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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3) >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의 본부는 산청시에 있다.
산청으로 가는 헬기 안.
“모두 어떻게 생각해?”
오진형 중장의 물음에 구준영 소장이 먼저 답했다.
“각성자가 아닌 건 분명하지만, 뭔가 확실히 있습니다.”
“그 뭔가가 뭔데?”
“굉장히 자연스러웠습니다. 우리도 나름 군 지휘관이고, 마스터인데···,”
“위축되는 거 하나도 없지?”
“네! 카리스마가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군 정보부에서 조사한 파주 영지 마나 거부자 김태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박필성도.
“카리스마뿐만이 아닙니다. 이정학이와 충돌했다던데, 버틴 걸 봐도.”
“맞아. 악수할 때 슬쩍 경력을 집어 넣어봤더니, 웃으면서 흘리더군.”
“···흘렸단 말입니까?”
“그래, 물론 기운은 익스퍼트에 못 미치지만 그걸 다루는 기술은 익스퍼트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할까.”
“이상합니다. 간혹, 각성하지 않았어도 각성자보다 강한 적합자가 나타나긴 하지만, 김태주는 마나 거부자 아닙니까?”
“마나 거부자가 어때서? 어떤 방식으로든 천형을 극복했겠지.”
반면 홍준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래서 전 마음에 걸립니다. 역시 이정학이를 죽여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분명히 놈에게 찍혔을 테고.”
“벌써 짧은 기간에 해독제를 둘씩이나 만들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전략 물자고요. 우리 군을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정학이 조금 이상하지 않았나? 그놈, 마치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던데.”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상하긴 했다.
“아무튼 조훈석은 처리하자고. 준태, 네가 맡아.”
“당장 기동 특전 요원, 구례로 파견하겠습니다.”
“괜히 증거 같은 거 남기지 말고!”
“넵!”
오진형은 박필성과 구준영에게도 명령을 하달했다.
“자네들 부대에서 10명씩 차출해. 익스퍼트급 장교 한 명은 무조건 포함해서, 임무는 해독제 생산 공장 및 고아원 경비.”
“사단 직속 수색대 1개 분대 준비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진형은 무심한 눈으로 헬기 구석에 쥐 죽은 듯 묶여있는 4명의 상식이파 각성자들을 노려봤다.
그러나 찔끔! 눈치를 살피는 마상식.
자신들이 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는 장성들이 마음에 걸렸다.
“저,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오진형이 푸근한 미소로 말했다.
“괜찮아. 들어도 돼.”
“네?”
“우리가 너희들을 왜 데리고 왔는지 알겠나?”
“그, 글쎄요.”
그게 이상하다.
이들은 배후가 누군지 다 알고 있었다.
병력을 보내 처리한다는 말까지 했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필요가 없었다.
“이정학이 망신 좀 주려던 거야. 자유도시 믿고 설치지 말라는 뜻이었지.”
“아! 그렇군요. ···그럼 저희들은 풀어주시는 겁니까?”
“뭐,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풀어줄게.”
“가, 감사합니다!”
헬기는 이미 지리산 밀림 상공을 날고 있었다.
비행 마수들을 피할 목적으로 고도를 최대한 높여서.
이 높이까지 올 일도 없지만 마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상관없다.
비행 마수 정도 따돌릴 수 있는 수단 정도는 구비된 전투 헬기니까,
불쑥!
오진형의 눈짓을 받은 홍준태 소장이 헬기 좌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드르륵, 옆문을 열고.
“한 명씩 내린다.”
“···네?”
갑작스러운 말에 멍하니 입만 벌리는 마상식.
“왜 놀라? 보내준다고 했잖아.”
“어디로? ···설마 여기서?”
“그럼 우리가 내 집까지 곱게 모셔줘야 해?”
“여, 여기서 떨어지면 전 주, 죽습니다.”
“알빠임?”
홍준태는 먼저 마상식부터 던졌다.
휙!
“잘 가라!”
“헉! 아아아아아아악!”
그 뒤로 줄줄이.
휙! 휙! 휙!
“으아아···,”
“사, 살려···, 악!”
“씨발 새끼들아아아아아아!”
손을 툭툭 털면서 홍준태는 다시 자리에 다시 앉았다.
“부대에 돌아가면 실전 대비 훈련 시행해. 곧 대규모 토벌 작전 진행할 테니까.”
“재료 채집 작전과 병행하겠습니다.”
“포자 독 해독제 공급되면 고라니 사냥도 실시한다.”
“네!”
