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으로 돌아온 데본시아는 피투성이로 기절한 상태인 스카이라와 레이신, 렉시우스를 각각의 방에 격리한 뒤 결계를 펴고는 제 수족을 불러 모았다.
중단된 연회를 수습한 미카엘과 중앙관의 출입을 막고 주변을 입막음하던 시에나와 메이지가 동시에 호출되어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시에나, 중정과 지하 성소를 정리해.”
“예.”
“미카엘, 넌 무하 공자를 반역죄로 수배해.”
그 명령에 제라온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낯을 굳혔다.
고위 계급, 그것도 3대 공작가의 후계를 수배. 제국이 뒤집힐 일이다.
그러나 감히 황제에게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수긍하는 수밖에는 없다.
“예.”
“그리고 메이지, 너는 여기를 지켜. 황자, 솔렘 공자, 크레시앙 공자, 누구든 정신을 차리면 바로 보고를 올려.”
“예.”
각각 명을 받은 황제의 수족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물러갔다.
그런 뒤 데본시아는 곧장 애리얼을 가두어 둔 장소로 향했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데, 그냥 여기서 살아.”
스카이라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돌아갈 수 없다니, 제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을 알아서 한 말일까.
그 말은 분명히 제가 엔딩을 맞은 이후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언제 들은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기억은 엔딩의 뒷부분이 잘려 있었다. 분명 엔딩을 맞고서 성공한 후에 뭔가 더 일이 있었을 텐데. 조건을 만족하고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끊겨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 기억이 필요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기억을 주려는 듯 휴대폰이 연달아 계속 울렸다.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꺼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짓누른 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방해하는가. 누구였지.
왜 실패했지.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엉켰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나의 비.”
하얀 꽃잎이 날리던 약혼식.
여느 때와 다르게 종처럼 울리던 휴대폰.
그녀는 성공했다. 분명히 그랬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기억도 되찾지 못했다. 그 이후의 기억조차 없다.
왜 돌아가지 못했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데, 그냥 여기서 살아.”
그냥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없는데, 그냥…….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끝없이 반복된다.
가위에 눌리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우우우웅-
휴대폰을 빨리 집어야 하는데…….
우우우웅-
빨리!
손끝을 움찔거렸다.
의식을 잠식해 오는 졸음을 필사적으로 밀어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에 억지로 힘을 줬다.
일어나!
움직여!
우우우웅-
빨리 휴대폰을 들어!
우우우웅-
손가락이 움찔 오므라드는 동시에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일어났다.
애리얼은 어두컴컴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꿈이 아니다.
급히 상체를 일으키고서 주머니 속에서 요란하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이 켜지고 새로운 창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진엔딩으로 진입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갑작스럽게 다가온 진실의 순간이었다.
휴대폰을 쥔 손가락이 떨려 왔다.
고대하던 순간이었음에도 두려웠다.
감당할 수 있나.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일까.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데, 그냥 여기서 살아.”
스카이라의 음성이 그녀를 만류하듯 재차 울렸다.
악몽을 꾸게 만든 그 목소리가 그녀에게 애원하듯이…….
『네』
손가락이 움직여 화면을 꾹 눌렀다.
어차피 돌아갈 수 없다. 그냥 여기서 살아라.
그가 그렇게 말했던 이유.
그 진실을 알고 싶었다.
화면이 하얗게 빛났다.
“……아!”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 ……아! ……가! ……! 얼른!”
점차 선명하게 재생된다.
“죽기 전에 가! 너라도! 얼른!”
햇살에 드러난 도로. 까마득한 빌딩 외벽에 비치는 도시의 모습. 누군가와 정답게 말을 나누는 짧은 순간.
그리고 이어지는 끔찍한 굉음.
무언가 타는 냄새.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콰앙!
부서질 듯이 문이 열렸다. 데본시아가 격앙된 표정으로, 흐트러진 호흡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녀를 찾았다.
“애리얼!”
