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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벌을 위한 준비 >
웨이브는 왜 일어날까?
때가 되면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반은 맞는 말이다.
밀집지대 마수들의 숫자가 늘어 밀도가 높아지면?
이것도 반쯤 맞다.
마수 웨이브의 주된 원인은 바로 엘리트 마수들 때문.
엘리트 마수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놈들의 영역이 서로 겹치게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광기에 휩싸여 지들끼리 전투가 일어난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순식간에 밀집지대 내 모든 엘리트 마수들이 광란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엘리트 마수들이 뿜어내는 피어(fear), 혹은 살기.
그 영향은 일반 마수들에게도 전해지고, 그게 점점 쌓이다 보면 마수 무리 전체가 두려움에 떤다.
시간이 갈수록 집단 정신착란 현상처럼 마수 무리들을 변하게 하고, 놈들이 느낀 공포는 인간에 대한 공격성으로 변화한다.
급기야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의 거주지로 쳐들어가고, 살육의 시간이 벌어지는 것이다.
모든 마수가 미쳐 날뛴다.
심지어 마수 생태계 최하층에 있는 긴꼬리 쎅토끼도 인간만 보면 무조건 들이받는다.
선공 마수든, 비선공 마수든, 가리지 않고 마구마구 쏟아져 나온다.
인간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
그러나 이때만큼은 무기 사용이 가능해진다.
이미 웨이브가 일어난 판에, 가릴 게 뭐가 있나?
총기와 대포, 미사일,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마수들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의 존재 이유.
물론 핵은 제외.
중국을 봐서 알 수 있듯이 핵을 사용하면 나라 전체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광기가 진정되고 마수들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되돌아가면 비로소 웨이브 종료.
이게 웨이브의 공식이다.
비슷한 주기로 반복해서 나타나고.
그래서 대토벌 작전의 주요 공략 대상은 바로 엘리트 마수.
얼마나 많이 엘리트 마수들을 잡느냐에 따라 토벌 작전 성공의 여부가 갈린다.
대토벌 작전은 부수입도 엄청나다.
엘리트 마수를 사냥하면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획득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대토벌 작전이 진행되면 제국 전체의 제약회사들이 임원이나 책임자들을 파견해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구매해 간다.
태주도 몇 마리 잡아서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확보할 생각.
그럼 토벌 준비를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일단 회복제를 많이 만들어낸다.
태주가 보기엔 토벌 작전의 승패는 바로 이 회복제에 달려있었다.
그동안 많은 양을 군에 납품했지만 여유 물량은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모자라는 일이 없도록.
자이언트 반달곰이야 지리산에 널려있다.
토벌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하루에 몇 마리씩 잡았다.
가공 처리한 웅담을 가지고 와서 회복제는 태주가 직접 제조했다.
백창훈과 장순철 대신에, 걔들은 할 일이 있으니까.
“혀, 형님! 자, 잠시 쉬었다가···.”
“안돼! 순철이 봐라! 군말 없이 잘 따라 하잖아.”
“···저도 조금 힘든데요?”
“응, 열심히 해.”
오행기공의 수련은 기본적으로 마보 자세다.
하체를 튼튼히 하고 오행, 즉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스킬 생성이 안 됐어?”
“아직, ···영영 안 되면 어떡하죠?”
“될 때까지 해야지.”
이제 며칠 했다고.
전에 침투경도 일주일은 걸렸다.
“너희들도 이번 토벌 작전 참가할 거야. 기본적으로 익스퍼트 정도는 되어야 쓸 만해지지 않겠니? 그때까지 눈 딱 감고 수련하자, 응?”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토벌 작전은 매우 위험해서 어설프게 준비했다간 큰코다친다.
태주는 영약도 몇 개 더 만들었다.
두 놈 다 미들 익스퍼트까진 올려놓을 생각.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마음이 이해된다.
경지에 오르는 것보다 어디 가서 맞지 않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행기공을 가르친 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시스템 메시지가 잠잠하다.
