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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 (145)화 (145/264)

저격 총. 그녀가 가장 많이 연습했던 종류.

애리얼은 익숙하게 총을 쥐었다.

좌중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총이라니! 쏠 때마다 새로 마력을 덧씌워야 하는 최악의 효율을 자랑하는 무기였다. 어지간히 뛰어난 마법사들도 사용을 기피하는 게 바로 저 총인데. 그걸, 저 편입생이.

항간에 떠도는 솔렘의 시험에 관한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실습장의 공기가 소란스럽게 달아올랐다.

반면 데본시아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싹 지워졌다. 올라가 있던 입꼬리는 어느덧 일자로 내려온 채 딱딱하게 굳었다. 싸늘한 눈빛. 멀리서도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 이상 하면 뒷감당은 알아서 하라는 듯한 시선이 애리얼을 꿰뚫었다.

그럼에도 애리얼은 총을 놓지 않았다. 그가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고서 몸을 틀었다. 그에게 반항하지 않으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만 당한다. 시험이 끝나면 끔찍한 소문에 휘말려 뒤에서 죽도록 욕만 먹을 것이다. 편법과 편애로 특례를 받은 무능력하고 약아빠진 인간 취급을 받게 되리라.

결국 아카데미에서 고립되어 데본시아에게만 매달리는 처참한 상황이 오겠지.

앞으로 일 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사양이다.

애리얼은 총을 쥔 손에 힘을 주고서 눈을 날카롭게 떴다. 총에 마력을 불어넣자 메마른 땅바닥에 새겨 둔 술식이 발동되며 과녁이 등장했다. 애리얼이 선 곳으로부터 십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백색의 원형 과녁에는 어떤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특정 부분을 노릴 필요 없이 그저 맞히기만 하면 되는 건지.

애리얼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자세를 잡았다. 총구를 과녁으로 향하고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직감한 학생들이 떠들던 목소리를 낮췄다. 실습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모두의 이목이 오직 한 사람을 향해 집중되었다.

데본시아는 무표정하게 애리얼을 주시했다. 그의 오드 아이가 싸하게 빛났다. 마지막 경고라는 듯.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애리얼은 과녁만 응시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총이 빈약한 소리를 냈다. 사격했을 때 흔히 들리는 탕, 하는 소음이 아닌 공허하고 짤막하며 알맹이 없는 소음이었다.

애리얼의 눈이 충격에 물들었다. 이윽고 당황스러운 감정에 잠식되어 파르르 진동했다.

탄환이 쏘아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렁찬 사격음 대신 빈총의 작동 소리만 겨우 들렸다.

‘총이 잘못된 건가?’

애리얼은 애써 침착을 유지하고서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마력탄은 나가지 않고 또 공허한 소음만 울렸다.

‘총이 아니라 마력이 문제인가?’

애리얼은 마력의 출력을 높이며 다시 침착하게 사격을 준비했다.

철컥.

나가지 않는다. 애써 침착하던 그녀의 표정이 빠르게 무너졌다.

철컥, 철컥, 철컥.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으나 텅 빈 소음만 작렬하며 아무것도 나가지 않았다.

고요히 숨을 죽이던 시험의 관람객들이 하나둘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혹한 애리얼은 총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디를 확인해도 이렇다 할 문제점은 없었다. 그녀가 보내는 마력을 잘 흡수하고 있는 것만 보였다.

그런데도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탄환으로 모인 마력이 방아쇠의 작동에 반응하지 않았다.

고화력의 마법을 보리라 기대하던 이들의 눈이 빠르게 실망을 담았다. 호기심 가득하던 눈에 의심의 기색이 차올랐다. 좌중이 시끄럽게 웅성댔다. 혹시 재능이 없나. 총은 그냥 잡은 건가. 그냥 허세였나. 애리얼의 총이 침묵할수록 하나둘 비난이 섞여 들고, 악담이 되어 퍼져 나갔다.

애리얼이 그럴듯한 재능을 보이지 못하자, 그녀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순식간에 칼날이 되었다.

처음에는 뭐가 잘못되었나, 갸웃거리며 보던 이들도 점차 입에 비웃음을 걸치고 눈에 멸시를 담았다. 드문드문 야유 소리마저 들려왔다.

데본시아는 그들을 조금도 제지하지 않았다. 함부로 비난하고 야유하는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당장은 내버려 뒀다. 애리얼이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좋았다. 그래야 그녀에게 이 아카데미 생활이 끔찍해질 테니까. 그리하여 갈 곳이 없어진 그녀가 그 상황을 타개할 최고 권력자인 자신을 찾게 될 테니까.

그런 까닭에 그는 애리얼의 시험을 공개적으로 진행했다. 준비된 무기들에는 하나같이 술식을 걸어 두었다. 애리얼이 경고를 무시하고 공격술을 쓰려고 해도 무기의 위력이 발동될 수 없게 조처를 해 뒀다. 방출되는 마력에는 반응하지 않고, 오로지 흡수되어 되돌아가는 마력에만 반응해 움직이도록. 술식을 역순으로 걸어 두었다.

브레이슬릿 때문에 마력의 흡수가 불가능한 애리얼은 오늘 준비된 무기를 쓸 수 없었다.

