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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려는 드릴게. >
자신이 직접 만든 약이지만 태주는 상상도 못 했다.
하이엔드급 명품 영약도 아닌데, 단 한 알로 기존 각성자를 등급 상승시키고 적합자를 각성시켰다.
이 약이 시장에 풀렸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특히 권력자들, 등급에 목마른 각성자들, 그리고 각성 하나에 인생을 건 적합자들.
벌떼처럼 달려들 터.
‘군이 알아도 안 돼.’
두려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거다.
이미 모기 독, 포자 독 해독제로 주목을 끌었다.
거기에 기존의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 영약까지 풀리면?
‘모기독 해독제만으로도 견제가 들어오는 판에,’
재료도 문제.
엘리트 마나 결정체는 0.000001g도 들어가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이언트 웅담 4분의 1과 일반 마나 결정체, 그리고 흔한 약초들인데.
누가 들어도 기절초풍할 일.
해독제 개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아직 알려지면 안 된다.
‘영약 판매는 하지 말아야겠군.’
별수 있나?
다른 약 개발해야지.
영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해 둔 약이 또 있다.
‘우선 이 두 놈만 키워서···,’
태주는 나름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다.
29살의 젊은 놈이, 관상가도 아니면서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느냐고 하겠지만, 의외로 태주는 관상에 조예가 깊다.
왜냐하면 강호 무림에서 일가를 책임졌던 절대독마 당군악이기도 하니까.
태주가 판단하기론,
백창훈은 순진하고 여리다.
장순철은 영악하고 똘똘하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믿을 만한 놈들이라는 것.
“오늘부터 너희 둘은 날 따라다녀.”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합니까?”
“아니, 나한테 고용된 거라고. 오늘부터 너희들에게 약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월급도 내가 준다.”
“넵!”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믿으십시오. 창훈이 형만 조심하면 됩니다.”
“야! 나도 입 무겁거든!”
아직 재료는 남았다.
영약 말고 진짜 팔 수 있는 걸 만들어보자.
태주가 생각하는 건 요상단(療傷丹)이다.
강호 무림에서 내상 치유제로 쓰이는 약.
만드는 재료나 방식도 영약과 비슷하다.
주재료의 비율을 높이면 최상급 수준의 영약, 낮추면 회복제.
웅담과 마나 결정체의 양만 대폭 줄였다.
반대로 마나 삼지구엽초와 변종 마황, 마나 보리의 양은 엄청나게 늘리고.
이렇게 하면 영약이 아닌 회복제가 된다.
남은 재료를 이용해 밤새도록 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만들어낸 환단 모양의 회복제.
이 한 알에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엄지와 검지, 한꼬집?
그보다 더 적을지도.
‘효과 검증은 어떻게 할까?’
영약을 먹은 그날로부터 항상 자신의 옆에 꼭 붙어있는 백창훈과 장순철.
‘어차피 약을 생산하려면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이 더 필요하니까.’
태주는 멀뚱히 서 있는 두 명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혀, 형님, 왜 그렇게 웃으시죠?”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아니, 잘못은 무슨, 지금 나하고 사냥 가자고.”
“좋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장순철이 반색했다.
하긴 이제 막 각성자가 됐으니.
하지만 백창훈은 불안했다.
좀전의 태주형의 음흉한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근데 어떤 놈 잡으러 갑니까?”
“자이언트 반달곰.”
“아하, 그렇구나···, 네? 자, 자이언트 반달곰?”
“괜찮아. 안 죽어. 나 믿지?”
“그, 그게.”
태주는 코트 주머니에서 회복제 한 알을 꺼내 백창훈의 손에 꼭 쥐어줬다.
“다치면 이거 먹으면 돼.”
“어어, 영약? 아닌 것 같은데.”
“회복제.”
그제야 백창훈은 깨달았다.
“···저희 실험체인가요?”
“비슷해.”
“사, 살려는 주실 거죠?”
“걱정 마! 절대 안 죽어! ···살짝 아프긴 하겠지만,”
“···.”
당분간 사냥에 몰두하자.
회복제 재료도 채취하고, 창훈이와 순철이 훈련도 시키고, 겸사겸사 독정의 안정화도.
이제 자이언트 반달곰 정도는 충분히 잡는다.
혼원무상독령공 5성, 절정의 경지, 혈접이라는 천변만화의 암기술.
순간!
지이이잉!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누구지?’
오진형 중장이었다.
이 양반은 왜 자꾸 전화해?
“여보세요?”
- 태주군, 태주 사장, 아니 태주님, 한 번만 더 부탁함세.
부탁?
뭐겠나.
포자독 해독제 만들어 달라는 거겠지.
