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29화 (29/148)

=======================================

< 마인(1) >

태주는 오늘도 자이언트 반달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깔끔하게 손질된 냉동 웅담을 약재 보관실 냉동고에 보관했다.

벌써 50개째.

웅담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회복제의 양은 몇 개일까?

영약을 제조하면 최대 8개.

하지만 500분의 1로 약효를 떨어뜨려 회복제를 만든다 치면 약 4,000개를 만든다.

그래서 하루에 웅담 하나씩, 태홍 회복제 4,000개만 한정 제조 판매.

판매량을 늘려달라고 아우성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수작업이라 얼마나 힘든데.

또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당분간 사냥만 다닌다.

그리고 혼원무상독령공의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5성에 오른 이상, 7성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린다.

7성의 의미는 매우 크다.

무사로 따지면 화경의 경지, 지구에선 마스터급.

7성에 이른 독정은 누구라도 중독시킨다.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뭘 해도 무섭지 않다.

게다가 암기도 모래 뿌리듯이 날려도 상관없다.

다 회수하면 되니까.

10성까지 대성하면?

아마 지구에서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을 터.

그게 각성자든, 마수든.

사실 10성으로도 부족하다.

절대독마 당군악도 혼원무상독령공을 10성까지 대성했다.

하지만 천마와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빌어먹을 악마 새끼.

결국 천신만고 끝에 독령(毒靈)을 깨달아 녹여 죽이긴 했지만.

‘독령(毒靈)까지 갈 수 있을까?’

10성까지는 가능하다.

경험했으니까.

그러나 독령(毒靈)은 경험했다 하더라고 다시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의문.

한번 가봤다고 해서 또 갈 수 있는 경지가 절대 아니다.

독령은 그런 것이다.

독정(毒精)에 영(靈)이 깃드는 것.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까운 것.

혼원무상독령공 구결에서 독령에 관한 내용 중 하나를 보면 그게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간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리라.’

그건 그렇고.

요즘 자신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언론 인터뷰, 제국 황실이나 군부, 의회 주요 인사가 자신과 대화할 목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공문을 보내고 있는 상황.

모조리 씹었다.

그래도 된다.

여긴 자유도시 구례, 다른 지역이었다면 소환장 같은 것도 받았을 것이다.

‘슬슬 나가볼까?’

또 다시 밀림으로.

5성에 오르니 사냥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삼두백호만 만나지 않으면 지리산에서 무서운 마수들도 없다.

레이드 팀이 제일 곤란해하는 대규모 오크 무리를 만나도 비폭(飛瀑) 한방이면 싹 다 걸레로 만들 수 있고,

코트를 입고 장비 창고에서 여분의 암기를 보충한 후,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회장님?”

하아, 들켜버렸다.

“···백서연 사장님.”

“사장이 아니라 총괄경영자입니다.”

“아, 총괄경영자님, 그런데 무슨 일로?”

“결제가 밀렸어요. 부동산 매입, 장비 구매, 매출과 순이익 보고도 받으셔야죠.”

“그건 경영자님이 다 알아서···.”

“제가 비자금이라도 만들어서 빼돌리면 어떡하시려고?”

“돈이 급합니까? 얼마나 드릴까요?”

“···후우, 아닙니다. 네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태주는 백홍표만큼 백서연도 믿었다.

몇 달간 같이 일해 보니 똑똑하고 영민할뿐더러 공명정대하고 배려심도 깊다.

그러니 원생 출신 아이들도 그녀를 믿고 따르는 거고,

벌써 태홍 바이오 직원이 500명이 넘었다.

능력이 아닌 인성 위주로 뽑았다.

일이야 배우면 되니까.

원생 출신뿐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 동창들, 훌륭한 인재들이 가지에 가지를 쳐서 들어왔다.

직원 대우?

최상급이었다.

삼한제국 전체에서.

“몇 가지 보셔야 할 게 있어서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다 알아서 처리하신다면서···.”

