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약회사 회장님은 절대독마-44화 (4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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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공간 >

우화등선(羽化登仙).

무당, 화산, 청성, 공동, 종남 등 구파, 혹은 모산파, 전진파, 정일파···, 도문(道門)의 도사들이 간절하게 소망하는 삶의 목표다.

당군악도 우화등선을 원했다.

굳이 신선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 선계(仙界)라는 걸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룰 거 다 이룬 강호였다.

천마를 죽여 복수도 했고, 당가를 부흥시켜 중원 최고의 가문으로 올려놨다.

삶이 무료했다.

온갖 산해진미, 보물, 여색, 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우화등선을 위해 별짓을 다 했는데···.

뜬금없이 다른 세상의 자신과 만났다.

김태주.

그의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많은 걸 깨달아 마침내 그토록 꿈꿔왔던 우화등선도 이루었고.

현재 당군악은 선계에 있었다.

절대독마가 아닌 이젠 독선(毒仙) 당군악으로서.

겉모습이 인간과 다를 바 없다지만 본질은 인간의 격을 초월했다.

영생불멸의 삶을 살고, 바람과 비를 부르며, 뭇 짐승들의 말을 알아듣고,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이를 인간이라 부를수 있을까?

그런데 선계도 별것 없었다.

사실상 여긴 유배지.

인간계에서 순리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는 절대자들을 신선으로 격상시켜 가둬두는 곳.

당장 사천 당가에 내려가 자신이 신선이 되었노라고 선언하고 싶지만 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신선의 힘은 인간계의 인과율을 뒤집는다.

물론 가끔 인간계에 강림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신선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한번 등선할 걸 무를 수도 없고.

그렇게 선계에서 무료한 시간을 또 보내고 있던 참에.

‘음?’

무언가 느낌이 왔다.

전에 겪었던 그 느낌.

‘···또?’

동시에 의식 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허허, 이런 일이.’

김태주였다.

대체 우리를 연결하게 해주는 주체는 무엇일까?

여긴 선계였다.

여기까지 연결이 들어왔다는 말은 선계보다 더 상위의 힘이 작용했다는 뜻일 텐데, 과연 그 힘은 무엇일까?

아무튼 반갑다.

이게 얼마 만인가?

‘잘 지냈나?’

당군악은 태주를 유심히 관찰했다.

서로 다른 차원에 있지만 그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벌써 혼원무상독령공이 7성?’

확실히 자신다웠다.

아무리 기억과 경험을 공유한 사이라고 해도 1년도 안 돼 벌써 7성이라니.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은 저쪽 김태주의 의식과 경험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김태주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

당군악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같은 영혼이라고 해도 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탈을 벗은 자신.

반면 아직 인간에 머무르고 있는 김태주.

물론 해결 방법은 있다.

격을 살짝 낮추어 문을 열어주면 된다.

김태주의 영혼이 자신의 의식으로 조금만 접근할 수 있도록.

너무 깊숙이는 말고.

영혼 격차가 너무 큰 터라, 혹여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그럼···,

‘들어오게나.’

※ ※ ※

태주와 당군악과의 만남은 두 번째.

그때와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설악산에서 만났던 것처럼 서로 연결되어 그의 의식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단지 지금 앞에 있는 청년이 당군악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어쨌든 좋아 보이네.’

노인에서 청년으로 변했다.

반로환동이라도 했겠지.

그런데 바로 그때!

‘···응?’

갑자기 의식이 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

심령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건가?

그리고 알게 됐다.

이제야 당군악과 자신의 영혼이 서로 연결되었음을.

‘아···,’

영혼이 연결되자 태주에게 당군악의 기억이 밀려왔다.

‘맙소사!’

진짜?

당군악이 신선이 됐다고?

처음 자신과 연결됐을 때, 바로 그 직후인 것 같았다.

‘···나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러나 곧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이건 단순히 무공 지식과 기억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무공은 공식이 있다.

그래서 구결을 깨우치면 정해진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만 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매한 경지에 다다르는 길은 공식이 없다.

전적으로 ‘우연’에 달린 것.

사실 어떻게 보면 무공도 마찬가지.

정해진 공식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대성은 가능하다.

하지만 궁극의 경지인 독령은 영영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절대독마, 아니 이젠 독선(毒仙)이 된 당군악의 성취는 태주에게 있어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영역.

그러나 전혀 부럽지 않다.

오히려 자기 일처럼 기쁘다.

다른 세상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을 이뤄냈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축하합니다.’

당군악도 자신의 의도를 알아들었나 보다.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당군악은 태주의 진심을 알았다.

‘역시, 자넨 나였군.’

뭐, 두말하면 입 아프지.

그러나 김태주가 잘못 안 것이 하나 있다.

선인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천만에.

김태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 이왕 만난 김에 또 전해줄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같은 영혼이기에 앞으로 걸어갈 길도 비슷할 터.

