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0화 (1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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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싸워! >

장비 일체를 주문했다.

환상 여우 가죽 코트, 손목, 발목 보호대와 허리띠, 조끼와 바지, 일섬(一閃)을 펼칠 유엽비도(柳葉飛刀), 비폭(飛瀑) 용도의 폭우이화정과 사혈침, 나비 모양의 혈접(血蝶)···.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남는 시간에 해독제 재료나 충분히 채집해두자.

그렇게 독초를 채집하고 법제해 원액을 만들고.

모기 해독제의 판매도 순조롭다.

매출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차하면 매진.

언론들도 뒤늦게 취재에 열을 올렸다.

지역 신문사 ‘구례자유일보’에서는.

<백스 드럭샵, 모기독 해독제가 구례를 휩쓸고 있다.>

<개발자 김태주는 누구? 이름과 나이 말고는 아는 게 없어.>

<구례에서 활약하는 레이드 팀원들의 반응은? 모두 찬양 일색.>

<모기독 해독제가 구례를 구했다. 마수 웨이브 가능성 줄어들어.>

<시민들, 백스 드럭샵의 성공을 반기는 분위기, 오랫동안 구례 소외 계층을 위해 노력해온 백홍표 사장.>

그런데 조금 이상한 감이 든다.

백스 드럭샵이 모기 해독제로 구례 약국 시장을 휩쓸고 있음에도 희한하게 조용했다.

여타 약국이나 제약회사들의 손해가 막심할 텐데, 이쯤이면 뭔가 액션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당황해하거나, 간을 보는 중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필사적으로 약을 분석하고 있겠지.

제네릭, 즉 카피약이라도 만들어 보려고.

레이드에 필요한 약에는 허가 절차가 간소한 대신 특허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약 성분이 똑같지만 않으면 특허에 위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비슷한 해독제 카피해서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비타민제 몇 개만 섞어도 무사통과.

하지만 분석해 봤자, 혼원무상독령공의 법제 방식을 파악이나 할 수 있을까?

‘한 2년은 족히 걸릴 거다.’

어쩌면 더 걸릴지도.

모기 해독제.

몇 년 동안은 든든한 캐시카우가 될 터.

태주는 호텔방에서 룸서비스를 통해 아침을 먹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호사스러운 생활.

파주 영지에 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비교조차 안 되지.

파주는 가난한 영지였으니까.

밥도 먹었겠다, 슬슬 준비하고 나가려 참이었다.

그런데!

띠리링!

외출복을 입자마자 걸려온 전화.

‘백사장님인가?’

아니었다.

- 어이, 김씨!

“···아! 안녕하세요.”

잠시 짐꾼 일을 할 때 알았던 중개인.

- 얼굴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 일은 그만둔 거야? 어디 아픈 데라도 있어?

“네, 잠시 쉬고 있던 참입니다. 여전히 잘 계시죠?”

- 하아, 잘 지내긴 하는데, 요즘 짐꾼 수요가 늘어나 미치겠어. 찾는 데는 많고, 사람은 모자라고, 모기 해독제 때문에 구례에 마수 레이드팀이 엄청나게 늘어났잖아.

“힘드시겠어요.”

모기 해독제의 나비효과인 듯.

실제로 구례 자유도시는 또 한 번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레이드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지리산 밀림 지대는 삼한제국 내에서 마수들의 밀도가 높기로 유명한 지역 중 하나.

그동안 그놈의 지긋지긋한 모기 때문에 사냥 만족도가 최하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뭔데요?”

- 짐꾼 하나가 펑크를 냈어. 이번 한 번만 도와줘.

“···어.”

- 짐꾼 대타 뛰어주면 안 될까? 보수는 넉넉히 챙겨줌세.

고민된다.

이젠 짐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죠. 도와드릴게요. 이번 한 번만.”

- 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도저히 거절하지 못하겠다.

