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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2) >
인류가 마나의 침범에 서서히 적응해나갔던 시점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이들은 마나 순응자였다. 마나를 받아들여 적응한 사람들.
뒤를 이어 마나로 인해 육체 능력이 향상된 마나 적합자들이 나타났고.
이 시점에서 마나 거부자라는 말이 생겼다. 변화에 도태된 사람들이라고 할까?
그리고 마침내 각성자.
시스템 레벨업을 통해 맨몸으로도 마수와 맞서 싸우는 이들.
300년이 지난 지금.
인구 구성비로 따지면 마나 거부자가 전체의 5% 정도, 마나 순응자는 70%, 나머지가 마나 적합자와 각성자.
각성자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삼한제국의 인구가 6억인데 한 200만은 충분히 넘지 않겠냐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군에 있는 각성자들은 통계에 잡혀있다.
물론 군이 정확하게 밝히진 않는다.
마스터도 마찬가지, 숫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른다.
군의 특성상 마스터들은 그 신분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숫자를 짐작할 수 있지만 민간은 그렇지 않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자들도 있고, 자신이 마스터라는 걸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노고단 길드 이정학 길드장은 알려진 마스터.
구례시를 관리하는 3개의 축 중에 하나.
그래서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오진형 중장과도 일면식이 있었다.
“뭐하러 오셨습니까? 여기 자·유·도·시까지.”
“엉? 내가 이곳에 오는 것도 자네의 허락을 맡아야 하나?”
“설마요, 구례에서 일어난 사건에 군이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에이, 내가 황제 폐하의 뜻을 거역할 리 있나? 군인으로 온 거 아니네. 나도 자유인의 한사람으로 왔어. 그냥 오진형씨라고 부르게.”
뛰어내린 사람은 오진형 혼자만이 아니었다.
슈슛! 슈우웃! 탁! 탁! 탁!
간단한 체육복 차림의 남자 3명도 뛰어내렸다.
한쪽 뺨이 턱과 연결되는 부분에 흐릿하게 새겨진 문양.
각성자를 나타내는 얼굴 문양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 작고 희미해진다.
즉 저들은 모두 마스터다.
구준영 소장, 박필성 소장, 홍준태 소장,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소속 사단의 사단장들.
‘씨발,’
이정학은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산 넘어 산.
이정학의 마음이야 어떻든지, 오진형은 유들유들한 태도로 백홍표에게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백사장이 불렀군.’
모기독 해독제 군납 계약.
도와달라는 명분은 충분했겠지.
오진형 뿐만 아니라 3명의 마스터도 딴청을 피웠다.
“나도 구례에 놀러 왔어. 구준영이야, 구씨라고 불러.”
“그래, 군복도 안 입었잖아.”
“나도 준태라고 불러줘.”
“헬기 타고 드라이브하던 중이었는데, 진형이 형님이 갑자기 뛰어내리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따라 내렸지.”
드라이브는 개뿔.
다 알고 왔으면서.
지리산 방어군단의 모든 마스터들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줄줄이 백홍표에게 다가가.
“아이고, 백사장님, 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까?”
“누가 그랬어요? 말만 해주세요.”
“보약이라도 한 제 지어드려야 하나?”
“그러지 말고, 네 부대에서 노는 장교들, 경호 차원으로 몇 명 보내라. 우리 군에 해독제 납품하는 분이신데 험한 일 당하면 안 되지.”
“그럴까?”
백홍표는 그들과도 각각 손을 잡아가며 감사의 의사를 전달했다.
오늘 아침 김태주에게서 걸려온 전화.
자택을 침입해서 자신을 잡아가려는 상식이파 일당 4명을 붙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 놀라지 않았다.
마상식은 각성자.
조직원들도 마약에 찌들어 사는 미친놈들.
반면 김태주는 각성자가 아니다.
그러나 창훈이에게 김태주의 숨겨진 실력을 미리 전해 들었다.
폭풍 족제비 20마리를 한 방에 보내버리는 실력자였다고?
하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모기독과 포자독의 해독제를 만드는 사람인데,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겠지.
그런데 뒤를 이어서 했던 김태주의 말.
구례 자치위원회 자경단에 신고했으니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고.
신고가 들어가면 이정학 길드장이 직접 움직일 터, 그만큼 큰 사안이니까.
이건 좋지 않다.
자경단은 정의를 표방하는 조직이 아니다.
이정학 길드장은 더더욱 그렇고.
김태주 또한 고분고분한 인물이 아니다.
가끔씩 그를 접할 때마다 느껴지는 카리스마.
마스터라고 해서 그가 고개를 숙일까?
만에 하나 충돌이 생기면?
그래서 오진형 중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잠시 와달라고.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지켜보던 이정학 길드장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군.’
오진형 중장을 비롯한 마스터 넷.
게다가 군바리 아닌가.
대화로 풀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이만 물러난다.