벌써 열흘이 훨씬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백창훈과 장순철에게 들려온 시스템 메시지.
배운지 보름 만이었다.
[스킬 : 5원소 마나 심법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떴습니다!”
“오!”
5원소 마나 심법, 이건 이름 그대로 오행기공을 의미하는 듯하다.
“잘했다. 열심히 수련해! 스킬 등록됐다고 안심하지 말고.”
그건 그렇고, 오행기공 배우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
침투경은 일주일, 오행기공은 보름, 거의 두 배다.
생각해보면 오행기공은 기초 무공이긴 하지만 만만한 건 아니다.
그러니 당가의 자손들도 필수적으로 배우는 거고.
‘흐음, 혹시?’
짐작 가는 구석이 있다.
“얘들아. 이번엔 쉬운 걸로 가르쳐줄게. 괜찮지?”
“네!”
“오히려 좋은데요?”
그래서 태주는 누구나 배우는 기초검법인 삼재검법(三才劍法)과 단순히 걸음을 빠르게 하는 삼재보(三才步)를 가르쳤다.
추측은 들어맞았다.
전수한 지 이틀도 안 돼,
“아!”
“됐다.”
탄성을 터뜨리는 백창훈과 장순철.
“떴어?”
“네! 떴습니다.”
“이름은?”
“그게···.”
[스킬 : 트리플 포메이션 소드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 트리플 포메이션 스텝을 습득하셨습니다.]
트리플 포메이션 소드는 삼재검법, 트리플 포메이션 스텝은 당연히 삼재보.
‘결국 시스템도 한계가 있다는 건가?’
어려운 무공은 등록되는 데 오래 걸린다.
당장 기초심법 수준인 오행기공만 해도 보름.
빠르게 스킬로 등록하려면 구결이 쉬워야 한다.
반복 숙련만으로 익힐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삼재검법이나 삼재보도 잘 익히면 괜찮은 무공이지.’
이 정도면 맞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 ※ ※
함양 마수 방어사단.
도민수 소령은 졸업 예정 사관생도들의 신상 정보를 살펴보고 있었다.
김태평, 김태천, 그리고 그들의 졸업 동기들.
사관학교 기간은 4년제다.
그러나 얼마든지 조기 졸업이 가능하다.
각성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이 서류에 나온 사관생도들은 학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하아, 금수저 새끼들.’
생도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재벌가 패밀리에, 고위 공무원에, 저명한 학자 가문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마스터의 자제, 그리고 지방 영지의 후계자들···,
그럴 수밖에.
결혼을 그런 식으로 하니까.
당장 도민수 소령도 결혼정보업체에서 가입하라고 매일 문자가 날아온다.
도민수도 사관학교 출신이긴 하지만 집안은 평범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적합자 출신.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20대 초반에 각성해 군에 입대했다.
‘자, 그럼···,’
데리고 놀아볼까?
도민수는 시간 맞춰 함양 사단 본부, 연병장으로 나갔다.
마침 대형 버스를 타고 연병장에 도착한 생도들.
이번에 졸업 예정인 사관생도들은 모두 32명이었다.
재능이 뛰어나 2년 만에 각성해 조기졸업 예정인 놈들도 있고, 집안에 돈이 많아 영약을 처먹고 비기너 단계까지 만들어 온 놈들도 있다.
그러면 뭐 하겠나?
적합자 부사관들보다 더 못할 텐데.
“동작 봐라! 빨리 안 움직여? 이 핏덩이 새끼들아!”
도민수의 지시에 사관생도들이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려 연병장에 정렬했다.
“너흰 쓰레기들이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명심해라. 내가 지시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마!”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사관생도들.
그중에 태주의 배다른 동생, 김태평과 김태천도 있었다.
지루한 듯 하품하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서로 속삭였다.
‘아씨, 처음부터 기강 잡기야? 졸라 꼰대네.’
