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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 (146)화 (146/264)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결계 안으로 진입한 인물의 하얀 교복, 반짝이는 금발이 보였다. 두 눈동자는 푸른 빛으로 나란히 선연하게 빛났다.

데본시아가 아니다. 스카이라다.

애리얼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인식하자마자 총을 던져 버렸다. 던져진 총은 바닥에 떨어지기까지도 버티지 못했다. 마도구로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마력에 노출되어 겉면이 붕괴되었다. 공중에서 산산조각 난 총의 잔해 사이로 검푸른 마력 덩어리가 빛났다.

그걸 포착한 스카이라가 다급히 애리얼에게로 손을 뻗었다. 애리얼은 제 앞으로 다가온 그의 손을 본능적으로 붙잡았다. 곧장 그의 품으로 당겨졌다.

잔해마저 분해된, 총이었던 것의 잔재 아래 뭉쳐져 있던 마력 덩어리가 빛났다. 위험하게 발광하며 급격히 팽창했다. 그 마력의 압박에 스카이라의 결계가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다. 정확하게는 스카이라가 결계를 거둔 것에 가까웠다.

애리얼을 보호할 새 결계를 치기 위함이었다.

“이런…….”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은 데본시아가 급하게 손을 휘둘렀다. 새하얀 마력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실습장을 감쌌다.

콰앙! 쾅!

순간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점멸하더니 이윽고 스파크가 터지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굉음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다. 객석은 순간적으로 침묵에 휩싸였다.

그러길 한차례, 뒤늦게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실습장 바닥에서부터 피어나 하늘까지 치솟을 듯 일어난 검푸른 불꽃이 너울처럼 넘실거렸다.

모인 이들은 학생이고 교수고 할 것 없이 넋을 잃고 떨었다.

다행히 폭발의 여파는 객석으로 미치지 않았다. 은색으로 빛나는 반투명한 결계가 객석을 보호했다. 데본시아가 친 결계였다.

그러나 아직 안도할 단계는 아니었다. 결계로 분리된 안쪽에는 애리얼과 중간에 난입한 스카이라가 있었다.

거대한 폭발로 실습장의 분위기는 얼어 있었다.

폭발의 기세가 조금 잦아들자 데본시아는 발코니석에서 뛰어내렸다. 위험하다며 달려오는 호위들의 외침이 들렸으나 무시했다. 흙바닥에 발을 디디고 결계를 통과해 이글대는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강력한 방어술을 두른 데본시아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데본시아가 들어가자 반투명하던 결계가 완전히 불투명하게 바뀌어 외부의 시야를 차단했다.

내부는 뜨거웠다. 폭발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탓이었다.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불과 그 불이 자아내는 일렁임 때문에 공간이 여기저기 일그러져 보였다. 이래서야 뭘 제대로 볼 수가 있나. 투덜거린 그가 진화 마법을 썼다. 검푸른 불꽃이 그의 힘에 눌려 사그라졌다. 서서히 온도가 떨어졌다.

데본시아는 차츰 사그라지는 폭발의 여파를 헤치고 애리얼이 있었던 자리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있어야 할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트는데, 콰직, 무언가 밟혔다. 그는 걸음을 물리고 밟은 것을 확인했다.

조각조각 깨진 검은색의 잔해물. 그 조각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에 데본시아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곧 눈썹을 찡그리며 잔해물을 짓눌러 밟고서 걸음을 옮겼다.

브레이슬릿이 깨졌다.

상황으로 보아 애리얼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다쳤을 가능성이 크다.

열기가 사그라진 결계 내부에서 그는 오래지 않아 애리얼과 그녀를 안고 있는 실루엣을 포착했다. 휙휙, 잔여 불꽃을 지우며 빠르게 다가가 그 실루엣의 앞길을 막았다.

허술하게 대충 갖춰 입은 교복과 길게 늘어뜨린 땋은 머리, 짙은 피부색. 데본시아를 보고서 걸음을 멈춘 그는 한쪽 팔로 기절한 애리얼을 옆구리에 끼워 안고, 반대쪽 어깨에는 피투성이가 된 스카이라를 둘러메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어, 레이.”

데본시아가 곱게 가자는 식으로 웃으며 말을 건넸다. 레이신은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아까 첫 번째 결계가 깨졌을 때.”

“그사이에 들어온 거야? 빠르네.”

“…….”

“그건 뭐, 됐고. 좀 도와줄까?”

데본시아는 노골적으로 애리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동작에 반응해 레이신이 빠르게 물러났다.

“결계 풀어.”

레이신은 데본시아를 노골적으로 경계하며 말했다. 친우가 아닌 위험인물 취급이었다. 그런데도 데본시아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웃음기를 유지했다.

“왜?”

“……풀어야 나가잖아?”

“그러니까 왜 풀어야 하냐고.”

데본시아는 여전히 산뜻한 미소를 유지하고서 말했다. 억지로 가면과 같은 웃음을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그 탓에 레이신의 경계심만 더 높아졌다.

지금 데본시아는 이성적인 척하고 있을 뿐, 이성적이지 않았다.

레이신은 최대한 침착하게 거리를 벌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다쳤어. 치료하러 갈 거니까 풀어.”

“애리얼이 다쳤어?”

“네 동생이 크게 다쳤어.”

“알고 있어.”

“그러니까 결계 풀어.”

