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이언트 반달곰 사냥(1) >
현재 태주가 사들인 건물은 대규모 공사 중.
회사도 만들었겠다, 최소한 사옥은 있어야 한다.
건물을 살 때 구입한 여분의 공터에서도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약품 생산공장으로 활용될 예정.
그런 이유로 현장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백서연은 인테리어가 완료된 지하 대피소를 임시 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순철아! 나 누나야, 요즘도 사냥 서포터 하니? 어디, 거창? 그럼 당장 구례로 넘어와. 같이 일하자. 무슨 일이냐 하면···,”
“미정아, 미용실은 잘 돼? 하아, 이 언니가 너무 힘들어. 사람이 너무 부족해. 네가 미용실에서 받는 월급 두 배로 맞춰줄 테니까, ···응? 지금 온다고?”
“여보세요? 영길이니? ···뭐? 회사 잘렸어? 놀고 있다고? 아니 누가 우리 영길이를 몰라보고, 당장 누나에게 와!”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며 사람을 채용했다.
왜 공채를 통해 정식적으로 사람을 뽑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회의론자는 아니지만 여긴 구례잖아요.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동네인데···, 어쩔 수 없어요. 알고 지내던 사람 위주로 뽑는 수밖에.”
납득이 간다.
물론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구례에서 그걸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백홍표 사장도 백스 드럭샵, 아니 태홍 드럭샵을 운영하느라 바쁘다.
“아싸! 1등!”
“오늘은 몇 개까지 팝니까? 될 수 있으면 많이 쟁여둬야지.”
“백사장님!!! 이제 셔터 내리면 안 돼요.”
“시비 거는 놈 있으면 저한테 먼저 말해주세요.”
“저도요! 제일 먼저 달려갈게요. 그런데 포자 독 해독제는 언제?”
그 와중에 마음대로 약품을 빼갔던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다시 와서.
“백사장님! 다시 문을 여셨군요. 약은 얼마나 넣을까요? 장사도 잘되시는데 전보다 물량을 두 배 정도 더 준비해왔습니다. 제가 진열해 드릴까요?”
환하게 웃으며 사근사근 이야기했다.
약 빼갈 때는 언제고.
얼굴에 깐 철판이 보통 두껍지 않다.
그러나 백홍표는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돌아가세요.”
“네?”
“그쪽 약 안 받습니다.”
“무, 무슨 말씀을···?”
“다른 제약회사 약들이 들어올 겁니다. 적어도 우리 약국에서는 당신 회사 약 팔일은 없을 거예요.”
매출 1등 태홍 드럭샵.
해독제뿐만 아니라 다른 약도 제일 많이, 빨리 팔리는 약국이다.
그런데 물건을 안 받겠다니.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백홍표에게 매달렸다.
“아, 아니! 갑자기 이러시면···, 억울합니다. 저도 다 지시받고 한 일입니다.”
“왜 이러실까, 지시라뇨? 과장님이 결정한 거 아닙니까? 저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제발 받아주십시오.”
하지만 백홍표는 단호했다.
“나가세요!”
대출 조기 상환을 요구했던 은행 지점장도 찾아와 다시 거래를 열어달라며 찾아왔다.
“험험, 이게 제 불찰입니다. 조훈석이 얼마나 협박을 해오는지···.”
“그랬군요.”
“사과의 의미로 특별한 혜택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전보다 예금 금리를 0.5% 더···,”
“지점장님.”
“네, 백사장님, 말씀하십시오.”
“앞으로 그쪽 은행과 거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다른 곳이나 알아보시죠.”
대출금 조기 상환 요구를 당했는데, 그냥 넘어가면 그게 호구지.
평소 사람이 괜찮았으면 또 몰라.
항상 고압적인 태도로 사람을 무시하던 은행 지점장이었다.
“마, 말씀드렸잖아요. 본의가 아니라고, 조훈석이가···.”
“대출금 조기 상환 통보했을 때, 이미 우리 관계는 끝난 겁니다.”
“아, 아니! 제, 제발 한 번만···,”
태홍 바이오는 구례 최고의 매출을 자랑하는 1등 기업이 됐다.
곧 구례의 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일 터.
하지만 선택을 잘못했다.
‘적어도 염치가 있다면 찾아오지 말았어야지.’
반면 어부지리로 태홍 바이오의 자금을 유치한 경쟁 은행은 현재 축제 분위기.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서도 병력이 도착했다.
그들을 맞이하는 태주.
“멸마! 소령 도민수 외 19명, 태홍 바이오 경비 임무를 위해 차출되어 왔음을 보고 합니다.”
“···아, 잘 오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공사 중이라, 지낼 곳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야전 숙영 장비 챙겨왔습니다. 천막치고 생활하면 됩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못했습니다.”
“이따가 고라니 사골 국밥 말아드릴게요.”
“···네? 저, 정말입니까?”
뜨끈한 국밥이면 누구나 환장하지.