“회장님이 직접 보셔야 하는 게 있어서요.”

“네, 봅시다.”

“우선 이것부터.”

그녀가 먼저 내민 것은 수더분한 디자인의 하얀색 카드.

“축하 카드입니다.”

뭘 축하한다고···,

하지만 카드를 보는 순간, 태주는 안색이 굳어졌다.

- 장하구나. 아들아. 성공을 축하하고 항상 응원하고 있단다. 언제 시간 나면 파주로 꼭 들리거라. 아버지 김웅방. -

아버지가 보낸 축하의 메시지.

‘웃기고 있네.’

딱 봐도 안다.

이건 아버지가 보낸 게 아니다.

심지어 직접 쓴 것도 아니고, 자필 서명도 없다.

그저 프린트로 인쇄한 글자만.

아버지는 자신과 절연했다.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일단 결정한 부분에 대해선 번복하지 않는 사람.

그럼 누굴까?

당연히 새엄마 혼다 미쯔이지.

읽을 가치도 없다.

“이거 버려요.”

찌이익!

태주는 축하 카드를 찢어버렸다.

“어머?”

“대신 휴지통에 넣어주시고, 다른 건 없어요?”

“···아, 초대장이 두 장 들어왔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태주는 백서연이 건넨 화려한 금박 카드를 받았다.

“···흐음, 노블 퍼플스 결혼정보회사?”

들어본 기억이 난다.

매칭 성공률 90%에 달한다는 최고의 결혼 정보 업체.

“왜 이게 저한테 와요?”

“자격이 있으니까요.”

가입 자격은 엄격하다.

일단 각성자라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적합자라도 집안이 좋거나 부모 중 한 명이 미들 익스퍼트 이상이어도 가입시켜주고.

“난 마나 거부자인데?”

“그걸 누가 믿어요? 뭐, 그렇다 해도 회장님은 제국 부자 순위 100위권에 오르셨잖아요. 1등 신랑감이시죠.”

“···.”

“회장님도 결혼하셔야죠. 가정도 꾸리시고, 그래서 노블 퍼플스 결혼정보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서연의 말대로 언젠간 하겠지만···, 사람들을 계층별로 나눠서 관리하는 결혼정보회사는 관심도 없다.

세상 사람들이 마나 거부자, 마나 순응자, 마나 적합자, 각성자로 나뉜 후, 알게 모르게 마치 카스트 제도처럼 신분제가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

구례는 조금 덜한 편.

멀리 떨어진 지방이고, 또 자유도시라는 성격도 있어서 계층 나누기가 크게 심하지는 않다.

그러나 수도권만 가도 그렇지 않다.

중세 신분제 사회처럼 노골적으로 대우하진 않지만, 다른 계층은 물과 기름처럼 철저하게 분리된다.

결혼도 마찬가지.

마나 순응자는 마나 순응자끼리.

마나 적합자는 마나 적합자끼리.

각성자는 각성자끼리.

사다리 하나 정도는 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응자와 적합자가 결혼한다던가, 아니면 적합자와 각성자가 결혼한다던가.

물론 하위 단계의 모자란 점을 보충해줄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돈, 명예, 권력, 학위 등등.

이게 다 유전 때문이다.

부모가 각성자면 자식도 각성자일 확률이 높다.

당장 삼한제국 황실 계보도를 봐도 안다.

황제의 자식들, 황자와 황녀들, 그리고 황손들, 확실한 숫자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마스터들이 수두룩하다.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기기도 하지만.

마스터를 아버지로 둔 마나 거부자 김태주처럼.

태주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자 백서연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노블 퍼플스 결혼정보회사, 가입 추진할까요?”

“아뇨, 됐습니다. 전 자만추 타입이라, 다음 초대장은 뭐죠?”

“···네, 여기.”

또 하나의 초대장.

전체를 금박으로 꾸민 화려한 카드였다.

“제국 리더스 클럽?”

