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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2) >
절대독마(絶代毒魔) 당군악.
저 멀리 신장으로부터 마교가 강호를 침범했을 때 그는 사천당가(四川唐家)의 소가주였다.
마교의 대대적인 발호.
놈들의 교주 천마(天魔).
강호는 마교에 의해 파죽지세로 썰려 나갔다.
당가(唐家)도 예외는 아니었다.
멸문의 위기에 처해 동쪽으로 피신한 가솔들, 그 와중에 당가의 가주이자 당군악의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다.
중원 변두리로 피신한 당군악은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 노력했다.
못으로 만든 침상에서 자고, 입으로는 극독의 단장초(斷腸草)를 씹어 삼켰다.
그리하여 이룬 독마의 경지.
결국 천마를 한 줌의 독수(毒水)로 녹여버리면서 복수에 성공하고 강호를 구했다.
그때 얻은 별호가 바로 절대독마(絶代毒魔)
당군악은 식솔들을 이끌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사천당가는 멸문을 극복하고 강호 최고의 가문이 되었다.
모든 걸 다 이뤘다.
자식에게 가주의 자리를 물려주며 뒷방으로 물러났다.
이제 남은 건?
독마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
암기와 독술로 유명한 사천당가.
그래서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무림인들은 자신들을 천시했다.
특히 도가 계열의 무당이나 화산에게 사파 비슷한 취급을 받아왔다.
자신들은 도의 길을 걷는 고매한 도인들이라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한다고?
그래.
나도 한번 우화등선해보자.
자신이 말코 도사 놈들보다 못한 게 뭐 있나?
도가의 책도 구해 읽어보고, 배교의 술법, 서장 밀교의 경전, 서역에서 들어온 비전도 참고해서 연구도 하고,
당군악은 참오하고 또 참오했다.
세상의 이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방식으로 운행되는가?
하지만 그저 잠만 올 뿐이었다.
솔직히 당군악도 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독물과 암기.
최대한 빠르게,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
이런 게 도(道)라는 것과 관계가 있을 리 없다.
정녕 우화등선은 선승(禪僧)과 도인(道人)들의 전유물인가?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
독마 당군악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폐관수련실에서 곡기를 끊고 면벽과 명상을 하면서, 몸이 망가질 정도로 수련을 거듭하는 중이었는데.
‘응?’
당군악은 느꼈다.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혹시 피곤해서 생긴 현기증? 아니면 우화등선에 대한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상?
다만 확실한 건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정신이 어디론가로 쭉 빨려 들어가는 기분.
그리고 알아챘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희한한 복색을 입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신선일 리는 없을 테고.
눈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깨달았다.
저 먼 세상에서 만난 또 하나의 젊은 자신.
‘넌 나로구나.’
심령의 연결.
비로소 마주한 영혼과 영혼.
서로의 경험과 지식이 교류를 시작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 ※ ※
설악산 중청봉 인근의 절벽.
삐져나온 나무에 걸려있던 김태주.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다른 세상의 늙은 자신.
다중우주, 멀티버스 그런 건가?
나이가 들면 저 모습이 될까 싶을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의식 안으로 온갖 기억들이 밀려 들어왔다.
찰나 간에 이루어진 연결, 하지만 절대독마(絶代毒魔)의 인생 전체를 생생하고 온전하게 경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천마를 독으로 녹여버린 강호무림의 최강자.
그가 이뤄낸 독공(毒功)의 성취.
독정(毒精)을 연성해 궁극의 경지, 독령(毒靈)으로 진화하는 혼원무상독령공(混元無常毒靈功).
혈인독장(血印毒掌), 탈백지(奪魄指), 파독수(破毒手), 절혼도(絶魂刀), 혈접(血蝶), 비폭일섬(飛瀑一閃), 무형독(無形毒), 만천화우(滿天花雨) 등, 수많은 암기술과 독술.
환영미리보(幻影迷理步), 암향추혼(暗香追魂), 금정신법(金鼎身法), 귀식대법(龜息大法), 잠행술(潛行術) 등등 신법과 보법.
무공의 초식과 운용술, 독 제조하기, 암기를 다루고 만드는 방법, 심지어 당군악이 최근에 이뤄낸 깨달음까지.
모조리 싹 빨아들였다.
머릿속에 쏙쏙 각인됐다.
‘어어···,’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다.
심령이 연결되는 순간 저절로 이뤄졌다.