“포자 독 해독제는 좀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금은 모기 독 해독제가 더 급해요.”
- 나도 알지, 아는데···,
“공장이 완공되고 양산 체제가 만들어지면 그땐 순조롭게 납품할 수 있을 겁니다. 정 고기가 드시고 싶으면 이리 오세요. 넉넉하게 드릴 테니까.”
- 하아, 고기 문제가 아니라 이쪽저쪽에서 연락이 와서 미치겠네. 포자 독 해독제 조금만 나눠 달라고, 돈으로 구매하겠다고.
“전에 100세트 만들어 드렸잖아요. 거기서 몇 개 나눠주시지.”
- 우리도 부족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해독제 절반도 도둑이 와서 쓸어갔어.
“도둑이라뇨?”
- 그런 양반이 있네. 염치도 없는 분이시지. 뭐, 덕분에 제국 황실에서 군 운영 예산이 빵빵하게 내려왔지만.
도둑은 아닌 듯하고, 높은 사람이 와서 강제로 강탈해간 모양인데, 오진형 중장보다 높은 사람이 누가 있지? 대장이라도 왔나?
아무튼 누가 해독제를 사려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거든요. 그래서 싸게는 못 팝니다.”
- 어, 얼마에?
전에 지리산 마수 군단에게 100세트를 납품했을 당시, 세트당 가격을 50만 원으로 책정했다.
백서연은 너무 싼 가격이라고 반발했고, 백홍표는 해독제가 사냥을 위한 것만이 아닌, 웨이브가 일어났을 때 일반 시민들에게 상비약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싸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주는 백홍표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포자 독 해독제의 시판 가격은 50만 원.
“정 급행료 지불하고 포자 독 해독제 구하고 싶으면 세트당 1,000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전하세요."
- 허어,
“아니면 몇 달 기다리든지.”
- 아, 알겠네. 그렇게 엄포를 놓지.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하지.
사냥 준비나 하자.
이왕 가는 김에 반달곰 웅담 충분히 챙겨 와야지.
보냉 가방에, 아이스팩도 준비하고,
‘일단 오중장 전화 받고 나서.’
솔직히 살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서너 달 정도만 기다리면 공장이 완공되어 싼 가격에 살 수 있을 텐데, 그걸 못 참고 해독제 한 세트에 천만 원을 태워?
그런데 있었다.
한 세트 천만 원이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 줄을 섰네. 물건 언제 받을 수 있냐고, 선입금해주겠다던데.
“···어. 진짜 1,000만 원이라도 사겠다고요?”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사냥을 하려나 보다.
혹은 출시 전에 카피약이라도 만들어보려는 모양.
‘카피는 못 할 텐데.’
모기 독 해독제와 마찬가지로 성분 분석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혼원무상독령공으로 성질을 변화시킨 약재들, 분석기 기계는 같은 성분이라 판단하겠지만 실제론 차이가 있다.
어쨌든 만들어야지.
100세트만 만들어도 10억을 버는데.
“알았어요. 팔게요.”
- 허허허, 잘 생각했네.
“3일 후에 물량 준비해서 팔겠다고 전해주세요. 판매 장소는···,”
여긴 공사 중이라 바쁘다.
여기로 불렀다가는 작업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본부에서 판매할게요.”
- 오! 그럼 준비되면 연락해주게. 헬기를 보낼 테니.
한 1000세트 만들면 되겠지?
100억만 벌어 오자.
이걸로 땅도 더 사고, 장비도 구입하고.
“애들아!”
“넵!”
“사냥은 다음에 가자. 대신 약을 만드는 거 도와줘야겠는데···.”
“마음대로 부려 먹으십시오!”
“어떻게 하는지만 가르쳐 주세요,”
“그럼 작업용 고글과 마스크 준비해와. 그리고 고무장갑도.”
해독제를 만드는데 드는 수고의 9할은 재료 손질과 준비.
마침 심복 두 명도 생겼겠다,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재료를 손질할 수 있었다.
백창훈과 장순철은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태주의 지시에 따라 약재를 분류했다.
“이건 이파리 말고 뿌리를 사용하는 거죠?”
“어, 맨손으로 만지지 마. 장갑 꼈지?”
“넵!”
“그건 착즙기에 넣어서 즙을 짜. 저 약초는 건조기에 넣어서 두시간 정도 말리고.”
혼원무상독령공은 마지막 조율 단계에서 필요하다.
그래도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두 가지 모두 준비해야 하니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때였다.
“태주야.”
지하 연구실 문을 열고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백홍표.
태주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백사장님.”
“으험, 호칭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그럼 창훈이가 나보고 삼촌이라 불러야 하는데요? 족보가 꼬여서.”
