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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피약? 어림도 없지. >
삼한제국은 넓은 땅만큼 인구도 꽤 많은 수준, 망해버린 중국, 침몰하는 일본,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등, 아시아계 이민족들이 다수 흘러들어온 결과였다.
인구는 거의 북부와 중부에 밀집되어 있었다.
여기서 북부는 만주 위쪽, 시베리아 접경지역이고 중부는 옛 북한 땅을 지칭한다.
그래서 처음 모기 독 해독제가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변종 3줄 무늬 모기의 주요 서식지는 남부 아열대 밀림 지역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명색이 마수라서 웨이브를 제외하면 자신들의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변종 3줄 무늬 모기가 그렇게 성가신 마수였어?
이제부터 남쪽 촌놈들, 사냥 다니기 쉽겠구나, 하는 정도.
그러나 포자 독 해독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고기, 그것도 매우 맛있는 고기.
마나 침범 이후, 가축 사육도 변화했다.
대부분 죽었지만 살아남은 소, 돼지, 닭, 양, 개들도 마나의 영향을 받아 변이됐다.
일부는 과거처럼 가축으로 길러졌고, 일부는 야생성이 강화되어 마수처럼 변했고, 일부는 고기 맛이 변질하여 고무 씹는 것처럼 됐고, 나머지는 아예 멸종했다.
그래서 진짜 고기는 매우 비싸다.
실제로 길러서 도축한 고기 말이다.
서민들은 주로 배양육을 먹는다.
생산 업체도 많아 종류와 맛이 다양하고, 가격도 싸고, 품질이 좋은 건 과거 한우 투뿔 맛에 근접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
반면 돈 많은 사람들은 마수 고기를 찾는다.
추운 산속에 사는 철발굽 산양, 혹은 숲에 사는 외뿔 얼룩소···,
그중에서도 제일 별미는 역시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삼한제국 일대는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개체수가 많지만 먹어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고라니 고기가 시중에 풀리기 시작했다.
<뉴서울 마수 고기 경매시장 연일 북새통.>
<제국 내 대형 음식점, 고라니 고기 확보에 열 올려.>
<해독제 개발로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아직 비싼 편.>
<기자도 먹어봤습니다. 고라기 고기의 위엄, 글로 옮기기에 너무 강렬한 맛이었다.>
포자 독 고라니가 손쉽게 사냥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문가들 고라니 남획 우려, 제국 정부도 고라니 사냥 금지 기간 설정을 고민 중.>
이런 기사까지 나올 정도.
하지만 고기에 대한 기사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마수 웨이브에 대비해 포자 독 해독제는 가정상비약으로 준비해두자.>
<해독제 덕분에 웨이브가 일어나도 인명 피해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
사람들이 구례로 몰리기 시작했다.
구례에서만 판매하는 게 원칙이었기 때문.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공급 물량이 달리기 때문이다.
판매 약국이 12개로 늘어났지만 오후가 되기 전에 하루 판매분 매진.
구매 제한을 걸어도 소용없었다.
공장에서 밤낮없이 생산했다.
그러나 군납 물량도 생산해야 하는 판국.
반면 태홍 회복제 같은 경우 언론에서 언급되기보다는 각성자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를 통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제목 : 여기 500만 원짜리 회복제 사 먹는 흑우 없제?
- 이건 태홍 바이오 실수가 맞다. 10만원, 아니 5만 원 하는 저렴한 마나 회복제도 수두룩한데, 500만 원 주고 사 먹으라고? 해독제 개발한 덕분에 까방권이 있어서 욕은 안 하지만···, 그래도 너무 나갔다.
└ 그 돈으로 가성비 좋은 고라니 국밥 사 먹겠다.
└ 맞아, 회복제 사면 호구 인증이지
└ 크크크, 내 옆에 호구 새끼 한 명 있음.
└ 구례 놈들은 한 개씩 사 가는 것 같은데?
└ 해독제 개발에 대한 감사의 표현 아니겠냐?
그러나 태홍 회복제에 대한 사용 후기들이 속속 올라오면서 여론이 반전하기 시작했다.
제목 : 누가 감히 태홍 회복제를 폄하하는가?
- 이거 빨리 한 개씩 사둬라. 평범한 마나 회복제가 아니다. 우리 레이드팀 탱커, 폭풍 족제비에게 다구리 맞고 뻗어서 전장 이탈했는데, 태홍 회복제 하나 꿀꺽 삼키고 멀쩡하게 살아나서 다시 탱킹하더라.
- 이거 RPG 게임에 나오는 그 아이템하고 완전 같은 거야. 힐링 포션 알지? 마나 회복 효과는 덤이고, 엄밀히 따지면 종합 회복 포션 같은 거지.
└ 야야! 조용히 안 해?
└ 졸라 입 싼 새끼네. 나만 알고 있으려고 했는데.
└ 맞아! 물량도 별로 없다고! 너 때문에 사기 힘들어지면 책임질래?
└ 되팔이 새끼들, 또 몰려오겠네.
