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34화 (3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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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마의 방식. >

구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꼽으라면 역시 캐슬.

뒤에는 절벽, 앞에는 인공호수.

그리고 구역 전체도 굉장히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캐슬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곳.

거주민이 아니라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는 수단은 인공호수 선착장과 캐슬 선착장을 왕래하는 대형 페리호 두 척, 자동차를 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거리도 가깝기 때문에 허가만 받으면 출입은 어렵지 않다.

작은 마을 크기의 캐슬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주민들.

대부분 자치위원회 위원, 자치 관청 공무원, 고등급 각성자, 사업가, 건물주, 상가 상인, 혹은 지역 유지들이었다.

캐슬은 요새와도 같다.

웬만한 마수들은 절대 성벽을 넘을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행 마수에 대비한 방공망, 그리고 캐슬 안에도 대피소가 있다.

성벽이 1차 방어막.

내부 대피소가 2차 방어막.

웨이브가 일어나면 느긋하게 대피소로 들어가 토벌대가 진압하러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안전하다 싶으면 대피소에서 나온다.

그래서 초기를 제외하고, 최근 일어난 웨이브에서 마수로 인한 캐슬 사망자는 거의 없었다.

이렇듯 마수 웨이브 대처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잘 사는 놈들은 안전하고 돈이 없으면 죽는다.

캐슬 안엔 생존을 위한 모든 기반시설이 다 있었다.

자체적인 전기 발전소부터, 식량 생산을 위한 스마트팜, 각각의 지하 대피소를 연결하는 통로, 위성 통신 장치···, 그리고 학교와 학원, 각종 상점에, 식당, 유흥주점까지.

캐슬에서 영업하는 유일한 유흥주점.

이름은 ‘천국의 궁전’

10층짜리 건물이 싹 천국의 궁전이다.

주점에서 봉사하는 접객 여성의 숫자도 100여 명에 육박하고, 종업원의 숫자도 셀 수 없을 정도.

바로 여기, 천국의 궁전에 지리산 방어군단 대마수 특전부대 박철기 중령이 종업원으로 신분을 숨기고 잠입해 있었다.

“목표물은?”

- 10층 1013호실에 둘이 함께 있습니다.

“접객 여성들은 몇 명?”

- 4명입니다. 양쪽에 두 명씩 끼고 놀던데요? ···개새끼들!

“부럽냐?”

- 전 이런 거 안 좋아합니다.

박철기 중령은 총 8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왔다.

그들은 청소부, 종업원, 심지어 접객원으로 변신했다.

쓰레기 청소 작전.

군단장 오진형은 이번 지리산 밀림 대마수 토벌 작전에 사활을 걸었다.

작전 예상 기간 한 달.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은 무척 높다.

게다가 태홍 바이오 회장까지 지원을 약속했으니.

토벌에 성공해 지리산의 마수 웨이브 위험성이 사라지면 주변 도시들은 성장의 발판이 마련되어진다.

인구는 늘어나고, 기반시설도 추가로 건설될 것이고, 경제도 발달할 것이다.

특히 자유 도시 구례는 가장 많은 혜택을 보게 될 터.

그런데 그렇게 되면 누가 좋을까?

시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면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이익은 오랫동안 구례를 주름잡아왔던 토호 세력들의 몫이 된다.

죽 쒀서 개 주는 꼴.

구례의 기득권자들이 조금이라도 공정하다면 모를까.

민동열과 지광인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저 버러지 새끼들, 행여나 자신의 힘이 축소될까 봐, 구례 치안력의 중심인 자경단마저도 견제하는 놈들.

치안이 약하니 슬럼가가 발생하고, 범죄도 늘어나며, 거기에 편승해 마인도 숨어들고.

오진형은 마인이 구례에 출몰한 원인에 민동열과 지광인의 책임도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놈들에게 휘둘리던 이정학 길드장은 더 멍청한 놈이고.

토벌 작전 전에 쓰레기부터 치운다.

그래서 대마수 특전부대 박철기 중령은 오진형의 특명을 받고 캐슬 안으로 잠입했다.

“쓰레기차는 준비됐지?”

- 대기하고 있습니다.

“1013호 작전 팀은?”

- 명령만 내리십시오.

- 바로 돌입하겠습니다.

작전계획은 간단하다.

안에 접객 여성들을 밖으로 불러내 방안에 둘만 남게 되면 요원들이 들어가 놈들을 제압한다.

미리 개조된 청소용 카트에 두 놈을 숨기고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가 쓰레기차에 싣는다.

그리고 대형 페리호를 타고 유유히 캐슬을 빠져나간다.

사실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것도 자유 도시에 군이 개입한다?

밝혀지면 옷을 벗는 것을 넘어 군사 재판에 회부될 수 있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선 감수해야만 하는 일, 뼛속까지 군인인 박철기도 이것이 제국을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경호원들은 처리했나?”

- 네, 기절시켜서 묶어뒀습니다.

“잘했어. 자, 이제 실행하···,”

그런데 바로 그때!

- 잠깐만요! 벼,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 김태주 회장입니다. 그분이 1013호 앞에 나타났습니다.

“뭐?”

