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15화 (1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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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굳게 닫힌 백스 드럭샵의 셔터.

마수 레이드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백홍표 사장이 직원들과 함께 휴가를 갔거니 생각했다.

그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까.

직원들 복지는 끔찍하게 챙기는 백사장 아닌가.

그래서 하루 이틀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나고 5일째가 됐는데도 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약국문,

“뭐야?”

“왜 문을 안 열지?”

“어후, 그동안 사놓은 모기독 해독제도 점점 떨어져 가는데.”

“설마 망한 거야?”

“에이,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백사장 번호 아니까 전화해본다.”

“이미 해봤어. 꺼져있더라고.”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모기독 해독제를 살 수 있는 곳은 백스 드럭샵 뿐.

이러다 영영 못 사게 되면?

지긋지긋한 방충복을 다시 껴입어야 한다.

하지만 백스 드럭샵은 다음 날도 문을 닫았다.

다음다음 날도, 다음다음다음 날도, 한번 내려진 셔터는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퍼지기 시작한 소문.

- 모기독 해독제 이상 반응을 신고한 사람들이 있다.

- 제조식 공개 요구를 해왔다.

- 자치위원회가 판매를 중단시킬지도 모른다.

- 백사장과 개발자가 압박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아버렸다.

인구가 200만이라도 의외로 좁은 동네.

금방 퍼져나갔다.

“이상 반응? 까고 있네. 알레르기란 알레르기는 다 가진 나도 물먹듯이 먹는 건데.”

“이거 먹고 잘못됐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어,”

“잘못될 리 있어? 그게 벌써 얼마나 팔렸는데, 이거 작업이야.”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에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부작용 없는 약은 없잖아.”

“나도 동감, 내친구가 자치위원회 약품 허가부에 있는데, 신고 전화가 꽤 많다던데.”

금방 뭉개졌다.

“그래서 부작용 생긴 사람이 누군데? 연기 났다며? 그런데 왜 안 보여? 제발 한 명이라도 알려주라.”

“씨발, 난 이 속담이 제일 좆같아. 헛소문 퍼뜨려놓고 뭐라 하면 아니 땐 굴뚝 운운하는 새끼들.”

백사장이 헌신하며 기른 자식들도 참전했다.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백스 고아원 원생 출신이 손님과의 대화에서.

“요즘 우리 남편이 애가 말랐어.”

“왜요?”

“아니, 글쎄 모기독 해독제를 구하지 못해서 사냥 갈 기운이 나지 않는데.”

“아! 백스 드럭샵에서 파는 물건 말이죠?”

“어머? 알고 있어?”

“그럼요. 무슨 협박이 들어왔다고 들었어요.”

“협박?”

“해독제를 왜 혼자만 파냐고, 우리도 공급해 달라면서, 헛소문 퍼뜨리고 다른 약품이 들어오는 걸 막았다나?”

“그래? 그게 누군데?”

술집 바에서 손님들은 응대하는 바텐더 직업의 백스 고아원 원생 출신도.

“YJ 약국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쯧, 내 이럴 줄 알았어. YJ 약국 조훈석, 그 새끼 욕심 많은 건 이 바닥에서 다 알지. 그런 식으로 헤쳐 먹은 약국만 해도 몇 개야?”

“아! 그랬나요? 전 잘 몰라서.”

“그나저나 언제 재판매한다는 말 들은 적 없어?”

“글쎄요. 아버지, 아니 백사장님 말씀 들어보니 개발자분이 화가 많이 나셨다고.”

“어이쿠! 나라도 화가 나지.”

고아원 원생 출신 각성자 또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난 절대 구례시 약국에서 약 안 살 거야.”

“···약은 어디서 사려고?”

“남원이나 하동에서 택배로 시키면 돼. 돈을 더 주고서라도.”

“그래? 나도 동참한다. 아무래도 백사장님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아.”

이런저런 소문들이 퍼지고 퍼졌다.

이건 약국끼리 힘겨루기 경쟁의 문제만이 아니다.

모기독 해독제가 개발된 이후, 얼마나 많은 숫자의 각성자와 적합자들이 구례로 몰려왔나?

그러면 마수 사냥이 활발해지고 구례 경제가 발전함과 동시에 웨이브로부터 안전해지는 건 당연한 일.

“이거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

“근데 지역 신문에선 왜 조용한 거야?”

“기레기들이 뻔하지. 조훈석, 그놈의 달달한 젖꼭지나 빨면서 돈이나 챙기겠다는 거지.”

“자유, 자유, 거리더니 정작 진짜 자유는 하나도 없는 동네가 바로 구례였네.”

“이제 알았어?”

일부 사람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약국 불매운동과 레이드 팀 활동 거부.

실제로 활동 중인 지리산 밀림 마수 사냥 레이드 팀 숫자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건 저항 운동 때문만이 아니었다.

모기독 해독제 판매 중지도 한몫했다.