“알겠습니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사냥 마릿수는 확실하게 보고하도록. 뒤로 빼돌리지 말고.”
“···네, 네.”
“···아, 알겠습니다.”
오진형은 사단장들을 믿지 않았다.
이미 고기 맛을 봤는데 어떻게 참아?
분명히 빼돌리겠지.
그러나 한두 마리쯤은 눈감아줄 용의가 있었다.
지리산 마수 방어 전략이 바뀌었다.
소극적 현상 유지 전략에서 적극적 대토벌 전략으로.
※ ※ ※
이정학과의 충돌이 있었던 다음 날.
뉴서울에서 백서연이 구례에 도착했다.
집은 구하지 않았다.
적당한 집이 나올 때까지 고아원에서 지낼 예정.
오히려 그게 더 좋다.
고향 집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면서도 구례 상황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회사를 차리려고 한 이유가 뭔지, 동업을 결정했다는 김태주라는 사람이 누군지,
그러다가 친남매 같은 백창훈과 통화를 하게 됐다.
- 태주 형님? 진국이지. 내 인생의 멘토, 나의 존경을 가져갈 자격이 충분한 형이야.
“멘토? 언제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며,”
- 에이, 멘토가 꼭 한 사람이어야 하는 규칙이 있어? 아버지. 태주형, 둘 다 내 롤모델이자 멘토야.
“으음, 난 혹시 사기꾼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 사기꾼? 아니 고아원 운영에 보태라고 수십억씩 툭툭 던져주는 사람이 사기꾼이야? 그 비싼 고라니 고기도 아낌없이 내주셨어.
“고라니? ···포자 혹 낙타 고라니?”
- 어, 형님하고 같이 잡았지.
그 말의 의미는···,
“해독제가 이미 만들어졌단 말이야?”
- 맞아. 태주형이 만들었어. 곧 양산에 들어갈 거래.
이제야 깨달았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부른 이유를.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아버지.
그런데 대기업을 그만두고 동업자와 함께 회사를 창업했는데 도와달라고 하셨다.
백서연은 최연소 과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로서 결코 해선 안 되는 부탁이었다.
물론 아버지를 위해 그 정도쯤은 희생할 자신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날 위한 거였어.’
막 창업한 태홍 바이오.
스타트업이나 벤처 회사 수준이 아니었다.
성공이 보장된 회사였다.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곳이었다.
백서연은 택시를 잡아타고 아버지가 알려준 주소로 갔다.
금방 도착했다.
다소 초라한 5층짜리 건물.
그 앞 넓은 공터에 모여있는 사람들.
“어머?”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창훈이를 비롯해 성인이 된 친구와 동생들, 원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
‘잔치가 열렸나?’
모닥불이 두 군데나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엔 커다란 솥이 걸렸다.
마침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백서연은 택시에서 내려 달려갔다.
“아버지!”
“···어? 오! 서연아!”
반갑게 맞이하는 백홍표 사장.
“이 녀석이!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할 것이지, 그럼 내가 마중 나갔을 텐데.”
“헤헤,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별로 안 놀랐다. 이놈아! 요즘 놀랄 일이 하도 많아서.”
“그럴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잔치해요?”
“잔치는 무슨, 어제 하도 술이 과해서 해장이나 하려고 낙타 고라니 사골로 국밥이나 먹어보려고.”
“···네?”
도저히 실감이 안 난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는 고기뿐 아니라 사골도 엄청 비싸다.
그런데 해장용으로 국물을 내고 있다니.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리 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네? 누구···, 아!”
백홍표는 백서연을 잡아끌고 아이들에게 국밥을 떠주고 있는 태주에게 갔다.
“태주야.”
“어르신, 빨리 식사하세요. 자칫하다간 국물도 없습니다. 요놈들이 다 퍼먹어요.”
“흐흐흐,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 참! 인사해라. 내가 전에 말했던···,”
“아! 혹시 백서연씨?”
태주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백서연에게 다가갔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김태주입니다.”
“백서연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해독제는 잘 만들지만 그 외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제약회사에서 약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나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태홍 바이오, 삼한 최고의 회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태주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백서연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점점 체계가 잡혀간다.
자신은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백홍표 사장은 유통을 맡고, 그리고 백서연은 경영을 맡는다. 또한 백창훈은 회사의 경비와 여러 잡다한 일을.
‘그러고 보니 나만 빼고 다 백씨네.’
아무렴 어때?
다 믿을 만한 사람들인데.
강호 무림의 절대독마 당군악도 그랬다.