당군악이 강호를 횡행할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현재 김태주도 그 문제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바로 암기의 수납.

비록 7성에 올라 암기 회수가 가능하다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다.

가지고 다니는 암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김태주는 반드시 독령의 경지에 다다를 것이 분명하다. 운이 따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더라도 충분히 해낼 것이다.

독령을 소유하면 당연히 만천화우(滿天花雨)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냥 암기만 냅다 하늘에 뿌려대는 가짜 만천화우 말고 진짜 만천화우를 말이다.

절대독마 당군악이, 혹은 절대독마 김태주가, 만 명으로 분열해서 동시에 암기술을 전개한다고 생각해보라.

자신도 마교와의 대회전에서 만천화우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

부족한 암기를 충당하기 위해 당문의 제자들이 자루에 가득 암기를 담아, 만천화우를 펼칠 때마다 자신에게 건네주곤 했었다.

그래서 항상 고민했었다.

어떻게 하면 암기를 더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그런데 우습게도 그 문제는 등선하고 나서야 해결됐다.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술법을 자연스럽게 깨우쳤다.

일명 ‘무한공간 술법진’.

이걸 전해주고 싶다.

어떻게?

무한공간 술법이 이루어지려면 선기(仙氣)가 필요하다.

영험한 신선의 기운 말이다.

하지만 지구의 김태주는 신선이 아니다.

따라서 선기를 다루지 못한다.

‘내가 전해주면···.’

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선인이 됐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천기(天機)에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사실.

신선이 인간 만사에 간섭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저쪽은 인간계라기보단 다른 차원이지 않나.’

맞다.

세상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천기에 어긋날 일이 없다.

‘하나는 해결됐고.’

두 번째 문제도 첫 번째와 연관되어 있다.

과연 다른 세상에도 선기가 전달될까?

‘해보면 되겠지.’

간단한 일이다.

당군악은 자신의 선기(仙氣)를 영혼이 연결된 길을 통해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런데.

‘이게 되네?’

선기가 전해진다.

다른 세상의 나, 김태주에게 말이다.

‘이것도 알지 못하는 힘이 개입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신선인 자신도 모르는 힘.

고민할 여유가 없다.

빨리 보내기나 하자.

선기는 내공과는 다르다.

소모한 내공은 운기를 통해 다시 채우면 되지만, 한번 빠져나간 선기는 회복이 안 된다.

다른 방식을 통해 새로 쌓아야 한다.

그러나 아까울 게 뭐가 있어?

내가 나한테 주는 건데.

※ ※ ※

현재 태주는 당군악과 연결된 상황.

말은 나눌 수 없지만 그의 기억과 생각이 마치 텔레파시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무한공간 술법진···.’

일종의 신선술.

공간을 나눠 시전자만 사용할 수 있는 보관실을 만든다.

손바닥에 술법진을 그리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암기를 그 안에 넣고 다니라는 말이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편해질까?

걸림돌도 있는 것 같다.

술법을 위해선 선기(仙氣)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신선도 아니고.’

그런데.

‘응? 전한다고? 나한테 선기를?’

에이, 그게 될 리가 있나!

세상이 서로 다른 판에···,

순간!

‘어?’

찌르르르,

의식 안으로 수수께끼 같은 힘이 전해져 왔다.

뭔가 성스럽고, 고결하고, 숭고하고, 감동적인, 사악하고 삿된 것을 물리치는 거룩한 힘.

‘이게 된다고?’

이유가 뭐든, 서둘러야 한다.

언제 연결이 끊길지도 모르니 당군악이 그러라고 전했다.

태주는 옆에 손을 뻗어 땅바닥을 더듬었다.

그러자 잡히는 유엽비도 하나.

당군악이 시키는 대로,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모양대로, 태주는 비도를 들어 술법진을 새겼다.

먼저 왼손바닥부터.

스그윽.

비도를 타고 선기(仙氣)가 흐른다.

손바닥에 칼을 그어댔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른손바닥.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칼로 손바닥을 갈랐다.

그럴 때마다 선기(仙氣)는 피부에 스며들었고.

‘빨리해야 해. 끊기기 전에.’

이윽고 완성된 두 개의 술법진.

‘정말 감사···, 응?’

당군악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결이 끊겼구나.’

아아!

이렇게 막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또 만날 수 있을까?’

자신도 뭔가를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이제 확인할 시간.

무한공간 술법진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알아보자.

술법진이 무한하다지만 이름 그대로 무한하진 않다.

당군악의 기억대로라면 그 크기는 커다란 식량 보관 창고를 10개 합친 정도.

또한 살아있는 생명체는 수납이 안 된다.

예를 들어 독초 같은 풀뿌리도 땅에서 뽑아내고 시간이 조금 흘러야 넣을 수 있다.

수납 대상의 크기도 제한.

약 가로 세로 높이가 1m, 그거보다 살짝 커도 들어가긴 한다.