효과를 톡톡히 봤던 사람들은 이제 해독제 없이 사냥 가는 걸 꺼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구례 약국으로 가지 않았다.

택배비가 비싸도 타지역에서 주문해서 사용할 뿐.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구례시 자치위원회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 ※ ※

자치위원회 상임 위원 3명이 모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기독 해독제 갈등.

상임위원들은 1시간이 넘는 토론을 끝내고 결론을 짓기 위해 마지막 발언을 준비했다.

먼저 노고단 길드 이정학 길드장.

“저는 개입해야겠습니다. 당장 조훈석 대표를 자치위원회로 소환해 담합과 중소형 약국 괴롭히기 의혹을 추궁할 생각입니다.”

이정학 길드장이 딱히 정의로워서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각성자들과 적합자들의 여론이 백스 드럭샵에게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또 구례 토착 길드인 노고단 길드 소속 각성자와 적합자도 불만이 대단했다.

모기독에서 해방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그 두꺼운 방충복을 입고 사냥하란 말인가?

조훈석을 족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빠른 길.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달랐다.

구례를 기반으로 성장한 천왕그룹 민동열 회장이.

“저는 반대입니다. 솔직히 약품 허가가 너무 느슨해요. 이번에도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제조식을 공개하지 않고···,”

“부작용요? 진짜 근거 있습니까? 그리고 약품 성분표야 죄다 분석해서 다 알고 있으면서,”

“조훈석 자치위원은요? 그가 중소형 약국를 괴롭혔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그럼 이대로 두잔 말인가요?”

“명색이 자유도시입니다. 이런 일로 사람을 핍박하면 안 되죠. 더구나 우리 식구인데.”

이정학 길드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광인 내무청 사무관을 바라봤다.

상임 위원 3인의 최종 의사결정은 결국 다수결.

지광인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도 민동열 회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조훈석 대표는 오랫동안 구례를 위해 헌신한 분 아닙니까? 큰 갈등 없이 잘 끝날 겁니다. 한번 믿어봅시다.”

이로써 결정이 났다.

그러나 지광인을 노려보는 이정학 길드장.

‘새끼, 조훈석에게 돈 처먹었구나.’

하긴!

구례시 약국 협의회의 자본력이면 백스 드럭샵 정도는 충분히 말려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민동열도 마찬가지.

그도 바이오 계열사와 약국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마 누구보다 모기독 해독제 제조식을 원하고 있을 터.

그런데 조훈석이 대신 해준다고 하니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고.

“좋습니다. 일단 두고 보겠습니다.”

이정학도 한발 물러났다.

약이야 누가 팔든 상관이 있을까?

아무나 이겨서 빨리 판매했으면 좋겠다.

※ ※ ※

조훈석은 자신이 있었다.

백스 드럭샵 말려 죽이기.

그런데 놈들이 의외로 세게 나온다.

선제 판매 중지라고?

‘여론을 이용하겠다는 말이지?’

가소로운 놈들.

그것도 생각 못 한 줄 아나 보다.

사람들에게 욕먹는 게 뭐가 두려워서.

그 정도야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치위원회의 의중.

구례시에 다수의 바이오 직영 약국을 소유하고 있는 천왕그룹 민동열 회장은 거의 우군 수준, 차관급 인사인 2급 사무관 지광인은 약국 협의회 로비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었다.

제일 우려하는 건 역시 자경단을 맡고 있는 무력 집단 노고단 길드, 이정학 길드장의 입장이 중요했다.

‘법보다 무서운 게 주먹이라.’

그가 움직이면 자신도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방금 연락받았다.

이정학 길드장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됐어!’

그렇다면 2단계.

뒷말 나오지 않게 지역 언론도 단속하고.

그러고 나서 구례시 은행 지점장들과 만났다.

“백스 드럭샵에다 대출금 조기 상환 요구하세요.”

“···어, 그, 그건.”

“선택하세요. 우리 구례 약국 협의회인지, 아니면 망할 게 뻔한 백스 드럭샵인지.”

“아, 알겠습니다.”

돈줄도 끊었고.

이 구례에서 진정한 자유는 바로 돈,

돈이라면 이쪽이 더 많다.

결국 자신이 이긴다.

※ ※ ※

태주는 할 일이 많았다.

너무 바쁘다.

언젠가는 백스 드럭샵을 오픈해야 하고, 그 후에 판매할 해독제 물량을 충분하게 확보해야하기 때문에.

또한 틈틈이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도 개발해야 하고.

태주의 건물 지하 연구소엔 해독제 원액이 든 20L들이 물통이 가득가득 쌓였다.

물통 숫자만 어림잡아 300여 개, 10ml 들이 병으로 따지면 180만 개,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 있었다.

더 만들어도 쌓을 데가 없을 만큼.

든든하다.

저거만 해도 얼마인가?

그러나 역시 마음에 걸리는 건,

“백사장님, 고아원 재정 상태는 어때요?”

