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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독제 하나 더 추가(2) >
지금 현재 태주의 성취는 강호에서 이류 무사와 일류 무사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아직 약하다.
절대독마를 앞에 붙이기에 부끄러운 수준.
‘단계를 밟아 가야지. 급히 쌓은 건 쉽게 무너져.’
4성으로 가는 발판은 다져놓았다.
안정화된 독정 덕분에 더 강하고 더 많은 양의 독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엄청난 속도다.
지구의 김태주, 그리고 강호 무림의 당군악.
같은 혼원무상독령공을 익혔지만 수련의 방향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
당군악은 독정을 키워가며 깨달음을 얻었지만, 태주는 깨달음부터 얻고 나서 독정을 키우고 있었다.
솔직히 태주에게 혼원무상독령공은 복습.
개사기지.
무공도 그랬다.
모든 걸 깨닫고 시작한다.
그래서 지리산 밀림의 엔간한 마수들은 잘 차려진 밥상.
피핏!
독기를 머금고 날아가는 유엽비도.
일단 한방씩 꽂아두고 환영미리보로 이리저리 피하면서 시간을 끌다 보면.
바르르르 떨면서
털썩, 털썩, 털썩···,
쓰러지는 마수들.
혼원무상독령공 3성의 독정(毒精)에서 나오는 독기는 절정의 무사라도 얕볼 수 없는 경지.
독공이 이래서 좋다.
거의 치트키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
‘그나저나 포자 독 낙타 고라니는 어디 있는 거야?’
이놈도 천적이 있다.
지리산 밀림을 주름잡고 다니는 흉포한 마수, 바로 자이언트 반달곰이다.
자이언트 반달곰에게 웬만한 독은 무용지물.
크고 강력한 마수의 웅담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독을 즉시 해독시켜버린다.
웅담은 매우 채집하기 힘들뿐더러, 영약과 만능 해독제의 재료로 사용되기에 가격이 많이 나간다.
순간!
부스럭!
밀림 수풀 사이에서 고개를 빼곡 드러낸 마수 한 마리.
‘찾았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
등에 쌍봉낙타처럼 혹 2개가 있어 붙여진 이름.
놈이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
학습효과일 터.
웬만한 인간들을 자신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니까.
태주도 놈을 못 본 채 지나가는 척하면서···,
휘릿!
환영미리보.
단번에 놈의 지척으로 이동.
콰악!
양손에 쥔 탈명비도 두 자루로 놈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찔렀다.
“으아, 으아아아, 으아아악!!!”
사람이 지르는 비명과 흡사한 고라니의 울음.
동시에!
퐁!
낙타 고라니 혹에서 셀 수도 없이 무수한 포자들이 솟아 나왔다.
퐁!
나머지 혹에서도.
먼지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극독을 품고 있는 미세한 크기의 포자.
공기 중에 노출되고 1시간이 지나면 독은 사라진다.
하지만 이 아까운 독들을 그냥 날려?
태주는 즉시 혈인독장(血印毒掌)을 시전했다.
독기를 방사해 공력으로 포자들을 자신에게 이끈다.
스읏, 스스스스스스!
손짓에 따라 공 모양으로 뭉쳐지는 포자 먼지.
혼원무상독령공이 3성에 이르러 이젠 손바닥으로 독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물론 직접 먹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오히려 천천히 흡수하는 것이 더 낫다.
‘변종 칠점사 독보다는 훨씬 강하네.’
그때 독정을 생성하려다 얼마나 고생했나?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혼원무상독령공의 통제하에서 천천히 흡수되는 포자 독.
미처 끌어오지 못한 포자들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피부에 닿자 붉은 반점이 생겼다 금세 사라졌다.
독공을 익혀 이 정도지만 각성자라도 피부에 닿으면 위험할 터, 방독면 필터도 녹여버리는 수준인데.
‘4성 가나?’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괜찮다.
기회가 왔으니 간다.
포자로 만든 공의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그럼 더 끌어모아서,
스슷! 스스슷!
독기가 소용돌이친다.
그 바람에 여우 가죽 코트가 들썩인다.
태주의 혈맥으로 치닫는 포자 독의 흐름.
기해혈로 이르면 독정(毒精)이 놓칠세라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동시에 각인되는 포자 독의 DNA.
독정이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원숙해진 혈인독장.
허공에 손을 휘저으면 포자들이 빨려 들어오고, 그것들은 태주의 몸속에서 독기로 치환되었다.
먼지 한 톨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포자 독을 가득 품었지만,
‘조금 모자라나?’
태주는 미리 채집해둔 독 발톱 삵의 독낭을 꺼냈다.
그마저 입에 털어 넣고,
잠시 후 긴 호흡과 함께,
“후우···,”
태주는 드디어 혼원무상독령공 4성에 올랐다.
1성의 차이는 크고도 크다.
이젠 일류 무사라고 해도 거리낌이 없을 경지.
독공이 성장하려면 이미 섭취한 독을 암만 먹어봐야 소용없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독을 섭취해야 한다.