‘쉿! 조용.’
‘그나저나 여기 구례와 가깝잖아. 태주, 그 새끼는 뭐 하고 있을까?’
‘약이나 팔고 있겠지. 신경 꺼. 민간인 만날 일이 어디 있다고.’
‘그렇겠지? ···씨발, 돈을 그렇게 처벌어놓고, 파주엔 연락도 안 해. 최소한 재워주고 먹여준 값은 해야지. 지금까지 돈이 어디서 나왔는데? 우리 외갓집이잖아.’
‘그놈이 양심이 있으면 벌써 했지.’
도민수는 생도들에게 첫 번째 지시를 내렸다.
“이제부터 토벌 작전 준비에 들어간다. 안타깝게도 너흰 굴러들어온 놈들이다. 따라서 생활할 장소가 없어. 그러면 만들어야겠지?”
도민수가 눈짓하자 대기하던 병사들이 한쪽에 뭔가를 쌓기 시작했다.
“저건 너희들이 생활할 텐트다. 밀림에 나가서도 텐트에서 생활해야 한다. 연습도 할 겸 연병장 한쪽에 설치한다. 걱정 마라. 노련한 병사들이 도와줄 거야. 이상!”
우르르르, 몰려가는 생도들.
제각기 텐트 하나씩을 들고 지정된 자리에서 설치를 시작했다.
2인용 텐트.
김태평과 김태천도 적당한 텐트 하나를 잡았다.
도와줄 병사도 붙었다.
“후아, 더워서 미칠 지경이네.”
“맞아, 태평이 형, 확실히 파주하고는 달라.”
“이런 뙤약볕에서 지내라고? 에어컨도 없이?”
“어쩌겠냐? 하라면 해야지.”
텐트를 치다 말고 김태평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김태천에게 속삭였다.
“야 태천아, 저기 저 애 보이지?”
“누구? 아하, 정연희? 백두 자동차 딸 말하는 거구나.”
“그래, 예쁘지 않냐? 집안도 빵빵하고.”
“쟤 얼굴값 하는 애야. 내가 오면서 말 한번 슬쩍 걸어봤잖아. 대답도 안 하고 싸늘하게 노려보는데, 어휴!”
“하긴, 백두 그룹 딸이면 그럴 만하지, 쟤하고 사귀면 완전 팔자 피는 건데.”
“꿈 깨. 우리에게 신경이나 쓰겠어?”
“혹시 모르지. 마스터에 오르면.”
“흐흐, 당연하지.”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병사가.
“빨리 텐트 설치하죠. 늦게 칠수록 식사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러자 불쾌한 듯 병사를 노려보는 김태천.
“하고 있잖아. 씨발! ···이건 왜 안 끼워져?”
“다른 폴대입니다. 이걸로 끼우세요.”
“후우, 거지 같은 텐트 달랑 던져주고, 하여간 촌 동네답다.”
“정식 보급 물자입니다. 사관학교에서 텐트 치는 법 배웠을 텐데요.”
“뭐야, 이 새끼가, 지금 내가 못 배워서 이렇다는 이야기야?”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왜 욕을 하십니까?”
여긴 아열대 기후라 불쾌 지수가 매우 높다.
당연히 김태천도 그 영향을 받았다.
“하아, 야! 너 진짜 죽고 싶어?”
“쓸데없는 말다툼 그만하죠. 저 내일 모래면 전역입니다. 민간인이나 다름없다고요.”
“너, 마나 순응자지? 짐이나 들고 다니는 주제에, 각성 장교가 만만하냐?”
“···.”
병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태천을 바라봤다.
임관도 안 한 주제에 장교?
저런 놈들이 소위로 부임하면 적합자 행정 보급관에게 ‘자네가 행보관인가? 커피 한 잔만 타오게.’ 라고 말할 놈들이다.
“네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폴대나 잡아주세요. 저도 할 일이 많아서.”
“끝까지 바락바락 대드네?”
