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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당하면 파멸합니다 (249)화 (237/264)

가증스러운 개소리에 애리얼은 주먹을 꽉 말아 쥐고서 이를 깨물었다. 그를 향한 분노가 온몸을 벌벌 떨리게 했다.

“이 개새끼!”

족쇄를 내려다보던 눈을 치떠 그를 쏘아보았다.

침대 앞에 선 그가 컵을 느릿하게 기울이며 입꼬리를 휘었다.

“개새끼가 주는 것도 잘 마시고, 우리 애리얼은 마음이 넓네.”

유리컵에서 물줄기가 쪼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를 농락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애리얼은 치뜬 눈으로 마력을 방사하려고 안달을 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새로 걸린 브레이슬릿은 이전에 그가 걸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그는 컵에 이어 물병까지 기울여 남은 물을 다 쏟아 내곤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맹렬한 시선을 느낀 그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혹시 더 마시고 싶었어?”

“…….”

“근데 어쩌지. 네가 더 마시기 싫은 줄 알고 다 버렸는데.”

“…….”

“넌 이제 물도 내가 줘야 마실 수 있고, 나가는 것도 내가 허락해야 할 수 있는 처지네, 애리얼.”

“왜 날 데려왔어요.”

애리얼은 그의 도발을 가뿐히 넘기며 날카롭게 질문했다.

데본시아는 잠시 멈칫하는 기색을 보이며 다리를 꼬았다. 천천히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고 양손을 깍지 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사랑해서.”

그가 답했다.

그 같잖은 대답에 화가 뻗친 애리얼이 손을 휘둘러 테이블에 놓인 병을 세게 쳤다.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유리컵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부서졌다.

애리얼은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손끝을 덜덜 떨며 씨근거리다 소리를 질렀다.

“왜 나를 이 세계에 끌고 왔냐고!”

가구가 거의 없는 커다란 방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데본시아는 미동도 없이 그녀를 보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화내.”

“…….”

“나한테 따지고 묻고 때리고, 폭력적으로라도 분출해.”

“딴소리하지 말고 대답해!”

애리얼이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분노로 꽉 오므린 두 주먹이 희게 질려 있었다.

데본시아는 미소를 거두고서 진지한 기색을 띠었다. 사실 아까부터 진지했지만, 웃고 있으면 그녀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아서 일부러 표정을 지웠다.

“긴 설명이나 사연은 바라지도 않을 테고, 그냥 단순히 설명할게.”

“…….”

“네가 신기했어.”

“…….”

“원래 여기서 태어났어야 할 혼이 다른 차원 너머에 있는 걸 보니까, 신기했어. 그래서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

“그게 다예요?”

“내 감정을 더 듣고 싶은 거야?”

그렇게 묻자 애리얼은 입을 다물었다. 그를 보는 두 눈에 원망과 체념이 깃들었다.

더 대화하고 싶지 않은 건가.

그녀가 입을 다물 것이라 판단한 그가 천천히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카논……. 제 하녀는 괜찮은가요?”

이 상황에서도 제 사람은 끔찍하게 챙기는구나.

질투를 느낀 그가 모난 소리를 뱉었다.

“인질로 계속 쓰일 텐데, 당연히 괜찮아야지. 걱정하지 마.”

날 선 비아냥거림이었다. 허튼짓하지 말라는 협박이었다. 그래서 애리얼은 오히려 안심했다. 인질이기에 안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하나다.

애리얼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처럼 눈을 내리깔고서 물었다.

“이제 날 어쩔 거예요?”

“글쎄…….”

그가 자신도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난 널 어쩌고 싶을까.”

데본시아의 오드 아이가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고작 그 시선에도 그녀는 숨이 막혔다. 다리는 족쇄에 결박당하고, 마력은 브레이슬릿에 봉쇄당했다. 애리얼은 제 무방비함을 깨닫고 떨었다. 숨길 길 없이 경계심과 두려움을 드러내며 어깨를 움츠리자, 그가 피식 웃으며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주는 거 잘 먹고, 잘 자고, 아프지 말고, 잘 있어.”

