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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2) >
구례 칠흑동 달동네.
산등성이에 조잡하게 지은 나무판자 집들.
꼭대기에 제법 잘 지어진 집이 한 채 있었다.
슬럼가 집답지 않게 넓은 마당도 있고.
“막내는 어디 갔어?”
“밑에 내려가 있습니다. 자기 실수는 스스로 책임지겠다면서.”
“어떻게 책임진다고? 그놈 도망갔다면서?”
“···혹시라도 도망친 놈이 자경단을 끌고 올까 봐 감시한다던데요.”
“병신 새끼.”
“에이, 대형, 막내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제 딴엔 열심히 해보려다 실수한 건데.”
섭위당의 말에 왕안풍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납치하려다 실패했으면 그냥 보낼 것이지.
도망가는 놈을 죽이려고 ‘마수화’를 시전했다.
또 마수화 상태에서도 상처만 입히고 놓쳤고.
“구례를 뜰 준비해. 정리할 거 정리하고.”
“좀 더 기다려보죠. 대형. 구례만큼 숨어있기 좋은 동네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심을 하는 게 맞아. 특히 우리 처지에선, 막내에게 헛짓거리하지 말고 올라오라고 해.”
“후우, 제기랄! 그동안 재미있었는데. 진짜 좋았지 않습니까? 우리 삼형제···.”
삼형제.
친형제는 아니었다.
첫째 왕안풍, 둘째 섭위당, 셋째 천초량.
이들 셋은 중국계 출신 마인 의형제였다.
도원에서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결의한 사이.
원래는 삼한제국 서남부에 살았는데 마인마저도 살기 팍팍한 동네라 구례로 흘러들어와 정착에 성공했다.
마인은 제국, 아니 세계의 공적(公敵)이다.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그래서 이웃들도 자신들이 마인이라는 걸 모른다.
그저 타락한 빌런 각성자 정도로 여길 뿐.
마인으로서 성장하려면 적합자 혹은 각성자의 심장이나 주요 장기를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욕심은 금물.
한 달에 한 명씩.
아무나 선정하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져도 괜찮을 놈들, 예를 들어 슬럼가 일부 주민,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뜨내기나 양아치, 범죄자, 가끔씩 밀림에 나가 약한 각성자들 골라서 사냥하기도 했고.
그동안 들키지 않고 잘 해왔다.
들킬 이유도 없었고.
구례 빈민가에서만 한 달에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얼만데, 게다가 실종자까지 합하면···.
마인이 되면 인간이 가진 마나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번에도 마나 향기를 유독 진하게 풍기는 놈을 발견해서 몰래 납치해 먹었다.
남은 시체야 늘 하던 대로 이 앞마당에 묻었고.
그런데 막내가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정체가 드러나면 큰일, 무조건 떠나야 한다.
아무리 자유도시지만 마인에 관해선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가까운 곳에 제국군 마수 방어군단도 주둔해있지 않나.
“빨리 막내나 불러들여.”
“전화해 보겠습니다.”
왕안풍도 솔직히 아쉽다.
구례 자유도시는 마인이 활동하기에 안성맞춤인 도시였다.
이곳에서 힘을 길러 마인 마스터까지 올라가려고 했는데, 하다못해 익스퍼트까지만 올렸어도.
‘제기랄!’
순간!
푸스스스스···,
왕안풍의 얼굴에 부숭부숭한 털이 솟아났다.
동시에 쑤욱, 솟아나는 송곳니.
그러더니 순식간에 평범한 얼굴로 돌아갔다.
※ ※ ※
대다수의 제국민과 마찬가지로, 태주 또한 마인과 맞닥뜨린 적은 없었다.
대신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증오와 경멸, 악몽과 공포가 공존하는 마인에 대한 인식.
파주에 있을 무렵.
막 사춘기를 벗어난 배다른 동생 태천이가 지나가면서 했던 얘기도 생각났다.
‘넌 마인 만나도 걱정 없겠네. 마나 거부자라서,’
이렇듯 등급 낮은 각성자와 적합자에겐 호환이나 마마 같은 무서운 존재.
제국은 그들을 무조건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다.
마인을 죽여도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상을 받지.
평상시 마인은 여느 각성자들과 똑같다.
문신도 있고, 외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상에서 마인을 구별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싸워보면 안다.
그리고 죽여보면 안다.
인간성을 벗어던지고 마수가 되어버린 놈들의 정체를.
“여긴가?”
장순철이 습격을 당했다는 장소.
달동네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계단이 이렇게 많아?’
여기도 계단, 저기도 계단.
하긴, 여긴 달동네다.
계단 많은 것이 뭐가 이상할까.
주위를 살펴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는 태주.
사실 여기 온다 해도 뾰족한 수가 있을까?
그냥 시간도 남아돌고, 운이 좋으면 단서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한참을 그냥 빙 돌았다.
밤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었다.
그저 비릿한 냄새들만이 주위에 가득 차 있다.