아니, 그 사람이 뜬금없이 왜···,

“확실해? 잘못 본 거 아니야?”

- 김태주 회장 맞습니다. 회색 코트도 입었고, 헉!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박철기 소령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작전 취소한다. 병력들 모두 철수해!”

- 네!

김태주 회장이 나타난 이상 더는 작전을 진행할 수 없다.

두 놈을 납치하게 되면 그가 의심을 받는다.

‘하필 이런 때에···,’

그런데 왜 왔지?

일단 군단장님께 보고하고 보자.

※ ※ ※

천국의 궁전 1013호실.

민동열 회장과 지광인 사무관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양쪽에 여성들을 안고, 입으로 먹여주는 안주를 씹으며, 불만을 늘어놓는 두 사람.

“오진형! 쌍놈의 새끼, 무지렁이 군바리 새끼! 얻다 대고 총을!”

“김태주 그놈이 더 문제입니다. 건방지게, 그까짓 신약 몇 개 개발했다고 사람 무서운 줄 몰라.”

하도 씹어서 안주가 필요 없을 정도.

“오진형은 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 제가 내일 육본에다 직접 항의할 겁니다.”

“···오진형에게 먹히겠소? 그놈도 군부에 세력이 있는데.”

“군부에도 파벌이 존재합니다. 반대 파벌을 이용하면 되지요.”

“호오! 그렇군. 배운 사람은 달라.”

“군바리 새끼보다는 똑똑하죠.”

“하하하하! 한잔합시다.”

그러다 주제가 지리산 밀림 마수 대토벌 작전으로 이어졌다.

“생각 같아선 작전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또 마음 한편으론 실패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바로 그 마음입니다. 실패해서 웨이브가 일어나면···,”

“오진형이는 좌천되거나 옷을 벗어야 할 겁니다.”

주거니 받거니 죽이 착착 맞았다.

“만약 웨이브가 발생해도 난 캐슬 문을 개방하지 않을 거요.”

“그래요. 지난번엔 캐슬을 열어서 피난민들을 받아줬지만 결과가 어땠습니까?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자치위원회 욕이나 하고.”

“천한 놈들이라 그런 겁니다. 이번엔 캐슬 밖에서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맙시다.”

“뭐, 실패는 우리에겐 또 한 번의 기회가 되겠군요. 구례에 주인 없는 부동산들이 늘어날 테고.”

“하하하! 역시!”

화기애애한 술자리.

며칠 전 경험했던 치욕이 깨끗하게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다.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렸다.

한사람이 들어오고,

쿵!

문이 닫혔다.

“헉!”

“너, 넌?”

태주였다.

“밖에서 들어보니 진짜 가관이네. 너희들은 양심도 없는 놈들이구나.”

지광인과 민동열은 깜짝 놀랐다.

상상도 못 했다.

저놈이 왜 왔지? 또 어떻게 알고···.

“잠시만 나가 있어 주실래요?”

태주는 접객 여성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아, 네네. 저 나갈게요.”

“저도···.”

“그러지 않아도 나가고 싶었어요.”

“···솔직히 돈 벌자고 이 생활하고 있지만 저 사람들, 진짜 인간쓰레기예요.”

줄지어 밖으로 나가는 그녀들.

지광인과 민동열이 부들부들 떨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이, 이놈! 여기가 어, 어디라고!”

“···지금 나가면 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 다, 당장 나가!”

태주는 피식 웃었다.

“벌벌 떨면서 센 척하기는.”

“이, 이, 가, 감히···.”

“어쨌든 마수 토벌 작전이 실패하길 바라나 본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우린 그런 말 한 적 없어.”

확실히 뻔뻔한 놈들이다.

거짓말 정도는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그래, 그러시겠지.”

오늘 태주는 태홍 바이오 회장으로 오지 않았다.

절대독마 당군악으로 왔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마보다 더 지독한 독마.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강호의 무인들이 당군악에게 마(魔)라는 호칭을 붙인 이유.

태주는 탁자 위에서 깨끗한 빈 잔 두 개를 가져와 술을 따랐다.

쪼르르륵.

황금빛 액체로 채워지는 잔.

지광인과 민동열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저 새끼 뭐지? 술 먹으러 왔나?

그러나 태주가 술잔 안에 까만색 알약을 하나씩 떨어뜨리자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자! 한 잔씩 마셔.”

하지만 그들은 태주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할 뿐, 술잔에 손을 가져가지도 않았다.

김태주는 해독제를 잘 만든다.

당연히 독에도 조예가 깊겠지.

“안 마셔?”

“···눈앞에서 독을 탄 술을 마시라고?”

“괜찮아. 주기적으로 내가 주는 해독약을 복용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흥! 웃기지 마라! 입에도 대지 않을 거다.”

“나, 나도.”

억지로 먹이기엔 귀찮고.

“그럼 여기서 죽든가.”

“···우릴 죽이겠다고? 너도 무사하지 않을 텐데.”

“너, 널 본 사람들도 많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태주는 가만히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으음, 그래?”

“수사가 진행되고 넌 용의자로 지목될 거야.”

“용의자라, 알았어. 지금 물어보자.”