그가 다급하게 뛰어와 애리얼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빌어먹을 이 도구의 화면은 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검은 화면을 사납게 노려보다가 애리얼을 살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사선을 그린 시선이 빈 침대 시트로 뚝 떨어졌다. 이곳과는 먼 어딘가를 보듯이 눈동자의 초점이 흐릿했다.
“……애리얼?”
그는 불안에 잠긴 얼굴로 애리얼의 뺨을 감싸 쥐고서 마주 앉았다.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상체를 숙였다. 필사적이었다.
“무슨 일이야, 애리얼. 왜 그래?”
“아빠…….”
애리얼이 중얼거렸다. 데본시아는 여유가 완전히 사라진 얼굴로 물었다.
“뭐라고, 애리얼?”
“계속 날 부르던 사람.”
“…….”
“그거…… 우리 아빠였어요.”
나한테 손 내밀던 사람. 마디가 거친 손가락. 잡고 싶었던 손.
“그건 나한테 내민 게 아니라 날 밀어내던 거였어요.”
흑연과 같은 색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주룩, 흘러내리며 흰 뺨을 적셨다. 어느새 물기가 입술에 닿아 고였다. 덜덜 떨리는 입술이 눈물을 머금고 깨달은 진실을 토해 냈다.
“우리 아빠…… 죽어 가고 있었어요.”
“…….”
“당신 때문이야.”
그녀가 답을 말한 순간, 그의 손이 그녀의 눈을 덮었다.
그대로 그녀의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데본시아는 그녀를 부드럽게 받아 눕혔다. 다시 이불을 덮어 주고는 그녀의 눈을 가렸던 손을 떼 냈다.
환각술로 억지로 재운 그녀의 눈꺼풀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덜컥 숨이 막혀 왔다.
데본시아는 희게 질린 얼굴로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숨결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고동을 확인했다. 살아 있다. 겨우 안심한 그는 저리는 가슴팍을 부여잡고서 그녀의 곁에 누웠다.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
“내가, 기억하지 말라고 했잖아.”
기억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했잖아.
늘 우아하고 여유롭던 그의 음성이 불안하기 짝이 없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애리얼.
나는 널 어쩌면 좋을까.
그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널 가지려면, 나는 대체 뭘 더 어떻게…….
***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그가 그녀를 알게 된 이래의 모든 순간이 문제였다.
처음 그녀의 존재를 알고, 흥미를 느끼고, 의식하고, 굴종시키려 혈안이 되고, 그리하여 전부 부수고 그녀를 제 곁으로 끌어왔던 그 순간부터, 죄의 시작이었다.
널 데려오려면 죄를 저질러야 했고,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널 데려올 수 없었다.
***
여기 최초의 이야기가 있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된 첫 출발점.
소문.
신성 마법사에 관한 소문.
제국에는 두 명의 신성 마법사가 있다.
어디선가부터 그런 소문이 떠돌았다.
신성 마법사는 그 고결하며 고압적인 마력의 특징 탓에 탄생할 때 동시대의 다른 마력을 억누르며 태어났다. 그리하여 마법사들은 신성 마법 등급의 마력을 정점에 서기 위해 군림하는 힘이라 일컬었다.
그 탓에 신성 마법사의 탄생 전후 천 년간은 신성 마법사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신성 마법사는 동시대에 둘이 존재할 수 없는데, 그런데도 그런 소문이 돌았다.
제국의 황태자인 데본시아 본 엘리오스 르블레탄은 그 소문이 매우 불쾌했다.
그는 제국 역사에 단 두 명뿐인 신성 마법사 중 하나로 태어났으며, 그걸 아주 만족스럽게 여겼다. 역사에서 유이하고, 현재에는 유일한 신성 마법사. 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가.
과거에 있었기에 대중은 신성 마법사의 존재를 미지의 것으로 두려워하지 않았고, 현재에는 유일했기에 그를 우러르고 숭배했다.
그런데 제국에 신성 마법사가 둘이라니.
그의 위상에 해가 되는 소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소문의 온상을 파헤쳤다.
대체 어디서 이따위 허무맹랑한 소문이 퍼지는가.
사람을 풀었고, 그 사람들은 정보를 구해 어느 백작저에 다다랐다.
