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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1) >
구례시의 치안은 자치위원회 자경단이 담당한다.
안정된 도시 유지를 위해 제국이 민간에게 합법적인 무력 사용권을 인정한 것, 물론 감시와 관리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제국에서 파견된 차관급 사무관 지광인이 상임위원을 맡아 자경단을 감시하고 견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자경단은 캐슬 바깥에 있다.
자경단 구성원은 무력이 필요하기에 노고단 길드의 각성자들이 중심.
이것이 노고단 길드의 특이점이다.
사냥보다는 구례시 치안에 더 신경을 쓴다.
돈은 어떻게 버냐고?
세금이 있지 않나?
가끔 사냥을 나가기도 하지만 세금으로 길드 유지비는 충분히 나온다.
구례시 자경단에 아침 일찍 범죄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받은 노고단 길드원은 내용이 심상치 않아 곧바로 길드장 사무실로 달려갔고.
“뭐야? 무슨 큰일이라고 나한테까지 왔어?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안 돼?”
이정학 길드장은 귀찮은 안색으로 길드원을 다그쳤다.
“그, 그게 신고자 이름이.”
“누군데?”
“김태주입니다.”
“그건 또 누구야? 내가 그런 듣보잡까지 신경써···, 뭐?”
순식간에 표정이 돌변한 이정학.
“김태주?”
“네.”
“모기 독 해독제 개발자 김태주?”
“맞습니다.”
“신고 내용은?”
“여기···,”
자경단 담당 길드원이 미리 정리한 신고 녹취본을 건넸다.
“직접 읽어보십시오.”
이정학은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갈수록 그의 얼굴색이 점점 붉어졌다.
“하아, 돌아버리겠네.”
양아치 마약쟁이 4명이 김태주의 집을 침입해 그를 납치하려다 발각됐단다.
현재 놈들을 억류 중이고, 용의자 이름도 나와 있었다.
‘마상식, 이 병신 새끼가.’
유명한 약쟁이 조폭 새끼들, 일명 상식이파, 두목 마상식은 각성자이다.
이들은 YJ 약국 대표 조훈석이 즐겨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이정학도 알고 있다,
조훈석이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하고 있다는 걸.
여긴 자유도시 구례.
마약이야 슬럼가에 굴러다니는 것.
다 조사해서 발본색원하려면 인력과 돈이 얼마나 드나?
주시는 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진 커다란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기에 내버려 뒀다.
또한 조훈석이 마약을 무기로 제법 잘 통제해왔고.
‘이왕 시작했으면 성공했어야지. 멍청하게 실패를 해?’
더구나 배후도 밝혀냈단다.
증거도 있으니 와서 데려가란다.
철저하게 수사해서 자경단의 신뢰를 보여달라는 말도.
“제기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조훈석은 구례의 유지이자 자치위원 중 한 명, 위원회 안에서 나름의 세력도 가지고 있다.
이놈을 처벌하기란 매우 부담스러운 일,
반면 김태주는 구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뜨내기라 하더라도 무시 못 할 배경이 있는 놈.
백스 드럭샵 대표이자 백스 고아원 원장인 백홍표, 구례 안에서 사람들에게 신망이 매우 높은 그가 뒤에 있다.
어느 쪽도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
“후우, 어째 불안불안하더니.”
일단 현장 확인부터 해보자,
“애들 불러, 즉시 김태주 집으로 출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이정학은 즉시 출발했다.
자동차 안에서도 이정학의 고민은 여전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가장 좋은 방법은 조훈석 멱살 끌고 김태주 앞에 대령해서 사과를 시키고 합의를 유도하는 것,
하지만 조훈석이 순순히 응할까?
미친 척하고 끝까지 발뺌하면?
갈등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자경단으로서도 큰 부담이다.
슬슬 다 와 간다.
저기 저 5층짜리 건물 앞 공터.
“아씨!”
4명의 남자들이 줄에 묶여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상식이파 놈들이었다.
놈들 뒤에선 백홍표와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 그리고 무기를 든 사람들이 있었다.
무기를 든 이들은 원생 출신의 각성자, 혹은 적합자일 테고.
끼익!
자동차가 멈추고 이정학이 내렸다.
그러자 우르르, 그를 보좌하듯 함께 내리는 노고단 길드원들.
이정학은 잔뜩 성이 난 듯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묶여있는 마상식에게 걸어가 놈을 냅다 걷어찼다.
“이 좆 같은 약쟁이 새끼! 내가 언제고 너 사고 칠 줄 알았다.”
퍽퍽! 퍽퍽퍽!
“아악! 악악! 사, 살려주세···,”
“아파? 아프다고? 넌 아플 자격도 없어!”
스르렁!
이정학이 검을 뽑았다.
“폐하께서 내게 내려주신 권한으로 즉결처분을 집행한다. 이 씨발놈아!”
“허어어억!”
태주는 그런 이정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오자마자 한다는 짓이 즉결 처분?
그래서 나섰다.
“그만하시죠.”
“뭐야? 넌 누구야?”
“김태주라고 합니다.”
“아···,”
그제서야 태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정학.