여기 계속 있다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제군 황실에서 파견된 지광인 사무관을 통해 보고가 올라가면 오진형도 절대 발뺌하지 못할 테고.
“그럼, 담소들 나누십시오. 전 이만.”
“벌써 가려고? 좀 다 있다가 가지 그러나.”
“제가 생각보다 바쁜 몸입니다. 한가하게 헬기 타고 드라이브 다닐 시간도 없고.”
“음? 그건 좀 의외인데?”
“뭐가 말입니까?”
“아니, 바쁘게 돌아다녔으면 구례에 이런 쓰레기들이 설치고 다니는 걸 애초에 막았어야지. 대체 자경단이 하는 일은 뭔가? 내가 지원 병력 몇 명 보내줘?”
“···됐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심 참으며 자동차로 돌아가는 이정학.
그리고 같이 온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상식이파 새끼들, 다 차에 실어. 돌아가서 처리한다.”
하지만 그대로 두고 볼 오진형이 아니었다.
“어허, 어림도 없지. 걔들은 두고 가. 내가 데려갈 거야.”
이정학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
“군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면서요?”
“쯧, 내 친·한·친·구를 납치하려던 놈이야. 그걸 알고도 가만있으라고?”
“이건 명백한 칙령 위반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아시기라도 하는 날엔···,”
순간!
화아아악!
오진형의 전신에서 일어나는 가공할 기세.
같은 마스터라고 해서 가진 능력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
“어이! 이정학이!”
“···무슨?”
“여기서 네 모가지 따버리면 황제 폐하께서 내게 무슨 벌을 내릴 것 같나?”
“당신, 이러고도···,”
“한번 맞춰봐. 경고나 감봉? 근신? 황궁에 소환되어 갈 수도 있고, 뺨을 몇 대 때리실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 네놈 하나 죽이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아.”
“···.”
3명의 사단장 마스터들도 기세를 끌어올리며 이정학을 노려봤다.
“눈 안 깔아? 구례에서 사람들이 떠받들어주니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설마 우리가 널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냐?”
“착각하지 마라. 나 명령에 죽고 사는 군바리야. 지금이라도 중장님이 지시하시면 즉시 널 죽여버린다. 까짓거, 옷 벗으라면 옷 벗지.”
피식, 하고 웃는 오진형 준장.
“구준영 소장, 자네가 전역하면 황제 폐하께 구례시 자치위원회에 추천해주지. 저놈 자리가 빌 테니까.”
“어후, 진짭니까? 저야 좋죠.”
“···구소장 말고 저 어떻습니까? 제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
“명령만 내리십시오. 아무나 먼저 죽이는 놈이 옷 벗고 전역하는 겁니다. 전 자신 있습니다.”
이정학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노고단 길드는 구례 최고의 길드.
길드 수익도 엄청나다.
제국 내에서도 이렇게 돈이 많은 길드는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규모 면에선 그리 큰 길드가 아니다.
삼한제국 전체로 보면 중위권 정도에 머무른다.
노고단 길드 세력이 커지는 걸 못마땅해하는 다른 상임 위원들의 견제 때문에 길드의 몸집을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스터인 길드장 이정학을 제외하고는 다들 고만고만한 길드원들의 수준.
마스터들의 힘겨루기.
하지만 태주는 끓어오르는 살기를 다스리느라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후우, 후우.’
실수했다.
멍청한 짓이다.
영혼은 천하제일의 절대 고수.
그러나 육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살기는 적을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확신했을 때 풍기는 것이다.
어설픈 살기는 상대방에게 경계심만 가지게 해주는 꼴.
태주는 천천히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했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힘겨루기에서 패배한 이정학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는,
“모두 차에 타! 돌아간다.”
차에 타고 문이 닫히자 그제야 긴 한숨을 토해내는 이정학.
솔직히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체면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거지.
오진형과 마스터 때문에?
아니다.
“벼, 병원으로 가!”
“···네?”
“빠, 빨리! 크흑!”
김태주의 투척 무기에 오른손등에 상처가 생겼다.
그저 살짝 긁힌 정도였는데, 상처로부터 음습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침범하고 있었다.
마나를 일으켜 필사적으로 틀어막는 중.
‘이, 이게 무슨!’
설마 독인가?
그럴 것이다.
독에 능통한 놈.
그러니 해독제도 척척 만들어 내겠지.
마스터 정도가 되면 만독불침까진 아니더라도, 독에 대한 상당한 저항력을 가진다.
실제로 많은 독을 경험해봤고.
그런데 이 독처럼 지독한 것은 처음.
“아, 아직 멀었나?”
“곧 도착합니다.”
“으, 응급실 의사들 대기시키라고 해!”
한편 태주는 노고단 길드원이 빠져나가는 걸 끝까지 지켜본 후, 백홍표 사장에게 다가갔다.