돈 한 푼 없이 구례에 처음 와서 일용직 짐꾼 일을 시작했을 때, 여러모로 도와준 사람이 바로 이 중개인, 물론 자신이 일을 잘한 이유도 있지만.

은혜는 10배로 갚아주라는 말이 있다.

10배까진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들어줘야지.

물론 원한은 100배.

태주는 대용량 짐꾼용 배낭을 꺼냈다.

원래는 버리려고 했는데.

호텔을 나와 약속 장소로.

옛날 옛적 지리산 국립 공원 주차장이 있던 자리.

‘저 사람들이군.’

중개인이 스마트폰으로 레이드 팀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짐꾼 대타로 온 김태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팀장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쏘아붙였다.

“씨발,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너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지체됐는지 알아?”

“···대타로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래서? 어쩌라고? 나불대지 말고 배낭이나 메고 따라와.”

아무래도 잘못 왔나 보다.

원래 오기로 한 짐꾼이 펑크낸 이유를 알겠다.

‘레이드팀 숫자도 많이 줄였네.’

원래는 15명이 국룰.

하지만 현 인원 7명.

짐꾼 2명, 적합자가 3명, 각성자 2명.

모기 해독제 판매 때문에 레이드팀 인원이 줄어드는 추세라지만 이건 너무 줄였다.

“이 인원으로 갑니까?”

“어라? 짐꾼 새끼가 건방지게···, 뒈질래?”

“야야야, 참아! 이 새끼 죽이면 짐은 누가 들어? 그리고 너! 한 번만 더 궁시렁거리면 팔다리 잘라서 마수 먹이로 던져준다. 알아들었어?”

“···.”

끼리끼리 논다더니, 각성자 두 놈이 똑같다.

전투 보조로 같이 온 적합자들도 다를 바 없었다.

“구례 짐꾼 새끼들은 먹고 살 만한가 봐? 참나! 이 인원으로 갑니까? 짐꾼 따위가 이런 얘기 하는 거 처음 들어봤네.”

“그만 패라. 저러다 도망갈라.”

“낄낄낄, 이미 왔는데 지가 어쩌겠어? 도망가면 나한테 죽는 거지.”

“쯧쯧, 빨리 가자. 프로님들 심사가 불편해지기 전에.”

각성자나 적합자나.

대체 이 새끼들은 뭐지?

나름 짐꾼 생활 꽤 해봤는데, 이렇게 싸가지없는 놈들은 처음,

태주의 내면에서 점점 살심(殺心)이 치솟아 오른다.

‘죽여야겠군.’

여기선 아니고 조용한 곳에서.

군용대검에 독기를 불어넣어 쿡, 하고 찌르면 일곱 발자국도 못 가서 죽겠지.

적합자와 각성자는 조금 더 오래 가려나?

‘증거가 남으면 곤란하니까 6명 모두 독으로 죽이고, 시체는 화골산으로 녹여···.’

아! 화골산은 아직 없지?

시체야 밀림에 둬도 되지 않을까?

전처럼 마수가 먹어 치울 테니.

순간!

‘응?’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 죽이는 걸 너무나 쉽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왜···,’

심지어 자신 빼고 6명 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동료 짐꾼까지 포함해서.

단지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심해야겠네.’

태주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고 있다.

또 다른 자신

절대독마 당군악의 영향.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만나면 그냥 넘어가는 것보다 죽이는 걸 택하는 독심(毒心).

‘후우!’

심호흡과 함께 살심을 가라앉히며 태주는 레이드팀 후방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건네는 중년 나이의 동료 짐꾼.

“태주 동생, 잘 참았어.”

이제 보니 안면이 있는 사람.

예전에 함께 짐꾼 일을 했던 기억이 났다.

“아! 형님이셨네요.”

“어, 밀림으로 들어온 이상 기분 더러워도 참자고. 저 새끼 기분 수틀리면 우린 진짜 마수 밥이 될 수도 있어.”

“···설마 그런 짓거릴 저지를까요?”