“이제야 보는군. 한번은 만나고 싶었는데, 모기독 해독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도 할 겸.”
“그런가요? 아무튼 마상식 이놈은 주요 증인입니다. 수사도 안 하고 죽여버리면 안 되죠.”
“주요 증인이라.”
“여기···,”
태주는 스마트폰 동영상을 재생했다.
- 배후는 YJ 약국 대표 조훈석입니다. 놈이 납치해서 마약을 중독시키라고···, 아아! 제발 주사기 한 대만 주세요.
묵묵히 영상을 시청하는 이정학.
“좋아, 다 좋은데, 이놈은 약쟁이잖아.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건 자경단이 밝혀야죠. 제가 수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조훈석을 조사하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정학은 지그시 태주를 노려봤다.
감히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냐는 표정.
태주도 이정학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정학 길드장은 마스터다.
무공 수위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마주해보니 자연스레 깨달았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잘 단련된 체형, 절제된 몸짓, 그리고 형형한 눈빛.
마스터인 아버지와 함께 살 때는 마스터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마나 거부자 신세였는데 어떻게 알아?
그저 옆에 사람들이 마스터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
하지만 자신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오니 알겠다.
‘꽤나 강하네.’
저자와 맞붙으면 몇 초나 버틸까?
이윽고 입을 여는 이정학.
“내가 제안 하나 하지.”
“뭔데요?”
“여기 이 4명, 모가지 따는 걸로 마무리 짓는 게 어때?”
“조훈석은요?”
“물론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 내가 끌고 와서 반드시 사과시킬 거야.”
“사과? 살인 청부가 명백한데, 사과로 끝내겠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금전적인 보상도 따로 하고.”
“제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요?”
이정학은 심기가 불편한 듯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여기 자유도시 구례에서 내 결정이 바로 법이야.”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네 동의는 필요 없어. 내가 하자고 하면 따르면 그만이야.”
마상식의 머리로 떨어져 내리는 이정학의 검.
“어디 한번 막아보던가.”
순간!
츠핏!
채챙!
묵직한 단검 하나가 이정학의 손에 들린 검신의 옆면을 때렸다.
탈명비도로 펼쳐 낸 일섬(一閃).
그로 인해 마상식을 비켜나간 검로.
‘음? 이게 어디서?’
누군지 알겠다.
이정학은 재미있다는 듯 태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인제 보니 한 수가 있었군. 이놈들도 네가 잡았나?”
그리고는 자신의 옆면을 때리고 땅에 떨어진 탈명비도를 보면서,
“투척 스킬? ···그런데 넌 각성자도 아니잖아. 잘 해봐야 적합자일 테고, 스킬도 아니면서 이런 위력이 나와?”
이정학은 묘한 눈으로 태주를 다시 봤다.
적합자도 마나에 의해 강화된 신체를 가진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하다.
아무리 날뛰어봐야 비기너를 넘지 못한다.
각성자는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까.
“뭐, 그건 그렇고.”
이정학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감히 내게 칼을 던졌다 이건가?”
성큼,
이정학이 태주를 향해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군. 모기독 해독제 개발자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우우웅!
한층 더 강해지는 마나의 소용돌이.
이정학의 검이 우윳빛으로 빛났다.
마스터의 상징인 마나 블레이드.
그러나 태주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코트 앞섶을 살짝 벌리고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할 뿐.
“아니면 그 희한한 투척술을 믿는 거냐?”
이정학이 검 끝을 아래로 향한 채,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저릿저릿!
피부가 베일 정도로 강해지는 마스터의 기세.
“이도 저도 아니면 장군인 네 애비를 믿고? 그런데 어쩌나? 이미 호적에서 파였다던데.”
그제야 살짝 변한 태주의 표정.
‘호적에서 파였다고? ···그랬구나.’
아버지도 자신을 포기한 모양.
하지만 달라질 건 없다.
애초 홀로서길 결심한 상태.
서운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진짜 궁금해. 네가 믿는 구석이 뭔지?”
“정당한 요구입니다. 오히려 제가 궁금하군요. 길드장님의 믿는 구석이 뭔지.”
“하아, 건방진 새끼가···,”
이정학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백홍표가 두 사람 사이로 달려왔다.
“멈춰요! 이정학 길드장!”
“백사장은 끼어들지 마! 죽기 싫으면,”
스웅!
“허억!”
달려오다가 무형의 힘에 밀려 뒤로 나동그라지는 백홍표.
“아버지!!!”
“야이, 개새끼야!”
백홍표가 쓰러지는 걸 본 백창훈의 눈이 돌아갔다.
원생 출신의 적합자도 마찬가지.
모두 병기를 빼 들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정학은 기가 막혔다.
“···개새끼? 참나! 내가 우스워 보였나? 이런 하찮은 놈들까지,”
구례시 노고단 길드 길드장, 그리고 마스터.
지금까지 자신에게 이렇게 겁 없이 달려든 놈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좋게좋게 끝내려 했는데···,”
그래서 백홍표도 다치지 않게 그저 밀어버렸다.
“내 호의를 무시해?”
이정학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백창훈의 바로 앞.