이래도 되나?
지적 재산권 강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최소한 물어는 봐야 하는데.
그런데 마치 태주의 생각을 안다는 듯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는 절대독마.
‘아!’
그래도 된다는 승낙의 의미였다.
※ ※ ※
강호 사천당가 폐관수련실.
당군악은 기분이 좋았다.
‘당연히 되고말고!’
우리가 남이가?
할 수만 있다면 가진 것 모조리 퍼다 주고 싶다.
100년 가까이 쌓아온 내공은 물론, 지금까지 수집한 여러 독물, 각종 신병이기(神兵利器), 금은보화, 줄 수만 있다면 그리할 것이다.
‘허허, 밑천까지 다 털리는구나. 그래, 싹 가져가게나.’
그럼에도 당군악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싹 마른 솜에 물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깨달음을 쏙쏙 흡수하고 있었다.
영혼이 같다는 것이 이런 결과를 보여줄 줄이야!
그래서 절대독마 당군악은 흐뭇하다.
비전을 넘겨주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다.
더불어 젊은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전해지는 생전 처음 보는 문물, 문화, 학문, 새로운 지식, 이런 걸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지구, 강호와는 전혀 다르군.’
큰 변화가 생겼다가 기적적으로 생존한 세상이었다.
‘전지전능하고 영험한 존재가 개입을 했고.’
각성, 그리고 시스템.
저곳에도 무림인들이 있었다.
‘마수라, ···요괴 같은 거군.’
발전의 방향이 전혀 다른 세상.
‘재미있구나. 너도 그렇지 않은가?’
저쪽에서 그런 것 같다.
자신도 재미있다고, 강호라는 세상이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당군악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평생을 독과 암기 연구에만 매진하며 살아온 세월.
천마를 쳐죽이며 천하제일의 자리에 올라왔다.
그게 이룰 수 있는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다.
‘우화등선은 개뿔!’
이렇게나 넓은 우주인데.
그에 비하면 자신이 사는 세상 티끌에, 티끌, 그 티끌에, 티끌보다도 못한 곳.
어쩌면 선계보다 더 크고 넓은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선계(仙界)도 강호나 지구처럼 한낱 티끌일 뿐일 터.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순간.
당군악은 우화등선했다.
※ ※ ※
설악산.
김태주는 절대독마 당군악에게서 받은 지식들을 곱씹고 있었다.
싹 다 받아냈다.
그야말로 영혼의 복붙.
절대독마 당군악의 영혼을 자신의 머릿속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같았다.
‘독술과 암기술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단순한 무공이 아니다.
독술을 지구의 학문과 비교하면, 화학, 생물학, 약학, 의학 등을 섞어놓은 것과 같다.
암기술은?
금속 합금과 제련, 엔지니어 디자인, 유체역학···.
‘혈인독장(血印毒掌)은 장법인가?’
초식을 어떻게 펼쳐 내야 할지 다 안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혈접(血蝶)은 암기술.’
환영을 일으키며 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 목표물에 적중하는 혈접.
‘무형독(無形毒)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극악의 독이고.’
가장 무서운 독.
무색무취.
아마 과학적 방법으로 조사해도 나오지 않을 터.
‘혼원무상독령공(混元無常毒靈功)은···.’
절대독마의 기본공이자 독술의 모든 것.
이것부터 대성해야 한다.
‘그리고 만천화우(滿天花雨).’
하늘에 만개한 암기의 꽃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수법.
그 꽃잎들은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시전자의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즉 수천수만 개의 유도미사일을 부릴 수 있는 것, 물론 그렇게 하려면 혼원무상독령공을 대성해 독령의 힘을 빌려야 하지만.
절대독마가 이룬 성취는 깊고도 깊었다.
그걸 노력도 없이 받아먹었으니.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
갑자기 의식이 현실로 돌아왔다.
‘이런···.’
더 이상 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심령의 연결이 끊긴 모양.
‘아쉽네.’
그냥 보고 느끼는 게 전부였다.
대화라도 나눠봤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그렇고.’
서둘러야 한다.
자신을 걷어찬 놈이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올지도 모른다.
‘끄응.’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다.
절벽에서 떨어지다 나무에 걸렸지만 그 충격으로 몸이 성치 않다.
그나마 괜찮은 곳은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뿐.
그때!
‘음?’
코끝을 간지럽히는 알싸한 향기.
많이 맡아본 냄새다.
