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7화 (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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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스 드럭샵 >

자유도시 구례엔 도시 기반시설이 꽤 잘 갖춰져 있지만 부족한 것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병원.

병원이 별로 없다.

의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구례가 아니더라도 안전한 도시에서 의료 행위로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굳이 위험한 이곳까지 오나?

여기 있는 의사들은 실력이 떨어지거나 의료사고를 내고 도망쳐온 사람들이 대부분, 그래서 병원은 미덥지 못하다.

대신 도시 곳곳에 드럭샵, 약국들이 널려있다.

구례에선 약사가 처방을 내려도 무방하다.

그래서 장사가 꽤 잘된다.

미덥지 못한 병원 가는 것보다 효과가 검증된 약을 사 먹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니까.

태주는 아침 일찍 도시에서 나름대로 평판이 괜찮은 중형 드럭샵으로 갔다.

약국의 이름은 백스 드럭샵.

그곳의 사장은 흰머리 군데군데 보이는 50대의 백홍표.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순간 지혈제? 마나 회복제? 종합 해독제? ···아니면 진통제나 각성제?”

보통 제국 식약처에서 허가된 약을 파는 것이 원칙이지만, 자유도시 자치위원회에서 따로 허가를 내주기도 한다.

임상실험?

아주 간소하다.

효과만 좋으면 뭔들 못 팔겠나?

마약도 파는 마당에.

“사러 온 게 아니고 팔러왔습니다만.”

“···네?”

떨떠름한 표정의 백홍표.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어디서 이상한 약 들고 와서 효과가 있느니, 몸에 좋은 영약이라느니.

“관심 없으니 돌아가세요. 보아하니 외부에서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돈을 벌고 싶으시면 인력시장에 가서···,”

태주는 품에서 10ml 용량의 작은 시약병 3병을 꺼내 매대 위에 놓았다.

툭!

“변종 3줄 무늬 모기 해독제.”

“안 살 거니까 그냥 가요. 해독제든, 영약이든···, 응! 뭐, 뭐라고? 모기?”

“복용 방법은 음용, 미리 마셔도 돼요. 최대 10시간 약효가 지속되고.”

“모, 모기 해독제라고? 허허, 멀쩡한 양반이! 사기를 치려면 골라서 쳐야지···.”

“시험해보고 관심 있으면 연락하세요.”

태주는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도 함께 올렸다.

“시간은 오늘 밤 자정까지, 그 후에 연락 안 오면 다른 약국으로 넘깁니다.”

그대로 백스 드럭샵을 걸어나가는 태주.

백홍표는 황당했다.

매대 위에 올려진 시약병 3개.

‘변종 3줄 무늬 모기 해독제?’

어디서 이런 구라를.

세상에서 제일 만들기 어려운 약이 바로 해독제 종류.

이 샵에도 해독제를 팔고 있다.

광범위 종합 해독제.

그러나 독을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억제해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용도.

물론 특정 독을 완전하게 해독시키는 약도 있긴 하다.

표적 해독제는 당연히 매우 비싸다.

게다가 지리산에 서식하는 독초, 독충, 독마수들이 어디 한둘인가?

현재로선 해독할 수 있는 독보다 해독할 수 없는 독이 더 많다.

“참나! 기가 막히는군.”

아침 일찍이라 직원들이 아직 출근을 안 해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참이었다.

삼한 제국 최고의 제약회사들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모기 해독제를, 저렇게 당당하게 가지고 왔다고?

마수 공략대에게 변종 3줄 무늬 모기는 매우 성가신 해충.

물리면 마나의 응집을 방해하고 흩트려놓는다.

한두 방 물리는 거야 상관없다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물리면 사냥을 포기하고 도중에 돌아와야 할 정도로 심각해지고.

마나 회복제를 복용하면 뭘 해?

생성되는 마나도 흩어지는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지만, 꼬박 하루, 심하면 이틀을 공쳐야 한다.

다행히도 구례시엔 변종 3줄 무늬 모기들이 없다.

모기도 마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리산 마수들은 그들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마수 웨이브가 일어나면 또 얘기가 다르지만.

‘이게 만약 진짜 모기독 해독제라면?’

백홍표는 슬며시 시약병 하나를 손에 쥐었다.

매대 밑에 놓인 약물 판별 키트를 꺼내 병에 담긴 액체를 몇 방울 떨어뜨렸다.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 있으면 키트 판별지가 붉은색으로 변할 터.

하지만,

‘색깔은 그대로군.’

먹어도 괜찮다는 결과.

다시 시약병을 들고 제조실로 들어가는 백홍표.

제조실 안엔 ‘긴꼬리 쎅토끼’ 한 마리가 든 강철 케이지가 있었다.

너무나 약해 생태계 최하에 위치한 동물.

마나 변이로 모든 동식물이 다 괴물처럼 변하는 건 아니다.

긴꼬리 쎅토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이됐다.

왕성한 번식력.

밥 먹고 하는 짓이 그 짓.

한 쌍의 쎅토끼가 특정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 불과 보름 만에 100마리로 늘어난다.