탄환을 쏘아 내지 못하는 그녀에게로 도를 넘은 비난의 말들이 수군거리며 쏟아졌다.

그녀의 추천인인 황태자가 침묵하자 야유는 더 심해졌다.

애리얼이 희게 질린 낯으로 식은땀까지 흘리는 듯 보였으나, 그는 여전히 좌중을 제지할 생각이 없었다. 서늘하게 식은 얼굴로 섬뜩한 분위기만 뿜어냈다.

‘감히 공격술을 쓰려고 한 벌이야, 애리얼.’

데본시아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객석 아래, 계단 옆에서 애리얼의 시험을 관람하던 레이신은 미간을 구겼다. 웃음거리가 된 그녀를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저 위에서 소음을 뿌리는 관객들에게 살의가 치민다.

‘심하게 떠들어 대는 몇 명만 본보기로 손볼까.’

팔짱을 끼고서 벽에 기댄 레이신의 눈이 위태롭게 희번덕거렸다. 제일 심한 소리를 해 대는 한 명을 잡아서 이를 몇 개 뽑아 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겁먹고 입을 닫을 텐데.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간 애리얼의 입지만 더 나빠진다. 나중에 뒤로 끌고 가서 하면 몰라도 결국 당장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옅게 하늘빛이 도는 결계만 훑어보았다. 스카이라의 마력이 느껴지는 결계였다. 결계에 특출 난 그가 친 결계이니 데본시아도 깨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야 무슨 일이 있을 때 애리얼의 곁으로 난입하는 것도 어렵다.

아무 일 없길 바라지만 그럴 리는 없을 테니…….

철컥, 철컥.

총에서는 공허한 소리만 반복되고 있었다. 마력은 이미 넘칠 정도로 쏟아부었는데.

애리얼은 너무 세게 힘을 줘 희게 질린 손끝을 잠시 방아쇠에서 뗐다. 당황하여 과한 긴장감에 내몰렸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실습장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난무했다. 결계로 한 번 걸렀음에도 크게 들렸다. 그녀를 향한 비난과 야유였다.

그 한중간에 홀로 놓인 애리얼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될 것을 각오해서인지, 아니면 현실감이 없는 건지. 정신이 빠진 듯 멍한 눈으로 발코니석을 올려다보았다. 싸늘한 표정의 데본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감정한 두 눈을 부드럽게 휘며 비웃는 듯한 눈웃음을 보냈다.

그러게 그러지 말았어야지, 하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애리얼의 공허하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불합리함을 깨달았다. 그녀는 증명할 능력이 있음에도 데본시아에 의해 막히고 야유를 들어야 했다. 오늘이 지나면 이런 꼴을 보이고도 퇴학당하지 않아 손가락질을 받으며 아카데미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솔렘에서의 불합리한 시험이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그건 애리얼이 먼저 요구하고 원하기라도 했지, 지금의 이 시험은 그녀가 원한 것도 아니었다.

애리얼은 화가 났다.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부당하게 욕을 먹으며 원하지도 않는 특혜를 누려야 하는 게, 염증이 났다. 그녀는 탄환이 쏘아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오기로 총을 쥐었다. 데본시아에게서 눈을 돌리고 과녁을 노려보며 다시금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탄환이 나가든 말든, 애리얼은 입술을 깨물고 차갑게 굳은 얼굴로 과녁을 겨누고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분노하여 끝을 모르고 마력을 불려 총 안에 불어넣었다. 안 나가면 나갈 때까지.

그렇게 쏟아부은 그녀의 마력은 어느새 실습장의 좌중마저 느낄 정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멀스멀 차오르는 기이한 마력의 기운에 야유하던 소음이 잠시 주춤거렸다. 실습장의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어느새 소음이 잦아들고 관객들은 다시금 호기심을 지니고서 애리얼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분노로 고조된 애리얼은 주변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과녁에만 집중해 화풀이하듯 마력을 쏟아 냈다.

두 배, 다섯 배, 열 배, 스무 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데본시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곱절로 불어나는 마력에 그녀의 손목에 감긴 브레이슬릿이 비명을 지르듯 쩌저적 소리를 냈다. 솔렘의 시험에서 미세하게 금이 갔던 부분이 버티지 못하고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길게 선을 만들며, 쩌억, 갈라졌다.

철컥, 절그럭, 절그럭.

어느 순간 방아쇠가 뻑뻑해지며 힘겨운 소리를 냈다. 우지직, 부서지는 듯한 소음에 애리얼은 눈을 돌렸다. 브레이슬릿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력의 임계치를 넘은 총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얼금얼금 금이 가 있었다. 길게 갈라진 틈새로 검푸른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다.

애리얼은 고개를 갸웃하며 총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코에서 주르르 미지근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코를 훔쳐 내자 붉은 피가 묻어났다. 마력의 과부하로 인해 나타나는 신체 현상이었다.

“왜……?”

그녀가 어리둥절해하며 내뱉었다. 무슨 일이지. 상황을 파악하려 눈동자를 굴리는데 왼 손목에서 무언가 조각나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결계 안으로 뛰어 들어와 외쳤다.

“빨리 총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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