“으음, 버, 버틸만 합니다. 후원도 들어오고요. 모자라면 대, 대출이라도 받아야죠. 하하하.”

“대출? 은행에서 대출금 조기 상환 통보받지 않으셨나요?”

“···그걸 어떻게?”

“원생 출신 약국 직원이 말해줬습니다.”

“아···.”

백홍표는 말하지 않으려 했다.

괜히 꺼냈다 힘만 빠질까 봐서.

돈은 다른 경로로 구할 생각이었다.

“아끼면 됩니다. 교육비, 통신비, 교통비, 도서 구입비, 의외로 줄일 데가 많거든요. 그럼 몇 달은 버틸 수가 있습니다.”

“그걸 왜 줄여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아이들인데,”

“하지만 돈이···.”

“절대 줄이지 마세요.”

태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저 해독약 원액 만들어 논거 보이시죠?”

“네.”

“싹 팔아봅시다.”

“그, 그럼 다시 약국 문을···,”

태주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약국에서 안 팔 겁니다. 전에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서 납품 의뢰 들어왔다면서요?”

“···어? 그러네요. 이제 기억납니다.”

“한 100만 병 정도 팔아보죠. 가격은 그대로 5만 원으로 해서.”

백홍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아아, 그러면 되겠군요. 가, 감사합니다.”

“뭘요. 저도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

“지금 당장 교섭해보겠습니다.”

액수만 해도 500억.

드럭샵의 몫은 150억.

세금을 뗀다 해도 130억이 넘는 금액.

대출금 조기 상환해도 돈이 남는다.

“그리고 군부에 넌지시 언질을 보내보세요.”

“언질이라면?”

“이번에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도 개발했는데 관심 있냐고.”

“포,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헉! 설마 잔치 때 먹은 그 국밥이?”

“네, 고라니 고기입니다.”

“맙소사! 어쩐지 입에 착착 감기더라니.”

만약 해독제가 진짜라면?

고라니 사냥이 가능해진다.

가끔 마수들끼리 싸우다 죽은 고라니 시체가 발견되면 황실에서 관리가 내려와 사 간다는 그 고라니 말이다.

더불어 일반 사람들이 복용하면 마수 웨이브가 일어났을 때 생기는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다.

“포자독 해독제 가격은 5만 원보다는 많아야겠죠?”

“당연합니다.”

※ ※ ※

제국군 지리산 방어 군단 오진형 중장은 부관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고 침중한 표정이었다.

“후우, 이거 산 넘어 산이군.”

파주 영지를 둘러싼 계승 갈등.

마나 거부자인 맏아들, 그리고 계모와 제국 사관학교에서 공부 중인 배다른 자식들.

오진형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영지를 둘러싼 갈등이 드문 일도 아니고, 지금도 종종 일어나는 일.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지 못한 김태주는 설악산 전초기지로 쫓겨났고, 거기서 암살 위협까지 받고 전역해버렸다.

급기야 호적에서도 파였다.

군에 대한 인상도 좋지 않을 것이다.

오진형은 모기독 해독제가 간절했다.

지리산 남쪽이야 민간 각성자들이 마수들의 숫자를 줄여준다지만 이곳 북쪽은?

‘방법이 없을까?’

마수 토벌을 위해 지리산에 시원하게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웨이브가 일어난다.

지리산에 있던 수많은 마수들이 사방으로 풀려날 터.

그로 인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일어나면?

‘보직 해임 당하겠지.’

그렇다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간 비슷한 결과가 일어나겠고.

적극적인 토벌 작전을 위해선 모기독 해독제가 필수.

‘내가 직접 찾아가 요청해봐야겠군.’

김웅방 준장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말고.

그때였다.

“중장님!”

노크도 없이 집무실로 들어오는 부관.

“무슨 일이야?”

“백스 드럭샵에서 모기독 해독제 납품하겠답니다.”

그러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오진형 중장,

“뭐라고? 무, 물량은?”

“그게 조금 많습니다.”

“얼마나 준대?”

“100만 병입니다. 금액만 500억이라.”

지금 돈이 문젠가?

“군단 유보금 여력이 없나?”

“있긴 합니다.”

그렇다면 고민할 거리도 안 된다.

“무조건 산다고 해. 아니,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까, 계약금으로 절반 입금해줘.”

“네,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백사장이 또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도 개발했는데, 관심 있으시냐고.”

“···뭐?”

잘못 들었나?

“그 등에서 독 포자 터뜨리는 낙타 고라니 말인가?”

“네.”

“구워 먹으면 육즙이 분수처럼 솟아 천상의 맛이라는 그 고라니?”

“맞습니다.”

“지, 진짜 고라니 포자 독 해독제라고?”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오진형 중장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며 말했다.

“백사장 전화번호 불러! 내가 직접 대화를 나눠보겠네.”

< 돈줄 확보하기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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