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8화 (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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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 개시(1) >

태주는 오늘 하루 쉬기로 했다.

해독제 만드느라 요 며칠 잠도 제대로 못잤다.

계약을 염두에 둔 드럭샵에도 다녀왔고, 이제 그쪽에서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면 될 터.

오지 않으면?

다른 드럭샵과 거래해야지.

그래도 왔으면 좋겠다.

백홍표가 사장으로 있는 백스 드럭샵은 도시에서 평판이 가장 좋은 상점, 사실 그 양반은 구례에서 인덕이 높기로 유명한 사람, 그동안 구례에 있으면서 많이 들었다.

태주는 허름한 여관 숙소에서 혼원무상독령공을 수련했다.

수련의 주요 목적은 독정(毒精) 안정화 작업.

너무 빠르게 3성에 올랐다.

그래서 속도 조절 또한 필요하다.

무작정 독만 흡수하다 보면 어떻게 될까?

제어하지 못하는 독기는 터질 위험이 있다.

일반 내공으로 따지면 주화입마 같은 것.

자칫 잘못하면 독기가 역류해서 도리어 제 몸이 상한다.

독정(毒精)을 압축해서 안정시켜야 한다.

‘당분간 독은 끊어야겠네.’

무리하게 키운 독정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뭐, 3성이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건 충분하잖아.’

천천히 가자. 천천히.

물이 끓어야 쌀이 익지.

혼원무상독령공 3성의 경지를 시스템 각성자와 비교하면 최소 레귤러 이상.

1성일 때도 비기너인 장인동을 죽였다.

놈이 방심한 탓도 있지만.

그리고 경지가 오름에 따라 쓸 수 있는 무공 초식도 늘었다.

무공 하나하나가 스킬이나 마찬가지.

수련을 마치고 태주는 오후에 숙소 밖을 나섰다.

‘외출이나 해볼까?’

마침 가볼 데도 있다.

식당에 들어가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지나다니는 전차에 요금을 내며 올라타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구나. 확실히 돈이 많은 동네야.’

자유도시 구례.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대신 오밀조밀하게 모여 사는 사람들.

있을 건 다 있다.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공항에 기차역, 마수 결정체를 이용한 전기 에너지 발전소, 아파트가 모인 주거촌, 슬럼가.

이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반면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된 구역이 있었다.

저기 보인다.

멀리 보이는 중세풍의 성채.

‘진짜 성벽이네. 2323년에 성이라니.’

인공호수 너머에 세워진 거대한 장벽.

일명 캐슬이라고 부르는 특별 주거 지역.

저곳에 들어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거주민 증명이 반드시 필요하고.

캐슬에 사는 이들은 구례시 부유층과 고등급 각성자, 고위 관리, 자치위원회 의원과 그 가족들이다.

그중에서도 자치위원회.

구례시를 운영하고 책임지는 핵심.

자치위원회 구성원들은 지역 토호 및 유지들.

2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원장은 없지만 상임 위원이 3명 있다.

노고단 길드 이정학 길드장, 천왕그룹 민동열 회장, 그리고 제국 내무청에서 파견 나온 2급 사무관 지광인.

구례 자유도시의 굵직굵직한 정책은 이 3명의 상임 위원 의사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캐슬이라.’

저기 살려면 성안에 집이 있어야 한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 해도 최소 100억 이상.

그마저도 매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구례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니까.

설령 마수 웨이브가 일어난다고 해도 캐슬만은 안전하다.

‘돈을 벌면 저기서 살아볼까?’

그러나 돈만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

그에 걸맞은 힘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연줄도 필요하고.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섬진강 줄기 따라 구례장터, 삼한제국 전체에서 손꼽을 정도로 규모가 큰 시장.

뭘 사러 온 건 아니다.

먹고살 돈도 부족하다.

그냥 구경만 하는 거지.

특히 마수 부산물로 만든 장비 같은 거.

‘휘황찬란하네.’

마나 거부자로 태어나 군대 입대 전까진 파주 영지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큰 시장도 처음.

적합자, 각성자 전용 섹터에 들어서니 온갖 아이템들이 자태를 뽐내며 진열대에 그득하다.

물건의 가격은···,

‘뭐 이리 비싸?’

아이템 가격의 최소 단위가 백만 대.

천만, 억 단위도 널렸고.

기성품만 파는 게 아니다.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그래서 시장 주변엔 수제 공방들도 즐비했다.

‘역시 주문 제작이 낫겠지?’

자신과 영혼이 같은 강호 무림의 절대독마 당군악.

그는 항상 발목까지 오는 화려한 장포를 입고 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장포 안엔 셀 수 없이 많은 주머니가 달려있었고, 그 안에 각종 암기와 독물들을 휴대하고 다녔다.

