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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복제라고 평범할까? >
산청시.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본부가 있는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군사 특구 산청’, 군이 도시의 행정 치안을 담당하기 때문에 군사 특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민들도 군인들 가족, 아니면 군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래서 인구도 그리 많지 않다.
태주는 산청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본부에 혼자 왔다.
선주문받은 포자 독 해독제를 판매하기 위해.
백서연도 회사 조직 구성하느라 바쁘고, 백홍표도 드럭샵 운영하느라 바쁘고.
투타타타타타!
헬기가 연병장에 바로 착륙하자 미리 마중을 나온 오진형 중장, 태주가 가지고 온 해독제 1000세트가 든 상자들을 장교들이 부리나케 옮겼다.
“어서 오게.”
“구매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멸마 정훈 교육관에서 자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바로 가시죠. 저도 할 일이 많아서.”
정훈 교육관에 들어가자마자 반색하며 태주에게 모여드는 사람들.
“자네가 김태주인가? 난 백두산 전초기지 사령관 김동규 소장이네. 오중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네.”
“반갑습니다. 연해주 주둔부대 홍정인 대령입니다.”
“뉴서울 방위사령부 도경찬 2급 군무원입니다.”
“만주 개척 보급창 관리부에서 나온 이상길입니다.”
명함이 막 날아들었다.
하지만 태주는 줄 명함이 없었다.
“아직 명함을 만들지 않아서 드릴 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만들면 하나 보내주게. 내 이름, 김동규만 기억해주면 돼.”
“전화번호만 저장해 주십시오.”
“언제든 연락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오! 김웅방 준장과 꼭 닮았군. 난 자네 아버지와 사관학교 동기 최두필 소장이야. 지금은 요동 남부 방어사단 지휘관이고···,”
그러자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사람들.
최두필 소장도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모양.
“어음, 내, 내가 말을 잘못했나?”
“제가 아버지 호적에서 파였거든요. 아마 그래서 그런 걸 겁니다.”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포자 독 해독제 판매가 이뤄졌다.
한 세트 천만 원.
미리 공지했다.
정식 시판 전에 공급되는 물건이라 가격이 이렇다고, 네고는 절대 없다고.
그러나 비싸다고 말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누구는 100세트, 누구는 150세트, 200세트를 산 사람도 있었고, 돈은 즉시 계좌 이체로 결제됐다.
‘이거도 쏠쏠하군.’
다만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엔···.
오진형 중장이 애절한 눈빛으로 속삭였다.
싸게 달라는 의미겠지.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시게. 예산이 모자라.”
요즘 살려달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한 세트 100만 원에 가져가세요.”
“오오! 정말 감사하네!”
“그런데 이 사람들 참을성이 그렇게나 없어요? 몇 달만 기다리면 되는데···.”
“자기들이 가져가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일부는 프리미엄 붙여서 되팔걸?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비싸게 주고 살 이유가 없지.”
“어디다 되팔아요? ···민간?”
“맞네. 대부분 거기야.”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자생지는 제국 전역.
숲이나 산이 있는 지역엔 어김없이 존재한다.
“각성자 민간 길드에서 한 세트라도 구해보려고 안달이 났다더군.”
“왜요? 사냥 연습이라도 하려고요?”
“고라니 고기 때문이겠지. 여기저기서 의뢰가 오지 않았겠나. 자네 회사로 아무리 연락해봐도 씨알도 안 먹히고, 결국 한 다리 두 다리 건너서 나한테까지 온 거지.”
알만하다.
백홍표 사장도 엄청난 청탁 전화를 받았다고 들었다.
단호히 거절하거나 아예 전화번호를 차단했고.
대표적으로 고라니 고기로 배양육을 만들어 보려는 식품 업체, 재벌이나 돈 많은 부자들을 위해 고라니 고기가 필요한 요리사들.
세트당 천만 원?
뭐가 아까울까?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긴 하네.”
“뭐가요?”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전에 내가 저 사람들에게 신신당부했네. 절대 제약회사엔 팔지 말라고.”
“아.”
“하지만 약속을 지킬 것 같지는 않아.”
아마 오진형은 걱정이 되는가 보다,
“제약회사들이 포자 독 해독제를 카피해버릴까 봐요?”
“그렇지.”
태주는 피식 웃었다.
“과연 뜻대로 될까요?”
“응? 상당히 자신에 찬 표정이군.”
“그쪽 기술력이 어떨진 잘 모르겠지만 아마 몇 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껄껄껄,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네.”
오진형 중장이 짐짓 엄살을 떨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한숨 돌렸군. 그동안 어찌나 시달렸는지.”
“이젠 예외는 없다고 전해주세요. 정식 판매 전까진 기다리라고.”
“···너무 매몰차게 하지 말고.”
슬슬 가봐야겠다.
돌아서려는 태주를 보며 말하는 오진형.
“태주군.”
“네?”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말이야. 자네···, 뭔가 달라졌군.”