마교에게 터전을 잃어버리고 변방으로 쫓겨났을 때, 가문이 재기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힘.
그것은 돈도 아니고, 무공도 아니고, 바로 사람이었다.
살 집이 없어도, 땅을 잃어도, 돈 한 푼 없어도 믿을 만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뜻을 이루게 되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해독제를 들고 백사장님을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이 신의 한 수였어.’
백서연의 합류로 점차 틀이 잡혀가는 태홍 바이오 제약.
그리고 며칠 후.
마침내 백스 드럭샵이 모기독 해독제 판매를 재개했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줄 선 사람들.
백홍표가 드럭샵 셔터를 올리자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부작용 운운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 ※ ※
자유도시 구례.
가장 안전한 곳이라 알려진 캐슬 내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구역 정비가 매우 잘되어 있었다.
깨끗한 거리, 널따란 도로, 그 위를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
조훈석은 벌써 며칠째 캐슬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나가면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이라도 당할 것 같아서.
그러나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자치위원회 회의가 잡힌 날이었고, 상임 위원들이 반드시 출석하라고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안건은 약품 가격 담합 행위와 무리한 중소 약국 괴롭히기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추궁하는 자리.
결국 잘못을 시인해야 했다.
황실 파견 사무관 지광인과 천왕그룹 회장 민동열도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저항은 소용이 없었다.
‘개새끼들,’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눈초리가 얼마나 아니꼽던지.
이정학 길드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행히 상식이파 청부살인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그것까지 문제 삼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어쨌든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
조용히 몇 달 지내다 보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테고.
이제 캐슬로 돌아가야지.
당분간 그곳에서 나오지 말아야겠다.
늦은 밤.
조훈석은 캐슬로 가는 진입로로 차를 몰았다.
신호등이 걸려 잠시 정차하고 있던 참에 운전석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정차했다.
부릉! 부르릉, 부릉!
“뭐야?”
요란한 엔진 소리에 슬쩍 옆을 봤는데.
콰직! 쨍그랑!
“허억!”
차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둔기가,
퍽!
조훈석의 옆머리를 강타해버렸다.
“끄응,”
충격에 그만 기절해버린 조훈석.
그리고 슬며시 눈을 떴는데.
‘···음? 여긴 어디지?’
아직 차 안이었다.
그리고 전면 유리창 너머로 넓은 호수가 보였다.
‘저긴···,’
캐슬을 둘러싸고 있는 인공호수.
황급하게 옆문을 바라보니 자동차가 아슬아슬 절벽에 걸쳐있었다.
‘나, 나가야 해!’
이러다 추락할라.
안전벨트부터 풀고.
딸깍!
하지만.
“어어?”
벨트가 풀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정신이 들어?”
“헉!”
뒷좌석에 누군가 있었다.
“뭐, 뭐야? 당신 누구야?”
“누구긴, 지금 이 상황에서 그걸 모르면 정말 멍청한 건데.”
“아···.”
조훈석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청부살인?
누군가를 이렇게 해봤지, 자신이 꿈에도 당할 줄은 몰랐다.
“기, 김태주가 보냈나?”
“아니, 남원 마수 방어사단 기동 특전대 소속이다.”
“군? 군에서 왜?”
“왜겠어? 네가 한 짓 때문이지. 모기독 해독제가 군 전략 물자로 지정된 거 몰랐나? 네가 살아있으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지도 몰라.”
“으아아···,”
조훈석은 공포에 질렸다.
“사, 살려줘. 절대 방해하지 않을게.”
“내가 굳이 네게 소속을 밝힌 이유를 모르겠나? 설마 살려주려고 그랬겠어?”
“저, 절대 비밀로,”
“넌 선을 넘었어. 청부는 하지 말았어야지. 그럼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콱!
다시 뒤통수에서 전해지는 충격.
조훈석은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
그 과정에서 드는 후회.
‘백스 드럭샵의 군납 계약 때문인가?’
모기독 해독제의 지속적인 공급을 원하는 군으로선 자신의 존재는 눈엣가시였을 터.
‘차라리 그냥 놔뒀더라면···.’
구례시에서만 팔렸을 것이고, 군에다 공급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지.
기우뚱,
자동차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그러더니 첨벙, 인공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절벽 위에선 남자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출렁이는 호수의 물결이 잠잠해질 때까지.
한참을 서 있다가 무전기를 꺼내.
“임무 완료했습니다. 이제 복귀하겠습니다.”
조훈석의 차가 발견되긴 어려울 것이다.
발견된다고 해도 사고 처리다.
<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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