그는 상냥하게 당부하고는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애리얼은 제게 입혀진 옷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혹시나 그가 가져갔을까 걱정했던 것이 우습게도 휴대폰이 곱게 들어 있었다. 기억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 집에 가기 위해 필요한 것. 그러나 이제는 쓸모없어진 것…….

이제는 더 이상 이게 필요 없다는 걸, 그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애리얼은 휴대폰의 까만 화면을 바라보며 손가락에 힘을 주더니 그대로 팔을 휘둘러 던져 버렸다. 벽에 맞은 휴대폰이 쾅 소리를 내고는 딱딱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런데도 액정에는 실금 한 줄 가지 않았다.

저건 휴대폰이 아니었다.

애리얼은 깨달았다.

저건 마력으로 발현된 그녀의 미련이었다.

휴대폰에 떠올랐던 시스템 창, 게임이라 여겼던 호감도니 위치니 하던 것도 그냥 현실 도피의 결정체에 불과한 거였다. 엔딩의 조건이 어려웠던 것도, 쓸데없이 위험한 페널티가 나왔던 것도, 전부 현실 도피였다. 차라리 실패하거나 죽는 게 낫다는 무의식의 반영이었다. 집으로는 애초에 보내줄 수 없는 장치였다.

휴대폰은 그저 기억을 지우고 이상한 상황을 강제할 뿐이었다.

단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가족이 죽었다는 걸…… 애써 부정하는 처절하고도 불쌍한 합리화에 불과했으니까.

애리얼은 울었다.

더는 모른 체할 수 없는 현실에 시트를 쥐고서 웅크린 채 오열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전부 죽어서 없었다.

***

“……아!”

아빠의 목소리였다.

“……아! 얼른 나가!”

고함을 치며 그녀를 밀어내는 아빠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힘없이 차창 밖으로 늘어진 엄마의 팔에는 피가 흥건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러나 엄마, 아빠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가지 않을 거였다.

그러고 싶었다.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아빠의 손이 멀어졌다.

파괴적인 힘에 붙들린 그녀는 부모를 두고 무력하게 끌려갔다.

그렇게 기억이 소각되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에 남아 있던 휴대폰은 그녀의 강렬한 열망을 받아 그녀를 희망 고문 하는 마도구가 되었다.

애리얼은 유일한 이정표인 휴대폰을 착실히 따랐다.

그리하여 끝내 진실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버틸 수 없어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데본시아가 그녀의 죽음을 용납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회귀하는 데본시아의 탓에 그녀는 몇 번이고 희망 고문에 몸부림치고, 그러다 마지막에는 결국 자살로 끝나는 시간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녀는 제 가족이 죽은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제 가족을 죽게 만든 인간이 있는 세계에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이쪽도 저쪽도 전부 지옥이었다.

죽고 싶어.

그 생각만 반복하며 또다시 같은 결말을 반복하려던 때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칼을 빼앗으며 스카이라가 난입했다.

“이게 무슨 짓거리야!”

그가 귀청이 떨어지도록 고함을 쳤다.

애리얼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분노를 보이는 그의 격한 반응이 귀찮기만 했다. 무시로 일관하고 있으니 그가 초조한 듯 질문을 쏟아 냈다.

“왜 이러는데? 무슨 일 있었어? 누가 너 괴롭혀? 데본시아가 너한테 뭐라도…….”

“애리얼.”

바쁘게 묻는 스카이라의 음성을 끊어 내며 데본시아가 나타났다.

애리얼은 반사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죽음만 바라는 이 상황에마저 황태자라는 원수의 얼굴은 그녀에게 격정을 일으켰다. 분노, 혐오, 증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떠올라 애리얼은 눈을 감았다.

지쳤다.

죽고 싶었다.

그 생각밖에는 나지 않는데, 데본시아가 있으면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걸 알아서…….

“어디 아파?”

스카이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애리얼은 감았던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를 보았다.

