, 그날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황성에서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번에는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얼떨결에 감사를 말했지만, 오늘은 제대로 진중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덕분에 도전자들의 목숨이 구해졌습니다. 제 주제넘은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난 그녀가 그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였다. 귀족이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였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적 보상은 이미 두 발에 채도록 많은 하등 쓸모없는 것일 테니까. 이러는 게 보다 성의를 표하는 방법임이 틀림없었다.
스카이라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애리얼을 보았다. 그래도 그녀가 표하는 감사와 경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알았어.”
그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애리얼의 표현을 진지하게 받아 준 것이다.
“일어나.”
그가 황자로서 명했다.
애리얼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슬그머니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무표정하게 있다가 애리얼과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찡그렸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아니, 화가 난 것은 맞을 것이다. 다만 그 표정에서 슬픔이 짙게 묻어나 순간 착각을 했다.
그는 화난 만큼 슬퍼하고 있었다.
애리얼은 예상하지 못한 그의 슬픔에 당황했다.
“네 부탁 따위, 다시는 듣지 않을 거야.”
스카이라가 억눌린 음성으로 한 자 한 자 뱉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듯, 애리얼이 알아주길 바라는 듯.
“그날 너를 혼자 보내 놓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내 왔는지 알아?”
“……죄, 죄송합니다.”
애리얼은 새파랗게 질린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스카이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러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릴 꺼냈어?’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해 물었다.
‘왕녀와의 약혼이 없던 일이 되면 애리얼이 당연히 예전처럼 친근히 굴어 줄 거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애초에 이름을 부르고 말을 놓게 된 것도 그의 강요 때문이 아니었던가. 애리얼은 시선을 싫어했고, 그래서 도드라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그를 상대하며 말을 놓고 친근하게 굴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을 했다.
억지로 하고 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이…….
스카이라는 그게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왕녀와 떨어지자마자 그녀가 다가오리라는 생각은 가지지 않았다. 애리얼은 저와 다르게 양심과 상식이 있는 인물이니까. 최대한 주변 눈치를 보며 움직이다가 끝내 다가오지 않겠지. 감히.
그는 무서운 기세로 애리얼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슬그머니 물러나려는 걸 잡아채 당겼다.
가벼운 몸이 쉽게도 끌려왔다. 그녀는 바짝 얼어 있었다.
“용서해 줄 테니까.”
그는 애리얼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양심이 약점이라면 그걸 이용해 주겠다.
“나랑 약혼하자.”
애리얼의 안색은 표백이라도 된 듯 핏기가 없어졌다. 꼭 유령 같았다.
오늘 그가 애리얼에게 말할 용건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는 충동적으로 그 말을 내뱉었다.
뭐, 큰 상관은 없었다. 언제가 됐든 그녀가 들어야 할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