“다친 데는 없으시죠?”
“걱정 마세요. 멀쩡합니다. 그래도 이정학 길드장이 나름 사정을 봐줘서···.”
“그놈이 착해서 그런 겁니까? 백 사장님 다치게 하면 큰일 나니까 눈치 보고 그랬겠죠.”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 다친 데는 없을까?
태주는 백홍표를 꼼꼼히 살폈다.
다행이다.
넘어지면서 쓸린 상처 말고는 없었다.
그때 오진형이 슬며시 옆에 와서 태주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혹시 모기독 해독제 개발자···,”
“네,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주입니다.”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 오진형일세.”
굳게 손을 잡는 두 사람.
마나의 기운이 손을 통해 들어왔지만 괘념치 않았다.
서로가 가진 성취를 가늠해 보는 행위.
강호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슬쩍 경력을 흘려주고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물어볼 것이 많아.”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하하하, 귀찮게 하지는 않겠네.”
좀전의 기세는 어디 가고 인상 좋은 중년인으로 변한 오진형.
“그런데 말이야,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있잖은가, 혹시···?”
“개발 완료했습니다. 곧 양산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오오!”
“고기도 있는데 드셔보시겠어요?”
“저, 정말인가?”
그러자 3명의 사단장 마스터들도.
“저어, 김태주님, 우리 몫도?”
“네, 많이 있습니다.”
찌릿! 노려보는 오진형.
“자네들은 저 쓰레기들이나 잘 감시해. 저러다 도망가면 어떡해?”
“하하하, 걱정 마세요. 꽁꽁 묶여있어서 우리 아이들이면 충분히 지킬 수 있습니다.”
백홍표가 도와주자 다시 얼굴이 밝아지는 마스터들.
그럴 만도 하다.
무려 고라니 고기 아닌가?
※ ※ ※
지글지글, 피어오르는 연기.
고라니 고기 파티.
숯불은 밖에서 피웠다.
철망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고라니 고기.
밑간도 하고, 야채도 쌈장도 곁들이니 정말 끝장났다.
술이 없으면 되나?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주로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납품 문제.
가격과 물량에 논의하고, 서로 밀당도 해보고, 구두로 계약까지 하고.
오진형은 만족했다.
태주가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만을 통해서 해독제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군납에만 한정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독점 공급.
‘헬기 타고 사단장 몇 명 데려와서 무력 시위 한번 했더니 이렇게 엄청난 소득을 얻게 될 줄이야.’
태주도 만족했다.
해독제를 만들려면 재료가 필요하다.
혼자서 그 많은 재료들을 어떻게 채집해?
그래서 오진형에게 말했다.
군에서 재료를 채집해서 공급해주면 안 되겠냐고, 공짜로 부탁하는 게 아니라 정당하게 값을 쳐서 매입하겠다고.
오진형은 흔쾌히 수락했다.
당장 내일부터 채집 작전 실행하겠다면서.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상한 건 아버지 김웅방 준장과 파주 영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흘러나오지 않았다.
태주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오진형 중장도 그랬다.
군부의 같은 마스터라면 서로 안면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얽힌 사연을 알고 있는 모양.
술자리가 파하고 헬기가 도착했다.
묶여있는 상식이파 놈들을 헬기에 태운 후,
“이놈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리고 이놈들 뒤에 있는 배후도.”
“안 그러셔도 됩니다만.”
“쯧, 이건 사적인 문제가 아니네. 우리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의 안위가 걸린 문제야. 당장 이놈들 때문에 해독제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어떻게 되겠나?”
“으음···, 알겠습니다.”
헬기가 군단 본부를 향해 날아올랐다.
태주는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백홍표를 보며 말했다.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래. 군에서 재료가 들어오면 바빠질 거야.”
이정학과의 돌발적인 충돌, 그리고 술자리를 통해 한껏 가까워진 두 사람.
태주는 부담스러우니 이제부터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백홍표는 이를 받아들였다.
“직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 지시대로 독초를 다듬고 준비해줄 인원이.”
“혹시 많이 위험하냐? 적합자 위주로 알아볼까?”
“아뇨. 일반인이라도 방독면이나 방호복 입고 작업하면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재료 중에 포자 독처럼 위험한 독은 딱히 없어요.”
“그럼 쉽지. 우리 아이들도 있고.”
“믿을만하겠네요.”
월급은 넉넉하게, 아니 대기업 경력직 뺨칠 만큼 챙겨줘야지.
사업주와 직원들 간의 신뢰는 돈에서 나오는 법.
그러고 보니 돈 들어갈 곳이 많다.
저 건물 하나만으로는 너무 좁다.
현재 계약된 물량을 치고 나가기도 힘들 터.
‘공장도 짓고, 창고도 짓고.’
정 안되면 약품 하나 더 추가하자.
사람들이 모여들면 여유가 생길 테니까.
<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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