태주라고 해서 논 건 아니다.
군에서 넘어온 재료를 가지고 해독약 제작에 착수했다.
재료 손질은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비교적 빨랐지만 최종 법제는 태주의 몫.
4성에 이른 혼원무상독령공.
더 섬세하고 빠르게 독 기운을 섞고, 순화시켜 양질의 원액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공정이 복잡하고 어렵다.
비교적 약한 독을 해독하는 모기 독 해독제와는 달리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는 극독을 해독시켜야 한다.
또한 포자 독의 특성상, 외부에 노출되는 피부 보호를 위해 바르는 약도 같이 만들어야 한다.
즉 외용제와 경구 투여제가 한 세트.
가격도 그만큼 비쌀 테고.
이것도 수요가 엄청날 것이다.
고라니 사냥을 위해?
아니, 그보다는 구례에 사는 사람이라면 웨이브에 대비해 누구나 상비약으로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포자 독 낙타 고라니가 어디 지리산에만 있나?
‘공정 과정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태주의 지시에 따라 재료를 섬세하게 손질하는 건 사람이 해도, 삶거나 찌거나 분쇄하는 건 기계가 해도 된다.
만들어진 재료를 분량 별로 섞어서 최종적인 법제만 태주가 하는 식으로,
그렇게 기계도 들여오고, 공장도 짓고.
돈과 시간이 제법 많이 든다.
‘이거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겠네.’
장비가 갖춰지기 전까지 군대에 납품할 포자 독 해독제는 수작업으로 만들기로 하고.
‘어쩔 수 없이 약 하나 더 추가해볼까?’
이번엔 해독제가 아닌 영약이 어떨까?
필수품은 아니지만 수요가 꽤 많은 영약.
일종의 명품 약이라고나 할까.
각성자들, 혹은 적합자들의 힘은 역시 마나에서 나온다.
마나가 고밀도로 응집된 약은 적합자가 각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각성자도 등급을 올리기 위해 영약을 복용한다.
그렇다면 영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마나가 고밀도로 응집된 물건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마수들의 몸 속에서 나오는 에너지 결정체가 핵심 재료다.
에너지 결정체는 마나 결정체라고도 불린다.
일반 결정체야 흔하게 나오는 거지만 영약의 재료로 쓰이기 위해선 무조건 ‘엘리트’ 마수의 결정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엘리트 마수들은 잡기가 어렵다.
놈들의 강함은 둘째치고서라도,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매우 영리해서 인간들 앞에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
또한 운이 좋아서 엘리트 마수를 잡는다고 치자.
무조건 결정체가 나오나?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나올 확률이 일반 마수보다 훨씬 더 떨어진다.
그래서 영약이 귀하고 비싼 것이고.
‘하지만 대체재는 충분히 있지.’
지구와 강호 무림을 비교하자면 과학기술 면에서 강호가 뒤떨어지지만, 그래도 월등하게 앞서는 분야가 있다.
그건 바로 기(氣)를 다루는 방법.
지구의 인류가 무형의 에너지, 마나와 조우한 지는 불과 300년.
하지만 강호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마나와 비슷한 내공이라는 무형의 에너지를 다뤄왔다.
그 정화가 현재 태주의 머릿속에 담겨 있었고.
‘해볼 만해.’
양약을 만들기 위해 엘리트 결정체까지는 필요가 없다.
강호 무림의 연단법으로 영약을 만들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 지리산에서 영약의 재료로 쓰일 만한 재료는 뭘까?
하나 있다.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
영약 약재로서 충분하다.
웅담 크기에 따라 대충 6~8개의 영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강호 무림에서도 영물 곰을 잡아본 기억이 있다.
북해 빙궁 영역에 사는 설산백웅(雪山白熊).
백웅의 웅담으로 영약도 만들어 봤고.
‘만약 반달곰과 백웅의 웅담이 비슷하다면 초반에 처리를 잘해야 해.’
이게 가장 어렵다.
잘못하면 약효가 다 날아가 빈껍데기가 된다.
사람들이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을 아직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
‘그러면 먼저 놈을 잡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혼원무상독령공 4성으론 부족하다.
절정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 5성은 되어야지.
결국 힘을 기르는 것이 답.
정직하게 차곡차곡 독기를 쌓는 수밖에.
‘잠잘 시간도 모자라겠네.’
5성 가자.
반달곰이나 이정학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다.
마스터?
솔직히 별거 아니다.
마스터의 기준은 단순하다.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마나 블레이드.
검에 무형의 마나를 압축해서 덧씌우는 것.
그래서 티타늄 같은 단단한 검도 썩둑썩둑 잘라버리는 위력.
강호 무림에도 검강(劍罡)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둘의 근본적인 차이.
시스템에 의해 익히는 마나 블레이드, 고된 수련과 실전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화경의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익힐 수 있는 검강(劍罡).
뭐가 더 강할까?