띡, 띡, 띡, 띡···,

스마트폰 번호를 누르는 태주.

딸칵!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이정학씨?”

- 네, 김태주 회장님.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런데요.”

-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내가 지금 민동열씨와 지광인씨와 같이 있는데, 몇 분 후에 이분들이 시체로 발견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수사가 들어가나요?”

- ···아! 당연히 수사는 해야죠.

그것 보라는 듯, 태주를 매섭게 노려보는 지광인과 민동열.

“제가 용의자가 되는 겁니까?”

- 설마요! 태홍 바이오 회장님이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를 리가.

“그럼?”

- 아마 마인들 짓일 겁니다. 동료 마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구례시 상임위원들에 대한 복수? 물론 회장님께선 마인을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놓쳐버렸고요.

“후우, 진짜 마인은 나쁜 놈들이에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보통 마인은 마수화로 상대를 죽이기 때문에, 몸에 손톱자국 비슷한 게 있어야 할 겁니다. 대충 4개에서 5개 정도만 표시해 주십시오.

“네, 다음에 뵙죠.”

뚝.

전화가 끊겼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꿀꺽!

침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이윽고.

“우, 우리한테 왜 이러시오?”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텐데.”

“좀 전에 했던 말은 본심이 아니오. 그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정 안 마시겠다면 뭐···,”

태주는 슬쩍 품속에서 유엽비도 다섯 자루를 꺼냈다.

“손톱자국 5개라···,”

순간 지광인과 민동열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칠흑동 달동네에서 처참하게 죽은 3명의 마인.

그게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 아니오! 마시겠습니다.”

“저도···,”

벌컥, 벌컥!

약효는 알코올과 함께 금방 퍼졌다.

술잔을 입에다 털어 넣는 지광인과 민동열.

“커헉!”

“아악!”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심장이 따끔할 거야. 제때 해독약을 못 먹으면 결국 급성심근경색으로···,”

태주는 다시 품에서 알약 두 개를 꺼내 각각 건네며 말했다.

“하지만 이걸 먹으면 괜찮아지지.”

민동열과 지광인은 태주가 건네주는 알약을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한 달에 한 알씩, 정기적으로 복용해. 뭐, 하루 이틀 지나도 괜찮을 건데, 웬만하면 시간은 지키고.”

“한 달 후에 직접 가져다주는 거요?”

“이정학 길드장 찾아가. 맡겨 둘 테니.”

이제 구례를 바꿔볼 시간.

“자! 잘 들어. 오늘 이후로 캐슬은 일반 사람들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될 거야.”

흠칫! 놀라는 두 사람.

“···네? 그, 그건 불가능합니다.”

“맞습니다. 거주민들의 반발이 심할 겁니다.”

“해독약 먹기 싫어? 그럼 마음대로 하던가.”

“···.”

“···.”

그냥 개방만으로 부족하지.

“그리고 자치위원회 예산으로 인공호수에 다리를 건설해. 최대한 빠르고 튼튼하게!”

적어도 구례에서만큼은 그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을 생각.

부의 대물림까진 이해한다.

제국은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러나 사람의 생명까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캐슬이 개방되면 내부 치안도 위험하겠네. 그럼 자경단 숫자도 늘려야 하고.”

“그, 그렇지만 위원회 예산이···.”

“돈? 그럼 사비를 털어. 돈 많이 모았잖아?”

태주는 픽,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 온 걸 다행인 줄 알아. 조금만 늦었어도 너흰 그냥 죽었어.”

“무, 무슨 소리요?”

“나중에 경호원에게 물어봐. 궁금하지 않아? 왜 경호원들이 조용한지.”

“어···.”

올라오면서 봤다.

1013호실 주변에서 눈치를 보던 종업원, 청소부, 접객원···, 변장했지만 자신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

그중 몇몇은 안면이 있고.

지리산 대마수 특전부대.

칠흑동 달동네에서 마주친 군인들.

아마 조훈석처럼 이들을 처리하려고 했겠지.

또 본의 아니게 자비를 베풀었다.

※ ※ ※

오진형 중장은 임무를 위해 구례시 캐슬로 잠입했던 박철기 중령의 보고를 받았다.

임무는 결론적으로 실패.

“그래, 두 놈은 멀쩡하게 돌아갔다고?”

“표정은 매우 썩었지만···, 부상 당한 곳도 없어 보였습니다.”

김태주가 그들을 만난 이유가 뭘까?

타협이나 손을 잡는 건 아닐 것이다.

사실 이유가 뭐가 중요할까?

김태주가 개입했으면 물러나는 게 맞다.

그리고 또 좋은 신호.

어쨌든 그가 구례에 대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어야지.

‘굳이 재입대 권유를 할 필요가 없겠어.’

생각 같아선 진짜 영지로 만들어 넘겨주고 싶다.

그러나 영지를 받으려면 별을 달고 제국군에 소속되어야 한다.

군에 뜻이 없는 김태주가 재입대하려고 할까?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재입대가 가능하다.

예정된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

김태주 회장의 공적 기여도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이번 작전은 그가 만든 해독제와 회복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전이었으니까.

< 독마의 방식.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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