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31화 (3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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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3) >

마인 왕안풍은 아직도 고민하고 있었다.

구례를 포기하는 것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들어 외부에서 어중이떠중이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인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환경 아닌가.

멍청한 막내 놈이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솔직히 자경단은 무섭지 않다.

이정학만 빼면 다 헛방.

자경단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공권력의 부재를 보완하기 위해 3인 체제의 상임위원과 자치위원들이 정부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구례 자유도시.

권력이 3개로 쪼개졌다.

삼권분립을 흉내 낸 듯하지만 제각기 가지고 있는 속셈이 다르다.

특히 실질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정학은 다른 두 상임위원, 민동열과 지광인에게 끝없는 견제를 받고 있었다.

노고단 길드원의 숫자를 제한했고, 외부에서 강한 각성자를 초빙해오는 것도 막혔다.

딱 구례시 치안 행정이 운영될 정도만.

그 이상의 힘은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친 놈이 마인 의심 신고를 하면?

마인 출현은 국가의 중대사.

당장 옆에 있는 지리산 마수 군단 병력이 칠흑동 달동네로 들이닥칠 터.

“섭위당.”

“네, 대형.”

“막내는? 왜 아직 안 올라오지?”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한 번 더 전화해보겠습니다.”

섭위당은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뚜우,

받질 않는다.

“전화 안 받아?”

“어···, 바쁜 일이 있나 봅니다.”

“그래?”

왕안평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

결정한 이상 바로 떠나야겠다.

그런데,

“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들리는 귀를 찢을 듯한 비명.

“응?”

“비명이···.”

왕안평과 섭위당은 집 밖을 나갔다.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은 칠흑동 달동네에서도 제일 좋은 집.

집 앞엔 너른 마당이 있었고, 밑에서 마당으로 올라오는 비탈진 계단도 있었다.

그런데 그 계단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헉!”

“저건 또 무슨···,”

마치 민달팽이처럼 말이다.

지나간 자리에 빨간 페인트로 칠한 자국이 남았다.

알고 보니 피였다.

하체 부분에서 샘 솟든 흘러나오는 피.

“크헉, 대, 대혀어엉···,”

그제야 왕안평은 저 민달팽이 같은 괴물이 누군지 알았다.

“···천초량?”

막내였다.

섭위당도 황당한 표정.

저놈이 왜 저 꼴로 기어 오고 있지?

심지어 마수화를 시전한 채.

“대, 대형, 사, 살려···,”

순간!

저벅저벅.

기어가는 천초량의 뒤를 묵묵히 따라오는 한 남자.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코트.

“너, 넌 누구?”

혹시 자경단일까?

자세히 보니 아니다.

얼굴에 문신도 없다.

설마 저놈이 막내를 저렇게 만들었나?

익스퍼트에 필적하는 막내를 저렇게 만들었다고?

그것도 마수화를 이룬 마인을?

“두 놈이 더 있었네?”

거기서 죽이지 않고 따라오길 잘했다.

그럼 이제 이놈은 보내주자.

“수고했다.”

스슷!

태주의 코트 소매에서 흘러나오는 은빛 물건.

츠피릿!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

은빛의 유엽비도가 아직도 바닥을 기어가는 천초량의 엉덩이를 파고들어,

푸욱! 파삿!

내부까지 관통한 후 입으로 빠져나왔다.

태앵!

그러고도 힘을 유지한 채 집 콘크리트 벽에 박혀버린 작은 단검.

당연히 천초량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이, 이런 씨발 새끼!!!”

막내가 눈앞에서 죽었음에도 왕안평과 섭위당은 움직이지 못했다.

대체 누구지?

태주는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냄새가 나는구나. 냄새가.”

저놈들도 악취가 풍긴다.

그럼 마인일 터.

자신도 강호 무림에서 마(魔)라고 불리었다.

절대독마(絶代毒魔) 당군악.

세상에서 마교도를 가장 많이 죽인 자.

마인은 죽어야 한다.

자비는 필요 없다.

장순철의 친구도 분명 저놈들에게 죽었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고 대화도 나눈 적이 없지만 억울하게 죽은 청년의 영혼을 달래줘야 한다.

그렇다면 복수를 해줘야지.

죽은 사람도 만족해할 확실한 복수를.

복수의 끝은 찝찝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나 하는 얘기다.

악(惡)한 놈에게 베풀어지는 어설픈 온정은 결국 선(善)한 이들을 죽게 만든다.

자신과 영혼이 같은 절대독마 당군악의 방식으로.

죽는 순간까지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준다.

한편 왕안평과 섭위당은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갑자기 나타난 회색 코트의 남자.

그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의.

폭풍처럼 밀어닥치는 기세.

눈만 마주쳐도 몸이 떨린다.

마치 천적을 만난 것 같은 기분.

천초량을 죽인 방식도 그렇다.

아마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사냥감 몰 듯이 둥지로 몰아 자신들을 찾아냈고, 쓸모가 다한 천초량은 처참하게 죽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싸울 것이냐, 도망칠 것이냐?