‘으음, 나도 쉽게 얻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어때?
어쨌든 당군악과 김태주는 영혼이 같지 않나.
그래서 태주는 이미 깨달은 사람.
강기를 이룰 공력이 부족할 뿐이지.
‘나중에 혼원무상독령공 7성에 올라 암기에 강기를 씌우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러나,
‘어휴, 아직 멀었다.’
최소 5성은 이루고 나서 생각하자.
※ ※ ※
노고단 길드 자경단은 캐슬 바깥에 있지만 이정학의 거처는 캐슬 안에 있다.
집 방안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뻘뻘 땀을 흘리면서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정학.
“으으으···, 드드득, 드득.”
이빨마저 달그락거렸다.
이게 다 그놈의 독 때문이다.
김태주가 던진 나뭇잎 모양의 단검에 묻은 극독.
하지만 살짝 스쳤을 뿐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아무리 강한 독이라도 주입되는 양이 적으면 효과는 미약하다.
병원으로 가서 응급 치료도 받았고, 약국에 사람을 보내 종합해독제를 구해서 입으로 쏟아 넣어도 독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해독제를 잘 만드는 놈이었다.
그렇다면 독(毒)에 대해서도 전문가였을 터.
조심, 또 조심했어야 했는데.
‘제기랄!’
이러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개 없다.
첫 번째, 자존심을 굽히고 김태주를 찾아가 해독제를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
그러나 그건 애초부터 논외.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놈에게 구걸해?
김태주가 어떤 조건을 걸지도 두렵고.
두 번째, 치유 스킬과 해독 스킬을 가진 각성자들을 수소문해서 구례로 초빙한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내는 것도 힘들고, 찾아낸다 해도 구례까지 와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세 번째, 영약을 복용해 마나의 힘으로 강제로 독을 소멸시킨다.
이 방법밖엔 없다.
가장 현실적이고.
사실 영약은 매우 비싸다.
더구나 독을 몰아내려면 최소 상급 이상의 영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삼한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뉴서울 미리내 제약으로 부길드장 박정태를 보냈다.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자신이 투병 중인 사실은 오직 박정태만 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부길드장 박정태가 가방을 들고 방 안에 들어왔다.
“영약 구해왔습니다.”
“얼마라고 했지?”
“100억입니다.”
“···하아. 알았어. 수고했네. 가서 푹 쉬어.”
졸지에 현금 잔고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뭐, 부동산 몇 개 팔면 상관없겠지만.
이정학은 가방을 열었다.
고가의 약답게 금박으로 포장된 미리내 제약회사의 영약.
일련번호와 보증서도 있었다.
몇 년도 몇월 며칠에 묘향산 ‘엘리트 금뿔 사슴’ 마수를 잡아서 나온 엘리트 마나 결정체로 제조한 영약이라고.
이보다 싸게 구할 수 있지만 그러다 보면 가품을 살 수도 있다.
비싸지만 대기업 제품이 안전하지.
‘이거면 독을 몰아낼 수 있을 거야.’
마스터에 오른 지금, 영약은 등급 상승에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영약을 먹는다고 해도 마나가 축적되는 양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마나 응집으로 인한 폭발 효과가 잠시 일어났다가, 대부분 몸에 축적되지 못하고 빠져나간다. 마나를 담는 그릇의 크기에 한계가 있다고 할까.
하지만 그때의 순간적인 마나 폭발력을 이용해 독기를 소멸시키거나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는 도움이 될 터.
이정학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서슴없이 가방에서 약을 집어 입에 넣었다.
꿀꺽!
엘리트 마나 결정체로 만든 영약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우우우우우웅!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마나량.
이젠 몰아내기만 하면 된다.
이정학은 스킬로 익힌 마나 심법을 운용했다.
마나가 혈류를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간다.
그 과정에서 힘을 잃고 소멸하기 시작하는 독기.
‘됐어!’
땀구멍에서 진득한 노폐물들이 흘러나왔다.
정신이 맑아진다.
활력이 넘쳐흐른다.
‘역시 정품 영약을 선택한 게 옳았···,’
그때였다.
‘어?’
무슨 일이지?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마나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반전이 일어났다.
마나에 밀려 쫓기는 독기가 갑자기 힘을 얻어 마나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대, 대체?’
낯설지 않았다.
구례에서 활동했던 각성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던 현상.
‘···변종 3줄 무늬 모기 독?’
비슷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했다.
모기 독이 마나를 흩트려버리면, 다른 독들이 뿔뿔이 흩어져 힘을 잃은 마나를 먹어 치운다.
“씨, 씨발!”
다시 거무죽죽해지는 안색.
영약으로 일부의 독은 바깥으로 내보냈지만 남은 일부의 독은 더 강해지고 말았다.
“쿨럭, 쿨럭.”
이정학의 눈빛은 암담했다.
< 자이언트 반달곰 사냥(1) > 끝
ⓒ 꾸찌꾸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