“팔 하나는 잘라주마. 네 잘못을 반성할 명분을 만들어 주지.”
그리고 김태주에겐 까불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알려주고.
마나 블레이드가 백창훈의 어깨에 떨어졌다.
바로 그때!
츠핏!
‘헛!’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예기.
휘릿!
채앵!
검을 휘둘러 막았지만,
츠핏, 츠핏! 츠피피핏!
좁고 가느다란 나뭇잎 모양이 투척 무기가 자신의 급소를 노리고 집요하게 날아왔다.
채챙! 챙챙! 채채챙!
‘이런···,’
이정학은 살짝 놀랐다.
빠른 것도 빠른 거지만 투척 무기의 날아드는 경로가 직선이 아니다.
어떤 것은 휘어지고, 어떤 것은 바로 앞에서 꺾이고, 빠르게 왔다, 느리게 왔다, 어떤 것은 상체를 노렸다 하체로 떨어지고, 또 어떤 것은 하체를 노렸다 상체로 올라온다.
하나 정도 맞아 줄 수는 있었다.
장비도 입었고, 그깟 투척 무기가 자신의 몸을 상하게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암기가 짓쳐 날아올 때 느낀 위기감,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녹색의 기운.
저건 맞으면 안 된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 태주는 분노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감정이었다.
생판 남인 사람임에도, 그가 받는 핍박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 새끼가, 백사장님을···,’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약속한 동업자이다.
태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타오르는 분노, 고양되는 투쟁심, 그럴수록 냉정해지는 마음.
뭐?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
스슷!
또 다시 팔목 보호대에서 빠져나온 유엽비도 6자루,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3개씩.
유엽비도가 시퍼렇다.
독정에서 흘러나온 독기.
지금까지 태주가 섭렵한 모든 독의 정수가 유엽비도에 씌워졌다.
독더덕, 독도라지, 변종 칠점사, 산공독인 모기독, 지리산의 각종 독초, 독 발톱 삵, 포자 독과 마약.
스쳐도 중독이다.
절대독마의 지독함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물론 마스터의 두꺼운 피부를 갈라야 하지만.
이정학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태주가 생각보다 강해서?
아니다.
저 정도 강함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놈···,’
긴 코트를 입고 투척 무기를 쥔 두 손을 밑으로 늘어뜨리며 우뚝 선 김태주.
마스터인 자신도 위축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감.
김태주는 거대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지금껏 수많은 강자와 맞서봤지만 저런 느낌을 주는 자는 처음.
삼한 제국 최고의 각성 마스터인 황제와 만나면 이 느낌일까?
원래 전투라는 건 기세 싸움, 그것이 꺾이면 이미 진 거나 마찬가지.
그러나 이정학은 자신의 감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씨발 새끼.’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 이정학은 검 자루를 꽉 꼬나쥐고 좌우 지그재그로 스텝을 밟으며 김태주에게 쇄도했다.
츠핏! 츠피핏!
채챙! 챙! 챙챙!
쏟아지는 암기.
그걸 검으로 다 떨쳐내는 이정학.
그런데!
치짓!
암기 하나가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정학의 오른손등에 가로로 아주 작게 맺힌 혈흔.
우우우웅!
상처를 입은 것에 분노한 듯 이정학의 마나 블레이드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이놈!!!! 사지를 잘라서 오크 먹이로 던져주마.”
“혀가 길다. 깝치지 말고 빨리 들어와!”
태주는 이정학의 돌진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고작 마스터 따위에게 절대독마가 도망친다고?
차라리 팔 한쪽을 던져줄지언정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위험하긴 하다.
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피해를 입더라도 모조리 죽인다.
자치위원회, 천왕그룹 회장, 제국에서 파견된 고위공무원, 노고단 길드 자경단, 약국 협의회···, 어느 하나라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변했다.
맞다.
찌질했던 마나 거부자로서의 김태주는 사라졌다,
다른 세상의 나 자신, 같은 영혼인 절대독마 당군악과 심령의 연결이 이루어지고 난 뒤 그렇게 됐다.
솔직히 그게 자신의 본성일지도 모르지.
마나 거부자라는 천형에 얽매어 잠자듯 숨어있었던 진정한 나.
태주는 코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단전의 독정(毒精)이 파르르 요동쳤다.
해보자.
이정학의 마나 블레이드에 몸이 잘리든가, 아니면 비폭으로 놈을 벌집으로 만들든가.
태주의 양손이 진한 녹색빛으로 물들었다.
바로 그때!
투타타타타타···.
갑자기 들리는 헬기 프로펠러 소리.
모두의 눈길이 하늘로 향했다.
어느새 헬기가 공중에 떠 있었다.
착륙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이정학과 태주가 맞선 중간지점에 뛰어내린 흰머리 성성한 남자.
슈우웃! 팍!
한쪽 팔과 한쪽 무릎을 땅에,
남자는 일명 히어로 랜딩을 성공적으로 펼치며 내려왔다.
“어이, 이정학이!”
그를 본 이정학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오랜만이야? 늘 변함이 없어 좋군그래.”
“···오중장님.”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오진형 군단장이었다.
<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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