뿐인가?

허리띠, 손목 팔목 보호대, 신발, 장갑, 장비란 장비에 죄다 주머니를 만들었다.

싸우다가 암기가 모자라면 안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독술과 암기술은···.

‘진짜 돈이 많이 드는 무공이야.’

하지만 지금 태주는 가난뱅이, 조잡한 단검 하나 사지 못한다.

눈앞에 보이는 가죽 공방.

그곳에 걸린 회색 빛깔 롱코트.

‘환상 여우 가죽으로 만든 코트라고?’

시베리아 온대림 마수 밀집 지역에서 사는 환상 여우의 가죽, 코트의 가격은 30억, 주문 제작 필수.

기본적인 방어력도 갖추고 있으면서 여름에 입으면 시원하고 겨울에 입으면 따뜻하단다.

‘탐나네.’

가죽 공방에서 환상 여우 가죽으로 풀세트 방어구를 주문하면 돈이 얼마나 나올까? 최소 50억은 줘야 할 터.

다음은 금속 공방.

검이나 칼, 투척 무기등을 판매하는 곳.

유엽비도나 수리비도, 철환 같은 것도 각각 최소한 100개씩은 가지고 다녀야 하고, 가느다란 세침 또한 1,000개 이상 필요한데.

독물은 직접 제조하면 된다.

하지만 무기는 어쩔 수 없이 돈 주고 사야 한다.

강호의 절대독마 당군악이야 사천당가에 소속된 대장장이에게 ‘몇 개 만들어다오.’ 라고 지시만 내리면 즉시 대령해 주겠지만 삼한제국의 절대독마 김태주는 개털 신세.

그림의 떡.

그저 다음에 돈 있으면 사야지 하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기성품 판매장도 존재한다.

주로 돈이 쪼달리는 적합자와 각성자들이 이용하는 매장.

그러나 이곳에서도 주문 제작 공방 뺨을 후려칠 정도로 비싼 물건들이 있었다.

프리미엄 마법 매장.

그렇다.

말 그대로 마법.

가격표는 붙어 있지도 않다.

오파츠라고 할까.

지구의 마나 과학 기술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아이템들.

예를 들어 자동 방어막을 사용할 수 있는 팔토시.

불덩어리를 하루 3번 쏠 수 있는 반지.

휘두를 때마다 번개 줄기를 뿜어내는 검.

무한히 들어가는 아공간 가방.

어디서 나온 물건인지 모른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엄청난 금액으로 팔린다는 것만 알 뿐.

‘아공간 가방 하나만 있으면 딱인데.’

그러나 아공간 아이템은 구경도 못 해봤다.

여기 구례 시장에도 없다.

그저 5천억에 팔렸다는 소문 정도는 듣긴 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김웅방 준장도 아공간 가방은 소유하고 있지 않을 터.

‘그만 갈까?’

여기 있다간 눈만 높아질라.

순간!

지이이잉!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응?’

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짐꾼 일 구할 때 친분이 있던 중개인, 아니면···,

“여보세요.”

- 백홍표입니다. 그, 그분 맞으시죠? 모기독.

입질이 왔다.

효과를 알아본 모양.

- 전화 괜찮으시면···.

“만나서 이야기하죠. 아까 보니까 드럭샵 앞에 카페가 하나 있던데.”

해독제 팔러 가자.

※ ※ ※

“정식으로 인사 드리겠소. 백홍표라고 합니다.”

“김태주입니다.”

‘백스 드럭샵’ 맞은편 카페.

태주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마자 백홍표는 다급하게 물었다.

“해독제 제가 모조리 사겠습니다. 물량은 어떻게 됩니까?”

“효과가 있었나 보죠?”

“당연합니다. 이건 지리산 마수 사냥에 혁명을 가져올 약입니다.”

잔뜩 흥분한 백홍표.

“무, 물량은 충분하게 있습니까?”

“네. 원액이 있거든요. 20L들이 물통 10개, 정제수에 희석해서 10ml 시약병에 담아서 복용하면 됩니다.”

“···희석 비율은요?”

“3 대 1, 한 6만 병 정도 나오겠네요.”

“오! 혹시 다 팔면?”

“즉시 추가 생산 가능하고요.”

백홍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물량이 부족하면 헛빵이다.

이제 가격 이야기.

자신이 직접 파트너로 선택한 백홍표 사장.

그에게 물어보자.

“제가 이쪽 분야는 잘 몰라서···, 이걸 얼마에 팔아야 할까요? 백사장님께서 조언을 주세요.”

잠시 고민하는 백홍표.

그리고 입을 뗐다.