‘자동차 같은 건 안 되겠구나. ···접이식 자전거는 들어가겠는데?’

그리고 양손에 새겼지만 공간이 두 개로 나누어진 건 아니었다.

들어가는 통로만 다를 뿐이지, 결국은 하나의 공간.

‘그럼 넣어볼까?’

바닥에 흩어져있는 암기부터.

손으로 잡아서 넣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스륵, 사라지는 탈명비도.

“오!”

들어간 탈명비도를 상상하며 꺼내겠다고 떠올리자.

스슷!

어느새 손에 들려 있었다.

“흐흐흐, 참나, 이거···,”

미치겠다.

너무 좋아서 웃음만 나온다.

암기 수납 문제는 늘 했던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해결되다니.

심지어 아공간 가방 따위는 범접할 수도 없는 무한공간 술법진.

‘다 집어넣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암기들을 다 넣었다.

찢긴 코트 주머니 속 암기들도.

그리고 토굴 밖으로 나와서.

‘유엽비도 오른쪽에서 3자루, 왼손에 3자루.’

스슷!

‘오른손에 철환 30개, 왼손엔 폭우이화정 30개.’

스스스슷!

후두둑!

“음.”

단점이 있다.

손이 꽉 차면 나머지는 밑으로 떨어졌다.

이건 연습으로 극복하면 되고.

무한공간 술법진은 확인했다.

그럼 혼원무상독령공 7성의 결과는?

탈명비도 한 자루를 꺼내,

스슷!

독기를 불어넣자,

지이잉!

파란색 강기 날이 선명하게 비도에 맺혔다.

“하하하.”

너무 좋다.

이제 이걸로 엘리트 마수 썰고 다니면 끝.

물론 강기도 우열이 있어서 자신보다 강한 마수의 강기 보호막은 뚫기가 힘들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만난 엘리트 마수들은 한 방에 죽는다.

그런데 그때!

쩌저저적!

표면에 실금이 생겨버린 탈명비도.

“쯧.”

강기의 힘을 이기지 못한 모양.

아까운 비도 하나 날렸다.

태주는 유엽비도를 꺼내 강기를 일으키지 않고 독기만 불어넣었다.

전면에 보이는 나무를 향해 일섬을 펼치니.

츠피핏!

콰악! 푹!

줄기를 관통하고도 힘이 남아서 밀림 저편으로 사라지는 유엽비도.

동시에 손을 뻗어.

우우우웅!

휘리리리릿!

착!

날아갔던 암기가 다시 손에 돌아왔다.

‘회수도 가능해졌어.’

사실 암기 자체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암기에 입힌 독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독정에 각인된 그 독을 말이다.

그러면 암기도 같이 딸려오는 식.

하지만 이것도 단점이 있다.

암기를 발출하고 시간이 지나면 독이 증발해서 회수되지 않는다.

암기에 입혀진 독이 허공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출하고 최소한 30분 안에는 회수해야 한다.

암기 회수도 점검했고.

‘독기방사는?’

츠츠츠츠츠츠츠···,

이것도 확실히 강해졌다.

방출되는 속도와 양이 다르다.

‘막 뽑아대다가는 독정이 빨리 마르겠네. 조절이 필요해.’

다음으로 혈인독장.

그동안 공력이 모자라 마지막 초식인 독화만무를 펼치지 못했다.

파바바박! 파바바박!

사방으로 꽃이 피어났다.

독의 꽃, 독화.

독기방사를 응용한 광역기.

독화가 떨어지는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중독된다.

그 외, 일섬의 위력은 크게 증가했고, 비폭의 사정거리도 늘어났다.

환영미리보와 표홀질풍보는 말할 것도 없고.

7성의 가장 좋은 점은 따로 있었다.

화경에 이르러면 두 개의 잡무공을 순조롭고 확실하게 펼칠 수 있다.

역용술과 축골공.

역용술을 얼굴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축골공은 몸을 작게 만드는 잡기.

공력이 약할 때 역용을 시전하면 얼굴이 변한 듯 마는 듯하다.

큰 차이가 없다.

유지 시간도 극히 짧고.

축골공도 마찬가지.

하지만 혼원무상독령공 7성, 즉 화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용과 축골의 효과가 극적으로 변한다.

얼굴이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거고, 키도 10cm 이상 줄인다.

또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도 있다.

마치 마나 순응자처럼.

오진형 중장도 자신의 성취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겠지.

이제 퇴근하자.

나머지 성취는 집에 가서 확인하고.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도 서서히 끝물에 왔다.

지금까지 잡은 엘리트 마수만 몇 마리인가?

당분간 웨이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

하지만 태주는 끝까지 참가할 것이다.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더 많이 필요하다.

‘내일부터는 홀로 움직여야지.’

혼자서 지리산 엘리트 마수의 씨를 말릴 것이다.

뭐, 어차피 몇 년 지나면 일반 마수가 엘리트 마수로 진화하겠지만.

< 무한공간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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