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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3화 (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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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정(1) >

독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동물독, 식물독, 광물독, 그리고 인공적으로 만든 화학독.

뱀독은 동물독이며 강력한 신경독, 혹은 출혈독을 가지고 있다.

변종 칠점사는 둘 다 있다.

물리면 출혈로 죽거나, 신경 마비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죽거나.

‘이건 뭐.’

갈수록 태산.

크기가 작은놈도 아니다.

마나로 인한 유전자 변이 때문에 몸통이 웬만한 남자 허벅다리만 하다.

쉬쉿! 쉿!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 소름 끼치는 혀를 낼름거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거대 변종 칠점사.

완벽한 귀식대법이라면 그저 통나무 정도로 인식해서 그냥 지나갈 터, 그러나 지금은 대법이 완전치 않다.

체온과 호흡이 가장 큰 문제.

완전한 귀식대법은 이마저도 지우겠지만.

‘제발 그냥 지나가라.’

독을 기반으로 하는 혼원무상독령공을 익혔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저놈의 독은 너무 강하다.

모든 경우가 그렇듯, 처음부터 강한 독으로 수련하는 건 금물.

독공의 매카니즘은 단순하다.

적응.

약한 독부터 시작해 신체를 강한 독기에도 견딜 수 있게 천천히 개조시키는 것, 그러기에 이 변종 칠점사의 독을 받아들이는 건 무리.

태주는 실눈을 뜬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번 위기만 지나가자.

독정(毒精) 정도는 생성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

그렇게 해주면 나중에 마주치더라도 넌 살려줄게.

하지만 지울 수 없는 호흡과 체온.

놈은 자신을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걸 먹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

‘돌아버리겠네. 지나가 주면 안 되겠···, 이런!’

결국 먹기로 결심한 모양.

취리릿!

놈이 머리를 세웠다.

동시에 날카로운 독니로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오는 변종 칠점사.

‘제기랄!’

태주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놈의 입을 막았다.

아그작!

콰직!

‘끅!’

그나마 성한 오른 팔뚝도 부러졌다.

하지만 문제는 부러진 팔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독니에서 주입되는 끈적한 액체.

순식간에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흘렀다.

‘으흡!’

비명이 절로 나왔지만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소리가 나면 놈들에게 발각될 수 있으니까.

대신 내부 장기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끔찍한 뱀독이 혈관을 타고 돌며 장기를 녹여댔다.

변이된 독사가 가진 변이된 독.

그 짧은 시간에도 몸이 많이 망가졌다.

붉게 핏발이 선 태주의 눈동자.

참을 수 없는 고통,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이대로 죽으라고?

어림도 없다.

자신이 누군가!

절대독마(絶代毒魔).

비록 육신은 허약하기 짝이 없지만, 영혼만은 천마도 녹여 죽인 당군악의 또 다른 영혼,

태주는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했다.

현재 그가 가진 리스크.

하나는 초반에 너무 강한 독을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안전한 장소가 아닌 절벽에서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마수의 공격을 감내하면서

지극히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놈의 뱃속에서 생을 마쳐야 한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

리스크가 큰 만큼 주어지는 이익도 클 터.

그의 머릿속엔 당군악이 평생 수련했던 혼원무상독령공의 묘리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독(毒)의 대종사.

천년 묵은 이무기의 독도 간식 삼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까짓 칠점사 따위가 자신을 어떻게 한다고?

김태주는 자신의 혈관에 들어온 뱀독을 이끌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읊어지는 혼원무상독령공의 구결.

‘단전으로···,’

옥당혈과 거궐혈을 열어, 천돌혈을 차단하고, 중완혈로 이끈 다음 기해혈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크윽!’

순순히 당해주지 않겠다는 듯, 거세게 저항하는 변종 칠점사의 독, 겨우 이걸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니.

수치스럽다.

부끄러워 미치겠다.

다른 세상의 자신, 절대독마 당군악에게 면목이 서지 않았다.

‘이런 씨발! ···사람 쪽팔리게.’

잠시 주춤해지는 독기.

기회는 이때!

단전에 들어온 독기를 압축해 혼원무상독령공의 기본, 독정(毒精)을 만든다.

변종 칠점사의 공격도 거세다.

약해빠진 먹잇감인 줄만 알았는데 감히 반항해?

거대한 칠점사가 태주의 몸을 휘감았다.