하지만 생존 능력은 최하.

툭, 건들어도 죽는다.

그냥 진통제 같은 약을 먹여도 그대로 기절하는 놈인데.

그래서 긴꼬리 쎅토끼는 동물 실험 용도로 널리 쓰이는 종.

백홍표는 케이지 안 물그릇에 시약병을 부었다.

홀짝홀짝 물을 마시는 쎅토끼.

1시간 정도 기다리니.

‘멀쩡하네.’

소독약 섞인 물을 조금만 먹어도 시들시들 쓰러지는 쎅토끼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시약병 밑에 깔린 액체를 손바닥에 떨어뜨려 혀끝으로 살짝 맛봤다.

‘그냥 맹물인가?’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기를 치려면 그럴듯하게 쳐야지, 향료라도 타서 가져오던가, 이건 숫제 맹물이다.

그때였다.

“백사장님! 아침 일찍 문을 여셨습니다?”

손님 하나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박진수 프로. 오늘도 사냥 가시나 봅니다.”

‘프로’는 주로 각성자에게 붙이는 호칭.

“놀면 쓰나요? 부지런히 벌어야죠. 마나 회복제 두 병만 주세요.”

“알겠습니다. 여기···.”

박진수는 레귤러 등급의 각성자.

별명이 약쟁이일 정도로 약에 의존한다.

그런 박진수에게 매대 위 시약병이 눈에 들어왔다.

“백사장님, 이 약은 뭡니까?”

“아! 이거,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떤 미친놈이 변종 3줄 무늬 모기 해독제라고 가지고 왔는데, 완전히 맹물이에요.”

“엉? 와! 구라가 너무 심했다.”

“그렇죠?”

박진수는 물끄러미 시약병을 바라봤다.

이게 진짜 해독제라면 얼마나 좋겠나.

지독한 모기 새끼들.

그놈들만 없어도 사냥 효율이 두 배로 늘어날 텐데.

슬쩍 시약병 하나를 손에 든 박진수.

그러자 백홍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쎅토끼에게도 먹여봤는데 멀쩡하더라고요. 보통 약도 반응이 오는 놈이잖아요.”

“그래서 맹물이란 말인가요?”

“나도 먹어봤어요. 아무런 맛도 안 났어요.”

“흐음.”

곰곰이 생각하는 박진수 프로.

“마침 목도 마른 데, 이거 제가 먹어봐도 될는지.”

“으흠, 저기 정수기 물이나 마셔요.”

“돈 드릴까요?”

“어허, 내가 돈이 욕심나서 그러나?”

“그럼 공짜라는 말씀이시죠?”

“버릴 거예요.”

백홍표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진수는 시약병 뚜껑을 따고 바로 꿀꺽 마셔버렸다.

“어이쿠! 마셨어요? 참나, 그렇게 약 함부로 먹다 보면···,”

“괜찮습니다. 쎅토끼도 멀쩡했다면서요.”

“맞긴 한데.”

백홍표는 선반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박진수에게 줬다.

“이거 종합 해독제 한 병 챙겨요. 나중에라도 혹시 잘못될 수 있으니까.”

“하하하! 좋네요. 맹물 한잔 먹으니 종합 해독제도 생기고.”

박진수는 종합 해독제와 마나 회복제를 챙기며 말했다.

“백사장님, 수고하세요. 피드백은 사냥 끝나고 와서 할게요.”

“박프로도 약 믿지 말고 방충복 꼭 챙겨입어요.”

“넵! 대박 나십시오.”

백홍표는 약에 대한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어떻게 믿어?

수많은 제약회사가 개발하려다 실패한 약이 바로 변종 3줄 무늬 모기 해독제다.

박진수가 나가고 난 뒤, 백홍표는 남은 시약병 하나를 휴지통에 버렸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저도요.”

“그래, 좋은 아침이다. 어서들 오렴.”

직원들이 출근했다.

아빠처럼 푸근한 미소로 맞이하는 백홍표.

손님도 하나둘 씩 오기 시작했다.

모기독 해독제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 ※ ※

박진수도 솔직히 모기 해독제 따윈 믿지 않았다.

쎅토끼도 아무 일 없다고 해서 그냥 충동적으로 마신 것일 뿐.

그래서 두꺼운 방충복을 입고 사냥에 나섰다.

온몸을 꽁꽁 싸맸다.

지리산 변종 3줄 무늬 모기도 마수인지라 피를 빠는 입술침도 제법 강하다.

심지어 기다랗기까지 하다.

그래서 약한 재질의 방충복은 금방 뚫려버린다.

작은 구멍 하나라도 있으면 거길 통해 모기침이 들어온다.

이곳에 사는 대형 마수종도 이 모기 때문에 진화했다.

모기 입술침을 방어할 수 있는 긴 털이 나 있다든지, 두꺼운 가죽을 가지고 있다든지,

모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

주니어 익스퍼트(junior expert) 이상의 각성자면 가능하다.

모기 입술침이 피부를 뚫지 못하니까.

하지만 익스퍼트가 그렇게 흔한가?