바닥에 깔린 쓰레기 냄새, 담벼락에 갈긴 오줌 냄새, 똥 냄새, 토악질 냄새···,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아까부터 묘한 냄새가 태주를 자극했다.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지역을 지나쳤을 때 특히 그랬다.
어디서 맡아본 매우 익숙한 냄새.
끈적하고 음습한, 맡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근데 왜 기분이 나쁘지?
똥 냄새를 맡아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뭔가 가물가물 기억이 날 것도 하는데.
태주는 그 기분 나쁜 냄새를 따라갔다.
특정 방향에서 냄새가 흘러나왔다.
쭉 따라갔는데.
순간!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분이시네요. 여기 주민이신가?”
높게 위로 쭉 이어진 돌계단.
그 중간쯤에서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 나타나 태주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뇨. 여기 살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엔 왜?”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
“아하! 그렇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제가 도와드리죠.”
태주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만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사실 보자마자 이상함을 느꼈다.
슬럼가에서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있다고?
게다가 슬금슬금 풍기는 그 냄새.
이자에게서 유독 심하게 났다.
적대심을 가질 정도로 말이다.
‘목욕도 안 하고 다니나.’
그나저나 진짜 못 참겠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혼원무상독령공 5성에 올라 감각이 민감해져서 그런가?
원래 개코이긴 하다.
자신도 그렇고, 절대독마 당군악도···,
‘가만!’
태주는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른 기억.
강호 무림에서도 오로지 당군악만이 맡을 수 있었던, 특정한 무공을 수련한 놈들만 풍기는 체취가 있었다.
‘마기(魔氣)···,’
맞다.
마교도들이 가진 특이한 향기였다.
‘왜 마교 종자들 냄새가 이놈에게서 나지?’
사실 똑같은 냄새는 아니었다.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말이다.
추악하고, 역겹고, 불쾌하고, 메스껍고···,
‘이 새끼 설마···, 마인?’
생각해보니 마교도와 마인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마인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럼으로써 등급을 상승시킨다.
마교 새끼들이라고 다를까.
놈들이 익히는 내공 심법은 죄다 흡정마공 계열이다.
타인이 피를 깎아 수련한 내공을 흡정마공으로 낼름 낼름 빨아먹는다.
천마신공?
신공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그냥 궁극의 흡정마공이라고 보면 된다.
마교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놈들의 강함에 매료되어 그들을 추앙하기도 한다.
힘을 추구하는 강자들이라고 판단한 것.
그러나 그건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
간교하고 야비한 인간쓰레기들.
남이 이룬 성취를 도둑질하고, 심지어 지들끼리도 서로 잡아먹는 미친 폐기물들.
그 결과 혼탁하고 불순한 내공을 가져 이곳저곳에 악취를 풍기고 다니는 시궁창 쥐새끼.
놈들은 악마다.
괜히 마(魔)자가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절대독마 당군악도 마교도를 대함에 있어 그 어떤 자비심도 가지지 않았다.
보이는 족족 쳐 죽였다.
포로로 잡을 생각도 안 했다.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마인과 마교도.
억지로 끼워 맞춘 걸까?
그러기엔 너무 비슷한 점들이 많다.
냄새도 그렇다.
엄밀히 말해 냄새라기보다 대상에게서 느끼는 기(氣)의 성질.
마교도의 기(氣)는 흡정마공으로 이 내공, 저 내공이 섞여 혼탁하다.
마인의 기(氣)도 여러 특성의 적합자, 각성자의 마나를 먹고 뒤섞여있다.
그런 이유로 눈앞에 이 남자.
의심이 간다.
아니, 거의 마인이라 확신했다.
태주가 말이 없자 남자는 다시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아까부터 말도 없이, 아무튼 여긴 생각보다 위험한 동네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사건이 하나 터졌어요.”
“그래요?”
“아하, 모르고 계셨구나! 어쩐지···, 여기 살지 않는 사람은 위험해요. 따라오세요. 제가 지름길 안내해 드릴게요.”
그러자 태주가 픽, 웃으며.
“따라오라고? 왜? 나도 먹으려고?”
“···네?”
“놀란 척하기는, 너 마인이잖아.”
천초량은 당황했다.
회색 코트를 입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혹시나 해서 말을 걸어봤는데···, 어떻게 알고?
“처, 처음 보는 분이신데, 상당히 무례하시네요. 불쾌합니다.”
“몇 명이나 잡아먹었냐?”
“너 미쳤어?”
“뭐, 자경단에 신고나 해야겠다. 여기 마인이 산다고.”
태주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런, 씨발 새끼가!”
천초량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소용돌이치는 마나의 유동.
눈자위도 까맣게 물들었다.
뿌드드드드득!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
눈이 가로로 쭉 찢어진다.
입에선 송곳니가 삐져나오고, 가시 같은 털들이 얼굴을 뒤덮었다.
넓어지는 어깨.
팔이 길어졌다.
다리도 길어졌다.
마수화.