└ 미, 미친! 정말이냐?
└ 이거 한 알이면 여분의 목숨 하나 챙기는 거야.
└ 씨발, 사러 가야 하는 데 구례 기차표 매진이다.
태홍 회복제 반응도 실시간으로 폭발했다.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이 돈은 고스란히 재투자 되겠지만.
※ ※ ※
뉴서울 미리내 제약회사.
원래 미리내 그룹에서 제약은 주력 분야가 아니었다.
마나 결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미리내 전자가 주력.
그러나 그룹 차남 이동우가 미리내 제약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국 굴지의 제약회사로 키웠다.
특히 최고 품질의 미리내 명품 영약을 성공적으로 론칭하여 제약회사의 간판으로 만들어내면서 로열패밀리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그런 이동우 사장이 두 손으로 책상을 꽝 치며 분노했다.
“이 버러지 새끼들아!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밥만 먹고 똥만 싸지르는 새끼들, 월급 도둑놈들, 야근은 왜 해? 수당 챙기려고?”
임직원들은 고개만 수그리고 있었다.
태홍 바이오에서 신제품들이 출시되자마자 샘플을 입수하여 연구에만 매달렸다.
최첨단 장비로 분석도 해보고, 저명한 과학자들의 조언도 구해보고, 심지어 지리산에서 생산된 약재들을 직구매해서 똑같이 넣었는데도 비슷한 약을 만들지 못했다.
모기 독 해독제든, 포자 독 해독제든 죄다 실패.
그나마,
“회, 회복제는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치유 효과가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 그건 잘됐군. 언제 똑같이 만들 수 있나?”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 말해봐. 필요한 지원이라도 있어?”
“회복제 한 알 만드는데 자이언트 웅담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서···, 엘리트 마나 결정체도 소량 들어가고요.”
“뭐?”
이동우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물었다.
“자이언트 웅담 도매가가 얼마지?”
“냉동 보존된 것 중에 품질이 괜찮으면 하나에 약 2,000만 원 정도 합니다.”
“태홍 바이오에서 출시된 회복제는?”
“···500만 원입니다.”
“꺼져! 이 개새끼야, 당장 나가!”
2,000만 원짜리 재료를 이용해서 500만 원짜리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약을 만들어 놓고도 비슷하다고?
엘리트 마나 결정체까지 들어간다면 재룟값만 해도 5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지금부터 전 직원 구례로 파견해! 가서 개발자를 구워삶든, 직원들을 빼돌리든, 훔쳐 오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레시피를 구해 와!”
※ ※ ※
구례 태홍 바이오 제약회사 본사.
백서연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전화기는 이미 꺼둔 지 오래.
하지만 사옥 앞은 기자들로 장사진.
삼한제국의 언론이란 언론은 다 모인 것 같다.
그나마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서 보내준 군인들이 기자들을 막아줘서 사옥 건물 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퇴근도 못 하고 이게 무슨 꼴이람.
아버지는 일이 있다며 몰래 도망갔고, 김태주 회장님은 지리산 밀림으로 사냥갔다.
결국 회사에 남은 고위직은 백서연 혼자.
급기야 태홍 바이오 경비 임무를 위해 파견된 도민수 소령이 와서.
“간이 기자회견 정도는 하셔야 조금 조용해질 것 같습니다만.”
“···네, 그래야겠네요.”
“준비해드릴까요?”
“아유,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그건 우리가 할게요.”
사옥 앞에 단상이 세워지고 스피커와 마이크가 준비됐다.
“멀리서 찾아와주셨네요. 태홍 바이오 제약회사 CEO 백서연입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처음엔 어떻게 개발했는지, 매출액이 얼마인지, 앞으로 또 나올 신약이 있는지···, 평범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실제로 태홍 바이오에 와보니 제약회사치고 규모가 꽤 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설비를 확장하실 계획이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2공장, 3공장 설립을 위해 부지 매입 계획 중입니다.”
“공장을 구례시 말고 다른 곳에다 지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 약재 수급 문제도 있고, 당분간 이곳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늘려나갈 생각입니다.”
“혹시 투자를 받을 생각은 없으신지?”
“없습니다.”
“신약을 반드시 구례에서만 파는 이유는요?”
“약품 허가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차후 다른 도시에서도 약의 시판 허가가 떨어지면 판매가 가능하겠죠?”
그러다가.
“인류 평화를 위해서 신약 레시피 전체를 공개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순간 안색이 싸늘히 굳어져 버린 백서연.
“질문하신 분은 누구시죠?”
“은하 일보 강도철 기자입니다.”
“강기자님, 참 좋은 말씀이시네요. 혹시 다른 제약회사 신약 발표회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하신 적 있나요?”
“···.”
“없으시겠죠. 그래서 질문의 의도가 궁금하네요.”