우웅.
김태천은 마나를 끌어올려 살기를 담았다.
“너 따위가 나와 맞먹으려 해?”
주위에 보는 눈이 많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김태평도 동생을 막지 않았다.
한낱 병사 놈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사도 보통이 아니다.
계급이 말년 병장.
게다가 모병제 생활을 마치고 군경력 우대 전형으로 뉴서울 시청 공무원에 합격해서, 내일 모래면 지리산을 떠날 몸이라 눈에 뵈는 것도 없다.
3년 동안 지리산 밀림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저 정도 위협은 가소로울 지경이고.
그래서 눈을 부라리고 크게 소리쳤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공격 의사로 봐도 되겠습니까?”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
김태천은 당황했다.
적당히 겁을 주면 숙일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대들어?
그것도 모두가 들을 만큼 큰소리로,
“너, 너 조, 조용히 말···,”
순간!
“동작 그만!”
어느새 나타난 도민수 소령.
병사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박병장,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하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따로 사과할게. 바쁠 테니까, 이만 가봐.”
“넵!”
그리고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예의도 없고, 지능도 떨어지고, 분위기 파악도 안 되고,”
분노한 표정으로 김태평과 김태천을 노려보는 도민수.
“어, 그게 아니라 저놈이 먼저···,”
“머리 박아.”
후다닥!
쿡, 쿡!
두 형제는 그 자리에서 땅에 머리를 박았다.
“그 자세에서 열중쉬어.”
그리고 도민수는 다른 사관생도들에게 소리쳤다.
“전원 집합!”
우르르르, 몰려오는 남녀 생도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머저리가 있어서 말한다. 갓 각성한 새끼들이 주제 파악도 안 돼? 너흰 전력감으로 온 게 아니고 귀찮은 짐 덩어리로 온 거야.”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머저리들이 누군지, 어떤 사고를 쳤는지, 옆에서 지켜봐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병사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너희보다 짬밥도 오래됐고, 마수 사냥 경험도 많다. 선배로서 예우해,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생도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그래서 오늘 밥은 없다. 대신 우릴 위해 보급을 해주는 일반 병사들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먼저 가진다. 식사는 그다음이야.”
“···.”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빨리 텐트 치고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때 손을 번쩍 든 여자 생도.
“생도 정연희! 의견 있습니다.”
도민수가 그녀를 지목했다.
“말해봐.”
“멍청한 두 놈 때문에 우리 모두 밥을 먹지 못하는 건 부당합니다. 우린 머저리하고 다릅니다. 병사들에게 예의도 갖추었고, 도움도 받아 텐트도 잘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도민수.
“너는 사관학교도 다녔으면서 군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자, 잘못 들었습니다?”
“연대 책임져야지. 동기잖아? 니들은 괜찮을 줄 알았어?”
“···네?”
“박아!!!”
후다다다다다닥!
나머지 30명의 생도들이 그 자리에서 머리를 땅에 박았다.
“각성자라 힘도 안 들지?”
“아닙니다!!!”
“앞으로 전진!”
“···.”
스윽, 스윽, 슥슥.
각성자들이다.
힘이 좋다는 의미.
지나간 자리에 깊은 밭고랑이 파였다.
인간 쟁기와 다를 바 없었다.
생도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민수 소령 때문에?
당연히 아니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김태평과 김태천을 향해서다.
‘깝칠 때부터 알아봤다.’
‘병신 둘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저 고문관 새끼들이 우리 동기라고? 누구 마음대로.’
‘고작 파주 영지 출신 주제에, 눈에 뵈는 게 없나?’
‘버릇없는 놈들, 우리 형도 장교지만 병사들에게 꼬박꼬박 존대하는데.’
‘씨발, 병사에게 반말 찍찍할 때 내가 나섰어야 했어.’
김태평과 김태천은 죽을 맛이었다.
싸늘하다.
동기들의 속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형제의 고난은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 토벌을 위한 준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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