‘···더덕이구나.’
확실하다.
냄새만 맡아도 안다.
그러나 몸에 좋고 맛있는 약초가 아니라, 마나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가 변이되어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품은 독더덕.
‘운이 좋군.’
혼원무상독령공(混元無常毒靈功)을 얻은 이상, 자신에게서 독은 식량이요, 영약이다.
킁킁.
태주는 독더덕의 냄새를 쫓아 정신없이 땅을 팠다.
‘찾았어.’
실한 놈이다.
‘100년 이상 묵은 것 같은데.’
이 정도 크기라면 성인 남자 한 명쯤은 혼수상태로 보낼 독을 품고 있을 터, 사실 100년 정도면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태주는 천천히 혼원무상독령공을 운용하면서 독더덕을 씹었다.
쓰읍!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쓰다.
그러나 억지로 씹어 삼켰다.
‘우욱!’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격통.
거기에 심장까지.
참는다.
독은 쓰지만 그로 인한 열매는 달콤할 것이다.
‘더 있나?’
절벽 틈으로 피어있는 풀뿌리들.
‘오!’
독더덕이 널렸다.
군락지였던 모양.
정성스레 뽑아서 흙만 툭툭 털어내고 자근자근 씹었다.
몸 전체로 독물이 흐른다.
혼원무상독령공.
구결의 흐름에 따라 혈맥이 기운으로 충만해졌다.
솟아나는 활력.
근육에도 힘이 들어갔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걸로는 부족해.’
독정(毒精)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 백 뿌리 이상의 독더덕이 필요하다.
‘다른 곳으로 가볼까?’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는 멀쩡하다.
그렇다면 벽호공(壁虎功).
절벽을 탈 수 있는 범용 무공 중 하나.
단전에 독정이 연성되지 않아 내공이 부족하지만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다.
태주는 절벽을 타고 옆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주위에 널린 독초들을 탐색했다.
절대독마의 경험과 지식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이상, 독을 품은 식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독도라지네.’
엄청 많이 모여있다.
크기도 매우 크다.
최소 2, 300년.
‘일단 하나만···.’
사실 아무리 독공을 익혔다고 해도 이렇게 한꺼번에 독을 섭취하는 건 자살행위, 독의 대종사, 절대독마라 하더라도 말이다.
질겅질겅, 씹어 넘겨 혼원무상독령공을 운용하면서 내기로 전환시키고, 나머지는 모조리 캐서 주머니와 품안에 보관.
힘이 났다.
이 힘을 이용해 다시 절벽을 탔다.
순간!
‘음?’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아직 못 찾았어?”
“분명 이쪽으로 굴러떨어졌는데 말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고영호 하사와 소대원들이었다.
‘어떡하지?’
숨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놈들을 이길 순 없다.
태주는 절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혼원무상독령공으로 실낱같은 내력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힘은 충분했다.
쉽게 찾을 수는 없을 터.
그리고 동시에.
‘귀식대법.’
신체의 신진대사를 조절해 기척을 없애는 기술.
태주는 천천히 가수면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 새끼 어디로 간 거야? 오크들이 끌고 갔나?”
“아닙니다. 드론 정찰 결과 오크 부락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바로 죽여버릴 걸 괜히···.”
절벽에서 굴러떨어졌다.
마나 적합자라도 무사하지 못할 터.
김태주는 마나 거부자.
일반인보다 더 못한 신체 능력.
죽지 않더라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야 정상.
“사고사로 처리하면 딱 좋은데. 곱게 뒈져주시지.”
가장 좋은 시나리오.
정찰 중 발을 헛디뎌 순직한 청년 장교.
위에서도 그걸 요구했고.
“조금 더 찾아보고 복귀하자.”
태주는 그들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멀어지는 말소리.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씨발, 개새끼들!’
몸만 회복되면···.
‘다 죽여버린다.’
그때였다.
쉬쉭! 쉬쉬쉭!
불길한 소리와 함께 코끝으로 전해지는 비릿한 냄새.
‘이거 설마?’
귀식대법으로 꼼짝 않고 있는 태주의 눈앞에 까맣고 길다란 무언가가 나타났다.
섬뜩한 눈, 삼각형의 머리, 몸통엔 무시무시한 무늬.
마치 보아뱀처럼 거대한 크기의 변종 칠점사였다.
그것도 마나 변이로 인해 더더욱 강해진 독을 품고 있는 독사.
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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