은하 일보 강도철 기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아니면 OEM 방식으로 수주를 주는 건 어떻습니까? 생산 물량이 부족하다면 약품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춘 대기업과 합작을 통해···,”
“알겠습니다. 이만 기자회견은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은하 일보 기자님이 계신 곳에선 그 어떤 인터뷰도 없을 겁니다.”
백서연은 뒤도 안 돌아보고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은하 일보?
배후가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미리내 그룹 미래 전략실에서 근무한 그녀였다.
그룹 이미지 쇄신이나 신제품 홍보, 아니면 경쟁사를 흠집 낼 때, 제일 많이 애용하던 기레기 집단이 바로 은하 일보.
‘누굴 바보로 아나?’
미리내 바이오에서 시켰겠지?
한번 찔러나 보라고.
사실 조금 걱정했었다.
카피 약을 바로 만들어낼까 봐.
물론 김태주 회장님은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면서 안심하라고 했다.
백서연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어렸다.
‘못 베꼈구나?’
은하 일보가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짐작이 갔다.
길길히 날뛰고 있을 이동우 사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나저나 회사가 너무 좁다.
더 많은 건물이 필요하다.
현재 김태주 회장님이 기거하고 계시는 곳은 고작 5층짜리 건물, 그것도 한 층만 사용한다.
‘이번에 들어오는 돈으로 회장님 저택이나 새로 지어야겠어.’
김태주 회장 덕분에 돌아가는 회사.
그래서 설비 투자보다 더 중요한 투자다.
※ ※ ※
삼한제국 중남부 파주 영지.
안주인 혼다 미쯔이는 항상 우울했다.
배다른 아들, 김태주의 성공을 듣고서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서였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의 군납기업으로 선정되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태주.
군부 내부에서도 소문이 파다했다.
포자 독 고라니 해독제가 효과가 있다는 말, 황제 폐하가 직접 궁정 비서관을 보내 해독제와 고라니 고기를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
그럼 황제 폐하께서도 눈여겨보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그래서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접촉해볼 생각도 못 한다.
또 얼마 전 육본 참모부에 근무하는 일본계 장교인 모리츠미 대령에게서 불안한 전언이 들려왔다.
오진형 중장의 부관이 설악산 전초기지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캐고 있다고.
김태주의 암살 시도를 말이다.
장인동이 죽었다고 하지만 캐고 캐다 보면 놈에게 지시한 배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터, 그럼 자신도 위험해진다.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있을 무렵,
혼다 미쯔이에게 오랜만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의 배에서 나온 진짜 아들, 태평이, 태천이가 동시에 각성에 성공한 것, 휴가도 받아 집에 왔다.
“이리들 와라. 한 번만 안아보자꾸나.”
“네, 엄마.”
“아오, 전 다 컸다고요!”
참으로 든든한 두 아들이다.
마나 거부자인 쓰레기와는 차원이 다르지, 암! 그렇고말고.
“참! 엄마도 태주 소식 들었어요?”
“쉿! 당분간 이 집에서 그놈 이야긴 꺼내지 말 거라.”
“아니, 걔가 뭐라고 이렇게···.”
“꺼내지 말래도! 애미 말이 말 같지 않니?”
“그, 그게 아니라.”
확실하게 못을 박으려는 듯 눈을 부라리며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혼다 미쯔이.
“관심도 가지지 마라. 너희들 미래나 신경 써. 각성이 전부니? 제국군 요직으로 배치도 받아야 하고, 등급을 올려서 진급할 생각도 해야지.”
“···.”
“네.”
“설령 마스터가 되어서 별을 달았다고 한들, 끝나는 것도 아니야. 네 아버지를 봐라. 그 나이 되도록 파주 영지를 벗어나지도 못하는데.”
김태평과 김태천은 엄마가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래봐야 시한부 마나 거부자인데.
김태평 23살, 김태천 22살, 연년생.
김태주와는 각각 6살, 7살 차이.
어릴 땐 곧잘 친하게 지냈다.
자신보다 더 크고 힘쎈 형아였으니까.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깨달았다.
배다른 형은 마나 거부자,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의 낙오자란 걸.
그때부터는 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
지나치다 마주쳐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겁쟁이, 쓰레기, 시한부 하루살이, 방구석 히키코모리.
성공했든 안 했든, 김태평과 김태천에게 있어 태주는 그런 존재였다.
한편 혼다 미쯔이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자신과는 피를 나누지 않은 남남이라 해도 남편과 김태주는 끊어낼 수 없는 혈연으로 묶인 몸 아닌가.
김태주는 해독제 개발 성공으로 군부에서도 주목하는 힘을 가졌다.
왜 남편 김웅방 준장은 그걸 이용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 이용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물론 언젠가는 만나봐야 한다.
키워준 대가를 받아와야 하니까.
아직은 때가 아닐 뿐.
그나저나 아들이 둘씩이나 각성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다.
‘어디 쓸만한 영약이라도 먹여야 하는데,’
이제 고작 유저 등급.
등급 상승이 절실했다.
남편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고.
집안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영지를 운영할 돈도 부족할 판에, 영약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 카피약? 어림도 없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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