남편과 사별한 백작이 어린 딸을 두고 살고 있는, 무덤처럼 조용한 곳. 허클리 백작가.
‘이딴 데에 신성 마법사가 있다고?’
데본시아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감춘 채 가짜 웃음을 지으며 백작가 저택으로 들어서서 그 일원들을 살폈다.
백작가는 별 볼 일 없었다.
백작이고 사용인이고 제대로 된 마력을 지닌 인물조차 없었다. 뒷조사로 허클리 백작의 자매인 클라우스 백작 부인의 딸이 상당히 뛰어난 마법사라는 걸 알았지만, 그 딸도 신성 마법사는 아니었다.
역시 헛소문이었던 건가.
픽, 코웃음을 치며 떠나려는데, 문득 백작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황태자 전하, 위대하신 신성 마법사인 당신께서 꼭 봐 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백작이 간절히 청했다.
데본시아는 흥미를 느끼고 물었다.
“그게 뭐지?”
“제 딸입니다.”
백작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제 딸을 봐 주십사 아뢰었다.
그제야 데본시아는 백작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백작저에 위장하고 숨은 인간이 있을까 봐 강대한 마력으로 추적을 펼쳤음에도 그가 인지하지 못한 존재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 뒤통수가 후려쳐진 기분이었다.
허클리 백작의 딸.
그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존재여도 문제였고, 그가 인지조차 못 할 정도로 미약한 존재여도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그의 마력 추적을 벗어난 예외의 존재라는 의미니까.
“딸은 어디에 있지?”
데본시아가 물었다. 백작은 바닥에서 일어나 딸의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 2층 복도에 있는 담갈색의 문을 열자 침대에 가만히 앉은 백작의 딸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입력된 기계처럼 반응하는 백작의 딸. 인형 눈알 같은 텅 빈 검은색 눈동자와 마주하고서 그는 깨달았다.
눈앞의 이는 혼에 결손이 있다.
응당 갖추어야 할 영혼을 잃어 인간으로도 시체로도 볼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그의 마력에도 포착되지 않은 것이었다. 인간도 뭣도 아닌 미완성의 존재이니까.
“언제부터 이랬지?”
“태어날 때부터 이랬습니다.”
백작이 설명했다.
날 때부터 그녀는 외부에 반응을 거의 하지 않았고, 커서도 인사를 비롯한 최소한의 의사소통만 가능했으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입력된 일만을 수행하는 기계처럼 자의식이 없었다고.
“의사를 부르고 마법사를 불러도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제국의 신성 마법사이신 황태자 전하께선 제 딸아이의 문제를 알아봐 주시지 않으실까 하여…….”
백작이 빌었다.
“부디 딸아이를 구해 주세요.”
바닥에 이마를 댈 정도로 처절하게 빌었다.
아무리 하급 귀족이라도 백작은 엄연한 귀족이었다. 그런 귀족이 노예와 같을 정도로 몸을 숙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아무리 황족의 앞이라도 무릎을 바닥에 대는 정도지 이마를 대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만큼 간절한 건가.
남편이 죽고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라서 그런가.
데본시아는 그런 가족애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백작의 딸이라는 저 묘한 존재에는 흥미를 느꼈다.
데본시아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텅 빈 포대 자루같이 앉아 있는 그녀를 뚫어지게 보았다.
이것에게서는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산송장도 아니고 신성 마법사가 이곳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을까.
이것의 몸에 깃들어야 했을 마력이 혼과 함께 어디론가 가 버리기라도 한 건가.
그는 궁금해졌다.
이것의 영혼은 어디로 간 걸까.
“이것은 영혼이 없다.”
데본시아가 건조하게 말했다.
백작은 바닥에 고개를 숙인 자세 그대로 굳었다.
“그 말씀은…….”
“그러니, 내가 엉뚱한 곳을 맴돌고 있을 이것의 영혼을 구제해 오도록 하지.”
“가, 감사합…… 감사합니다!”
석상 같던 백작이 바닥에 엎드린 채로 눈물을 흘렸다.
데본시아의 나이가 열다섯이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