“이건 고민 좀 해보세요.”

“사교 클럽이잖아요.”

“평범한 사교 클럽은 아니죠.”

맞다.

평범하진 않다.

유명한 각성자 집안, 대기업 자재, 학계, 법조계, 군부, 부유한 영지 후계자, 심지어 황자, 황녀까지,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가문의 젊은이들이 모여 친분을 나누는 클럽.

“가입비가 얼마더라?”

“50억입니다. 월회비 1억은 별도로 하고.”

“제가 여길 가입해야 하는 이유는?”

“곧 제국 최고 대기업 회장님이 되실 거니까요. 큰물에서 놀아야죠.”

굳이 이런 델 왜 가?

“관심 없어요. 내가 노는 곳이 큰물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도···,”

“아! 그러고 보니 백서연 총괄경영자님도 자격이 있겠네. 최고의 제약회사 CEO, 당장 가입하세요. 가입비와 월회비는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시고.”

“네?”

깜짝 놀라는 백서연.

“우리 회사 미래에 보탬이 된다면서요? 당장 가입하세요.”

“아, 으음, ···아, 알겠습니다. 다신 이런 초대장 가지고 오지 않겠습니다.”

백서연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자신 대신 리더스 클럽 가입하라고 권유한 건 진심이었는데.

‘그럼 사냥이나 가 볼까?’

※ ※ ※

태홍 바이오 제약회사의 확장은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건물을 샀던 장소가 백스 고아원과 가까운 곳이었다.

지리산 밀림과 가까운 곳, 그래서 땅값이 쌌다.

지금은 땅값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땅을 사고 있었다.

그 땅에 제2공장과 약재 창고 용도의 건물들이 만들어졌다.

회사 매출이 한 달에 천억이 넘지만, 이익금은 그대로 재투자.

태홍 회복제를 만드는 설비도 최신식으로 바꾸었다.

압력솥 대신 마나 강철로 만든 밀폐 용기, 오븐 대신 마나 결정체를 원료로 한 가열기 등등.

생산 작업은 백창훈과 장순철, 이 두 명이 2교대로 돌아가면서 작업한다.

처음엔 허둥지둥 실패율이 매우 높았는데, 지금은 달인처럼 숙련되어 불량품 하나 없었다.

“창훈아, 오늘도 네가 작업하네? 어제도 했잖아.”

“아! 회장님, 순철이가 오늘 일이 있다고, 대신 내일부터 이틀 연속으로 작업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래? 무슨 일인데.”

“아는 친구가 있는데, 통 연락이 안 돼서 찾으러 간다고.”

“원생 출신?”

“원생은 아니고, 슬럼가 달동네에 사는 동창 친군데, 친했나 봐요.”

달동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그래서 범죄율도 높은 편.

아무리 각성한 놈이지만 살짝 불안하다.

별일이야 있겠냐마는.

“태주 형, 슬슬 생산량을 늘려도 되겠어요.”

“익숙해졌냐?”

“하루 8,000개 정도는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 당분간 한정 판매만 할 거야.”

태홍 회복제는 엄청난 인기였다.

입소문만 퍼졌는데도 약국 문이 열리면 매진 사태.

수량 제한에, 각성자와 적합자만을 상대로 파는데도 이렇다.

수량을 늘리려면 생산자가 늘어야지.

창훈이와 순철이만으론 부족하다.

태홍 바이오 소속의 각성자 숫자를 늘리고, 믿을만한 놈이면 영약을 먹여 키우고, 또 창훈이와 순철이를 익스퍼트급으로 올려놓고, 열양공과 한음공도 가르쳐서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도 지들이 알아서 수급하고···, 한마디로 아직 멀었다.

“아무튼 오늘 늦었다. 벌써 밤이잖아. 빨리 집에 가서 쉬어.”

“곧 끝나가···,”

그때였다.

지이잉!

품 안에서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음.

그런데 낯선 전화번호다.

“여보세요.”