당연히 도망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극한의 공포는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섭위당이 먼저 반응했다.

“···이, 이, 이놈!!! 주, 죽어!”

뿌드득, 뿌득!

순식간에 마수화를 진행한 섭위당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태주에게 돌진했다.

태주는 피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갖가지 생각들.

어떻게 죽일까?

일섬(一閃)으로 탈명비도를 날려 죽이는 건 너무 자비롭다.

그럼 독(毒)으로?

고작 몇 분이나 견딘다고.

태주는 기억을 더듬었다.

절대독마 당군악이 익혔던 수많은 무공.

그중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것은?

‘그거면 되겠네.’

생각을 마친 태주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덮쳐오는 마인의 손톱 찌르기를 고개 한번 까딱이는 걸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놈의 팔뚝을 잡아채고는 섬전 같은 속도로 회전.

우드드득!

팔 관절이 역으로 꺾였다.

“캬아아아악!”

떠오른 무공은 분골십이수(粉骨十二手).

말 그대로 뼈를 분쇄하는 금나수의 일종이다.

마수화가 되었더라고 기본 바탕은 인간.

그래서 관절기는 유효했다.

팔뚝을 꺾은 직후, 다른 쪽 손목을 잡아서,

우드득!

“끼아악!”

너덜너덜한 손목을 앞으로 쭉 당기자 그대로 끌려와 땅에 쓰러진다.

태주는 그 상태에서 놈의 등에 앉았다.

이번엔 다리.

놈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꽉 누른 후, 오른쪽 종아리를 옆구리에 끼우고 그대로 들어 올려 비틀어버리니,

빠드드득!

“끄···, 윽!”

그리고 마침내 허리춤에서 탈명비도를 꺼낸 태주.

왼쪽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서슴없이 그었다.

서걱!

“켁!”

반쯤 잘려 나간 발목.

그냥 자르지 않았다.

당연히 독을 발랐다.

산공독과 포자독.

이제 놈은 기동력과 회복력을 상실한 채 내부 장기부터 천천히 녹아버릴 것이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섭위당.

팔 하나는 역으로 관절이 꺾이고, 하나는 손목이 박살 나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이 돌아갔고, 왼쪽 다리는 아킬레스건이 잘렸다.

섭위당은 천초량처럼 기어갈 수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기만 할 뿐.

“자, 잔인한···, 차, 차라리 주, 죽여···.”

“잔인? 최소한 널 먹지는 않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차피 고통 속에서 천천히 몸부림치다가 죽을 테니까.

‘또 한 놈 잡았고.’

태주는 눈을 들어 앞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금까지도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있었는데.

‘웃기는군.’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

타닥! 타다닥!

저쪽에서 다급한 도망치는 소리가 들린다.

태주도 몸을 움직였다.

마인 사냥 시작이다.

왕안평은 정신없이 도망쳤다.

이게 무슨 꼴이지?

고작 한 놈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니.

마인으로 레귤러 등급까지 올랐다.

마수화를 실행하면 미들 익스퍼트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회색 코트 놈은···,

‘최소한 슈페리어 익스퍼트야.’

혹은 마스터일지도.

마인의 길을 택하면서 왕안평의 꿈은 하나였다.

마인 마스터.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가?

일반 각성자들이 마스터가 되는 것보다 마인으로 마스터가 되면 그 변화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극적인 변화.

체력과 스피드, 마나 보유량, 물리력, 그리고 암흑 강기.

그야말로 최고의 마인, 즉 마왕이 되는 거다.

마스터가 마수로 변신하면 몸 전체가 까만 강기 덩어리로 변한다.

스쳐 지나가는 것 모두를 부숴버릴 수 있다.

유럽의 한 마인 마스터는 마을 하나를 홀로 도륙한 적도 있었다.

지역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모든 걸 죽이고 먹어 치웠다.

심지어 아직 잡히지도 않았다.

이제 조금만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마인으로서 익스퍼트에 올라, 마인의 정점이라는 마왕의 경지까지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회색 코트를 입은 놈이 천추량을 잔인하게 죽이고, 섭위당마저 팔과 다리의 관절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잔인하게 으스러뜨렸을 때 이미 깨달았다.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이 낫다고.

물론 마수화를 시전하면 상대해 볼 수는 있겠지.

적어도 동생들보다는 자신이 훨씬 강하니까.

그러면 뭘 하나?

이미 정체가 탄로 났다.

자경단이나 군대까지 합류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

천초량과 섭위당과 의형제 결의를 맺었다.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고.

그러나 달달한 의리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내가 사는 게 중요하지.’

구례를 벗어나야 한다.

여차하면 삼한제국까지 뜰 생각도 염두에 둬야 한다.

꼭대기에서 내려는 길이라 속도가 붙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때로는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집과 집 사이를 뛰어넘고.

이 밑으로 내려가면 지리산 밀림으로 가는 초입.