“저···, 병당 제조 원가는 어떻게 됩니까?”

백홍표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는 태주.

‘제조 원가라.’

뭐, 정제수와 물통? 거기에 자신의 노동력.

얼마를 책정할까.

“병당 만 원 정도?”

“아! 그렇군요.”

사실은 100원도 안 할 테지만.

그의 말에 백홍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약의 수요자는 마나 적합자와 각성자들입니다. 일반인들에겐 변종 3줄 무늬 모기 독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맞다.

산공독 종류라 마나를 가진 사람에게만 작용하는 독.

“물론 각성자, 적합자는 벌이가 괜찮아서 해독제가 있다면 사서 쓰겠지만···,  너무 비싸면 차라리 방충복 입는 걸 택할 겁니다.”

모기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

방어구를 착용했지만 맨살이 드러나는 곳은 방충 장비를 그 위에 껴입는 식,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러나 지리산 일대는 아열대 기후.

엄청나게 덥다.

모기 피하려다 쪄 죽을 판.

“이 해독제는 마수 사냥의 부담을 덜어줄 거라는 건 분명합니다. 가격만 적당하면 무조건 사겠죠.”

“그래서 얼마에 팔면 적당하겠습니까?”

“5만 원 정도면, 사람들이 부담 없이 지갑을 열겁니다.”

5만 원.

모기를 피하기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할만한 가격.

초기 물량이 약 6만 병이니까, 5만 원이면 30억.

이게 지리산 밀림에 한 번 나가서 채집한 독초를 이용해 만든 원액.

돈 벌기 쉽다.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

“세금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세금?”

“마수 사냥으로 얻은 부산물 판매에 대한 세금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2차 가공으로 유통하는 상품에 대한 세금은 일괄적으로 순이익의 10%입니다. 공급자, 판매자에게 모두 적용됩니다.”

30억 팔면 세금이 3억이란 말.

얼마 안 되는 돈이다.

역시 자유도시 구례.

“판매 허가 절차는 어떻게 됩니까?”

“간소한 편입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되거든요.”

남은 건 공급가를 결정하는 것.

백홍표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도매가 3만 9천 원이나 4만 원 정도면 저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면···,”

태주도 잠시 고민하다가.

“혹시 약물 판매 허가 절차를 대행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구례엔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다.

이것도 행정 절차이니 구례에서 오래 산 사람일수록 유리하겠지.

“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약물 특허권 등록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치위원회 약품 허가부서에 아는 사람도 있어서.”

“그리고 약물을 제조할 공간도 필요합니다. 되도록 은밀하고 조용한 곳이면 좋겠네요.”

“적당한 장소가 있습니다.”

“또 차후에 생겨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셔야 하고···, 제가 여긴 처음이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죠.”

백홍표는 나름 구례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

그래서 태주가 그를 선택했다.

“그럼 3만 5천 원에 공급하는 걸로 합시다. 1년간 독점 판매권도 드리죠.”

“···네?”

깜짝 놀라는 백홍표.

“아니, 굳이 그렇게 안 하셔도···.”

모기약 해독제,

시판되면 무조건 팔리는 약.

사실 드럭샵 입장에서 공급가 3만 5천 원이면 많이 남겨 먹는 거, 4만 원에 공급한다고 해도 얼씨구나 한다.

그런데 거기에 1년 독점 판매권까지.

“고아원 운영하시잖아요. 약국에서 나는 순이익은 거의 고아원 운영에 쓰인다고 들었는데,”

“어어어, 아, 알고 계셨군요.”

“구례에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저도 돕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백스 드럭샵과 백스 고아원.

약 팔아서 고아 돌보는 백사장.

그가 평판이 좋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

“그리고 부탁드릴 게 있는데,”

“뭐든 말씀해주세요.”

“수익이 나면 최대한 제 몫을 빨리 댕겨주실 수 있나요? 필요한 곳이 있어서.”

백홍표는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가능합니다. 돈이 들어오는 대로 즉시 입금하겠습니다.”

거래가 끝났다.

태주도 만족했고 백홍표도 그랬다.

그리고 약 보름이 지난 후.

자치위원회에서 판매 허가가 떨어졌다.

300년 전이라면 무슨 동물 실험이니, 임상 실험이니 여러 단계를 거쳐야 시판 허가가 났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자유도시 구례에선.

지긋지긋한 모기 독을 해결할 수 있다는데,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있나?

그리하여 백스 드럭샵에 붙은 광고 문구.

<모기독 해독제 판매 개시!>

<단돈 5만 원으로 변종 3줄 무늬 모기에서 해방되세요.>

6만 병이 다 팔리는 데 채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 판매 개시(1)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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