지리산 밀림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민간 각성자들은 거의 유저, 비기너, 레귤러 등급.

“씨발! 땀이 폭포처럼 흐르네.”

오늘따라 유독 덥고 습하다.

이런 날은 모기들이 극성을 부린다.

“어후, 박프로님! 오늘은 대충 사냥하다 돌아가요.”

“맞습니다. 너무 더워요.”

“마수 잡다가 쪄 죽게 생겼네.”

레귤러 등급의 각성자이자 레이드팀의 리더인 박진수는 팀원들을 다독였다.

“한 마리만 더 잡고 빠지자고.”

“···쯧, 그래요. 돈은 벌어야 하니까.”

그들이 사냥하는 건 칼날이빨 담비.

담비 주제에 크기가 송아지만 하다.

물리지만 않으면 꽤 쉬운 마수.

탱커가 방패로 주둥이를 봉쇄하면서 딜러들이 옆구리나 아랫배를 날붙이로 찌르면 그걸로 끝.

박진수는 노련한 탱커였다.

하지만 무더위에 습도까지 높은 날엔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되고.

“크르릉!”

돌진해오는 칼날이빨 담비의 대가리를 방패로 후려쳤지만.

퍼억!

힘이 모자랐는지 담비가 방패 공격을 옆으로 흘려버리며 박진수의 가슴팍으로 이빨로 물어버렸다.

콰악!

“으윽!”

탱커라 몸이 단단하고 튼튼한 방어구도 입었다.

그러나 문제는 방충복.

담비도 늦지 않게 처리했지만···,

“케엑!”

찌이익!

방충복이 그만 세로로 길게 찢겨나갔다.

“제기랄!”

공기가 통해서인지 순식간에 시원해진 몸.

그러나 방충복이 망가졌다.

게다가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담비가 죽으면서 지른 비명으로 주의를 끌어 한꺼번에 3마리의 다른 담비들이 더 나타났다.

“김프로, 장프로, 한 마리씩 맡아. 적합자들도 전투 보조하고.”

달려드는 팀원들.

“잡아!”

“발목을 자르라고.”

“뭐해? 보조 팀도 총으로 갈겨!”

그리하여 벌어진 난전.

정신이 없었다.

방충복이 찢겨나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레이드팀을 구성하면서 각성자는 3명만 데려왔다.

비기너 1명과 유저 2명.

때문에 담비 무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

그래도 박진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명색이 레귤러 등급인데.

푸욱!

“깨앵!”

악전고투 끝에 한 놈 죽이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빠르게 마무리!”

콰직!

“끽!”

“끼이이잉···,”

기어이 3마리 다 죽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캬오오!”

“크르륵!”

또 나타난 2마리의 담비.

“···후우, 이런 씨발!”

어쩔 수 없다.

잡아야지.

숨돌릴 틈도 없이 재개된 전투.

하지만 레이드 팀원들이 입고 있던 방충복들이 거의 걸레처럼 변했다.

이걸 놓칠 모기들이 아니다.

전투에 신경 쓰느라 모기들이 무는 걸 피하지도 못하는 팀원들.

박진수도 마찬가지.

벌써 몇 방 물렸는지 세지도 못했다.

‘이거 위험한데?’

레이드팀 각성자와 적합자들의 몸놀림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다.

아마 모기독의 영향을 받고 있는 모양.

‘이대로 가면···,’

분명 사상자들이 나온다.

박진수는 방패와 검을 있는 힘껏 움켜잡았다.

팀의 리더로서 사명을 다해야지.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박진수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방패로 찍고, 검으로 베고 찌르고···.

그런데 희한하다.

‘뭐지? ···힘이 빠지질 않아.’

분명 모기에 물렸다.

지금도 맨살이 드러난 팔뚝에 모기 몇 마리가 앉아있다.

모기독이 주입되고 있을 텐데 왜 아무렇지도 않지?

‘이거 설마···,’

효과가 있는 건가?

백스 드럭샵에서 마신 그 모기 해독제가?

그 이유 말고 뭐가 있나?

지금도 팀의 각성자와 적합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효과도 없는 마나 회복제를 연신 들이키고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만은 아무렇지도 않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마나의 힘.

‘···일단 잡고 나서 보자.’

박진수의 손에 들린 검이 마나의 기운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백사장님, 백사장님!!!”

“어? 박프로.”

“모, 모기독 해독제 말입니다.”

“해독제라니···, 아하! 아침에 그거? 근데 왜···?”

“이거 더 없어요? 가격은 얼마나 해요? 내가 다 사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렇다는 말은?

“효과가 있었습니까?”

“엄청납니다. 모기에게 수십 방 물렸는데 멀쩡했어요! 심지어 가렵지도 않고. 이거 진짜 끝내주는 약입니다. 어디서 이 기막힌 약을···,”

“어어어.”

백홍표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효과가 있다고?

‘진짜?’

백홍표는 서둘러 휴지통을 뒤졌다.

다행히 남아있었다.

직접 확인해보자.

< 백스 드럭샵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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