그렇게 말하자 데본시아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설득 방법이 잘못됐어, 레이.”

“…….”

“차라리 애리얼이 다쳤다고 말했어야지. 설령 거짓이더라도 그게 더 잘 먹혔을 텐데.”

“…….”

“넌 사람 다루는 법을 너무 몰라.”

“결계 풀어.”

레이신이 뚝심 있게 같은 말만 반복하자 데본시아는 순간적으로 미소를 싹 지웠다. 정말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스치듯 짓더니,

“내가 왜?”

비꼬는 투로 툭 내뱉고는 레이신을 향해 순식간에 접근했다. 레이신은 코앞까지 다가온 데본시아를 보고서 황급히 물러나다가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순간 이동을 시도했다. 괴물 같은 반사 신경과 태생적으로 빠른 판단 능력 덕분에, 레이신은 붙잡히기 전에 가까스로 순간 이동에 성공했다.

데본시아의 손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공기가 불쾌했다.

그는 픽,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손을 거뒀다.

주변은 고요했다. 불길도 대부분 가라앉았고 열기도 가셨다. 바닥에는 시커먼 그을음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특별히 위험할 건 없었다.

데본시아는 결계를 해제하고서 천천히 실습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실습장에 모인 전교생은 불투명한 은색 결계가 사라지고서 등장한 황태자의 모습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황태자의 보좌관과 호위들이 부리나케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보좌관, 제라온이 나서서 그를 살폈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서 있다가 제라온은 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거 보이지?”

제라온이 그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폭발에 휘말려서 온통 그을리고 재가 된 자리에 유일하게 남은 물체. 애리얼이 조준했던 과녁이었다.

제라온의 눈동자가 커졌다. 놀라 벌어진 입이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뻐금거리기만 했다.

과녁은 조금의 여백도 없이 새카만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오싹함을 자아냈다. 공간에 균열이라도 난 듯했다.

닿은 마력이 놀랍도록 고순도였으며 압도적인 화력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색이었다.

관객들을 처참한 폭발 이후 나타난 완연한 흑색의 과녁에 전율했다.

과녁을 보고도 놀라지 않은 인물은 데본시아뿐이었다.

“송화기 가져와서 결과 발표하고, 수습해.”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제라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실습장을 빠져나갔다.

황태자가 떠나자 놀란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제라온은 얼른 송화기를 준비하고서 상황을 수습했다.

허클리 백작 공녀가 능력 부족으로 구설에 휘말리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대신 어떤 종류든 소문에는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능력 부족보다 더 나쁜 구설에 오를지도 모른다.

***

레이신은 코피를 쏟으며 잔디밭에 무릎을 꿇었다. 순간 이동은 정말이지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아무리 두 명을 데리고 이동했다지만, 고작 한 번 사용한 것만으로도 마력 과부하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흐르는 피를 닦지도 못한 채 애리얼과 스카이라를 데리고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시녀들이 기겁을 하고 달려왔다. 레이신은 무심한 얼굴로 치료실의 위치를 묻고는 기절한 둘을 직접 옮겼다.

의사가 진찰을 하고, 치료술은 레이신이 직접 했다. 그가 치료술을 썩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마법사보다는 그의 마력을 쓰는 게 효과가 뛰어났다.

레이신은 대충 치료를 끝내고 난 뒤 의사와 시녀를 내보냈다. 그러고서 홀로 병실을 지켰다.

둘 중에 먼저 눈을 뜬 것은 스카이라였다. 상태는 애리얼보다 그가 훨씬 심했지만, 기본 체력이 월등했기에 회복이 더 빨랐다.

간신히 눈을 뜬 스카이라가 옅게 신음하며 이마를 짚었다.

“더럽게 못 고치네.”

꽉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레이신은 애리얼 쪽만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한다고 한 거야.”

“머리가 깨질 거 같아.”

“치료 마법사라도 새로 불러 줘?”

“됐어.”

스카이라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은 일어나자마자 애리얼부터 찾았다. 핏자국조차 제대로 닦지 못한 몰골을 하고서도 애리얼을 먼저 챙기는 모양새였다.

맞은편 침대에 누운 애리얼은 새근새근 잠들어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스카이라는 그녀의 잠든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레이신에게 넌지시 물었다.

“다쳤었어?”

“마력 과부하 반응이 좀 심하게 왔어.”

“지금은 괜찮은 거야?”

“아마도.”

“아마도는 무슨. 네 치료술 수준을 보니까 안 괜찮겠는데.”

스카이라는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칼을 헝클어 넘기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레이신은 그를 보고서 무심히 말했다.

“넌 많이 다쳤었어. 적어도 일주일은 무리하지 말고 있으라던데.”

“알았어.”

스카이라는 대충 대답하고서 애리얼을 향해 갔다. 상체를 숙이고서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다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고는 조용히 마력을 불어넣었다. 매우 상냥하고 섬세한 치료술이었다.

제 마력도 부족할 텐데, 과용이다.

레이신이 의사의 소견을 떠올리며 그에게 경고했다.

“너, 마력 쓰면 안 돼.”

“신경 꺼.”

“난 하지 말라고 전했다.”

그 한마디만 던지고서 레이신은 까칠하게 나오는 스카이라를 그냥 두고 보았다.

결국 스카이라는 코피도 모자라 토혈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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