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4화 (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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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정(2) >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각 무공의 한가지 초식들만.

깨달음은 충분하다.

모자라는 건 몸의 숙련, 그리고 공력.

영혼은 천하제일 절대독마 당군악, 육체는 마나 거부자였던 쇠약한 김태주, 둘의 간극을 최대한 좁혀야 한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렇게 육체를 쓴 적이 있었던가?

마나 거부자로 태어난 이후 처음이었다.

천형 때문에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면 심장에 무리가 와야 정상.

‘···다 나았나?’

순간!

“큭!”

찢어질 듯한 심장.

변하지 않았다.

독공을 익혀도 천형은 극복하지 못한다는 말?

태주는 결국 땅을 짚고 엎드렸다.

“으으으···,”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다.

단전에 자리 잡은 독정(毒精).

독기가 혈관을 통해 이동한다.

무의식적으로 운행을 시작한 혼원무상독령공.

영혼에 새겨진 본능적 행동.

독기가 타고 흐르자 점차 가셔지는 고통.

“휴우.”

완전하게 낫지는 않았지만 효과가 있다.

‘결국 답은 독공이었어.’

독공이 원숙해지면?

이 지긋지긋한 천형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

‘수련이나 계속하자.’

복수도 하고 싶지만···.

그 대상이 새엄마.

아버지가 연관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야. 아버지는 아닐 거야.’

버려졌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

그에게 사랑받았던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판에.

‘쯧.’

복수는 접어야겠다.

대신 홀로 자리를 잡는다.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어떻게 보면 그게 효도지.

새롭게 이룬 단란한 가정에서 자신은 빠져주는 거.

그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

최소한 남의 눈치는 보지 않으면서.

그러려면 힘을 가져야 하고.

태주는 조금 전에 캐놓은 독초들을 주머니에서 꺼내 모조리 입에 넣었다.

칠점사 독으로 독정(毒精)을 만든 이상, 그보다 약한 독들은 자양 강장제 수준일 뿐, 널린 게 영약이다.

‘몇 개 더 캐서 먹어볼까?’

그럼 독기도 소폭 강해질 터.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설악산을 빠져나간다.

독도라지를 씹어 삼키고, 초식 연계 수련을 계속 반복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갈수록 영혼과 육체의 격차가 좁혀졌다.

갑자기!

바스락!

멀리서 들려오는 기척.

‘흠?’

스슷!

저쪽에서도.

부스럭!

이쪽도.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향해 서서히 좁혀들어오고 있는 누군가.

‘포위당했군.’

누구겠나?

고영호 하사와 소대원들.

고영호는 마나 적합자, 소대원들은 마나 순응자.

독정을 형성해둔 터라 놈들을 상대하는 건 행정실 서류 작업보다 더 쉽다.

‘그놈들만 왔다면 좋을 테지만···,’

장인동 중위.

그가 함께 왔을 수도 있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시스템 각성자.

피하느냐, 아니면 맞서느냐.

사실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피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절대독마 당군악이 땅을 치고 통탄할 것이다.

다른 세상의 나 자신이 저렇게 심약한 놈이냐고.

무공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성장하는 것.

한번 피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도 같은 선택을 할 터.

‘여기서 죽인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첫 살인.

행정 서류 업무만 맡았던 반쪽짜리 군인으로선 부담스럽지 않을까?

‘···절대 아니지.’

자신은 제국군 소위 김태주이자 절대독마 당군악이다.

역대 강호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자가 누구겠나?

수천, 수만 번의 살인.

정파 출신임에도 별호에 마(魔)가 붙은 이유.

목적 달성을 위해 뭐든지 다 했다.

처음부터 협객행(俠客行)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고매한 검술로 죽이나, 비열한 독으로 죽이나, 뭐가 달라?

심지어 같은 편에게도 욕을 먹었다.

잔인, 음흉, 사악, 교활, 파렴치.

그러나 당군악은 거리낌이 없었다.

이기기 위해 음식이나 차에 독을 섞었다.

우물에 독을 푼 적도 있었다.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몰래 숨어 암기만 날려 사람을 죽였다.

손을 맞잡는 척하고 반지에 달린 작은 독침으로 중독시킨 일도 많았다.

따라서 태주도 사람을 죽이는데 어떠한 거리낌도 없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일 수 있을까 고민될 뿐.

마나 적합자이자 시스템 각성자 장인동 중위.

독공을 시험해 볼 기회.

‘새엄마 혼다 미쯔이에게 복수하는 건 어려울지라도 저놈만은 죽이고 떠나야지.’

태주는 대검을 오른쪽 소매 속에 갈무리하고, 500원짜리 동전 3개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 ※ ※

마나 적합자.

비록 각성하지 않더라도 일반인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고, 신체적으로도 월등히 뛰어난 자들.

하지만 시스템과 연결되는 각성은 또 다른 문제.

받아들이는 걸 너머 마나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인동 중위는 운이 좋은 편.

마나 적합자로 태어나 각성까지 이뤄냈으니까.

그러나 부족하다.