“에이, 우리가 족보가 어디 있다고!”
“그런데 무슨 일로? ”
“참! 누군가 자넬 만나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그냥 가라고 해도 한사코···.”
누구지?
“제가 만나봐야 할 사람입니까?”
“글쎄, 일단 이름은 알려줄게. 구례 자경단원이자 노고단 길드 부길드장, 이름이 박정태라고, 이정학 심복이야.”
“아···.”
누군가 했다.
“왜 왔데요? 또 무슨 꼬투리 잡으려고.”
“시비 걸려고 온 건 아닌 것 같아. 표정이 굉장히 안 좋더라고.”
짐작이 가는 게 하나 있다.
이정학과의 충돌했을 때, 혼신의 힘으로 날린 유엽비도 한 자루가 놈의 손등을 스쳤었다.
“만나볼 텐가?”
“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창훈이 부를까?”
“저 혼자 만나면 돼요.”
태주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 공터에 검정색 고급 리무진이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차 문 옆에서 서 있는 건장한 남자 하나.
천천히 리무진으로 걸어가니.
“안녕하십니까. 노고단 길드 부길드장 박정태라고 합니다.”
“전에 여기서 한번 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네. 사과받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차 안에 이정학 길드장 있죠?”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증세는 어때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심한가요?”
“하아, 그게 매우 좋지 않습니다.”
직접 확인하자.
태주는 철컥,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콜록, 콜록,”
손수건을 입에다 대고 기침을 하는 이정학.
하얀 손수건에 혈흔이 보였다.
“어, 어서 오게. ···번거롭게 해서 미, 미안하네만.”
이정학은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창백한 얼굴, 파르르 떨리는 손.
태주는 태연하게 이정학과 마주 보는 리무진 뒷자리, 이정학과 마주 보는 좌석에 앉았다.
이정학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을 해독해 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뭐하러?
정말 죽기 싫으면 먼저 말을 걸어올 터.
오래도록 침묵이 흘렀다.
그저 이정학의 깊은 기침 소리만 들였다.
이윽고.
“···사, 살려주게.”
항복선언이었다.
“뭐, 뭘 해도 낫지 않아. ···벼, 병원에서 해, 해독 치료를 받아도, 깨, 깨끗한 피로 수혈도 받아봤고, 이, 인공 투석을 했는데도, 차도가 없어.”
당연하다.
독이 한가지라면 모를까.
다양한 성질의 독 기운이 씌워진 독에 당해버렸는데.
“···심지어 미리내 제약에서 마, 만든 최고급 영약도 무용지물이었어. 쿨럭쿨럭, 여, 영약의 기운이 몸속에 들어오자마자 흩어지더군,”
실제로 심각해 보였다.
잘하면 차 안에서 비명횡사할 정도로.
“제가 길드장님을 살려주면 전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최, 최대한 협조하겠네. 날 자네의 칼로 써도 돼.”
“칼? 필요 없는데요?”
“아아···, 제, 제발!”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주면 생각해 볼게요.”
태주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오자, 이정학의 눈이 반짝 빛났다.
회광반조 같은 건가?
“뭐든지 말해주게.”
“구례시 치안에 집중해요. 자경단의 본분에 충실하라고요. 쓸데없이 권력다툼 같은 거 하지 말고.”
“쿨럭, 쿨럭! 아, 알았···,”
어차피 살려주려고 했다.
딱히 큰 흉계를 꾸민 것도 아니고, 제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했다.
그게 태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지.
이정학이 죽으면 자경단의 역할이 무너진다.
그러면 구례시 치안이 위험하고.
“복수하고 싶으면 언제든 날 찾아오세요. 괜히 주변 사람 괴롭히지 말고, 만약 백사장님이나 고아원 사람들 건드리면···.”
태주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오른다.
전엔 지기 싫어서 오기로 피운 살기지만 지금은 너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의미의 살기였다.
“언제든 다시 목숨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이정학.
태주는 손을 뻗어 이정학의 맥문을 잡았다.
“몸에 힘 빼요.”
우웅! 5성의 혼원무상독령공이 그의 몸 안에 있는 독기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크윽···,”
이정학의 몸이 허물어졌다.
독기가 사라지자 바짝 세우고 있었던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슬슬 잠이 온다.
이정학의 눈이 감겼다.
태주는 그런 그의 주머니에 알약 하나를 넣어주며 말했다.
“후유증이 남을 테니까 집에 가서 이 회복제 꼭 먹어요.”
“고, 고맙···.”
이정학은 곯아떨어졌다.
잘한 선택이다.
구례시 자치위원회 상임위원이지 않나.
관계가 회복되면 도움받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 살려는 드릴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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