“다른 각성자야 모르겠지만 저것들은 충분히 그럴만해. 이미 소문이 파다하거든.”

“알던 놈들이었습니까?”

“권동석 레이드 팀이라고, 최근에 구례로 흘러들어온 뜨내기들이야. 저 적합자들도 같은 패거리고.”

그럴 줄 알았다.

아무리 공권력이 약한 구례라지만 저 짓거리 하다간 제대로 레이드 팀을 만들지도 못할 터.

“근데 소문은 무슨···,”

“며칠 전에 저놈들하고 같이 간 짐꾼 몇몇이 실종됐다는 말이 있어.”

“자치위원회에서 가만히 나 뒀어요?”

“증거가 있나? 고발도 안 들어왔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거지.”

어차피 일반인과 적합자, 혹은 각성자가 연루된 갈등에서 일반인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마나에 적응한 이후, 무섭게 폭발한 인구.

삼한제국의 인구만 해도 6억이 넘었다.

인구가 많을수록 생명은 경시된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마나 거부자가 죽으면 사인도 조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형님은 왜 오셨어요? 여기 말고도 짐꾼 찾는데 많을 텐데.”

“저놈이 팀장일 줄 알았나? 알았으면 안 왔지. 펑크낸 박씨도 여기 왔다가 저놈 얼굴 보고 돌아갔을걸?”

“아···.”

된통 걸렸다.

어쨌든 왔으니 짐꾼 역할은 수행하자.

지리산 밀림으로 들어가는 레이드 팀.

늘 그렇듯 막공 레이드팀의 사냥 대상은 칼날이빨 담비.

태생이 담비인지라 가죽이 비싸게 팔린다.

놈의 이빨도.

사냥은 순조로웠다.

팀원 숫자가 적긴 하지만 모기 해독제를 복용해서인지 방충복에서 해방된 전투 요원들의 몸놀림.

서걱!

푸욱!

각성자가 담비를 처리하면 적합자들이 가죽을 벗기고 이빨을 뽑고, 짐꾼들은 부산물을 배낭에 쑤셔 넣고.

“에너지 결정체 나왔어요.”

“오! 나한테 가져와!”

“분위기 좋네. 방충복 벗으니 날아갈 것 같군.”

“낄낄낄, 역시 모기 걱정 안 하니 식은 죽 먹기였어.”

그러더니 태주를 보며.

“야! 너 아까 이 인원으로 가냐고 물었지? 대답이 됐냐? 천한 짐꾼 새끼가 겁만 많아서는···.”

“저러니 짐꾼이나 해 먹고 있지.”

태주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러다 또 살심(殺心)이 올라오면 진짜 죽일지도 모르기에.

‘기분은 더럽지만 빨리 끝나겠네.’

모기 해독제가 마수 레이드에 혁명을 가져온 건 맞긴 하는가 보다.

고작 5명의 전투 인원이 담비를 잡고 다니니.

하지만 그건 사냥 대상이 칼날이빨 담비일 때 가능한 이야기였다.

레이드팀은 곧 지리산에서 상대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마수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크르르르르르···,”

묵직한 저음의 목울대 소리.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의 털이란 털은 바짝 곤두설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

“어···,”

“저, 저게 왜 여기서?”

붉은 털 늑대.

몸집도 크고, 칼도 잘 안 들어간다는 빳빳한 가죽에, 흉포하기 이를 데 없는 공격성, 이놈의 가장 무서운 점은···,

“크르르르.”

항상 암수 한 쌍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워우우우우!”

“우워어어어!”

늑대 특유의 하울링과 함께 앞쪽과 뒤쪽에서 동시에 나타난 붉은 털 늑대 두 마리.

“이, 이런 씨발!”

비기너 등급의 각성자 권동석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늑대 영역엔 가까이 갈 생각도 없었다.

비기너 등급의 각성자 4명이 있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붉은 털 늑대.