뿌드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 어깨뼈? 척추뼈?

그러다 태주를 감은 채 절벽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혈관을 녹여내는 무시무시한 독.

점점 심장이 굳어져 호흡하기도 힘들었다.

희미해지는 의식.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주는 혼원무상독령공의 운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극한의 대결.

이제 남은 건 하나.

놈에게 먹히느냐, 아니면 독기(毒氣)를 다스리고 독정(毒精)을 생성하느냐.

태주는 버티고 또 버텼다.

뿌득!

칠점사의 힘도 더 강해졌다.

※ ※ ※

고영호 하사는 결국 허탕을 치고 대청봉 전초기지로 돌아와 장인동 중위를 만났다.

김태주의 시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는 장인동.

“오크들이 잡아갔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떨어진 곳이 절벽이었지 말입니다. 거기로 굴러떨어진 이상 절대 무사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마나 거부자의 몸으로···.”

“만약 살아있으면?”

“네?”

“책임질 거야?”

“그, 그건···.”

사고사로 치워버리는 것이 제일 깔끔하다.

마나 거부자 쓰레기라 하더라도 놈은 장군의 자식.

타살 의심을 받으면 매우 곤란해진다.

물론 저 위쪽에서 막아주겠지만.

‘이대로 처리를 할까?’

안 된다.

기껏해야 탈영, 혹은 미복귀.

부족하다.

찾아내야 한다.

김태주가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 말이다.

‘어쩔 수 없군.’

직접 움직일 수밖에.

혼다 미쯔이.

삼한제국 규슈 영지의 둘째 딸, 군부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김태주의 확실한 죽음을 원하고 있다.

오크에게 잡아먹혔다면 남은 흔적이라도 가지고 와야 한다.

“지금 당장 소대원들 소집해. 입 무거운 놈들로만.”

“네, 알겠습니다.”

※ ※ ※

어릴 땐 자애롭기 그지없는 아버지였다.

‘내가 반드시 널 고쳐주마. 최소한 애비보다 오래 살아야지.’

하지만 재혼하시고 배다른 동생들이 태어나고 장성하자,

‘입대해라. 설악산 전초기지로 가.’

‘언제까지 백수처럼 밥만 축내고 살 거냐. 내 부대장에게 잘 이야기 해뒀으니 행정업무만 열심히 해. 마수와 마주칠 일은 없을 거다.’

싸늘한 아버지의 시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한다.

마나 거부자로 태어나 언제 죽을지 모를 아들인데, 차라리 정을 떼는 것이 낫지.

또한 새어머니 미쯔이 부인도.

‘태주야. 걱정하지 마. 영원히 있으라는 것도 아니야. 전역하고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네 집은 언제나 여기니까.’

그녀가 보여줬던 자애로움이 다 가식이었다는 건 최근에 알았다.

하긴!

20살이 되면 죽을 줄 알았던 배다른 자식이 29살이 되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으니.

규슈 영지의 딸.

육군 참모본부 안에 일본계 장성들이 꽤 있다.

외가, 미쯔이 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자신이 설악산 전초기지로 배정받은 배후엔 그녀가 있었다.

문득 목이 마르다.

태주는 눈을 번쩍 떴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

‘살았구나.’

혼원무상독령공으로 칠점사의 독에 저항하다가 정신을 잃은 것 같다.

꼼짝없이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의식중에서도 운기가?’

태주는 슬며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힘없이 팔에 붙어 딸려 올라오는 변종 칠점사의 대가리.

‘뱀은 뒈졌네.’

원기를 빨아 먹힌 듯 바싹 말라 있었다.

손으로 걷어내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팔이 멀쩡해.’

부러진 거 아니었나?

어디 왼팔뿐인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칠점사에 휘감겨 온 뼈마디가 조각이 났었다.

‘설마 다 나은 건가?’

태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 상태는 더없이 가뿐했다.

다만 전신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이 정도면 다치기 전보다 훨씬 나은데.’

그리고 느꼈다.

단전에서 콩알만 한 크기로 뭉쳐있는 기운을.

‘아!’

독정(毒精).

비록 크기는 작지만 존재감은 확실했다.

기어코 해냈다.

혼원무상독령공의 성취는 전체 10성으로 구성되어있다.

경지가 올라갈수록 독정(毒精)은 농밀해지고 더 커진다.