기존 가지고 있었던 힘이 두 배나 뻥튀기되는 마인만의 스킬.
“맞네! 마인.”
“크르르르, 갈가리 찢어 주마.”
“냄새나니까, 아가리 다물고.”
태주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자, 따라 해봐. 김치이이···,”
찰칵!
쐐애액!
분노한 마인 천초량이 쏜살같이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내렸다.
동시에 날카로운 손톱으로 태주의 얼굴을 할퀴었다.
츠팟!
그러나.
“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태주.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갔지?”
순간, 천초량은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휘릿! 급하게 몸을 회전해 손톱을 긁었지만.
퍼억!
“크헉!”
이미 눈앞엔 빨간 손바닥이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퍼벅! 퍼버버벅! 퍼퍼퍼퍽!
머리와 가슴, 복부, 옆구리, 눈 깜짝할 새 덮쳐오는 공격.
천초량의 마수화된 몸이 부르르 떨린다.
숨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고통.
한 대 맞을 때마다 마나가 뭉텅뭉텅 사라지는 것 같다.
대체 이놈은 누구지?
그제야 천초량은 후회했다.
둘째 형이 집으로 올라오라고 했을 때 갔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대형을 볼 낯이 없어 미적대고 있었다.
벗어나야 한다.
거리를 벌려야 한다.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덕택에 느슨해진 놈의 공격.
천초량은 계단에 발톱을 박아 넣은 채 뒷다리를 굽히며 총알처럼 계단 위로 뛰어갔다.
펄쩍, 펄쩍, 펄쩍.
천신만고 끝에 공격 범위를 벗어난 천초량.
“너, 너어···?”
단 몇 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자신은 마인이다.
각성 등급은 비기너지만 마수화로 익스퍼트의 육체도 갈라 버릴 힘을 가졌다.
그런데 각성자도 아닌 놈에게 이렇게 당해?
회색 코트의 놈은 여전히 저 계단 밑에 있었다.
“크륵, 크르륵.”
거세게 숨을 몰아쉰 후, 천초량은 가만히 놈을 노려봤다.
‘혼자선 안 돼.’
공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모르는 판에.
천초량의 장점은 빠른 판단.
그대로 몸을 돌려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휘청!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하늘이 빙빙 돌았다.
‘왜?’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
무너진 몸이 균형.
숨이 차오른다.
‘설마 독인가?’
저 뒤에서 회색 코트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천초량의 의식에서 피어오르는 본능적인 두려움,
‘도, 도망을···,’
대형들이 있는 곳까지 가면 산다.
비틀거리는 몸에 억지로 힘을 주고 천초량도 계단 위를 걸었다.
하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급기야 턱! 계단 끝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꽈당,
“제, 제기랄! 쿨럭, 쿨럭···,”
일어설 힘도 없다.
입에선 피가 섞인 기침이 터졌다.
천초량은 포복 자세로 엎드렸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조금만.
그렇게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네발로 기어갔는데.
순간!
츠피릿!
푸욱!
“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의 보드라운 엉덩이를 뚫고 들어왔다.
“뜨헉, 이, 이 씨발놈아!!!”
엉덩이에서 흘러내리는 선혈.
태주는 엎드려 기는 놈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말했다.
“살고 싶으면 계속 가.”
“···너, 너 이 새끼, 저,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뼈까지 씹어먹어···.”
츠핏!
푸욱!
박힌 자리 옆에 한 자루 더.
“끼아아아아아!!!”
칼이 거의 항문 근처에 꽂혔다.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나와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긴 원래 그런 곳이니까.
“가라! 개처럼 기어.”
핏발 선 천초량의 눈.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수치감.
그러나 일어설 수 없었다.
하체는 거의 마비.
상체만 움직일 수 있을 뿐.
천초량은 팔 두 짝을 번갈아 가며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태주의 차가운 표정은 변화가 없다.
곱게 죽여줄 줄 알고?
세게 던지면 관통할까 아주 약하게 던졌다.
쉽게 죽이면 자비를 베풀어 주는 것밖에 더 돼?
저 정도 경지에 다다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나?
마인과 마교도.
똑같은 놈이다.
살려두면 다른 사람들이 죽는다.
츠핏!
푸욱!
또 한 자루.
총 3자루가 엉덩이 과녁에 적중했다.
“으아아아! 으아, 아파! 아, 아프다고!!!”
흥건하게 피에 절은 하체.
그런데도 천추량은 더더욱 힘을 내며 바득바득 기었다.
태주는 그저 따라만 갔다.
마인은 바퀴벌레다.
한 마리 발견하면, 한 마리 더 나올 확률이 높다.
그래서 유엽비도에 마약 성분을 집어넣었다
엉덩이 살점이 다 찢어져도, 창자가 끊어져도 놈은 쉴새 없이 움직일 것이다.
‘아무튼 사진도 찍었겠다···, 메시지나 보내볼까?’
마인 신고는 113.
제국민으로서의 의무였다.
현상금도 챙겨야지.
< 마인(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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