이 인간은 왜 여기 있을까.

분명 그녀의 탈출 조건은 모두의 호감도를 하트 한 개 이상으로 만들어 적당히 관계만 유지하는 거였다. 대신 말을 걸어도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져야 하는 게 세부 조건이었다. 그래서 스카이라와는 딱히 친구도 아닌데.

“불편한 데 있으면 말해. 치료술이라도 써 줄 테니까…….”

“저하께서 왜요?”

애리얼의 다소 냉담한 물음에 스카이라는 발끈한 기색으로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해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왜 그녀에게 이토록 마음을 쓰며 걱정하는 것인가. 딱히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그가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풍기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데본시아는 묘한 눈길로 둘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롱 같은 웃음소리에 스카이라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데본시아를 흘겼다. 데본시아는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그 시선에 대응했다.

“애리얼의 말대로네. 스카이라, 네가 왜 애리얼한테 친절을 보여?”

그러는 너는. 스카이라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뱉지는 않았다. 데본시아가 딱히 애리얼에게 친절을 보인 것도 아니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애리얼을 걱정하고 구태여 친절을 베풀지 못해 안달인 것은 그뿐이었다.

스카이라는 몸을 휙 돌리더니 성난 걸음으로 방을 떠나 버렸다.

애리얼은 그 모습을 보지도 않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스카이라가 나간 후로 데본시아가 뭐라 말을 건넸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다.

기껏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기회를 놓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

죽음을 각오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다시 죽을 용기가 모일 것이다.

그만큼 이 세계는 그녀에게 지옥이었다.

그런 줄 알았다.

스카이라가 다시 오기 전까지는.

***

자살 시도를 하고 정확하게 이틀 후 다시 스카이라가 왔다.

애리얼은 스카이라의 방문에도 놀라지 않았다. 하트 여섯 개의 규격 외 인간, 데본시아의 탓에 그녀는 황성에 갇혀 살다시피 하는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스카이라가 흥미를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녀를 찾아와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녀의 무기력함에 질려 금방 사그라질 관심이겠지만.

“또 죽으려고 한 건 아니겠지.”

그가 의심 어린 눈길로 애리얼을 살폈다.

애리얼은 그에게 왜 왔냐고 묻기도 귀찮았다. 침대에 모로 누운 채 그를 외면했다.

그도 그녀가 살갑기를 바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소파에 자리 잡은 그는 조용히 책만 읽다가 노을이 질 즈음 방을 나섰다.

애리얼은 그가 나갈 때도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죽은 듯이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스카이라가 무슨 행동을 하든 별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그저 무기력할 뿐이라,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스카이라는 또 그녀가 있는 방을 찾았다.

“왜 자꾸 오세요?”

스카이라가 방을 찾아온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애리얼은 그의 방문을 참지 못하고 결국 질문을 던졌다.

그가 읽던 책을 놓고 애리얼과 마주했다.

“드디어 말 걸어 주네.”

“왜 자꾸 오시냐고요.”

“……걱정되니까 오는 거지.”

“왜 절 걱정하시는데요?”

“당연히 네가 죽을까 봐 그러는 거지. 내가 너 칼 들고 있는 거 보고 얼마나 기가 찼는데. 대체 그런 칼은 어디에 숨겨서 온…….”

“왜요? 제가 죽으면 저하께 무슨 손해라도 생기시나요?”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딱히 저랑 친하지도 않으시면서 왜 자꾸 오시는 건데요?”

“그냥! 걱정되니까!”

계속 반복되는 질문에 그가 폭발하듯이 외쳤다.

애리얼은 얼떨떨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왜…….”

“왜냐고 자꾸 묻지 마! 그냥 걱정돼서 그런 거야. 진짜 그냥…….”

“…….”

“어쨌건 너랑 나랑 대화도 나눠 보고 서로 이름도 아는 사인데, 네가 죽으려 들면 내가 걱정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가 고작 대화 몇 번 해 본 주변인을 염려하는 사람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지만, 뭐.