- 구례 중앙 의료원입니다. 환자 전화번호 보고 연락드렸어요.

병원?

“무슨 일인데요?”

- 그게···,

전화를 받던 태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 ※ ※

구례에도 병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시설도 썩 좋지 않고, 의사들도 많지 않아 사람들이 자주 가진 않는다.

응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쩔 수 없이 가는 곳.

태주는 백창훈과 함께 응급실을 찾았다.

“순철아!!!”

“···형.”

온몸에 칭칭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있는 장순철.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그, 그게···,”

사연을 들어보니.

오늘 장순철이 찾으려 다녔던 동창 친구.

슬럼가에 사는데 얼마 전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아 부모님들이 걱정했더란다.

혹시라도 나쁜 짓이라도 하지 않을까?

전화해도 받지 않고, 자경단에 신고했지만 감감무소식.

아들의 친구인 장순철에게 연락했고.

“같이 있던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밀림 마수 레이드 갔다가 회식을 하고 집으로 간다면서 헤어졌는데, 그날 종적을 감췄다고···.”

“레이드?”

“네, 그놈 적합자거든요. 드디어 빚 다 갚았다고, 곧 슬럼가에서 이사 갈 거라고 기뻐했는데.”

“넌 왜 이렇게 됐어?”

장순철의 설명이 이어졌다.

슬럼가를 샅샅이 뒤졌단다.

사진을 들고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그러다가 달동네 골목에서 발견한 단서.

자신이 생일선물로 친구에게 사준 운동화 한 짝.

“제가 사준 게 확실합니다. 사이즈도 딱 맞고.”

“어디서 찾았지?”

“구례 달동네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요. 그래서 그곳을 중심으로 계속 탐색했죠.”

“그러다 습격당했고?”

“네, 얼굴도 못 봤습니다. 어떤 비겁한 새끼가 뒤통수를···, 저도 정신없이 끌려가다가 몰래 회복제 먹고, 침투경 한방 갈기고, 가까스로 도망쳤어요.”

태주는 여전히 안색이 어둡다.

자기 사람이 다치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그나마 침투경을 가르친 것이 다행.

마침 회복제도 있었고.

“등에 붕대는 왜?”

“이건 도망치다 당한 겁니다.”

“상처 좀 보자.”

“···네에.”

태주는 장순철의 몸에 감긴 붕대를 풀어 상처를 확인했다.

“으윽! 사, 살살.”

“참아!”

등이 갈라져 뼈가 보일 정도의 깊은 상처,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마치 짐승이 할퀸 듯한, 그래서 살이 찢겨나간, 어깨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5개의 세로줄 상흔.

‘이거 혹시···,’

마수?

그럴 리가.

아무리 슬럼가지만 그곳은 구례 도시 안에 있다.

마수가 나타날 수 없는 지역.

마수가 아니라면 뭘까?

“습격당한 곳이 정확하게 어디냐?”

“칠흑동 달동네 중턱요.”

슬럼가는 원래 동네 뒷산에서 만들어졌다.

자유도시로 몰려온 사람들이 주인이 없는 산에다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지역.

위험도가 높이에 따라 다르다.

산밑은 평범한 슬럼가지만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위험하다.

자경단원들도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는 곳.

“제 친구는 죽었겠죠?”

“글쎄.”

“빌런에게도 쉽게 당할 놈이 아닌데,”

장순철의 등에 난 상처로 보아 짐작 가는 구석이 있긴 했다.

이건 무기에 당한 것이 아니다.

검이나 칼이었다면 깔끔하게 잘렸어야지.

5개의 세로줄 상처로 보아 손톱이나 발톱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마인.’

인간에서 마수로 변한 놈.

마인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특히 적합자나 각성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마인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확인해봐야겠군.’

만약 마인이 맞는다면 절대 살려둬선 안 된다.

특히 자신이 자리를 잡고 사는 구례에선.

< 마인(1) > 끝

ⓒ 꾸찌꾸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