각성자의 수준 차이.

시스템이 정해주는 단계가 있다.

초기 각성자가 되면 ‘유저(user)’로 명명이 된다.

마나를 몸속에 저장하고 이용해 신체를 단련할 수 있다는 의미.

그리고 각성자만의 고유한 특성이 생겨난다.

특성의 종류는 문신을 보면 판별할 수 있고.

장인동의 경우 <물리>와 <맷집>

유저를 넘어서면 다음 단계는 ‘비기너(beginner)’

스킬 사용이 가능하다.

스킬 개수가 늘어나고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으면 ‘레귤러(regular)’

위관급 장교로는 유저, 비기너 혹은 레귤러 단계면 충분.

영관급 장교의 조건은 익스퍼트(expert), 즉 숙련가.

익스퍼트의 단계는 세분화되어 있다.

주니어 익스퍼트(junior expert), 미들 익스퍼트(middle expert), 슈페리어 익스퍼트(superior expert).

그리고 장군, 별을 달려면 반드시 올라야 하는 경지, 마스터(master).

장인동은 마스터까지 바랄 생각이 없다.

그럴 능력도, 자신도 없다.

그저 익스퍼트의 경지에만 올라서는 것.

하지만 그에겐 재능이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한계는 딱 비기너까지.

물론 방법은 있다.

영약을 복용하면 된다.

엘리트 마수의 에너지 결정체를 재료로 만든 영약, 복용하면 신체를 재구성해주어 단번에 주니어 익스퍼트 경지로 끌어 올려준다.

문제는 그걸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

가격도 가격이지만 극히 희귀해서 시장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임관해온 장교 하나.

바로 김태주 소위였다.

마나 거부자인 쓰레기.

그러나 아버지가 파주 영지를 이끄는 김웅방 준장.

놈의 환심을 사다 보면 뭔가 떨어지는 게 있겠지.

놈이 부러진 사다리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알고 보니 내놓은 자식 아닌가.

그래도 겉으로는 잘 해줬다.

괜히 괴롭히다 보면 아버지에게 일러바칠지도 모르고, 또 좋게 대해준들 손해 볼 일도 없으니까.

그런데 저 위쪽에서 제안이 왔다.

장교 하나를 치워 달라고.

잘 처리하면 엘리트 영약 하나를 대가로 주겠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예전부터 눈꼴이 시렸다.

마나 거부자 주제에 부모 잘 만난 덕택으로 장교로 복무하는 쓰레기.

중대 전체를 동원하면 중대장 귀에 들어갈 지도 모른다.

대신 고영호 하사를 포함해 쓸만한 부하 5명을 데리고 왔다.

자신까지 총 6명.

살아있다는 걸 가정하고 떨어진 절벽 밑을 중심으로 수색 작전을 펼쳤다.

군데군데 파인 땅, 배고파서 풀뿌리라도 캐 먹었나?

멍청한 놈.

이곳 뿌리 식물 중, 독이 있는 것들이 태반인데.

“전방에 누군가 있습니다.”

“나도 알아.”

“오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설령 오크라도 상관없다.

몇 마리쯤은 혼자 감당할 수 있다.

“고영호 하사.”

“네!”

“뒤쪽으로 가서 포위망을 좁혀. 너희들은 저쪽으로, 퇴로 차단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윽고.

숲속 작은 공터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사람.

“김태주 소위!”

드디어 찾았다.

대답도 안 하고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놈.

“관등성명도 안 하나?”

“우리 사이에 무슨, 내가 아직도 당신 부하야?”

장인동 중위는 황당했다.

저 쓰레기 놈이 뭘 믿고?

“껄껄껄, ···뭐, 이해해. 이 상황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 없겠지.”

“나한테 왜 그랬지?”

“에이, 쓰레기 치우는데 이유가 있나? 보기 싫고 냄새나면 알아서 치우는 거지.”

태주도 씨익, 웃었다.

역시 놈은 방심하고 있다.

자신을 빙 둘러싸고 있는 고영호와 4명의 소대원도 마찬가지, 총구도 겨누지 않은 채 비웃음만 날렸다.

“하나만 더 물어보자.”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네.”

“혼다 미쯔이가 뭘 약속했어? 돈? 영약?”

“···천한 놈이 감히!”

“영약이겠지. 네 허접한 재능을 채워줄 수 있는.”

장인동 중위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잘 들어. 병신 쓰레기야. 먼저 네 팔다리부터 꺾을 테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절벽 위에서 떨어뜨려 주지.”

“해봐. 할 수 있으면.”

솔직히 긴가민가했다.

놈의 태연한 눈빛과 태도.

설마 각성이라도 했나?

하지만 각성의 흔적은 없다.

각성했을 때 무조건 새겨지는 얼굴의 문신이 보이지 않았다.

무장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어서 끝내고 들어가 쉬자.

눈치 빠른 고영호 하사가 물었다.

“저희들이 처리할까요?”

“아니, 구경이나 하고 있어.”

파밧!

장인동은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뒈져!”

그런데?

스슷!