‘자기가 그렇다는데, 그런 거겠지.’

더 관심을 가지기도 귀찮았다. 애리얼은 일으켰던 상체를 다시 눕히고 눈을 감았다.

그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애리얼을 쏘아보았지만 이내 진정하고 다시 책을 들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

처음 대화를 나눈 이후 스카이라는 꽤 자주 애리얼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애리얼은 대부분 단답으로만 반응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도 홀로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게 지루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는 조금 들뜬 기색으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대부분 황성의 업무나 앞으로 있을 일정 등의 다소 사무적인 내용이 많았으나, 나름 들을 만은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들을 만한 내용은 이따금 섞이는 황태자를 향한 욕설이었다.

스카이라는 황태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슴없이 거친 욕을 박았는데, 그게 애리얼에게는 나름 통쾌했다.

그것 때문에 그가 오는 시간을 조금은 기다리기도 했다.

스카이라가 찾아오는 시각은 일정했고, 떠나는 시각도 일정했다. 오후 두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정확하게 네 시간을 그녀의 방에서 머물다 갔다.

텅 비어 있던 일과가 그로 인해 채워졌다.

그 탓에 애리얼은 자각하기 싫어도 지금이 몇 시인지 자꾸만 눈치채게 되었다. 창밖으로 변하는 계절도 조금씩 인지했다.

그녀의 태도가 변함에 따라 그의 행동도 변했다. 처음에 방을 찾을 때는 책을 읽거나 업무를 했었는데, 최근에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거나 간식을 가져와 그녀에게 먹이는 식으로 바뀌었다.

애리얼도 그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가 주는 것을 먹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더 살고 싶지 않았다.

힘이 없어 가족의 원수를 죽일 수도 없었고, 가족의 원수가 있는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수도 없었다.

“이제 그만 오세요.”

그녀가 말했다.

스카이라는 못 들은 체를 하며 그녀에게 케이크를 잘라 건넸다.

“북부 특산품인 눈꽃설탕으로 만든 거야. 먹어 봐.”

“됐어요.”

“너 아침도 걸렀다며. 이거라도 먹어.”

“싫어요.”

완강한 거부에 그가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 짧은 한숨이 그의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아직도 죽고 싶어?”

“네.”

애리얼이 곧장 답했다. 그녀는 여전히 죽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가 와서 그녀의 죽음을 미루고 있었다. 그게 껄끄럽고 불편했다.

그저 무력감에 잠겨 있다가 다시 죽을 용기가 생기면 죽어 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싫었다.

“그러니까 이제 오지 마세요.”

완고함마저 느껴지는 말투에 스카이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꽤 길었다. 그는 제 어머니에 관한 과거사를 숨김없이 말해 줬다. 태어날 때부터 가해지던 어머니의 차별과 학대부터 어머니의 유언과 마지막까지. 담담한 얼굴로 민감한 이야기를 전부 꺼내 그녀에게 들려줬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애리얼은 물었다.

“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네가 알았으면 해서.”

“……뭐를요?”

“황태자와 날 차별하지 않은 건 네가 거의 유일했다는 걸.”

“…….”

“물론 지금이야 내게도 내 수족들이 있고 하지만, 처음부터 날 차별 없이 대한 사람은 없었어. 어머니조차 날 차별했으니까.”

“…….”

“그래서 난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아.”

그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녀가 저를 차별하지 않은 사람이라, 제 편 같아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애리얼은 그렇게 말하는 그를 이기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평등한 그녀에게 다정함을 내비쳤을 뿐이었다. 친절했을 뿐이었다.

그는 이기적이지 않았다.

치부로 여겨질지도 모를 비참한 과거를 전부 말하면서까지 제 질문에 답한 그를 어떻게 감히 이기적이라 매도하겠는가.

애리얼은 고마움과 안타까움에 쓰린 속을 조용히 억누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가 제게 과거를 드러낸 만큼 그녀도 그에게 제 과거를 드러냈다. 왜 그녀가 죽고 싶어 하는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전부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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