그렇다면 독령(毒靈)은?

이건 깨달음의 영역이다.

10성에 올라도 독령의 경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혼원무상독령공 10성은 독령에 이르기 위한 디폴트값.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1성의 경지는 겨우 삼류 무사 수준.

최소 5성 이상은 되어야 절정의 무위를 갖추게 된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답은 정해져 있다.

‘일단 살아남고 보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

장인동 중위?

그저 하청업자일 뿐.

배후는 새엄마 혼다 미쯔이.

그리고,

‘아버지는···,’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만 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을 지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의 인륜은 믿기로 했다.

‘독정을 만들었으니.’

그걸 쓸 수단인 무공.

뭐가 좋을까?

‘혈인독장(血印毒掌)은 무조건 대성해야 해.’

절대독마가 근접전을 주로 사용했던 장법.

독기를 발출하고 거둘 수 있기에 언제 어디서나 유용하다.

‘암기술은···,’

하나만 익혀 집중하는 게 낫다.

‘비폭일섬(飛瀑一閃), 이걸로.’

그리고 환영미리보(幻影迷理步).

혈인독장과 비폭일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보법.

사실 당군악이 익혔던 수많은 무공 구결들이 뇌리에 똑똑히 각인되어있지만 현재로선 이 세 가지만 익힌다.

‘해보자.’

아무리 절대독마의 진전을 고스란히 받아왔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체득하는 건 천지 차이.

태주는 환영미리보부터 펼쳤다.

보법을 밟아가며 혈인독장을 시전하고.

휘릿!

손을 내지를 때마다 알싸하게 풍겨 나오는 독의 향기, 독기를 발출하고, 다시 수습하고.

여긴 나무가 많다.

그것도 마나에 의해 철판만큼 단단해진 껍질.

혈인독장의 위력을 시험에 보기에 안성맞춤.

손바닥이 원을 그린다.

단전으로부터 독기가 실타래처럼 이어져 손바닥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퍼억!

그대로 나무줄기를 가격했다.

껍질을 파고 들어가 선명하게 찍힌 다섯 손가락.

‘괜찮네.’

제 위력이 발휘되면 독장이 적중하자마자 말라 시들어 죽는다.

그래도 처음 펼쳐낸 무공이 이 정도 위력이라니, 물론 당군악의 성취가 일종의 버프로 작용했을 테지만.

‘뭐, 독기는 제대로 방출했어.’

다음은 비폭일섬(飛瀑一閃).

초식은 단 두 가지.

비폭(飛瀑)은 광역, 일섬(一閃)은 단일.

절대독마가 쓰는 암기들은 죄다 평범하지 않다.

혈접을 펼치기 위한 나비 모양의 암기, 비늘이 달린 가느다란 세침,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비쭉 나온 돌멩이인 휘금석, 유엽비도···,

비폭(飛瀑)도 특수한 암기가 있어야 펼칠 수 있다.

현재 사용 가능한 암기 비슷한 것은 발목에 차고 있는 군용대검과 주머니 속에 든, 삼한제국의 신수(神獸) 삼두백호(三頭白虎)가 그려진 500원짜리 동전 몇 개뿐.

‘일섬(一閃)밖에 없구나.’

암기가 더 필요하다.

시간을 내서 암기를 제작해야겠다.

물론 여기서 살아남고 나서.

츠핏!

섬전처럼 잔영을 남기며 날아가는 대검.

푸욱!

나무줄기에 손잡이까지 박혔다.

손목이 시큰거린다.

일섬(一閃)을 펼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날아가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던지는 동작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

어깨를 젖히는 식으로 던지는 자세를 취하면 암기술이라고 할 수 있나?

그냥 투척술이지.

오로지 손목만을 사용하는 일섬.

적은 언제 암기가 날아왔는지도 모르고 당하게 된다.

‘한 번씩 펼쳐봤으니까.’

숙련도를 올린다.

군용대검을 나무에서 뽑아 소매 속에 감추고

태주는 몸을 움직였다.

환영미리보를 시작으로 혈인독장을 펼친 후, 자연스럽게 소매 속에서 대검이 미끄러져 나오면···,

츠피릿!

퍼억!

‘다시.’

각 무공의 연계가 중요하다.

몸으로 완벽하게 체득할 때까지.

‘한 번 더!’

< 독정(1)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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