마술이라도 부린 듯, 김태주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장인동은 깜짝 놀랐다.

“헉!”

뭐지?

어디로 간 거야?

동시에 가슴팍으로 다가오는 새하얀 손,

퍼억!

“큭!”

그 충격에 한 발짝 뒤로 밀려났다.

방심의 대가였다.

뒤로 한 발짝 밀려난 장인동.

솔직히 많이 놀랐다.

마나 거부자가 내지른 손바닥에 밀려나?

그것도 황당한 판에 놈은 아예 몸을 돌려버렸다.

“감히···,”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방이면 충분하다는 건가?

저렇게 뒤통수를 훤히 내보이면서 자신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있었다.

‘죽인다!’

장인동은 허리춤에 찬 장검을 빼들었다.

그리고는 놈의 등짝에다 찔러넣으려고 하는데,

“···어?”

비틀!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급기야!

푸욱!

입에서 분수처럼 쏟아지는 붉은 선혈, 빙빙 돌아가는 시야, 흐려지는 의식. 호흡은 가빠왔고, 결국은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털썩.

일단 한방.

특별히 독기를 진하게 농축해서 밀어 넣었다.

전체 기운의 50% 정도?

그런 이유로 독기가 대폭 빠지긴 했지만.

태주는 이걸 싸움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각성자에게도 자신의 독공이 통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

하나는 처리했고.

두 번째는 고영호 하사.

자신을 절벽 밑으로 밀어뜨린 놈.

각성자는 아니지만 마나 적합자.

태주의 눈과 고영호의 눈이 마주쳤다.

뭔가 불안함을 느낀 듯, 서둘러 허리춤에서 마나건을 빼 들었지만,

“이 쓰레기 새끼가···,”

츠피릿!

섬전처럼 쏘아진 군용대검.

은빛 잔영을 남기며 고영호의 심장을 파고 들어갔다.

푹!

“끅!”

방탄, 방검조끼도 소용이 없었다.

고영호 하사는 몸부림치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고, 고하사님.”

“으아아아!”

태주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소대원들.

“미, 미친!”

“···저, 저 새끼 뭐야?”

“빨리 쏴버려! 쏴! 쏘라고···,”

소대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소총을 들고 앞으로 겨눴지만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했다.

그때!

츠팟!

허공에 잔영을 남기며 길게 그어진 은빛 실선.

푸악!

하나의 동전이 소대원의 머리를 파고들면서 뇌를 휘젓고 관통했다.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환영미리보에 이은 일섬(一閃).

몸에 체득된 연계 동작.

마나 순응자, 일반 군인들은 절대 태주를 감당할 수 없었다.

동전 3개를 순차적으로 날렸다.

가까운 거리, 빗나갈 리 있나.

츠핏! 핏! 피핏!

사이좋게 머리에 하나씩.

푹! 푸푹! 푹!

“끅!”

“아악!”

“···.”

한 10초 걸렸나?

모두 죽였다.

이제 남은 건 쓰러져 헐떡이는 놈.

“커헉! 너, 뭐, 뭐야?”

장인동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색된 채 허리춤을 더듬고 있었다.

권총이라도 꺼내려는 모양.

아니면 해독제를 찾거나.

아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호흡도 곤란할 것이고.

태주의 단전에 있는 독정은 변종 칠점사로 만든 것.

각성자에게도 여지없이 독이 통했다.

“어때? 맘에 들어?”

“···너, 가, 각성했구나.”

“각성은 무슨.”

장인동은 태주를 보며 힘겹게 입을 뗐다.

“사, 살려줘.”

“입장 바꿔 보자고, 너 같으면 날 살려줬겠어?”

“···그, 그동안 자, 잘해줬잖아.”

“내가 장군의 아들이어서가 아니고?”

“아, 아니, 오, 오해···.”

울컥!

장인동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선혈.

달콤한 독의 향기도 같이 흘러나왔다.

“누군가를 죽이려 마음먹었다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걸 각오하고 왔어야지.”

태주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제에발, 제, 제발···, 끄어어, 끄으으으···.”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이 끊어진 장인동.

놈을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이유.

첫 번째는 방심, 처음부터 스킬로 덤벼왔다면 어려웠을 터.

두 번째는 놈의 단계가 겨우 비기너라는 것.

세 번째는 결국 독공(毒功).

태주도 괜찮은 건 아니었다.

조금 전부터 또 고통이 시작됐다.

“하아, 씨발.”

지금도 필사적으로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하고 있었고.

“···여유가 없네.”

그때였다.

“쿠오오오오!”

“카아아아아!”

설악산을 뒤흔드는 마수의 포효, 바로 오크들의 함성이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번식기가 시작됐군.’

태주는 고영호의 가슴에 박힌 대검을 뽑았다.

번식기의 오크.

먹이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

아마 이곳에 널린 시체들도 싸그리 다 먹어 치울 것이다.

혈흔, 혹은 시체 조각 몇 개만 남아있겠지.

그렇게 태주는 홀로 설악산 전초기지로 복귀했다.

< 독정(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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