이번에 4성으로 오른 것도 포자 독과 삵의 독낭 때문이고.
‘이놈 말고도 독을 가진 놈들이 많겠지?’
한 300년쯤 묵은 독삼(毒蔘) 같은 걸 발견하면?
중간 목표는 7성.
혼원무상독령공 7성은 독인의 경지.
흡수했던 독으로 온갖 종류의 독을 만들 수 있는 경지, 아마 마스터들도 한 줌의 독수로 만들 수 있을 터.
포자 독을 다 쏟아낸 고라니가 목이 반쯤 잘린 채 죽어 있었다.
그냥 둘 수 있나?
도축해서 가져가야지.
도축은 당군악의 특기.
마교에 쫓겨 가문 전체가 멸문의 위기에 처해 도망쳤을 때, 산짐승이라도 잡아서 먹어야 했기에 수도 없이 했었다.
태주는 탈명비도를 들고 고라니에게 다가갔다.
이것도 암기의 일종이지만 크기가 제법 큰 비도.
서걱, 서걱, 서걱.
능숙하게 가죽을 벗겨내고 고기와 뼈를 분리하는 태주.
고기만 아니라 뼈와 내장도 챙긴다.
특히 내장엔 놈이 즐겨 먹는 식물들이 들어있을 터.
해독제 개발의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마침 배도 고프니까···.’
그 자리에서 불을 피웠다.
등심 부분을 꼬챙이에 끼워 얹으니.
지글지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기.
태주는 후후, 불어 열기를 식히고 한입 베어 물었다.
이빨 사이에서 주르륵 흐르는 육즙.
‘···뭐야? 이 맛은?’
소금과 후추 간도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고?
“와! 미쳤다, 미쳤어.”
왜 극상의 맛이라는지 알겠다.
이러니 삼한제국의 황제도 환장하지.
남은 건 냉장고에 보관해서 숙성시키고.
근데 한 마리로는 부족할 것 같다.
‘몇 마리 더 잡아볼까?’
4성에 오른 기념으로 말이다.
흡수하느라 채집하지 못한 포자 독도 다시 채집할 겸.
※ ※ ※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태주는 새로 산 자신의 소유 건물로 돌아왔다.
더 이상 호텔에선 묵지 않을 예정.
태주는 건물 안 지하 통로를 통해 대피소로 내려갔다.
마수 웨이브를 피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하 대피소, 바깥 문을 열고 계단으로 한참을 내려가니 또 하나의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그 위에 살포시 붙여진 종이.
<지하 제조실 인테리어 다 끝마쳤습니다. 확인하시고 마음에 드시면 비번 바꾸시고 사용하시면 됩니다.>
‘빠르게 끝냈네.’
디지털 기기로 된 잠금장치.
미리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눌러서,
띡, 띠딕, 띡, 띡, 띡, 띡.
육중한 문을 손으로 당겨 열었다.
그러자.
“와!”
생각보다 훨씬 넓다.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 각종 작업대와 실험실 도구, 그리고 벽면에 가득 붙어있는 약제 저장고.
“깔끔하네.”
자신의 돈으로 직접 마련한 공간.
특히 신경을 쓴 건 저장고.
독초와 약초는 온도에 민감하다.
서늘하게 보관해야 하는 게 있고 냉동시켜야 하는 것이 있다.
태주는 배낭을 열어 고라니 고기를 냉동실에 넣었다.
처음 한 마리 잡은 후, 2마리 더 잡아서 총 3마리.
그러다 보니 고기와 뼈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 큰 배낭이 가득 차서 나무 덩굴로 묶어 손에 들고 왔을 정도, 혼자 먹기엔 너무 많다.
‘백사장님에게 이야기해서 고아원 아이들과 나눠 먹어야겠다.’
그 아이들이 고라니 고기 맛이나 봤을까?
바로 그때!
띠리링!
걸려오는 전화.
발신인을 보니 백홍표 사장이었다.
‘마침 잘됐네.’
직원들하고 고아원 아이들하고 회식이나 하자고 하자.
“네, 백사장님, 접니다. ···네? 뭐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태주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 ※ ※
백스 드럭샵.
지금은 영업을 종료했지만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심각한 표정의 백홍표 사장.
태주가 오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어서 와요, 태주씨.”
“···백사장님, 고생이 많으시네요.”
“뭘요. 별거 아닙니다.”
사실 별게 맞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약국의 선반과 진열대.
마치 폐업 떨이하는 것처럼 황량해 보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앞으로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물건을 공급하지 않겠다면서 물건을 빼갔습니다.”
“···.”
모기 해독제를 제외하고 각성자와 적합자, 혹은 일꾼들에게 필수적인 약들이 있다.
상처를 치료해주는 순간 지혈제, 외상 치유 연고, 마나를 점진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마나 회복제, 다른 독에 중독됐을 때 중독을 지연시켜주는 종합 해독제, 그리고 마나 진통제, 각성제···, 등등.