“그런가요?”
“일취월장이라더니, 단 며칠 사이에?”
전부터 느낀 거지만 오진형은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이제는 이정학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군. ···아니, 벌써 굴복시켰겠지.”
어떻게 알았지?
그래도 너스레 떨면서.
“아직 멀었습니다. 전 각성자도 아닌데요,”
“하하하, 다 알고 있네. 그리고 각성이 뭐가 중요한가. 마나의 힘이란 게 오직 시스템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건 아니야. 비슷한 사례들도 많고, 중요한 건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러더니 은근한 눈초리로.
“한번 물어보는 건데, 자네 다시 군에 복귀할 생각은 없나?”
···뭐라고?
이 양반이!
“아니요. 전 전혀 그럴 생각이···,”
“아아아! 단언하지 말게. 세상일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글쎄요.”
오진형의 말이 맞긴 하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그래도 군 복귀?
이건 아니지.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다.
옛날 옛적.
그러니까 300년 전.
삼한제국이 대한민국 공화국이었던 시절.
20대 남자들이 꾸는 꿈 중에 가장 끔찍한 악몽이 군대를 두 번 가는 꿈이었다.
분명 제대했는데, 훈련소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그런 꿈 말이다.
지금은 모병제라 그런 게 사라졌다 해도 군대를 두 번 가라는 건, 선 넘었지.
“지금 당장 결정하란 말은 아니야. 그래도 생각은 해보게. 제국군이라고 다 우리 같은 야전군만 있나?”
삼한제국에서 제국군은 두 종류.
상명하복의 계급 체계가 엄격한 중앙군이 있고, 영지에 속해있어 지역을 방어하는 영지군이 있다.
물론 진급과 지원, 연봉은 중앙군이 유리하다.
대신 영지군은 자신의 지역이라는 이점이 있고.
“하하하. 절대 안 갑니다. 뭐, 바로 준장을 달아주고 황제 폐하께서 칙령을 번복해 구례 자유도시를 제 영지로 지정해주신다면 모를까.”
“···그래? 구례를 가지고 싶나?”
“아뇨. 그만큼 불가능하다는 걸 돌려 말한 거예요.”
“자네 잘 모르나 본데, 구례 자유도시는 영원하지 않아. 폐하께서 결심하시면 언제든 지정 해제가 가능해. 그분은 인재를 좋아하시지. 특히 자네 같은 실력자를.”
“그, 그 뜻이 아니라.”
“그리고 이정학이도 굴복시킨 자네에게 그깟 별 하나 달아주는 게 어렵지도 않을 테고.”
갑자기 얘기가 이상한 곳으로 흐른다.
화제를 돌려야지.
“전 약 만들어 파는 거에 만족합니다. 참! 이번에 신제품도 하나 출시됩니다.”
“···신제품? ”
“명색이 제약회사인데 파는 약이 3개 정도는 되어야죠.”
“약의 종류는?”
오진형 중장의 눈이 호기심으로 초롱초롱 빛났다.
“일종의 회복제입니다. 태홍 회복제라고, 마나 회복과 더불어 내부 장기 손상 같은 내상을 치료해 주는 약이죠.”
“마나 회복에다가···, 내, 내상 치료도 겸하는 약이라고?”
“효과 검증만 남았습니다.”
“아, 아니, 마나 회복은 그렇다 치고, 내, 내상 치료?”
“혈맥, 아니 마나 로드가 역류했을 때, 태홍 회복제가 도움을 준다는 말입니다.”
원래 요상단이 그런 기능이다.
기혈을 진정시켜주고, 내공 운기도 도와주는 평범한 약.
“지, 진짜 외상이 아니라 내상 치유라는 거지?”
“···혹시 지금까지 이 비슷한 약이 없었나요?”
“있긴 했지.”
깜짝 놀랐네.
회복제란 이름을 붙이고 팔리는 약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시중에 나온 회복제들, 다 효과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름만 회복제지 죄다 쓰레기고. 하지만 그···, 태홍 회복제는 자네가 만든 거라면서?”
“네.”
“지금 가지고 있나?”
“몇 알 있습니다만.”
“나하고 갈 데가 있네. 같이 가주게나.”
“효과 검증 안 끝났다니깐요?”
“여기서 하면 되지 않나!”
오진형 중장은 빠른 발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군단 본부에서 운영하는 야전 병원.
“멸마!”
“멸마!”
“멸마!”
.
.
.
오진형이 갑자기 나타나자 군의관들과 의무병, 환자까지 벌떡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환자들은 편히 쉬어, 그리고 군의관!”
“부르셨습니까?”
“현재 부상 정도가 심한 각성 장교가 있나?”
“네! 있습니다. 오크 토벌 도중에 협공을 당해 쓰러진 중위입니다. 둔기에 맞아 마나 로드에 충격을 받아 현재 정양 중입니다.”
마나 로드 손상.