밀림 안으로만 들어가면 그만이다.

이왕 구례를 떠나기로 한 거, 밀림으로 숨어들어 각성자나 적합자 몇 마리 먹어 치우고 힘을 보충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때였다.

섬뜩!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

“이런!”

빠드드득!

순식간에 몸을 돌린 동시에 마수화를 시전해,

휘릿!

탱!

자신에게 날아오는 투척 무기를 손으로 후려쳤다.

‘이 새끼가 언제···,’

파파팟! 파팟!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자신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드는 놈.

‘뭐 저렇게 빨라?’

신발이 아티팩트라도 되나?

도망가려고 했지만 놈을 따돌리진 못할 것 같다.

‘젠장···.’

어쩔 수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워야 한다.

‘씨발 새끼, 도망쳐주니까 내가 만만한 줄 알아?’

왕안평에게도 위기를 타개할 한 수 정도는 늘 가지고 있었다.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작은 힙색 가방.

그 안엔 방독면 하나와 가스탄 2개가 들어있다.

하지만 보통 가스탄이 아니다.

안에 ‘강화 사린 가스’가 들었다.

그것도 마나 결정체로 몇 배는 강화된 치명적인 독가스.

해독 주사를 맞지 않는 한 들이마시면 마스터라도 몇 분 안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당장 죽지 않더라도 싸움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터.

다만 이렇게 탁 트인 야외에서는 효과가 급감하는 것이 문제.

‘사방이 막혀있는 장소로 유인해서···.’

마침 적당한 곳이 있다.

여기서 매우 가깝다.

칠흑동은 원래 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 하나 있다.

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라 터뜨리면 강화 사린 가스가 금세 안에 가득 차게 될 터.

들어가서 놈을 기다린다.

물론 방독면을 착용하고.

태주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래서 충분히 뒤통수에 유엽비도를 꽂아버릴 수 있음에도 힘을 조절했다.

저놈이 두목 같았다.

당연히 특별하게 대우해 줘야 한다.

현재 태주의 고민은 이거다.

어떻게 죽이면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바로 그때!

추적 대상이 방향을 틀었다.

밀림 쪽으로 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동굴 비슷한 곳으로 쏙 들어가는 놈.

‘저긴 어디야? ···동굴?’

제 발로 죽여달라는 건가?

아니면 숨겨둔 한 수라도 있나?

저놈도 특성을 가진 각성자.

어두운 곳에서 강해지는 특성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래도 상관없다.

놈이 죽는 건 변함없다.

태주도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둡고 꾸불꾸불한 통로.

안쪽에서 놈의 기척이 느껴진다.

태주는 유엽비도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때!

“넌 정말 미친놈이구나. 잔인한 새끼.”

동굴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음성.

“···사람 잡아먹는 너희들보다 잔인할 리가.”

“클클클,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없군. 하지만 어쩌겠나? 힘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데.”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국어를 쓰긴 하지만 놈의 억양이 조금 이상하다.

방독면 같은 걸 쓰고 있어서 그런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다른 마인들도 억양이 비슷했다.

그렇다면···,

“중국계?”

“그래, 한때는 중화인민 공화국으로 불렸던 대국의 후손이다.”

“대국은 개뿔, 나라도 없는 새끼가, 제국민이 되었으면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나 할 것이지, 마인이 돼?”

“···좋아. 이만 끝내자. 이걸 들이마시고도 계속 지껄일 수 있는지 궁금하군.”

“뭘?”

어두운 동굴이지만 보일 건 다 보였다.

놈의 얼굴에 쓴 방독면.

왜 썼을까?

“뒈져라! 멍청한 놈아.”

순간!

펑! 펑!

취이이익! 취이익!

좁은 동굴 통로를 가득 채우는 희뿌연 연기.

바닥엔 연신 연기를 뿜어내는 원통형의 물체가 두 개가 구르고 있었다.

사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크윽,”

역시 독이었다.

태주는 가스를 한껏 흡입했다.

“우욱!”

숨이 턱 막혔다.

폐가 녹는 기분.

실제로 기관지가 손상을 입었다.

물론 순식간에 재생했지만.

“쿨럭쿨럭.”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호흡기를 타고 들어간 가스가 혈관으로 녹아서 들어온다.

어질어질, 머리가 핑 돈다.

독에 취해 비틀거리는 태주.

급기야 무릎을 털썩 꿇었다.

“씨발, 진짜···,”

이렇게 짜릿할 수가.

혈관을 녹여버릴 듯한 매콤한 독의 기운.

술에 취했는지, 독에 취했는지 모를 정도.

도수 90도짜리 보드카 한 병을 통째로 마신 것 같다.

이 귀한 물건을 아낌없이 주다니,

혹시 저놈 착한 마인이었나?

당연히 독정(毒精)이 요동쳤다.

새로운 독 아닌가?

더구나 인간이 만든 화학 독.

생생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먹거리를 만난 독정의 기쁨이.

< 마인(3)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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