그저 담비만 잡아 배낭 꽉 채우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마찬가지로 각성자인 친구 장원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 동석아! 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도망가야지.”

하지만 뒤를 보이면 안 된다.

늑대 마수는 등을 보이는 사람을 가장 먼저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늘 해왔던 방법이 있다.

이 레이드 팀에서 가장 쓸모없는 놈들을 활용하는 것.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는 붉은 털 늑대.

권동석은 먼저 친구 장원준에게 눈짓했다.

장원준도 권동석이 무얼 하려는지 안다.

먹이 던져주고 도망가기.

늘 이런 식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전투 보조 마나 적합자들도 서로 눈짓하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중, 한두 번 해보나? 그렇게 짐꾼 2명을 포위했다.

2명이니 1명은 앞의 늑대에게 밀고, 나머지 1명은 뒤의 늑대에게 밀고.

늑대 마수가 짐꾼들을 덮치는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간다.

태주 또한 놈들이 무얼 하려는지 눈치챘다.

‘하! 이 새끼들 봐라?’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긴!

여긴 지리산 밀림이다.

짐꾼 2명이 마수에게 죽는 다고 해서 이상할 것 하나 없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밀어!!!”

권동석이 태주를 가리키며 적합자들에게 외쳤다.

바로 그때!

츠핏!

태주의 손에서 길게 뻗어 나온 은색의 빛이 앞을 막고 선 붉은 털 늑대의 정수리와 이어졌다.

푸욱!

군용대검이 늑대 머리에 손잡이까지 박혔다.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잔상.

너무나 빨랐고 또한 정확했다.

“어?”

“주, 죽었어?”

“미, 미친!”

각성자와 적합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거 뭐지?

저 건방진 짐꾼의 손에서 뭔가 번쩍하더니 늑대 한 마리가 죽었다.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 나가는 태주,

쓰러진 늑대의 머리에서 대검을 뽑았다,

그러자,

중간이 뚝 부러져 나온 군용대검.

군용이지만 그래도 마수 부산물이 섞였을 텐데.

“에이, 부러졌네. 역시 군보급품은···,”

멍하니 태주를 바라보는 권동석과 장원준.

대체 어떻게?

각성자 2명이 협공해도 상대하기 힘든 붉은 털 늑대.

그런데 짐꾼 주제에 저렇게 쉽게 처리한다고?

“크르르···, 크릉!”

자신의 반려자가 죽자 남은 한 마리의 늑대가 증오에 찬 눈빛으로 으르릉댔다.

하지만 놈도 힘의 차이를 알아차린 듯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이빨을 드러내며 몸만 잔뜩 웅크렸다.

붉은 털 늑대의 울음에 담긴 분노.

권동석과 장원준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살 수 있다.

저 정체불명의 짐꾼이 나머지 한 마리마저 처리해 준다면.

모두 같은 생각인지 레이드팀 모두가 태주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태주의 입이 열렸다.

무심하게 권동석과 장원준을 보면서.

“싸워.”

“뭐? 어···, 네?”

“한 마리 처리해줬잖아. 남은 건 니들이 해.”

“아, 아니 그게 무슨 말···,”

“싸우라고! 우린 짐꾼이고 너희들은 전투 역할이잖아.”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권동석.

반려를 잃은 늑대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해?

“대, 대신 죽여주면 안 될까? 대가는 충분히 치를게. 마수 부산물과 결정체 다 넘겨줄 테니···,”

그때였다.

핏!

권동석의 오른쪽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물체.

뜨끔! 하는 느낌과 함께 뜨뜻한 액체 같은 것이 오른쪽 얼굴 측면에서 흘러내렸다.

손으로 가져가 만져보니.

“으아아아악!”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피.

사라져 버린 오른쪽 귀.

짤랑짤랑.

태주는 손안에서 동전들을 굴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마. 뒤통수에 동전이 박히기 싫으면! 그러니까 싸워!”

< 니가 싸워!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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