외부 충격을 받아 마나가 역류해서 혈관에 손상을 입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몸도 잘 움직이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마나 거부자가 되는 셈.
“등급은?”
“비기너입니다.”
“안내해!”
태주와 오진형은 군의관의 안내를 받아 집중 치료 병실로 갔다.
군단장을 보자 애써 몸을 일으키려 하는 각성자 장교.
“며, 멸마···,”
그러나 부상의 정도가 심해서 머리를 떼지도 못했다.
“편히 누워있어.”
“죄, 죄송합니다.”
“용감히 싸우다가 다쳤는데, 죄송하다니! 그런 말 말게.”
오진형 중장이 태주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코트 속 주머니에서 까만색 알약을 꺼내 넘겨주는 태주,
“···토끼똥인가?”
“태홍 회복제입니다.”
“어음, 하도 비슷하게 생겨서.”
“이해합니다. 씹어서 삼키면 됩니다.”
그러자 군의관이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나섰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상관이지만 자신은 의사.
할 말은 해야지.
“설마 이걸 먹이시려는 겁니까? 검증받지 못한 약을 함부로 환자에게 투여하면 무슨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내가 책임지지. 그래도 안 되는가?”
“···네, 알겠습니다.”
오진형은 태주에게 받은 회복제를 다친 장교의 입에 물렸다.
“들었지? 씹어 삼켜보게.”
누구 말이라고 거역할까?
군단장이 지시했으니 진짜 토끼 똥이라도 삼킬 판.
우물우물,
당장 극적인 변화야 있겠나?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좀 더 지나야겠지.
“차후 경과는 내일 중으로 알려주세요.”
“음? 어디 가는가?”
“구례로 돌아가야죠.”
“알았네. 이 토끼 똥의 효과는 나중에 전화로···,”
그때였다.
“아!”
갑자기 누워있던 환자가 외마디 탄성을 지르더니.
“마나가 움직여···,”
천천히 머리를 베개에서 떼어냈다.
“어?”
순간!
벌떡!
심지어 상반신까지 일으켜 앉았다.
“마, 마나가 움직입니다. ···오! 기운도 솟아납니다!”
병실에 모인 사람들이 경악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개 하나 끄덕이지 못했던 사람이 마치 사이비 종교 부흥회에 불려온 짝퉁 환자처럼 벌떡 일어났다고?
옆에 있던 군의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나 로드가 손상되었잖아. 마나가 움직였다면···, 아프지 않나?”
“전혀요!”
“심장은?”
“무리 없습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심지어 침대에서 내려서더니 쭉쭉 팔다리를 펴면서 스트레칭까지 한다.
“이 정도면 퇴원각인데요? 지금 당장 집에 가도 되겠습니까?”
“아, 아니, 그래도 검사는 해보고.”
오진형 중장의 목소리도 떨렸다.
“···구, 군의관, 다른 환자는 없나?”
“있습니다. 이쪽으로.”
총 3명의 환자에게 태홍 회복제를 먹였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모두 자리를 털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났다.
오진형 중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누가 만든 약인데.”
솔직히 태주도 놀랐다.
‘효과를 대폭 떨어뜨렸는데···,’
이렇게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다니.
회복제에 들어간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의 양은 정말 미량이었다.
그냥 웅담이 묻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물론 마나 삼지구엽초나 변종 마황 같은 재료가 들어가긴 했지만.
군의관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이 약 언제 판매합니까? 살 수 있다면 다 사겠습니다.”
군의관의 물음에 태주가 대답했다.
“흐음, 아마 몇 달 후에? 그런데 수량은 극히 적을 겁니다. 군납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그러자 정색한 표정으로 말하는 오진형.
“허어, 이 사람! 우리 사이에 그런 섭섭한 말을!”
야전 부대 지휘관으로서 오진형은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약의 효능도 효능이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회복 속도.
야전에서 부상 당해 뒤로 빠졌을 때, 이 약을 먹으면 즉시 재투입이 가능해진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전략 물자.
손실된 전력을 즉각 보충해준다.
군 지휘관으로서 어찌 욕심이 나지 않을까.
“진짜 이렇게 나올 텐가?”
“하하하, 중장님, 걱정 마세요. 어려웠을 때 도와준 은혜 절대 안 잊습니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엔 제가 잠을 자지 않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납품해 드릴게요.”
“좋아! 아주 좋아! 잊지 말게 우린 깐부야, 깐부.”
그리고 흥분한 기색을 애써 숨기고는 은근하게,
“진짜 재입대 생각 없는가?”
“···.”
“자네가 원한다면 당장 뉴서울 황궁에 입궁해서 폐하께 상소를 올려보겠네. 결심만 해.”
“천만에요. 가긴 어딜 가신다고! 그러다가 회복제 생산에 차질이 생겨도 전 모릅니다.”
“끄응, 아, 알았네.”
그래도 재입대는 아니지.
빨리 구례로 돌아가자.
여기 있다가는 발목 잡힐라.
< 회복제라고 평범할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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