이것들은 레이드에 있어 필수적인 물건들, 만약 없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모기독 해독제를 팔면서 위의 약들도 같이 팔아왔다.
당연히 백스 드럭샵의 이익은 극대화됐고.
그런데 갑자기 약이 공급되지 않는다니.
“혹시 YJ 약국의 조훈석 짓인가요?”
“그놈이 주로 사용하던 방식이라서, 거의 확실하겠죠. 또···,”
백사장이 머뭇거리다 말을 이어갔다.
“···오늘 자치위원회 약품 허가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뭐라고요?”
“모기독 해독제를 복용한 다수의 사람에게 이상 반응이 일어났다고, 조사해야 하니 해독제 성분표를 보내달라는···,”
얼씨구!
이거 너무 노골적인데.
“안 주겠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악의 상황이면 판매금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쪽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풍겼고.”
“조훈석이 자치위원회 소속이죠?”
“네, 상임은 아니고 일반 위원입니다.”
“흐흐, 그렇군요.”
솔직히 태주는 백스 드럭샵에 1년간만 독점 판매를 한 후에, 구례시 약국 전체로 공급하려고 했었다.
‘역시 구례시 답구나.’
아무리 자유도시라고 해도 제국이 완전히 손 놓은 건 아니다.
제국에서 파견된 상임 위원도 존재하지 않나?
하지만 그도 한통속이라면?
뭐, 해독제만 팔아도 상관없다.
그래도 손님들이 몰릴 테니까,
하지만 야비한 수작질이 괘씸하다.
또 이거만 준비했을까?
아마 여러 곳에서 압력이 들어올 것이다.
실제 판매금지를 내릴지도 모르고,
돈줄을 말리려고 할 수도 있고,
물리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
놈들은 구례시 토호 세력들이다.
캐슬에 살면서 여러 인맥을 통해 구례 약품 시장을 쥐고 흔들었던 놈들.
타협은 절대 없다.
당하고 나서 방법을 찾는 것도 싫다.
그전에 때려버려야지.
“백사장님.”
“네!”
“우리가 먼저 들이받읍시다. 협박도 협박 같은 걸 해야지.”
“네? 먼저?”
“모기독 해독제 판매 중지해버리죠. 이상 반응? 참나! 내일부터 약국 문 닫아요.”
“어어···, 그, 그럼.”
“해독제 먹고 부작용 생겼다지 않습니까? 그럼 팔지 말아야죠.”
백홍표도 태주의 의도가 뭔지 눈치챘다.
“당분간 돈은 벌지 못하겠지만 조금만 버텨봐요. 고아원 운영은 저도 힘을 보탤 테니까.”
“아, 괜찮습니다. 저도 모아둔 돈이 있으니 고아원은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조훈석이 엎드려 빌 때까지요. 이 새끼, 늘 하던 방법 계속 먹히니까 이번에도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정신 차리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자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백홍표.
“네, 싸워봅시다.”
태주가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잘될 겁니다. 절 믿으세요. 참! 제가 좋은 고기를 구했는데, 내일 전체 고아원 회식 어떻습니까?”
“하하하! 좋죠. 직원들하고 아이들 불러 준비해 놓겠습니다.”
금방 끝날 것이다.
사람들이 아예 해독제를 먹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맛을 봤으니···.
해독제 없는 사냥?
아마 매우 힘들 것이다.
※ ※ ※
다음 날.
거하게 벌어진 잔치.
백스 고아원은 구례뿐만 아니라 삼한제국 내에서도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는 시설, 현재 돌보는 원생만 해도 200명이 넘었다.
이들 모두 예전 마수 웨이브 때 부모를 잃은 아이들.
최초 백홍표가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의 자식들을 재워주고 먹여주면서 보살피던 것이, 지금에 와선 구례 전체, 심지어 산청이나 함양 등지로 번졌다.
이 잔치에 원생뿐만 아니라 고아원을 독립한 성인들도 같이 왔다.
그럼 고기가 모자라는데.
어쩔 수 없다.
솥을 걸고 사골과 고기로 국을 끓여 뜨끈한 국밥을 말아야지.
구워 먹으면 금상첨화지만 포자 독 낙타 고라니의 고기는 삶아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
그야말로 천상의 맛.
도리어 고라니 고기 맛을 보고 난 뒤. 다른 고기를 먹지 않으려 할까 봐 걱정일 정도.
“아니, 이거 무슨 고기입니까?”
“소고기죠.”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도 난리가 났다.
“너무 맛있어요!”
“혹시 한 그릇 더 먹어도 돼요?”
“돼지야! 그만 먹어!”
“넌 안 먹을 거야?”
“아, 아니!”
무슨 고기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한우 사골 정도로 생각하겠지.
국밥뿐만 아니라 각종 과자에 음료수, 떡과 아이스크림···, 이왕 하는 김에 넘치게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태주도 원생들과 친해졌고,
잔치를 벌이고 난 후에도 백홍표는 약국의 문을 열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구례 자유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 해독제 하나 더 추가(2) > 끝
ⓒ 꾸찌꾸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